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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차 (창세기 43장 ~ 창세기 45장)

우주에서 내려다본 나일 삼각주, 미 항공우주국(NASA) 위성 사진, 퍼블릭 도메인

우주에서 내려다본 나일 삼각주, 미 항공우주국(NASA) 위성 사진, 퍼블릭 도메인

27일차 (창세기 43장 ~ 창세기 45장)

본문

창세기 43장

  1.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2.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으매 그 아버지가 그들에게 이르되 다시 가서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조금 사오라
  3. 유다가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그 사람이 우리에게 엄히 경고하여 이르되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4. 아버지께서 우리 아우를 우리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내려가서 아버지를 위하여 양식을 사려니와
  5. 아버지께서 만일 그를 보내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내려가지 아니하리니 그 사람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의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6. 이스라엘이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에게 또 다른 아우가 있다고 그 사람에게 말하여 나를 괴롭게 하였느냐
  7.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우리와 우리의 친족에 대하여 자세히 질문하여 이르기를 너희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시느냐 너희에게 아우가 있느냐 하기로 그 묻는 말에 따라 그에게 대답한 것이니 그가 너희의 아우를 데리고 내려오라 할 줄을 우리가 어찌 알았으리이까
  8. 유다가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아이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
  9.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10. 우리가 지체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벌써 두 번 갔다 왔으리이다
  11. 그들의 아버지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러할진대 이렇게 하라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로 드릴지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유향나무 열매와 감복숭아이니라
  12. 너희 손에 갑절의 돈을 가지고 너희 자루 아귀에 도로 넣어져 있던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혹 잘못이 있었을까 두렵도다
  13.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15. 그 형제들이 예물을 마련하고 갑절의 돈을 자기들의 손에 가지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 앞에 서니라
  16. 요셉은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자기의 청지기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정오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
  17. 청지기가 요셉의 명대로 하여 그 사람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니
  18. 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이르되 전번에 우리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는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로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하고
  19. 그들이 요셉의 집 청지기에게 가까이 나아가 그 집 문 앞에서 그에게 말하여
  20. 이르되 내 주여 우리가 전번에 내려와서 양식을 사가지고
  21. 여관에 이르러 자루를 풀어본즉 각 사람의 돈이 전액 그대로 자루 아귀에 있기로 우리가 도로 가져왔고
  22. 양식 살 다른 돈도 우리가 가지고 내려왔나이다 우리의 돈을 우리 자루에 넣은 자는 누구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나이다
  23. 그가 이르되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하고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내고
  24. 그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고 물을 주어 발을 씻게 하며 그들의 나귀에게 먹이를 주더라
  25. 그들이 거기서 음식을 먹겠다 함을 들었으므로 예물을 정돈하고 요셉이 정오에 오기를 기다리더니
  26. 요셉이 집으로 오매 그들이 집으로 들어가서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땅에 엎드려 절하니
  27. 요셉이 그들의 안부를 물으며 이르되 너희 아버지 너희가 말하던 그 노인이 안녕하시냐 아직도 생존해 계시느냐
  28. 그들이 대답하되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평안하고 지금까지 생존하였나이다 하고 머리 숙여 절하더라
  29. 요셉이 눈을 들어 자기 어머니의 아들 자기 동생 베냐민을 보고 이르되 너희가 내게 말하던 너희 작은 동생이 이 아이냐 그가 또 이르되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30. 요셉이 아우를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31. 얼굴을 씻고 나와서 그 정을 억제하고 음식을 차리라 하매
  32. 그들이 요셉에게 따로 차리고 그 형제들에게 따로 차리고 그와 함께 먹는 애굽 사람에게도 따로 차리니 애굽 사람은 히브리 사람과 같이 먹으면 부정을 입음이었더라
  33. 그들이 요셉 앞에 앉되 그들의 나이에 따라 앉히게 되니 그들이 서로 이상히 여겼더라
  34. 요셉이 자기 음식을 그들에게 주되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다섯 배나 주매 그들이 마시며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였더라

