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차 (창세기 46장 ~ 창세기 47장)
텔 베에르셰바 유적 전경, 이스라엘 네게브 북부, Mboesch 촬영, CC BY-SA 4.0
본문
창세기 46장
-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
-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날새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바로가 그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에 자기들의 아버지 야곱과 자기들의 처자들을 태우고
- 그들의 가축과 가나안 땅에서 얻은 재물을 이끌었으며 야곱과 그의 자손들이 다함께 애굽으로 갔더라
- 이와 같이 야곱이 그 아들들과 손자들과 딸들과 손녀들 곧 그의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 애굽으로 내려간 이스라엘 가족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야곱과 그의 아들들 곧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과
- 르우벤의 아들 하녹과 발루와 헤스론과 갈미요
- 시므온의 아들은 여무엘과 야민과 오핫과 야긴과 스할과 가나안 여인의 아들 사울이요
- 레위의 아들은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요
- 유다의 아들 곧 엘과 오난과 셀라와 베레스와 세라니 엘과 오난은 가나안 땅에서 죽었고 베레스의 아들은 헤스론과 하물이요
- 잇사갈의 아들은 돌라와 부와와 욥과 시므론이요
- 스불론의 아들은 세렛과 엘론과 얄르엘이니
- 이들은 레아가 밧단아람에서 야곱에게 난 자손들이라 그 딸 디나를 합하여 남자와 여자가 삼십삼 명이며
- 갓의 아들은 시뵨과 학기와 수니와 에스본과 에리와 아로디와 아렐리요
- 아셀의 아들은 임나와 이스와와 이스위와 브리아와 그들의 누이 세라며 또 브리아의 아들은 헤벨과 말기엘이니
- 이들은 라반이 그의 딸 레아에게 준 실바가 야곱에게 낳은 자손들이니 모두 십육 명이라
- 야곱의 아내 라헬의 아들 곧 요셉과 베냐민이요
- 애굽 땅에서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요셉에게 낳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이요
- 베냐민의 아들 곧 벨라와 베겔과 아스벨과 게라와 나아만과 에히와 로스와 뭅빔과 훕빔과 아릇이니
- 이들은 라헬이 야곱에게 낳은 자손들이니 모두 십사 명이요
- 단의 아들 후심이요
- 납달리의 아들 곧 야스엘과 구니와 예셀과 실렘이라
- 이들은 라반이 그의 딸 라헬에게 준 빌하가 야곱에게 낳은 자손들이니 모두 칠 명이라
- 야곱과 함께 애굽에 들어간 자는 야곱의 며느리들 외에 육십육 명이니 이는 다 야곱의 몸에서 태어난 자이며
- 애굽에서 요셉이 낳은 아들은 두 명이니 야곱의 집 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가 모두 칠십 명이었더라
-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하고 다 고센 땅에 이르니
- 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의 목을 어긋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매
-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 요셉이 그의 형들과 아버지의 가족에게 이르되 내가 올라가서 바로에게 아뢰어 이르기를 가나안 땅에 있던 내 형들과 내 아버지의 가족이 내게로 왔는데
- 그들은 목자들이라 목축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왔나이다 하리니
-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
창세기 47장
- 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 그의 형들 중 다섯 명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
- 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묻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고
- 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양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 곳에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
-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와 형들이 네게 왔은즉
-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거주하게 하되 그들이 고센 땅에 거주하고 그들 중에 능력 있는 자가 있거든 그들로 내 가축을 관리하게 하라
-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
-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먹을 것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하니
- 요셉이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모두 거두어들이고 그 돈을 바로의 궁으로 가져가니
-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돈이 떨어진지라 애굽 백성이 다 요셉에게 와서 이르되 돈이 떨어졌사오니 우리에게 먹을 거리를 주소서 어찌 주 앞에서 죽으리이까
- 요셉이 이르되 너희의 가축을 내라 돈이 떨어졌은즉 내가 너희의 가축과 바꾸어 주리라
- 그들이 그들의 가축을 요셉에게 끌어오는지라 요셉이 그 말과 양 떼와 소 떼와 나귀를 받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되 곧 그 모든 가축과 바꾸어서 그 해 동안에 먹을 것을 그들에게 주니라
- 그 해가 다 가고 새 해가 되매 무리가 요셉에게 와서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주께 숨기지 아니하나이다 우리의 돈이 다하였고 우리의 가축 떼가 주께로 돌아갔사오니 주께 낼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아니하고 우리의 몸과 토지뿐이라
