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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차 (창세기 48장 ~ 창세기 50장)

남쪽에서 바라본 헤브론의 족장들의 무덤, 막벨라 굴 위에 세워진 건축물, Djampa 촬영, CC BY-SA 4.0

남쪽에서 바라본 헤브론의 족장들의 무덤, 막벨라 굴 위에 세워진 건축물, Djampa 촬영, CC BY-SA 4.0

29일차 (창세기 48장 ~ 창세기 50장)

본문

창세기 48장

  1.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요셉에게 말하기를 네 아버지가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2. 어떤 사람이 야곱에게 말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3.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4.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5.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6. 이들 후의 네 소생은 네 것이 될 것이며 그들의 유산은 그들의 형의 이름으로 함께 받으리라
  7. 내게 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도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 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아직도 먼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 (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8.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이르되 이들은 누구냐
  9. 요셉이 그의 아버지에게 아뢰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그들을 데리고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10.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말미암아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고
  11.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자손까지도 보게 하셨도다
  12. 요셉이 아버지의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러나게 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13. 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14.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15.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17. 요셉이 그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18.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으나
  19.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20.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21.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22.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창세기 49장

  1.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2.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3.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4.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5.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6.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7.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10.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11.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12.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13.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14.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15.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16.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17.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18.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19.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20.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21.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23.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24.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27.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28.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29.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30.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31.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32.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33.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창세기 50장

  1. 요셉이 그의 아버지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고
  2. 그 수종 드는 의원에게 명하여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하매 의원이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3.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으로 처리하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
  4. 곡하는 기한이 지나매 요셉이 바로의 궁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원하건대 바로의 귀에 아뢰기를
  5. 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 놓은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 하라 하였더니
  6. 바로가 이르되 그가 네게 시킨 맹세대로 올라가서 네 아버지를 장사하라
  7. 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8.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그들의 어린 아이들과 양 떼와 소 떼만 고센 땅에 남겼으며
  9.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그 떼가 심히 컸더라
  10. 그들이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 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울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버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애곡하였더니
  11. 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이르되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 곧 요단 강 건너편이더라
  12. 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그를 위해 따라 행하여
  13.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14. 요셉이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꾼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
  15.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1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22. 요셉이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주하여 백십 세를 살며
  23.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24.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26.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본문 해설

창세기를 닫는 세 장

오늘로 창세기를 덮습니다. 스무아홉 날에 걸쳐 천지창조에서 출발한 이 긴 책이 애굽의 관 하나로 마무리됩니다. 그러나 그 관은 절망의 상징이 아니라, 반드시 올라가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품은 씨앗 같은 관입니다. 창세기의 마지막 세 장을 함께 천천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세 장의 구조를 먼저 짚어 두겠습니다. 48장은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입양하고 축복하는 장면이고, 49장은 열두 아들에게 남긴 예언적 유언이며, 50장은 야곱의 장례와 요셉의 마지막 날들을 담습니다.

연대를 보면 야곱은 백사십칠 세에, 요셉은 백십 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야곱이 애굽에 내려온 기원전 1876년 무렵에서 요셉이 죽은 때까지 일흔 해가 넘는 시간이 흘렀고, 그 뒤로 출애굽까지 다시 삼백 년이 넘는 침묵이 이어집니다.

루스에서 받은 약속을 다시 꺼낸 노인

48장 3절에서 야곱은 요셉에게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라고 말문을 엽니다. 루스가 어디일까요? 창세기 28장 19절에 나오는 벧엘의 옛 이름입니다.

젊은 야곱이 형을 속이고 도망치던 밤, 돌베개를 베고 자다가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를 보았던 그 자리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35장 11절에서 하나님이 전능한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타나 언약을 확인해 주신 곳이기도 합니다.

죽음을 앞둔 노인이 왜 이 기억을 먼저 꺼냈을까요? 자기가 아들들에게 남길 것이 재산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약속임을 분명히 하려는 것입니다. 4절에서 그는 생육과 번성, 그리고 이 땅을 영원한 소유로 주시겠다는 약속을 그대로 복창합니다.

이 장면이 주는 교훈이 묵직합니다. 애굽 최고 권력자의 아버지가 임종 자리에서 셈한 유산 목록에 애굽의 어떤 것도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가 가진 가장 값진 것은 가나안의 돌베개에서 들은 말씀뿐이었습니다.

두 손자를 아들로 받아들인 입양

48장 5절은 법적으로 매우 중요한 선언입니다. 야곱은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라고 말합니다. 손자를 아들의 자리로 올리는 입양 선언입니다.

이 조치가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요? 요셉이 사실상 두 몫의 유산을 받게 되었습니다. 열두 지파를 셈할 때 요셉 대신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각각 한 지파로 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역대상 5장 1절과 2절이 이 사정을 설명합니다. 르우벤이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혀 장자권을 잃었고,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로, 통치권은 유다에게로 나뉘었다는 기록입니다. 창세기 49장의 유언이 바로 이 구도를 따릅니다.