창세기 44장

  1. 요셉이 그의 집 청지기에게 명하여 이르되 양식을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2. 또 내 잔 곧 은잔을 그 청년의 자루 아귀에 넣고 그 양식 값 돈도 함께 넣으라 하매 그가 요셉의 명령대로 하고
  3. 아침이 밝을 때에 사람들과 그들의 나귀들을 보내니라
  4. 그들이 성읍에서 나가 멀리 가기 전에 요셉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사람들의 뒤를 따라 가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선을 악으로 갚느냐
  5. 이것은 내 주인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 데에 쓰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이같이 하니 악하도다 하라
  6. 청지기가 그들에게 따라 가서 그대로 말하니
  7.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주여 어찌 이렇게 말씀하시나이까 당신의 종들이 이런 일은 결단코 아니하나이다
  8. 우리 자루에 있던 돈도 우리가 가나안 땅에서부터 당신에게로 가져왔거늘 우리가 어찌 당신의 주인의 집에서 은 금을 도둑질하리이까
  9. 당신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
  10. 그가 이르되 그러면 너희의 말과 같이 하리라 그것이 누구에게서든지 발견되면 그는 내게 종이 될 것이요 너희는 죄가 없으리라
  11. 그들이 각각 급히 자루를 땅에 내려놓고 자루를 각기 푸니
  12. 그가 나이 많은 자에게서부터 시작하여 나이 적은 자에게까지 조사하매 그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된지라
  13. 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 가니라
  14.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 요셉이 아직 그 곳에 있는지라 그의 앞에서 땅에 엎드리니
  15.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나 같은 사람이 점을 잘 치는 줄을 너희는 알지 못하였느냐
  16.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17. 요셉이 이르되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내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
  18.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당신의 종에게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아뢰게 하소서 주의 종에게 노하지 마소서 주는 바로와 같으심이니이다
  19. 이전에 내 주께서 종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아버지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기에
  20. 우리가 내 주께 아뢰되 우리에게 아버지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가 노년에 얻은 아들 청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가 남긴 것은 그뿐이므로 그의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하였더니
  21. 주께서 또 종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내게로 데리고 내려와서 내가 그를 보게 하라 하시기로
  22. 우리가 내 주께 말씀드리기를 그 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그의 아버지가 죽겠나이다
  23. 주께서 또 주의 종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 막내 아우가 너희와 함께 내려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기로
  24. 우리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로 도로 올라가서 내 주의 말씀을 그에게 아뢰었나이다
  25. 그 후에 우리 아버지가 다시 가서 곡물을 조금 사오라 하시기로
  26. 우리가 이르되 우리가 내려갈 수 없나이다 우리 막내 아우가 함께 가면 내려가려니와 막내 아우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음이니이다
  27.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이르되 너희도 알거니와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28. 하나는 내게서 나갔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틀림없이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29. 너희가 이 아이도 내게서 데려 가려하니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30.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31.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32.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33.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34.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창세기 45장

  1.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2.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9.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아뢰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지체 말고 내게로 내려오사
  10.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
  11.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하더라고 전하소서
  12. 당신들의 눈과 내 아우 베냐민의 눈이 보는 바 당신들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내 입이라
  13. 당신들은 내가 애굽에서 누리는 영화와 당신들이 본 모든 것을 다 내 아버지께 아뢰고 속히 모시고 내려오소서 하며
  14.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우니라
  15. 요셉이 또 형들과 입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서야 요셉과 말하니라
  16.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문이 바로의 궁에 들리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기뻐하고
  17. 바로는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에게 명령하기를 너희는 이렇게 하여 너희 양식을 싣고 가서 가나안 땅에 이르거든
  18. 너희 아버지와 너희 가족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의 좋은 땅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
  19. 이제 명령을 받았으니 이렇게 하라 너희는 애굽 땅에서 수레를 가져다가 너희 자녀와 아내를 태우고 너희 아버지를 모셔 오라
  20. 또 너희의 기구를 아끼지 말라 온 애굽 땅의 좋은 것이 너희 것임이니라
  21.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그대로 할새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들에게 수레를 주고 길 양식을 주며
  22. 또 그들에게 다 각기 옷 한 벌씩을 주되 베냐민에게는 은 삼백과 옷 다섯 벌을 주고
  23. 그가 또 이와 같이 그 아버지에게 보내되 수나귀 열 필에 애굽의 아름다운 물품을 실리고 암나귀 열 필에는 아버지에게 길에서 드릴 곡식과 떡과 양식을 실리고
  24. 이에 형들을 돌려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당신들은 길에서 다투지 말라 하였더라
  25. 그들이 애굽에서 올라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아버지 야곱에게 이르러
  26. 알리어 이르되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 애굽 땅 총리가 되었더이다 야곱이 그들의 말을 믿지 못하여 어리둥절 하더니
  27. 그들이 또 요셉이 자기들에게 부탁한 모든 말로 그에게 말하매 그들의 아버지 야곱은 요셉이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서야 기운이 소생한지라
  28. 이스라엘이 이르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하니라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본문 해설