- 우리가 어찌 우리의 토지와 함께 주의 목전에 죽으리이까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먹을 것을 주고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니 우리에게 종자를 주시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며 토지도 황폐하게 되지 아니하리이다
- 그러므로 요셉이 애굽의 모든 토지를 다 사서 바로에게 바치니 애굽의 모든 사람들이 기근에 시달려 각기 토지를 팔았음이라 땅이 바로의 소유가 되니라
- 요셉이 애굽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백성을 성읍들에 옮겼으나
- 제사장들의 토지는 사지 아니하였으니 제사장들은 바로에게서 녹을 받음이라 바로가 주는 녹을 먹으므로 그들이 토지를 팔지 않음이었더라
-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토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 추수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오분의 사는 너희가 가져서 토지의 종자로도 삼고 너희의 양식으로도 삼고 너희 가족과 어린 아이의 양식으로도 삼으라
- 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분의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주하였으니 그의 나이가 백사십칠 세라
-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 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본문 해설
브엘세바에서 멈춘 수레
한 노인이 짐을 다 싣고 길을 나섰다가 국경 앞에서 수레를 멈춥니다. 백삼십 년을 가나안에서 살아온 야곱이 이제 조상의 땅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이었고, 그가 멈춘 자리는 아브라함과 이삭이 제단을 쌓았던 브엘세바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한 가족의 이주가 한 민족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전환점을 담고 있습니다. 그 발걸음을 함께 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두 장의 흐름을 먼저 정리해 두겠습니다. 46장은 브엘세바의 제사와 밤의 음성, 칠십 명의 명단, 고센에서의 재회를 다루고, 47장은 바로 앞에 선 야곱과 기근 시대의 토지 정책, 그리고 야곱의 마지막 당부로 이어집니다.
이 이주를 성경 연대로 짚으면 기원전 1876년 무렵입니다. 요셉 이야기가 시작된 창세기 37장에서 꼬박 이십이 년이 흘렀고, 이제부터 사백삼십 년의 애굽 체류가 시작됩니다. 출애굽기 1장의 첫 장면이 바로 여기서 싹을 틔우는 셈입니다.
애굽으로 내려가기 전의 마지막 제단
46장 1절에서 야곱은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립니다. 왜 하필 브엘세바였을까요? 가나안 남쪽 경계에 있는 이 성읍이 애굽으로 가는 길의 마지막 거점이었기 때문입니다.
브엘세바는 이 집안에 특별한 땅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여기서 아비멜렉과 맹세하고 에셀 나무를 심었고, 이삭도 이곳에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창세기 21장과 26장에 그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위 사진은 오늘날 텔 베에르셰바 유적의 성문 앞에 복원된 우물입니다. 발굴된 성읍의 구조물은 족장 시대보다 훨씬 뒤인 철기 시대의 것이지만, 브엘세바라는 이름이 뜻하는 일곱 우물 또는 맹세의 우물이 어떤 풍경이었는지 짐작하게 해 줍니다. 이 지역이 고대부터 물과 길의 요충지였음은 분명합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야곱의 태도입니다. 그는 애굽으로 떠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묻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아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급했을 텐데도 제단 앞에 엎드린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밤의 음성
46장 2절에서 하나님은 그 밤에 이상 중에 야곱을 부르십니다. 야곱아 야곱아 하고 두 번 부르시는 음성에 그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답합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하나님과 야곱의 마지막 대화입니다.
3절의 말씀이 이 장의 심장을 이룹니다.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야곱이 두려워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충분히 있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기근 때 애굽으로 내려가려 했지만 하나님이 창세기 26장 2절에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막으신 일이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애굽에 내려갔다가 아내를 잃을 위기에 몰렸습니다. 이 집안에서 애굽은 내려가면 안 되는 땅이라는 기억이 짙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이 직접 내려가라고 하십니다. 같은 행동이 어제는 불순종이고 오늘은 순종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니,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공식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이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4절에는 네 가지 약속이 겹쳐 있습니다. 함께 내려가시겠다는 동행의 약속, 반드시 다시 올라오게 하시겠다는 귀환의 약속,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번성의 약속, 그리고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는 지극히 사적인 위로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큰 그림을 말씀하시면서 한 노인의 임종까지 함께 챙기셨습니다.