서쪽에서 바라본 베들레헴의 라헬의 묘, 2018년 3월 촬영, Onceinawhile, CC BY-SA 4.0
서쪽에서 바라본 베들레헴의 라헬의 묘, 2018년 3월 촬영, Onceinawhile, CC BY-SA 4.0

7절에서 야곱은 갑자기 말을 돌려 라헬의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는 회상인데, 본문은 에브랏이 곧 베들레헴이라고 덧붙입니다. 위 사진은 오늘날 그 자리로 전해지는 베들레헴 북쪽의 라헬의 묘입니다.

노인이 왜 이 대목에서 아내의 무덤을 떠올렸을까요? 라헬이 더 낳지 못한 아들의 몫을 자기가 손자들을 통해 채워 주려는 마음이었습니다. 사랑했던 아내에게 평생 미안했던 사람의 마지막 배려가 입양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엇바꾸어 얹은 두 손

렘브란트가 그린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하는 야곱, 카셀 소장, 퍼블릭 도메인
렘브란트가 그린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하는 야곱, 카셀 소장, 퍼블릭 도메인

48장 13절과 14절은 창세기에서 가장 많이 그려진 장면 가운데 하나입니다. 요셉이 장남 므낫세를 아버지의 오른손 쪽에, 차남 에브라임을 왼손 쪽에 세웠는데, 야곱이 팔을 엇바꾸어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었습니다. 위 그림이 그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오른손은 더 큰 축복의 손이었습니다. 그래서 17절에서 요셉은 기뻐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손을 옮기려 했습니다. 아버지의 눈이 어두워 실수한 것이라 여겼던 것입니다.

19절의 대답이 가슴을 칩니다.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라는 두 번의 반복입니다.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 역전이 성경에서 처음일까요? 아닙니다. 아벨이 가인보다, 이삭이 이스마엘보다, 야곱이 에서보다, 유다가 르우벤보다 앞섰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정해 둔 서열을 자주 뒤집으시는 분입니다.

역사가 이 축복을 어떻게 확인해 주었을까요?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파가 되어, 호세아서에서는 아예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쓰입니다. 눈먼 노인의 손이 수백 년의 역사를 미리 더듬은 셈입니다.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건지신 사자

48장 15절과 16절의 축복문은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앙 고백 가운데 하나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세 가지로 부릅니다. 조상이 섬기던 하나님, 나를 기르신 하나님, 그리고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입니다.

여기서 나를 기르신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는 목자가 양을 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을 목자로 고백한 최초의 자리이며, 시편 23편의 뿌리가 되는 표현입니다. 야곱은 평생 양을 치던 사람이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에게 하신 일을 자기 직업의 언어로 고백한 것입니다.

세 번째 호칭도 깊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다고 말하는데, 얍복 나루에서 그와 씨름하신 바로 그분을 가리킵니다. 창세기 32장의 그 밤이 노인의 기억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22절의 세겜 땅 언급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요셉에게 특별히 준 이 땅은 훗날 요셉의 뼈가 묻히는 자리가 됩니다. 여호수아 24장 32절이 그 성취를 기록합니다.

텔 발라타 유적의 성벽과 성문, 고대 세겜의 자리, TrickyH 촬영, CC BY-SA 4.0
텔 발라타 유적의 성벽과 성문, 고대 세겜의 자리, TrickyH 촬영, CC BY-SA 4.0

위 사진의 텔 발라타가 고대 세겜의 자리로 발굴된 유적입니다. 두꺼운 성벽과 성문의 기초가 남아 있어, 이 성읍이 가나안 중부의 요충지였음을 보여 줍니다. 요한복음 4장 5절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왔던 그 우물도 야곱이 요셉에게 준 땅과 이어진 자리입니다.

열두 아들을 향한 마지막 예언

49장 1절에서 야곱은 아들들을 모아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말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여기 쓰인 히브리어 아하리트 하야임은 장차 올 날들, 곧 먼 미래와 마지막 날까지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단순한 유언이 아니라 예언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3절과 4절의 르우벤은 아픕니다. 장자요 능력이요 기력의 시작이라는 칭호를 받았지만, 물의 끓음 같았은즉이라는 평가가 뒤따릅니다. 창세기 35장 22절의 그 죄가 결국 장자권을 앗아 갔습니다.

5절부터 7절의 시므온과 레위에게는 더 무거운 말이 떨어집니다. 창세기 34장에서 세겜 성 사람들을 속여 학살한 일이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라는 한 줄로 요약됩니다. 흩어짐이 그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이 흩어짐이 끝까지 저주로 남았을까요? 시므온 지파는 유다 안에 흡수되어 이름이 희미해졌지만, 레위 지파는 전국의 성읍에 흩어져 제사장과 성막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서 금송아지 사건 때 모세의 편에 선 뒤 사명이 달라졌으니, 하나님은 저주의 형식조차 뒤집어 쓰시는 분입니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아시아사자, Chrumps 촬영, CC BY 3.0
아시아사자, Chrumps 촬영, CC BY 3.0

49장 8절부터 12절의 유다에 대한 말씀이 이 장의 정점입니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라는 선언으로 시작하는데, 성경 시대의 근동에는 위 사진과 같은 아시아사자가 실제로 살고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5장 5절이 예수 그리스도를 유다 지파의 사자라 부르는 뿌리가 바로 여기입니다.