다시 애굽으로 향하는 두 번째 길

마침내 흩어진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이십 년 넘게 갈라져 있던 열한 형제와 애굽의 총리가 오늘 본문에서 한 상에 앉고, 서로의 목을 안고 울며, 아버지의 이름을 함께 부릅니다. 창세기 43장부터 45장까지는 요셉 이야기에서 가장 뜨거운 세 장이며, 성경 전체에서 화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가장 자세히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오늘은 그 길을 한 걸음씩 함께 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세 장의 흐름은 단순합니다. 43장은 두 번째 애굽 여행과 총리의 집에서 차려진 밥상을 담고, 44장은 은잔 사건과 유다의 긴 탄원을 적습니다. 45장에 이르러 요셉이 가면을 벗고 나는 요셉이라고 선언하며 모든 매듭이 풀립니다.

성경 연대기로 보면 이 재회는 기원전 1870년대의 사건입니다. 출애굽을 기원전 1446년으로, 애굽 체류 기간을 사백삼십 년으로 문자 그대로 계산하면 야곱 일가의 이주는 기원전 1876년 무렵이 됩니다. 요셉이 서른에 총리가 되고 풍년 칠 년과 흉년 두 해가 지난 시점이니, 애굽 중왕국 제12왕조의 전성기에 해당하는 셈입니다.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내려간 셈족의 발걸음

베니하산 크눔호테프 2세 무덤 벽화에 묘사된 아무 사람들의 행렬, 공공 영역 자료를 합성한 이미지
베니하산 크눔호테프 2세 무덤 벽화에 묘사된 아무 사람들의 행렬, 공공 영역 자료를 합성한 이미지

위 벽화는 애굽 중왕국 시대의 귀족 크눔호테프 2세의 무덤에 그려진 그림입니다. 나귀에 짐을 싣고 애굽으로 들어오는 아시아계 사람들, 곧 아무 사람들의 행렬이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옷의 무늬와 수염의 모양, 어깨에 멘 무기와 악기까지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서 학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자료입니다.

이 그림이 왜 중요할까요? 야곱의 아들들이 곡식을 사러 애굽으로 내려가던 바로 그 시대의 풍경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묘사하는 셈족의 애굽 왕래가 공상이 아니라 당시의 일상이었음을 이 한 장의 벽화가 증언합니다.

43장 1절은 담담하게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라고 적습니다. 가나안의 농사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만 의존했기에, 비가 끊기면 저장해 둔 곡식이 바닥나는 순간 곧 생존이 걸린 문제가 되었습니다. 2절에서 야곱이 다시 가라고 말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더 미룰 수 없는 벼랑 끝의 결정이었던 것입니다.

르우벤과 다른 길을 걸은 유다의 담보

42장 37절에서 르우벤은 자기 두 아들을 죽여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그 제안을 거절한 것은 당연합니다. 손자를 죽여서 아들을 되찾는 거래가 아버지에게 무슨 위로가 되었겠는지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43장 9절의 유다는 전혀 다른 말을 꺼냅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라는 고백입니다. 히브리어로 담보를 뜻하는 아라브는 빚보증을 서듯 자기 몸을 저당 잡히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누가 대가를 치르는지가 두 사람의 차이입니다. 르우벤은 남의 생명을 걸었고, 유다는 자기 생명을 걸었습니다. 바로 이 유다의 자리에서 훗날 유다 지파에서 오실 한 분의 그림자가 어른거립니다.