반드시 다시 올라올 것이라는 약속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야곱의 시신이 가나안으로 옮겨져 막벨라 굴에 안장되었고, 사백삼십 년 뒤에는 그 후손 전체가 출애굽으로 올라왔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한 세대 안에서 끝나지 않는 법입니다.
칠십 명의 명단에 담긴 언약의 산수
46장 8절부터 27절까지는 명단이 이어집니다. 레아의 자손 서른세 명, 실바의 자손 열여섯 명, 라헬의 자손 열네 명, 빌하의 자손 일곱 명이 열거되고, 마지막에 애굽에 이른 자가 모두 칠십 명이라고 합산됩니다.
혹시 이 숫자가 맞지 않는다는 의문이 드시나요? 26절은 야곱의 몸에서 난 자가 육십육 명이라고 적습니다. 거기에 야곱 자신과 요셉과 요셉의 두 아들을 더하면 정확히 칠십이 됩니다.
사도행전 7장 14절에서 스데반은 일흔다섯 사람이라고 설교합니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스데반은 당시 널리 쓰였던 헬라어 구약, 곧 70인역을 인용했고, 그 본문은 요셉의 손자들까지 포함해 다섯 명을 더 셈한 것입니다.
이 명단이 왜 이렇게 꼼꼼히 기록되었을까요? 하나님의 언약이 이름을 가진 실제 사람들을 통해 이어졌음을 못 박기 위해서입니다. 창세기는 신화가 아니라 호적과 족보를 동반한 역사입니다.
한 가지 더 눈여겨볼 대목이 있습니다. 12절은 엘과 오난은 가나안 땅에서 죽었고라며 유다의 부끄러운 가정사를 숨기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10절은 시므온의 아들 가운데 가나안 여인의 아들 사울이 있었음까지 적어 둡니다.
성경이 자기 조상의 흠을 감추지 않는다는 점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기록의 특징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숨기고 싶은 것을 숨기지 않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고센 땅의 자리와 목축을 꺼린 애굽
위 지도는 백여 년 전 성경 사전에 실린 고센 일대의 도해입니다. 고센은 나일 삼각주의 동쪽 변두리로, 오늘날 와디 투밀랏 일대로 보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집니다. 애굽의 중심부에서 적당히 떨어져 있고 목초지가 넓은 지역이었습니다.

이 그림은 와디 투밀랏 입구의 풍경을 담은 19세기 기록 자료입니다. 나일강에서 동쪽으로 뻗은 이 저지대는 물이 닿는 곳마다 초지가 펼쳐지는 땅이었습니다. 양과 소를 치는 집안에게는 이보다 나은 자리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46장 34절의 마지막 한 줄이 중요합니다.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라는 설명입니다. 요셉은 이 사실을 알고 형들에게 직업을 솔직히 말하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왜 애굽 사람들이 목축을 꺼렸을까요? 애굽 문헌에는 아시아계 유목민을 야만스럽게 보는 표현이 거듭 등장하며, 목축민이 나라를 어지럽혔던 기억도 작용했습니다. 요셉은 그 편견을 없애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울타리로 삼았습니다.
여기에 담긴 지혜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애굽인이 꺼리는 직업 덕분에 이스라엘은 궁정 가까이가 아니라 고센에 따로 모여 살게 되었습니다. 그 분리가 사백 년 동안 이 가족이 애굽에 녹아 사라지지 않게 지켜 준 보호막이 됩니다.
목을 안고 운 아들과 족하다고 말한 아버지
46장 29절의 장면은 짧지만 뭉클합니다. 요셉이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 아버지를 만나 그의 목을 어긋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양치기 노인의 목을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던 것입니다.
30절의 야곱의 말이 이십이 년의 애통을 마무리합니다.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라는 고백입니다. 시므온의 노래가 떠오르지 않나요? 누가복음 2장 29절에서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노인이 이제 평안히 놓아 주소서라고 말한 그 장면과 겹쳐 읽힙니다.