10절은 구약의 메시아 예언 가운데 가장 이른 것에 속합니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라는 말씀입니다. 규는 왕의 홀을 뜻하니, 왕권이 유다 지파에 머문다는 선언입니다.

실로라는 이름이 누구를 가리킬까요? 오실 메시아를 가리키는 칭호로 읽는 것이 옳습니다. 같은 절 끝에서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라고 말하는데, 한 지파의 지도자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는 일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그리스도에게서만 성취됩니다.

이 예언이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를 묻기보다,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보는 편이 좋겠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왕조가 유다 지파에서 나왔고, 마태복음 1장의 족보가 유다에서 그리스도로 이어지며, 그분이 다시 오셔서 지상에 세우실 왕국에서 이 규는 끝내 꺾이지 않습니다.

11절과 12절의 풍요로운 묘사도 그 왕국을 가리킵니다.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고 옷을 포도주에 빨 만큼 포도가 넘치는 땅입니다. 이사야 11장과 아모스 9장 13절이 그려 보이는 회복된 땅의 풍경과 그대로 겹칩니다.

여섯 지파의 몫과 한 줄의 기도

13절부터 21절까지는 여섯 아들에게 짧은 말이 차례로 주어지는 대목입니다. 스불론은 해변에, 잇사갈은 짐을 메는 나귀로, 아셀은 왕의 수라상을 차리는 기름진 땅으로, 납달리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암사슴으로 묘사됩니다. 각 지파가 훗날 차지한 땅의 성격과 놀랍도록 들어맞는 묘사입니다.

16절과 17절의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라 불립니다. 사사기에 등장하는 단 지파 삼손의 기습 전술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입니다. 다만 사사기 18장에서 이 지파가 우상을 세우게 되는 흐름까지 생각하면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18절은 참 뜻밖입니다. 유언을 이어 가던 노인이 갑자기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라고 외칩니다. 열두 아들의 미래를 짚다가 문득 자기 입에서 터져 나온 기도입니다.

왜 하필 이 자리에서 이 기도가 나왔을까요? 자손의 어두운 미래를 보면서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구원이라는 단어가 이 한 절에 담겨 있습니다.

샘 곁의 무성한 가지, 요셉

49장 22절부터 26절은 요셉에게 주어진 가장 긴 축복입니다. 샘 곁의 무성한 가지로 불리며, 그 가지가 담을 넘었다고 묘사됩니다. 자기 자리에 머물지 않고 열방에까지 열매를 내준 사람의 생애를 이보다 정확히 그릴 수 있을까 싶습니다.

23절은 그가 겪은 일을 담담히 적어 둔 절입니다. 활 쏘는 자가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라는 표현인데, 형들의 배신과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과 감옥의 세월이 모두 여기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24절은 그의 활이 오히려 굳세었다고 말합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같은 절이 밝힙니다.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반석이라 부르는 표현이 성경에서 처음 등장하는 자리도 이곳입니다. 신명기 32장과 시편의 수많은 구절이 이 이름을 이어받습니다. 눈먼 노인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가 성경 전체의 신앙 언어를 열어 준 셈입니다.

27절의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로 불립니다. 거칠게 들리지만 사사기 20장의 전투와 베냐민 지파 사울 왕을 떠올리면 과장이 아닙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지파에서 사도 바울이 나왔다는 점이니, 그 맹렬함이 복음을 위한 열심으로 바뀐 것입니다.

막벨라를 다시 지정한 유언

49장 29절부터 32절에서 야곱은 자기 무덤을 꼼꼼히 지정합니다.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 곧 마므레 앞 막벨라 밭의 굴입니다. 누가 거기 묻혔는지도 하나하나 셈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가 거기 있고, 자기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했다고 밝힙니다. 사랑했던 라헬은 베들레헴 길가에 있고 레아는 막벨라에 있으니, 야곱은 결국 언약의 가족이 함께 묻힌 자리를 택했습니다. 감정보다 언약을 앞세운 선택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장소를 못 박았을까요? 애굽이 자기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손들에게 각인시키려는 것입니다. 그 무덤이 가나안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돌아갈 땅이 있다는 증서였습니다.

33절은 창세기에서 가장 품위 있는 죽음의 묘사입니다. 그가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고 적혀 있습니다. 백사십칠 년의 험악한 세월이 이렇게 단정하게 마무리됩니다.