여기서 잠시 멈추어 보고 싶습니다. 창세기 38장에서 며느리 다말 앞에서 그는 나보다 옳도다라고 자기 죄를 인정했던 그 유다가, 이제 동생을 위해 자기를 내놓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을 이렇게 바꾸어 놓는 법입니다.

예물 목록에 담긴 가나안의 풍경

피스타키아 테레빈투스의 열매, greffer.net 촬영, CC BY-SA 2.5
피스타키아 테레빈투스의 열매, greffer.net 촬영, CC BY-SA 2.5

43장 11절의 예물 목록은 짧지만 알찹니다. 유향과 꿀, 향품과 몰약, 유향나무 열매와 감복숭아가 열거되는데, 모두 기근 중에도 가나안 땅에서 구할 수 있던 특산물입니다. 곡식은 없어도 향료와 견과는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위 사진의 열매가 바로 유향나무 열매로 번역된 보트님입니다. 피스타치오 계열의 견과로, 가나안 산지에서 자라던 나무의 열매입니다. 애굽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이었으므로 총리에게 올리는 예물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몰약으로 번역된 로트는 오늘 우리가 아는 미르라와는 다른 식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중해 연안에서 자라는 관목에서 채취한 끈적한 수지, 곧 라다넘으로 보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집니다. 어느 쪽이든 향을 내는 값비싼 물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왜 하필 이런 선물을 준비했을까요? 애굽에 없는 것으로 애굽의 권력자에게 호의를 구하려는 아버지의 계산이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예물을 들고 권력자 앞에 나아가는 것은 기본 예절이기도 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부른 야곱의 고백

43장 14절은 이 장의 영적 정점입니다. 야곱은 아들들을 보내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라고 기도합니다. 여기 쓰인 이름이 히브리어로 엘 샤다이, 곧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이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 아시나요? 창세기 17장 1절에서 아브라함에게, 그리고 창세기 35장 11절에서 야곱 자신에게 하나님이 스스로 밝히신 이름입니다. 언약을 주시고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라는 뜻이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같은 절 끝의 한마디가 가슴을 울립니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라는 체념 섞인 내어드림입니다. 에스더 4장 16절의 죽으면 죽으리이다와 겹쳐 읽히는 고백입니다.

이 노인이 드디어 손을 폈습니다. 라헬의 마지막 아들까지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웨슬리는 『구약성서 주해』에서 야곱이 자기 뜻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는 자리에 이르렀다고 짚었습니다.

총리의 집 문 앞에서 떨던 사람들

니안크네수트 무덤에서 나온 부조, 소를 잡는 애굽 사람들의 모습, 뮌헨 이집트미술관 소장, ArchaiOptix 촬영, CC BY-SA 4.0
니안크네수트 무덤에서 나온 부조, 소를 잡는 애굽 사람들의 모습, 뮌헨 이집트미술관 소장, ArchaiOptix 촬영, CC BY-SA 4.0

43장 16절에서 요셉은 베냐민을 보자마자 청지기에게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고 지시합니다. 위 부조에 새겨진 장면이 바로 그 준비 과정입니다. 애굽의 귀족 가문에서 손님을 맞을 때 소를 잡아 상을 차리는 일은 최고 등급의 환대를 뜻했습니다.

그런데 형제들의 반응은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18절은 그들이 두려워하여 자루에 들어 있던 돈 때문에 끌려간다고 수군거렸다고 기록합니다. 노예로 팔릴까 봐 떨었다는 것입니다.

왜 은혜를 받으면서도 두려워했을까요? 양심에 걸린 죄가 정리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호의조차 함정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42장 28절에서 자루 속의 돈을 보고 떨었던 그 두려움이 아직 가시지 않았습니다.