바로를 축복한 백삼십 세 노인
47장 7절에는 참 기이한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이 아버지를 데려가 바로 앞에 세우자,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라고 적혀 있습니다. 10절에서도 그는 다시 축복하고 나옵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한 왕 앞에 선 사람은 나라도 성읍도 없는 떠돌이 목자였습니다. 그런데 축복은 노인의 입에서 왕에게로 흘러갔습니다. 히브리서 7장 7절은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는 것이라고 가르치니, 하나님의 눈에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있었는지가 드러난 셈입니다.
8절에서 바로가 묻습니다. 네 나이가 얼마냐는 질문입니다. 아마 그 노인의 얼굴에 새겨진 세월이 범상치 않아 보였을 것입니다.
나그네 길 백삼십 년이라는 고백
9절의 대답은 창세기에서 가장 무게 있는 자기 소개 가운데 하나입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라는 말입니다. 그는 자기 인생을 햇수가 아니라 나그네 길로 셈했습니다.
여기 쓰인 히브리어 마구르는 자기 땅이 아닌 곳에 잠시 머무는 체류자의 삶을 가리킵니다. 가나안은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한 땅이었지만, 야곱은 끝내 그 땅의 주인으로 살지 못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9절이 바로 이 삶을 가리켜 약속의 땅에서 나그네처럼 장막에 거했다고 증언합니다.
그다음 말도 솔직합니다.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는 고백입니다. 형을 속이고 도망쳤고, 외삼촌에게 이십 년 동안 속으며 품삯이 열 번 바뀌었고, 사랑하는 아내를 길에서 잃었고, 아들이 죽은 줄 알고 이십이 년을 통곡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의 인생은 실패였을까요? 아닙니다. 험악했던 그 세월 전체를 하나님이 붙들어 열두 지파의 뿌리로 삼으셨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가 있습니다. 신앙의 사람이라고 해서 인생이 순탄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만 그 험한 길 위에 동행하시는 하나님이 계실 뿐입니다.
라암셋, 애굽의 가장 좋은 땅
47장 11절에서 요셉은 가족에게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줍니다. 그런데 라암셋이라는 이름은 훨씬 후대의 왕 이름에서 온 지명입니다. 위 사진의 거상 역시 그 후대의 왕과 관련된 유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잘못 적은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대 기록에서는 독자가 아는 당대의 지명으로 옛 장소를 설명하는 방식이 흔했습니다.
같은 일이 창세기 14장에도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조카를 구하러 간 곳을 성경은 단까지 쫓아가라고 적는데, 단이라는 이름은 사사기 시대에 붙은 것입니다. 모세가 기록하던 시점의 독자들에게 익숙한 이름을 쓴 것이니, 오류가 아니라 친절한 설명입니다.
12절은 요셉이 아버지와 형들의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했다고 적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애굽 전체가 돈과 가축과 땅을 내놓고 양식을 샀는데, 야곱의 집안만은 값없이 공급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은혜가 어떤 것인지를 이 대조가 잘 보여 줍니다.
돈과 가축과 토지, 기근 경제의 세 단계

47장 13절부터 26절까지는 성경에서 보기 드문 경제 기록입니다. 기근이 깊어지면서 백성이 내놓은 것이 돈과 가축과 토지의 순서로 바뀝니다. 14절에서 돈이, 16절에서 가축이, 19절에서 몸과 토지가 차례로 넘어갑니다.
위 벽화는 애굽의 농사 풍경을 담고 있습니다. 밭을 갈고 추수하는 이 일상이 멈추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나라 전체가 몇 달 만에 무너졌습니다.
19절의 백성의 말이 절박합니다. 우리에게 종자를 주시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며라는 호소입니다. 땅을 팔아서라도 씨앗을 얻겠다는 것이니, 당장의 양식보다 다음 해의 파종이 더 급했던 것입니다.
20절에서 애굽의 모든 토지가 바로의 소유가 됩니다. 이 기록은 고대 애굽이 왕이 토지를 소유하고 농민은 경작권을 가지는 구조였다는 사실과 잘 맞물립니다. 성경이 애굽의 토지 제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유일한 고대 기록인 셈입니다.