사십 일의 향 처리와 칠십 일의 곡

이집트에서 발견된 미라 제작 재료가 담긴 항아리,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CC0
이집트에서 발견된 미라 제작 재료가 담긴 항아리,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CC0

50장 2절에서 요셉은 의원들에게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합니다. 애굽의 미라 제작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위 사진은 실제로 미라 제작에 쓰인 재료가 담긴 항아리입니다.

3절의 숫자가 흥미롭습니다. 향 처리에 사십 일이 걸렸고, 애굽 사람들이 칠십 일 동안 곡을 했다고 기록됩니다. 헤로도투스는 『역사』 제2권에서 애굽의 미라 제작과 애도 기간이 칠십 일이었다고 적었으니, 성경의 숫자가 애굽의 관습과 정확히 맞물립니다.

혹시 미라로 만든 것이 신앙에 어긋난다고 보시나요? 그렇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가나안까지 시신을 옮기려면 보존 처리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파이리 무덤 벽화를 모사한 장례 행렬, 니나 M. 데이비스 작,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CC0
파이리 무덤 벽화를 모사한 장례 행렬, 니나 M. 데이비스 작,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CC0

7절부터 9절은 장례 행렬의 규모를 전합니다. 바로의 모든 신하와 궁의 원로들, 애굽 땅의 모든 원로가 따라나섰고 병거와 기병까지 동행했습니다. 위 벽화에 묘사된 애굽식 장례 행렬이 그 모습을 짐작하게 합니다.

양치기 노인이 받은 예우가 어느 정도였는지 아시겠지요. 이것은 사실상 국장에 준하는 행렬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종을 어떻게 높이시는지를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아벨미스라임의 애통과 막벨라의 안장

50장 10절에서 행렬은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 마당에 멈춰 칠 일 동안 애곡합니다. 헤브론으로 가려면 해안 길이 빠른데 왜 요단 동쪽으로 돌았을까요? 대규모 행렬이 가나안 성읍들과 마찰을 피하기 위해 우회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11절에서 가나안 사람들이 그 애통을 보고 아벨미스라임이라 이름 붙입니다. 애굽 사람의 애통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의 눈에도 잊히지 않을 만큼 큰 울음이었다는 증언입니다.

13절에서 야곱은 드디어 막벨라 밭 굴에 안장됩니다. 창세기 46장 4절의 약속, 곧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라는 말씀이 이렇게 지켜졌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글자 하나까지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50장 15절은 참 안타깝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형들이 다시 두려워하며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라고 수군거립니다. 십칠 년 전 창세기 45장에서 이미 용서를 받았는데도 그렇습니다.

왜 그들은 아직도 두려웠을까요?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이 그 은혜를 끝까지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라는 울타리가 사라지자 묻어 둔 불안이 다시 올라왔습니다.

17절의 요셉의 반응이 의외입니다. 형들의 말을 들으며 그는 울었더라고 기록됩니다. 아직도 자기를 그런 사람으로 보는 형들의 마음이 아팠던 것입니다.

19절의 대답이 신앙의 핵심을 짚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라고 그는 되묻습니다. 심판과 보복은 하나님의 영역이니 자기가 그 자리에 앉지 않겠다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20절이 창세기 전체를 요약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라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해하려 하였다는 동사와 선으로 바꾸셨다는 동사가 같은 단어이니, 너희는 악으로 계획했으나 하나님은 선으로 계획하셨다는 뜻이 됩니다.

이 한 절을 꼭 가슴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악의 설계도 위에 하나님의 더 큰 설계도가 덮이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이 이 원리를 신약의 언어로 옮겨 놓았습니다.

21절에서 요셉은 말로만 끝내지 않습니다.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라며 생계를 책임지고, 간곡한 말로 위로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용서는 선언과 함께 실제 돌봄으로 이어져야 완성됩니다.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라

타바켄콘수의 인형 모양 목관, 토리노 이집트박물관 소장, CC0
타바켄콘수의 인형 모양 목관, 토리노 이집트박물관 소장, CC0

50장 22절은 요셉이 백십 세를 살았다고 기록합니다. 애굽 문헌에서 백십 년은 복되고 온전한 생애를 가리키는 이상적인 수명으로 등장하니, 애굽 사람들의 눈에도 그가 가장 복된 인생을 산 사람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24절과 25절이 창세기의 마지막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라고 말하며 자손들에게 맹세를 시킵니다. 여기 쓰인 히브리어는 같은 동사를 두 번 겹친 강조 표현으로, 반드시 틀림없이 돌보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의 요구는 단 하나였습니다.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는 약속입니다. 애굽에서 삼십 년 가까이 총리로 살았고 자손 삼대를 보았지만, 그는 끝까지 애굽을 자기 땅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 맹세는 언제 지켜졌을까요? 사백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뒤였습니다. 출애굽기 13장 19절에서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애굽을 떠났고, 여호수아 24장 32절에서 그 뼈가 세겜 땅에 안장됩니다.