23절의 청지기의 대답은 놀랍습니다.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라고 말합니다. 애굽 사람의 입에서 히브리 조상의 하나님이 언급된 것이니, 요셉의 신앙이 그 집안 사람들에게까지 스며들었음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따로 차린 세 상과 애굽의 식탁 금기

네바문 무덤 벽화를 모사한 잔치 장면, 니나 M. 데이비스 작,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CC0
네바문 무덤 벽화를 모사한 잔치 장면, 니나 M. 데이비스 작,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CC0

43장 32절에는 아주 흥미로운 문화적 세부가 들어 있습니다. 상이 세 개로 나뉘는데, 요셉의 상과 형제들의 상과 애굽 사람들의 상이 각각 따로 차려집니다. 이유는 애굽 사람은 히브리 사람과 같이 먹으면 부정을 입는다는 관습이었습니다.

이 관습은 실제로 확인됩니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역사』 제2권에서 애굽인들이 그리스인의 칼이나 그릇을 쓰지 않았다고 기록했습니다. 애굽에서 소는 하토르 여신과 연결된 신성한 짐승이었으니, 소를 잡아먹는 이방인과 같은 상에 앉는 일은 종교적 금기였습니다.

성경이 이런 세부까지 정확히 담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을 말해 줄까요? 창세기 요셉 기사가 애굽 내부 사정을 아는 사람의 기록이라는 점입니다. 모세는 애굽 왕궁에서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33절의 자리 배치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형제들이 나이에 따라 앉히게 되니 서로 이상히 여겼다고 적혀 있습니다. 통역을 통해 말하는 이방의 총리가 열한 형제의 출생 순서를 정확히 알고 있었으니, 소름이 돋을 만한 장면입니다.

34절의 다섯 배는 요셉 기사 특유의 숫자입니다. 창세기 41장 34절의 오분의 일, 45장 6절의 다섯 해, 45장 22절의 옷 다섯 벌, 47장 2절의 다섯 명까지 다섯이라는 숫자가 거듭 등장합니다. 애굽 문헌에서 다섯이 즐겨 쓰인 수량 표현이라는 점을 여러 학자들이 지적해 왔습니다.

은잔과 점치는 그릇의 정체

연꽃 무늬로 장식된 애굽 파이앙스 잔, 토리노 이집트박물관 소장, CC0
연꽃 무늬로 장식된 애굽 파이앙스 잔, 토리노 이집트박물관 소장, CC0

44장 2절에서 요셉은 자기 은잔을 베냐민의 자루에 몰래 넣게 합니다. 위 사진과 같은 잔은 애굽 상류층의 식탁에 오르던 그릇으로, 총리의 잔이라면 은이나 금으로 만든 훨씬 값진 물건이었을 것입니다.

5절의 설명이 조금 낯설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 잔이 늘 점치는 데에 쓰는 것이라고 하니, 요셉이 점을 쳤다는 말인지 궁금해지지 않나요? 그렇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고대 근동에는 그릇에 담긴 물이나 기름 위에 떨어뜨린 방울의 무늬를 읽어 점을 치는 관습이 있었고, 애굽과 메소포타미아 문헌에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41장 16절에서 요셉은 이미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지금 그는 애굽의 총리 역할을 연기하고 있을 뿐입니다.

15절에서도 요셉은 나 같은 사람이 점을 잘 치는 줄을 너희는 알지 못하였느냐라고 몰아세웁니다. 형들이 보는 앞에서 애굽 관리의 가면을 끝까지 유지하려는 말이었습니다. 그 가면이 다음 장에서 한순간에 벗겨집니다.

그런데 왜 하필 베냐민의 자루였을까요? 라헬이 남긴 또 다른 아들을 형들이 어떻게 대하는지 마지막으로 시험하려는 설계였습니다. 이십 년 전 그들은 라헬의 첫 아들을 구덩이에 던지고 은 이십에 팔았습니다.

창세기에서 가장 긴 사람의 연설

44장 18절부터 34절까지 이어지는 유다의 말은 창세기에 기록된 사람의 연설 가운데 가장 긴 것입니다. 열일곱 절에 걸쳐 그는 아버지와 동생의 사정을 하나하나 풀어놓습니다. 변명도 없고 법적 항변도 없습니다.

그의 논리는 오직 하나입니다. 30절에서 그는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이라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목숨줄이 막내아들에게 매여 있다는 호소입니다.

그리고 33절에서 결론이 나옵니다.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라는 간청입니다. 동생 대신 자기가 종으로 남겠다는 자발적 대속의 제안입니다.