21절에는 백성을 성읍들에 옮겼으나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사람들을 곡물 창고가 있는 도시 가까이로 이주시켜 배급을 효율적으로 관리한 조치로 이해됩니다. 혹독해 보이지만 굶어 죽는 것보다는 나은 길이었습니다.
오분의 일의 토지법과 제사장의 예외
23절과 24절에서 요셉은 새로운 제도를 세웁니다. 종자를 나누어 주고 추수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게 한 것입니다. 창세기 41장 34절에서 풍년에 오분의 일을 거두자고 했던 그 비율이 그대로 이어집니다.
이 세율이 가혹한 것일까요? 오히려 그 반대로 보입니다. 오분의 사, 곧 팔십 퍼센트를 농민이 가져갔으니 고대 세계의 기준으로는 상당히 관대한 제도였습니다.
25절의 백성의 반응이 그 증거입니다. 그들은 원망하지 않고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라고 고백합니다. 요셉의 정책이 착취가 아니라 생존의 길로 받아들여졌다는 뜻입니다.
22절과 26절에 기록된 제사장의 예외도 역사와 잘 맞습니다. 애굽의 신전들은 넓은 영지를 소유하고 왕실로부터 정기적인 배급을 받았으며, 세금을 면제받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이 여러 문헌으로 확인됩니다. 요셉은 자기 장인이 속한 계층에 특혜를 준 것이 아니라 기존 제도를 그대로 존중한 것입니다.
27절은 짧지만 거대한 한 절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고센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고 적는데, 이것은 창세기 1장 28절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그 명령의 표현을 그대로 가져온 말입니다. 출애굽기 1장 7절로 곧장 이어지는 다리이기도 합니다.
허벅지 아래의 맹세와 침상 머리의 경배
47장 28절은 야곱이 애굽에서 십칠 년을 살았다고 기록합니다. 창세기 37장 2절에서 요셉이 아버지를 떠날 때의 나이가 열일곱이었으니, 아들이 빼앗겼던 십칠 년을 하나님이 아버지에게 되돌려 주신 셈입니다. 성경의 숫자는 이렇게 조용히 말을 겁니다.
29절에서 야곱은 요셉을 불러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라고 말합니다. 창세기 24장 2절에서 아브라함이 종에게 시켰던 그 맹세의 방식입니다. 후손과 언약에 관련된 일에 쓰이던 가장 엄숙한 서약 형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요구는 분명했습니다. 애굽에 묻히지 말고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는 것입니다. 애굽의 총리인 아들이 있었으니 그곳에서 가장 화려한 무덤을 얻을 수도 있었을 텐데, 노인은 막벨라 굴을 택했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요? 애굽이 자기 집이 아님을 자손들에게 몸으로 가르치려 한 것입니다. 그의 관이 가나안으로 올라가는 행렬 자체가 우리의 본향은 여기가 아니라는 설교였습니다.
31절의 마지막 장면도 깊습니다. 맹세를 받은 뒤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했다고 기록됩니다. 히브리서 11장 21절은 이 장면을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했다고 옮기는데, 히브리어 자음이 같아 침상으로도 지팡이로도 읽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으로 읽든 그림은 하나입니다. 기력이 다한 노인이 몸을 겨우 일으켜 하나님께 머리를 숙이는 모습입니다. 평생을 속이고 다투고 씨름하며 살아온 사람의 마지막 자세가 경배였습니다.

두 장을 덮으며 한 가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애굽으로 내려보내셨고, 그곳에서 큰 민족을 이루셨으며, 때가 차자 다시 올라오게 하셨습니다. 스코필드가 짚었듯 이 흐름은 처음부터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손 안에서 설계된 길이었습니다.