히브리서 11장 22절은 이 일을 믿음의 목록에 올려놓습니다. 요셉이 임종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떠날 것을 말하고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붙드는 것이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26절에서 창세기가 닫힙니다. 요셉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는 문장이 마지막입니다. 위 사진과 같은 애굽식 관 하나가 창세기의 마지막 그림인 것입니다.

창세기는 이렇게 끝나지만 이야기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고센의 어느 창고에 놓인 그 관은 반드시 올라갈 날이 온다는 약속의 담보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1장이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세대주의적 구분으로 보면 창세기는 약속의 세대를 지나 율법의 세대로 넘어가는 문턱에서 멈춰 섭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과 자손과 복의 약속은 아직 다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언약을 세우신 분이 반드시 이루신다는 사실 하나로 이 책은 소망을 남기며 닫힙니다.

묵상과 적용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말씀은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입니다. 야곱은 임종 자리에서 애굽의 재산을 셈하지 않고 루스에서 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꺼냈습니다. 그가 아들과 손자들의 머리에 얹은 것은 돈이 아니라 손이었습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무엇을 남기려고 하고 있을까요? 통장과 집문서도 필요하겠지만, 그것만 남는다면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린 유산이 됩니다.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하는 부모의 기도가 한 세대를 넘어 흐릅니다.

구체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주일 저녁이나 아이의 생일에 손을 얹고 이름을 불러 축복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색해도 몇 해를 이어 가면 그 기억이 아이의 평생 자산이 됩니다.

두 번째 적용은 사람의 서열이 하나님의 서열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야곱은 눈이 어두웠지만 팔을 엇바꾸어 둘째의 머리에 오른손을 얹었습니다. 요셉이 기뻐하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선택은 그대로 진행되었습니다.

가정에서 이 말씀이 위로가 됩니다. 형제 가운데 늘 뒤처져 보이던 아이, 교회에서 눈에 띄지 않던 지체가 하나님의 손이 머무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사람의 평가로 누군가의 미래를 미리 닫지 않도록 조심하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을 목자와 반석으로 부르는 신앙을 배우십시오. 야곱은 자기 평생을 나를 기르신 하나님이라는 한마디로 요약했고, 요셉의 축복에서는 하나님을 반석인 목자라 불렀습니다. 평생 양을 치던 사람이 자기 직업의 언어로 하나님을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쓰는 말로 하나님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가르치는 분은 스승으로, 치료하는 분은 의사로, 짐을 지는 분은 함께 메시는 분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삶의 언어로 하나님을 아는 일입니다.

네 번째 적용은 복수의 자리에 앉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라고 되물었습니다. 자기를 해친 사람들의 운명을 자기가 결정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직장과 교회와 가정에서 우리를 해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을 심판할 권한이 내게 넘어온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9절은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다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다섯 번째로 창세기 50장 20절을 자기 인생에 적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악한 계획과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 같은 사건 위에 겹쳐 있다는 것이 이 구절의 핵심입니다. 상대의 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더 큰 설계도가 덮이는 것입니다.

지금 설명되지 않는 고통 가운데 계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요셉도 열세 해 동안은 그 설계도를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 시간 전체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습니다.

여섯 번째 적용은 용서를 선언으로 끝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 뒤에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라고 약속했습니다. 말과 함께 생계를 책임진 것입니다.

용서했다고 말하면서 그 사람을 계속 멀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계가 끊어진 상태로 유지되는 용서는 아직 절반입니다. 가능하다면 밥을 함께 먹고 안부를 묻는 자리까지 나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일곱 번째로 본향을 기억하며 사십시오. 요셉은 애굽 최고의 자리에 있었고 자손 삼대를 보았으나, 끝까지 자기 뼈를 가나안으로 옮기라고 명했습니다. 그 유언 하나가 사백 년 동안 이스라엘의 소망을 깨어 있게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 땅은 머무는 곳일 뿐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6절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한다고 증언하며, 요한일서 3장 3절은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소망이 거룩함의 동력이라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은혜와 성화를 끝까지 함께 붙드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축복하는 사람으로, 요셉이 용서하는 사람으로 바뀐 것은 자기 수양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신 은혜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먼저 일하시기에 우리도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창세기를 덮으며 한 가지만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이 책은 사람의 실패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나란히 기록된 역사입니다. 그리고 그 신실하심은 다시 오실 주님이 모든 약속을 완성하실 그날까지 조금도 바뀌지 않습니다.

예화

천막에서 쓴 마지막 편지: 로버트 팰컨 스콧

허버트 폰팅이 1911년 10월 7일 케이프 에번스 오두막에서 촬영한, 일지를 쓰는 로버트 팰컨 스콧, 퍼블릭 도메인
허버트 폰팅이 1911년 10월 7일 케이프 에번스 오두막에서 촬영한, 일지를 쓰는 로버트 팰컨 스콧, 퍼블릭 도메인

야곱이 임종 자리에서 아들들을 불러 모으는 장면을 읽을 때면 남극의 어느 천막이 떠오릅니다. 영국 해군 장교이자 탐험가였던 로버트 팰컨 스콧이 숨을 거둔 자리입니다. 1910년 그는 테라노바호를 타고 남극점을 향해 떠났고, 영국에는 아내 캐슬린과 태어난 지 아홉 달 된 아들 피터를 남겨 두었습니다.

1912년 1월 17일 그는 마침내 남극점에 닿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노르웨이의 아문센이 다섯 주 전에 세워 둔 천막과 깃발이 이미 서 있었습니다. 그날 일지에 그는 이곳은 참혹한 곳이라고 적습니다.

1912년 1월 18일 남극점에서 촬영한 테라노바 탐험대의 다섯 사람, 헨리 바우어스 촬영,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 퍼블릭 도메인
1912년 1월 18일 남극점에서 촬영한 테라노바 탐험대의 다섯 사람, 헨리 바우어스 촬영,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 퍼블릭 도메인

위 사진이 바로 그 자리에서 찍힌 다섯 사람입니다. 돌아오는 길은 더 가혹했습니다. 2월 17일 에드거 에번스가 쓰러졌고, 3월 중순에는 동상으로 걷지 못하게 된 로런스 오츠가 잠깐 밖에 나갔다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눈보라 속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3월 19일 남은 세 사람은 보급 창고를 스무 킬로미터 남짓 앞둔 자리에 마지막 천막을 칩니다. 식량과 연료가 바닥났고 밖에서는 눈보라가 멈추지 않았습니다. 스콧은 그 천막 안에서 편지를 쓰기 시작합니다.

아내에게 쓴 편지의 겉봉에는 내 아내에게가 아니라 내 미망인에게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죽음을 이미 셈에 넣은 사람의 글씨였습니다. 그 안에서 그는 두 살배기 아들의 장래를 당부합니다.

당부는 두 가지였습니다. 아이가 자연사에 흥미를 갖게 해 달라는 부탁이 먼저였고, 그것이 놀이보다 낫다고 그는 덧붙입니다. 그리고 또 한 줄을 적습니다. 아이가 하나님을 믿도록 애써 달라, 그것이 위로가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3월 29일의 마지막 일지는 짧습니다. 더 쓸 수 없을 것 같아 안타깝다는 한 줄 뒤에 그는 자기 이름을 적었고, 그 아래 마지막 문장을 남깁니다. 우리 사람들을 부디 돌봐 주십시오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천막이 발견된 것은 여덟 달 뒤인 1912년 11월 12일이었습니다. 수색대는 세 사람의 시신 곁에서 일지와 편지 묶음을 거두어 냅니다. 그 편지들이 바다를 건너 캐슬린의 손에 닿기까지는 다시 여러 달이 걸렸습니다.

그다음 이야기가 이 예화의 핵심입니다.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도 못하던 두 살배기 피터 스콧은 조류학자가 되었습니다. 1946년 슬림브리지에 야생 물새 보호 기관을 세웠고, 1961년에는 세계자연기금 창립에 참여하여 그 상징인 판다 그림을 직접 그렸습니다.

왜 하필 그 길로 갔을까요? 아버지가 남긴 한 줄을 어머니가 평생 들려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1973년 자연 보전에 기여한 공로로 기사 작위를 받습니다.

야곱도 눈이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손자들의 머리에 손을 얹었습니다. 그 손이 닿은 자리에서 에브라임이라는 지파의 역사가 열렸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남긴 한마디가 다음 세대의 방향을 바꾸어 놓는 법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짚어 두고 싶습니다. 스콧은 신앙의 영웅으로 기록된 사람이 아니라 극지를 탐험하던 군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아들에게 남기고 싶었던 것이 결국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었다는 사실은 오래 생각해 볼 만합니다.

사십오 년을 기다린 관: 테오도르 헤르츨

1901년 바젤에서 세 왕 호텔 발코니에 기대어 라인강을 바라보는 테오도르 헤르츨, E. M. 릴리엔 촬영 사진의 엽서, 퍼블릭 도메인
1901년 바젤에서 세 왕 호텔 발코니에 기대어 라인강을 바라보는 테오도르 헤르츨, E. M. 릴리엔 촬영 사진의 엽서, 퍼블릭 도메인

요셉이 자기 해골을 메고 올라가라고 맹세시키는 장면을 읽을 때면 빈 근교의 한 무덤이 떠오릅니다. 1860년 헝가리 페스트에서 태어난 유대인 언론인 테오도르 헤르츨이 사십오 년 동안 누워 있던 자리입니다. 먼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그는 복음을 믿은 사람이 아니라 세속 민족운동의 지도자였으니, 여기서는 그의 생애에 일어난 사실만 함께 보겠습니다.