묵상과 적용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건네는 첫 번째 말씀은 큰 결정 앞에서 먼저 제단을 쌓으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애굽으로 떠나기 전 브엘세바에서 멈추어 희생제사를 드렸고, 바로 그 밤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만약 그가 쉬지 않고 국경을 넘었다면 두려워하지 말라는 그 말씀을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국경이 있습니다. 이직과 이사, 결혼과 진학, 사업의 확장처럼 되돌리기 어려운 결정들 말입니다. 그 앞에서 잠시 멈추어 하나님 앞에 묻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어제의 금지가 오늘의 명령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이삭에게는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 하셨던 하나님이, 야곱에게는 내려가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은 공식을 외우는 일이 아니라 살아 계신 분과 동행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간증을 그대로 자기 삶에 복사하려다 혼란을 겪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분에게 주신 길과 나에게 주시는 길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말씀과 기도 가운데 내게 하시는 음성을 분별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세 번째 적용은 두려움의 자리에 동행의 약속을 놓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애굽이 안전한 곳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내가 너와 함께 내려가겠다고 하셨을 뿐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대개 환경의 보장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대개 동행의 약속입니다. 지금 두려운 길 앞에 서 계신 분이 있다면, 환경이 아니라 함께 가시는 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네 번째로 자기 인생을 나그네 길로 셈하는 눈을 가지십시오. 야곱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왕 앞에서 자기를 백삼십 년 된 나그네라고 소개했습니다. 집과 땅과 직위로 자기를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이 눈이 생기면 돈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모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지나가는 길에서 쓰는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소유를 잃을까 두려워 밤잠을 설치는 일도 줄어듭니다.
다섯 번째 적용은 험악한 세월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 인생을 미화하지 않고 험악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험악한 세월을 통과하며 그는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빚어졌습니다.
지금 지나고 계신 어려움이 무의미해 보이시나요? 하나님은 평탄한 길에서보다 거친 길에서 사람을 더 깊이 빚으십니다. 성화는 은혜 안에서 평생에 걸쳐 진행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여섯 번째로 구별된 자리를 지키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궁정 가까이가 아니라 고센에 따로 모여 살았고, 그 분리가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 준 울타리가 되었습니다. 세상 한복판에 살면서도 세상에 녹아 사라지지 않으려면 구별된 자리가 필요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주일의 예배, 가정예배의 시간, 자녀와 함께 읽는 말씀 같은 것들입니다. 작아 보이는 이 울타리들이 한 세대를 지켜 냅니다. 요한복음 17장 15절에서 주님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보다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해 주시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일곱 번째 적용은 맡겨진 자리에서 사람을 살리는 제도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종자를 나누고 세율을 정하고 이주를 조직했습니다. 그 결과 백성이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직장과 조직에서 일하는 신자에게 이 대목이 중요합니다. 복음은 개인의 친절에서 멈추지 않고 사람을 살리는 구조와 제도로도 흘러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결정 하나가 누군가의 생계를 지킬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본향을 기억하는 사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야곱은 애굽의 화려한 무덤 대신 막벨라 굴을 택했고, 기력이 다한 몸으로 침상 머리에서 경배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자세가 하나님을 향한 예배였다는 사실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은혜로 시작되어 은혜로 완성됩니다. 그 은혜 안에서 날마다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되, 다시 오실 주님과 그 나라를 소망하는 마음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요한일서 3장 3절은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예화
바다를 건넌 신혼부부: 아도니람 저드슨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음성을 읽을 때면 한 젊은 부부가 떠오릅니다. 미국 개신교의 첫 해외 선교사로 꼽히는 아도니람 저드슨과 그의 아내 앤입니다. 저드슨은 1788년 매사추세츠주 몰든의 목사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명문 브라운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한 청년이었지만, 그는 한때 신앙을 버리고 회의주의에 빠진 적도 있습니다. 가까운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돌아선 그는 신학교에 들어가 아시아 선교를 향한 부담을 품게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 교회에는 해외 선교를 보낼 조직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던 때입니다.
1812년 2월, 결혼한 지 보름이 채 지나지 않은 저드슨 부부는 세일럼 항에서 배에 올랐습니다. 인도로 향했으나 영국 동인도회사의 압박으로 머물 수 없었고, 결국 1813년 버마의 랑군에 닿습니다. 그곳은 외국인 선교사에게 극도로 적대적인 땅이었습니다.
첫 열매는 언제 맺혔을까요? 무려 육 년이 걸렸습니다. 1819년에야 마웅 나우라는 첫 개종자에게 세례를 베풀 수 있었습니다.

가장 혹독한 시련은 1824년에 찾아옵니다. 영국과 버마 사이에 전쟁이 터지자 백인이라는 이유로 저드슨은 간첩으로 몰려 아바의 감옥에 갇혔습니다. 위 삽화가 그 시기를 묘사한 그림입니다.
쇠사슬에 묶인 채 더위와 굶주림 속에서 그는 열일곱 달을 버텼습니다. 아내 앤은 갓난아기를 안고 날마다 감옥을 찾아가 음식을 들여보냈고, 관리들에게 탄원하며 남편의 목숨을 지켰습니다. 그가 번역하던 버마어 신약성경 원고는 베개 속에 꿰매어 숨겨 두었다고 전해집니다.
석방된 뒤의 삶도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앤은 1826년 세상을 떠나고 어린 딸도 곧 뒤를 따릅니다. 저드슨은 한동안 깊은 우울에 빠져 숲속 오두막에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자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1834년에 버마어 성경 전체의 번역을 마쳤고, 방대한 버마어 영어 사전까지 완성했습니다. 1850년 병을 얻어 요양차 배를 타고 가던 중 벵골 만에서 숨을 거두니, 그의 몸은 바다에 수장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떠날 때 버마에 세워진 교회는 수십 곳이었고, 신자는 수천 명에 이르렀습니다. 오늘날 미얀마 침례교회가 그의 번역본을 여전히 쓰고 있다는 사실이 그 수고의 열매를 말해 줍니다.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갈 때 하나님은 안전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드슨에게도 버마는 결코 안전한 땅이 아닙니다. 두 사람이 붙든 것은 같았으니, 내가 너와 함께 가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폭풍 속에서 찬송하던 사람들: 존 웨슬리의 항해

또 한 사람의 바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감리교 운동을 일으킨 존 웨슬리가 아직 복음의 능력을 모르던 시절의 일입니다. 1735년 가을, 서른두 살의 젊은 성공회 사제였던 그는 아메리카 조지아 식민지로 향하는 시몬즈호에 올랐습니다.
대서양을 건너는 넉 달 동안 배는 여러 차례 폭풍을 만납니다. 1736년 1월 하순의 어느 날에는 큰 파도가 갑판을 덮쳐 돛대가 부러지고 바닷물이 선실까지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영국인 승객들은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배 한쪽에서는 전혀 다른 소리가 들렸습니다. 함께 타고 있던 독일 모라비아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며 시편을 노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파도가 덮치는 순간에도 그들의 노래는 끊기지 않았습니다.
폭풍이 지나간 뒤 웨슬리가 그들에게 묻습니다. 두렵지 않았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하나님께 감사한다, 두렵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웨슬리는 다시 묻습니다. 여자들과 아이들도 두려워하지 않았는지 궁금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여자들과 아이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조용히 답했습니다.
그 대화가 왜 그토록 큰 충격이었을까요? 사제인 자기 마음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가득한데, 평범한 신자들에게는 그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웨슬리는 이 장면을 자기 일기에 꼼꼼히 적어 두었습니다.
조지아에서의 사역은 결국 실패로 끝납니다. 그는 1738년 영국으로 돌아오며 일기에 나는 인디언들을 회심시키러 갔으나 나를 회심시킬 자가 누구인가라고 적었습니다.

그 대답은 그해 봄에 찾아옵니다. 1738년 5월 24일 저녁, 그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런던 올더스게이트 가의 작은 모임에 갔습니다. 그 자리에서 누군가 마르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녁 아홉 시가 조금 못 된 시각, 믿음을 통해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에 일으키시는 변화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웨슬리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졌다고 느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까지 다 담당하셨다는 확신이 그 순간 주어졌다고 그는 기록합니다. 위 사진의 조형물이 그 자리를 기념하는 작품입니다.
이 이야기가 창세기 46장과 어떻게 이어질까요? 야곱의 두려움을 걷어 낸 것도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가신다는 확신이었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두려움은 상황이 좋아질 때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게 될 때 물러갑니다.
웨슬리는 이후 오십여 년 동안 영국 전역을 말을 타고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폭풍 속에서 들었던 그 노래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한 시대를 바꾼 것입니다.
기도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큰 결정 앞에서 서둘러 달려가지 않고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묻는 습관을 구합니다. 두려운 길 앞에서도 환경이 아니라 함께 가시는 분을 바라보는 믿음을 달라고 간구하고 싶습니다.