그는 빈의 신문사 특파원으로 파리에 머물며 드레퓌스 사건의 재판을 지켜보았습니다. 유럽 한복판에서 터져 나온 증오를 본 뒤 그의 결론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유대인에게는 돌아갈 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896년 그는 『유대 국가』라는 얇은 책을 펴냈고, 이듬해 여름 스위스 바젤에서 제1차 시온주의자 대회를 열었습니다. 대회가 끝난 1897년 9월 3일, 그는 일기에 바젤에서 나는 유대 국가를 세웠다고 적습니다. 쉰 해 안에 누구나 그것을 알아보게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당시 그 말을 믿은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요? 거의 없었습니다. 대회에 모인 이들조차 땅 한 뙈기 가지지 못한 처지였고, 그는 오히려 몽상가라는 비웃음을 들었습니다.

심장이 급격히 나빠지자 그는 뒷일을 준비합니다. 1903년 3월 5일에 고쳐 쓴 유언장에 한 조항이 들어갑니다. 자기를 금속 관에 넣어 아버지 곁에 두라는 것, 그리고 유대 민족이 자기 유해를 그 땅으로 옮겨 갈 때까지 거기 두라는 당부였습니다.

이듬해 1904년 7월 3일, 그는 마흔네 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해는 빈 근교 되블링의 묘지에 안치됩니다. 그가 말한 나라는 지도 어디에도 없었고, 그 유언은 끝내 이루어질 수 없는 말처럼 보였습니다.

그 관은 그대로 사십오 년을 기다립니다. 그사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지나갔고, 유럽의 유대인 공동체는 홀로코스트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1948년 5월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했을 때, 사람들이 떠올린 것 가운데 하나가 빈에 남아 있던 그 유언이었습니다.

예루살렘 헤르츨 산에 있는 테오도르 헤르츨의 묘, 2011년 3월 촬영, 아비샤이 테이허, CC BY 2.5
예루살렘 헤르츨 산에 있는 테오도르 헤르츨의 묘, 2011년 3월 촬영, 아비샤이 테이허, CC BY 2.5

1949년 8월 10일 제1대 크네세트가 유해 이장을 위한 법을 통과시킵니다. 관은 빈에서 비행기로 옮겨졌고, 8월 17일 예루살렘 서쪽 언덕에 안장되었습니다. 위 사진이 그 무덤이며, 그 언덕은 오늘날 헤르츨 산이라 불립니다.

장례식에서 다비드 벤구리온은 이 행렬을 애도의 행렬이 아니라 승리의 행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자체가 헤르츨의 묘비라고 말했습니다. 사십오 년 전 관에 붙여 둔 한 줄의 조건이 그날 채워진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창세기 50장과 겹치는 지점이 어디일까요? 관 하나가 약속의 담보물로 남겨졌다는 점입니다. 요셉의 관은 고센의 창고에서 사백 년을, 헤르츨의 관은 빈의 묘지에서 사십오 년을 기다렸습니다.

오해는 없으시기 바랍니다. 1949년의 그 장례로 성경의 모든 약속이 다 이루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땅의 약속을 글자 그대로 기억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이 이런 자리에서도 드러납니다.

요셉의 소망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3절은 믿음의 사람들이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고백했다고 증언합니다. 우리가 끝내 기다리는 것은 다시 오실 주님이 세우실 나라입니다.

기도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다음 세대에 남길 가장 좋은 유산이 재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임을 깨닫게 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설명되지 않는 고통 가운데서도 사람의 계획 위에 덮인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을 신뢰하는 믿음을 달라고 간구하고 싶습니다.

가정을 위해서는, 부모가 자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하는 집이 되기를 구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는, 사람의 서열로 지체를 평가하지 않고 하나님이 세우시는 자리를 존중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아룁니다. 이 사회에서 복수와 보복의 자리에 앉으려는 마음이 꺾이기를, 그리고 신앙의 자유가 없는 땅에서 믿음을 지키는 형제자매들에게 힘이 더해지기를 간절히 올려 드립니다.

언약을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 오늘 창세기를 덮으며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은 돌베개를 베고 자던 도망자에게 약속을 주시고, 백사십칠 년의 험악한 세월을 지나 그 약속을 손자들에게 전하게 하셨습니다. 한 세대를 넘어 흐르는 그 신실하심 앞에 감사의 마음으로 엎드립니다.

나를 기르신 목자이신 주님, 야곱이 평생을 돌아보며 주님을 자기 목자라 불렀던 것처럼 저희도 그 고백에 이르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 인생의 골목마다 함께 걸으신 손길을 기억하게 하시고, 저희가 쓰는 평범한 말로도 주님을 바르게 부르게 하여 주십시오.

반석이신 주님, 활 쏘는 자들의 화살을 맞으면서도 요셉의 활이 굳세었던 것은 주님의 손을 힘입은 까닭이었습니다. 저희를 향해 날아오는 말과 상처 앞에서 저희 힘이 아니라 주님을 붙들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담을 넘는 가지처럼 이웃에게 열매를 내밀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심판을 주님께 맡기게 하시는 주님,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하고 되물은 요셉의 겸손을 저희에게도 주옵소서. 저희를 해친 사람들의 운명을 저희 손에 쥐려는 마음을 내려놓게 하시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길을 걷게 하여 주십시오.

본향을 주시는 주님, 애굽의 관 하나로 끝난 창세기가 실은 반드시 올라갈 날에 대한 약속이었음을 배웁니다. 저희도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되 마음은 주님의 나라에 두게 하여 주옵소서. 다시 오실 주님과 그 영광의 날을 바라보며, 오늘은 주신 자리에서 성실히 걷겠습니다. 이 모든 말씀을 저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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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런스

  1.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대한성서공회, 1998. 본문 출처: https://www.bskorea.or.kr
  2. 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Vol. 1 (Genesis to Deuteronomy), 1708–1710;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판 참조. (창 48~50장 주해)
  3. John Wesley, Explanatory Notes upon the Old Testament, Bristol: William Pine, 1765. (창세기 48~50장 주해)
  4. John Wesley, Sermon 85: On Working Out Our Own Salvation, 1785. (하나님이 먼저 일하심과 성화의 책임)
  5. John Wesley, Sermon 43: 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 1765. (칭의와 성화의 동시 시작)
  6. Henry M. Morris, The Genesis Record: A Scientific and Devotional Commentary on the Book of Beginnings,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76.
  7. C. I. Scofield, ed., The Scofield Reference Bibl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09. (약속의 세대와 유다의 규에 관한 주)
  8. Charles C. Ryrie, Dispensationalism, rev. ed., Chicago: Moody Press, 1995. (언약과 세대 구분,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의 문자적 성취)
  9. John MacArthur, ed., The MacArthur Study Bible, Nashville: Word Publishing, 1997. (창 49:10의 실로와 메시아 예언에 관한 주)
  10. Kenneth A. Mathews, Genesis 11:27–50:26, The New American Commentary 1B, Nashville: Broadman & Holman, 2005.
  11.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95. (창 48장의 입양 형식과 49장 축복시의 어휘 분석)
  12. K. A. Kitchen,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2003. (백십 세의 이상적 수명과 애굽 장례 절차)
  13. James K. Hoffmeier, Israel in Egypt: The Evidence for the Authenticity of the Exodus Tradi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요셉 기사의 애굽적 세부와 미라 처리 기록)
  14. Herodotus, The Histories, Book II, trans. A. D. Godley, Loeb Classical Library,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20. (애굽의 미라 제작과 칠십 일 애도 기간)
  15. Edward F. Campbell Jr. and G. Ernest Wright, “Tribal League Shrines in Amman and Shechem,” The Biblical Archaeologist 32 (1969). (텔 발라타, 곧 세겜 발굴 보고)
  16. Robert Falcon Scott, Scott’s Last Expedition, Vol. I, arranged by Leonard Huxley, London: Smith, Elder & Co., 1913. (1912년 1~3월의 일지와 마지막 기록)
  17. Scott Polar Research Institute, University of Cambridge, Scott’s Final Letters Home (2007년 전시 및 소장 서한). (아내 캐슬린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의 문구) https://www.spri.cam.ac.uk
  18. Peter Scott, The Eye of the Wind, London: Hodder & Stoughton, 1961. (아버지의 마지막 당부와 자연사로 향한 생애)
  19. Theodor Herzl, Der Judenstaat, Wien: M. Breitenstein, 1896.
  20. Theodor Herzl, The Complete Diaries of Theodor Herzl, ed. Raphael Patai, trans. Harry Zohn, New York: Herzl Press and Thomas Yoseloff, 1960. (1897년 9월 3일 바젤 일기)
  21. Israel State Archives(이스라엘 국가기록원), “Theodor Herzl” 소장 자료. (1903년 3월 5일 유언장과 1949년 8월 예루살렘 이장 기록) https://catalog.archives.gov.il
  22. 이미지 출처(모두 위키미디어 공용에서 크기를 줄여 주소로 임베딩함): 헤브론 족장들의 무덤 사진, Djampa, CC BY-SA 4.0 / 베들레헴 라헬의 묘 사진, Onceinawhile, CC BY-SA 4.0 / 렘브란트의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하는 야곱, 퍼블릭 도메인 / 텔 발라타 성벽과 성문 사진, TrickyH, CC BY-SA 4.0 / 아시아사자 사진, Chrumps, CC BY 3.0 / 미라 제작 재료 항아리, 메트로폴리탄미술관, CC0 / 파이리 무덤 장례 행렬 모사도, 니나 M. 데이비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CC0 / 타바켄콘수의 인형 모양 목관, 토리노 이집트박물관, CC0 / 케이프 에번스 오두막의 로버트 팰컨 스콧 사진, 허버트 폰팅, 퍼블릭 도메인 / 남극점의 테라노바 탐험대 사진, 헨리 바우어스, 미국 의회도서관, 퍼블릭 도메인 / 바젤 발코니의 테오도르 헤르츨 사진, E. M. 릴리엔, 퍼블릭 도메인 / 헤르츨 산의 헤르츨 묘 사진, 아비샤이 테이허, PikiWiki Israel, CC BY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