가정을 위해서는, 험악한 세월 가운데서도 서로를 붙들어 주고 자녀에게 본향을 가르치는 집이 되기를 구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는, 세상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구별된 자리를 지켜 다음 세대를 품는 울타리가 되기를 아룁니다. 이 사회의 일터마다 사람을 살리는 제도와 결정이 세워지기를, 그리고 전쟁과 기근으로 고향을 떠난 열방의 이주민들에게 머물 땅과 복음이 함께 주어지기를 간절히 올려 드립니다.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오늘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은 백삼십 년을 나그네로 걸어온 노인을 밤중에 부르시고, 이름을 두 번 불러 주셨습니다. 저희의 이름도 주님이 아신다는 사실 앞에 감사의 마음으로 엎드립니다.
함께 가시는 주님, 주님은 애굽이 안전한 곳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내가 너와 함께 내려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저희가 구하는 것은 흔히 평탄한 환경이지만, 주님이 주시는 것은 변치 않는 동행임을 배웁니다. 그 약속 하나로 충분하게 하여 주옵소서.
나그네의 하나님, 저희가 가진 것으로 자기를 설명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게 하여 주시고, 지나가는 길 위에서 바르게 쓰는 지혜를 더하여 주십시오. 집과 자리와 통장이 저희의 정체가 되지 않게 지켜 주옵소서.
거친 길에서 빚으시는 주님, 험악한 세월이라 부를 만한 시간을 지나는 이들이 저희 가운데 있습니다. 그 시간을 헛되이 버리지 마시고 주님을 닮아 가는 재료로 삼아 주시기 바랍니다. 은혜로 시작된 구원이 성화의 길을 따라 온전함에 이르게 하여 주옵소서.
마지막 날을 아시는 주님, 야곱이 기력이 다한 몸으로 침상 머리에서 주님께 경배했던 것처럼, 저희의 마지막 자세도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다시 오실 주님과 그 나라를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성실히 걷겠습니다. 이 모든 말씀을 저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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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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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 I. Scofield, ed., The Scofield Reference Bibl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09. (약속의 세대와 애굽 체류에 관한 주)
- John MacArthur, ed., The MacArthur Study Bible, Nashville: Word Publishing, 1997. (창 46~47장 주, 70인과 75인의 차이에 관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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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 A. Kitchen,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2003. (라암셋 지명의 갱신 문제와 애굽 토지·조세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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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an H. Gardiner, Egypt of the Pharaohs: An Introduction, Oxford: Clarendon Press, 1961. (애굽의 토지 소유 구조와 신전 영지의 면세 관행)
- Yohanan Aharoni, “Excavations at Tel Beer-sheba,” Tel Aviv 1 (1974). (텔 베에르셰바 발굴 개요와 연대)
- Courtney Anderson, To the Golden Shore: The Life of Adoniram Judson, Boston: Little, Brown and Company, 1956.
- Francis Wayland, A Memoir of the Life and Labors of the Rev. Adoniram Judson, 2 vols., Boston: Phillips, Sampson and Company, 1853. (아바 감옥 수감과 버마어 성경 번역 과정)
- 이미지 출처(모두 위키미디어 공용에서 크기를 줄여 주소로 임베딩함): 텔 베에르셰바 전경과 성문 앞 우물 사진, Mboesch, CC BY-SA 4.0 / 1903년 『성경 백과사전』의 고센 일대 지도, 퍼블릭 도메인 / 19세기 기록의 와디 투밀랏 입구 삽화, 퍼블릭 도메인 / 칸티르의 람세스 2세 거상 발 부분 사진, Iri-en-achti, 퍼블릭 도메인 / 센네젬 무덤의 농경 벽화, 퍼블릭 도메인 / 나일 삼각주 주변 도해, Kelvin Case, 퍼블릭 도메인 / 아도니람 저드슨 판화 초상, 퍼블릭 도메인 / 아바 감옥의 저드슨을 그린 19세기 삽화, 퍼블릭 도메인 / 국립웨일스도서관 소장 존 웨슬리 초상, 퍼블릭 도메인 / 올더스게이트 기념 조형물 사진, Mike Peel, CC BY-SA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