여기서 복음의 그림자가 또렷해집니다. 요한복음 11장 50절에서 가야바가 뜻 모르고 던진 말, 곧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는 말이 유다의 입에서는 자기를 내어놓는 사랑으로 울립니다. 매튜 헨리는 이 대목을 그리스도의 중보를 미리 보여 주는 장면으로 읽었습니다.

유다가 변했다는 증거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창세기 37장 27절에서 요셉을 팔자고 제안했던 사람이, 이제 동생을 위해 노예가 되겠다고 나섭니다. 이십 년의 세월 동안 하나님이 한 사람의 속사람을 완전히 다시 지으신 것입니다.

나는 요셉이라, 벗겨진 가면

45장 1절에서 요셉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합니다. 모든 애굽 사람을 물러가게 하고 형들만 남긴 자리에서 그는 소리 질러 자기를 알립니다. 2절은 그 울음이 바로의 궁중에까지 들렸다고 적습니다.

3절의 첫마디가 짧고 강합니다. 나는 요셉이라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아버지의 안부를 묻습니다.

형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놀라서 대답조차 못 했습니다. 죽었다고 믿었던 동생이, 자기들을 사고팔 권한을 가진 사람으로 눈앞에 서 있었습니다.

4절에서 요셉은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라고 부릅니다. 두려워 뒷걸음질 치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말입니다. 그리고 숨기지 않고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라며 사실을 그대로 말합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다음 말입니다. 5절에서 그는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라고 위로합니다. 진실을 덮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무너뜨리지 않는 용서가 어떤 모습인지 이 두 절이 보여 줍니다.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45장의 심장은 5절과 7절과 8절에 세 번 반복되는 한 문장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라는 고백입니다. 요셉은 자기 인생의 열세 해를 형들의 악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파견으로 읽었습니다.

8절은 더 분명합니다.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라고 못을 박습니다. 그렇다면 형들에게는 죄가 없다는 뜻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4절에서 요셉은 분명히 당신들이 나를 팔았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의 죄는 죄로 남고, 그 위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창세기 50장 20절은 이것을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라는 말로 요약할 것입니다.

같은 절에 쓰인 표현도 흥미롭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라고 말하는데, 애굽 궁정에는 왕의 최고 자문관을 가리키는 신의 아버지라는 칭호가 실제로 있었습니다. 성경이 애굽 행정 용어를 그대로 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고센 땅과 바로가 보낸 수레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나온 전차, 하이디 콘트카넨 촬영, CC BY-SA 2.0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나온 전차, 하이디 콘트카넨 촬영, CC BY-SA 2.0

45장 10절에서 요셉은 가족이 머물 곳으로 고센 땅을 지목합니다. 나일 삼각주의 동쪽, 오늘날 와디 투밀랏 일대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입니다. 목초지가 넓고 애굽 중심부와 적당히 떨어져 있어 목축하는 집안에게는 최적의 자리였습니다.

19절에서 바로는 직접 명령을 내려 수레를 가져다가 가족을 태워 오라고 합니다. 위 사진처럼 애굽의 바퀴 달린 수레는 왕실과 군대의 물건이었고, 가나안 산지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수레가 결정적인 증거가 됩니다.

26절을 보면 야곱은 아들들의 말을 믿지 못하여 어리둥절 합니다. 이십이 년 전 피 묻은 채색옷을 받아 든 그 아버지에게 요셉이 살아 있다는 말은 너무 큰 소식이었습니다. 믿기지 않는 좋은 소식 앞에서 사람은 오히려 얼어붙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27절에서 상황이 바뀝니다. 그가 요셉이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서야 기운이 소생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로는 설득되지 않던 노인이 눈앞의 애굽 수레를 보고서 마음을 열었습니다.

28절의 마지막 한마디가 참 뭉클합니다. 족하도다라는 외침입니다. 더 바랄 것이 없다는 뜻이니, 이십이 년의 애통이 그 한마디로 막을 내립니다.

길에서 다투지 말라는 당부

45장 24절에는 작지만 지혜로운 한 줄이 들어 있습니다. 요셉이 형들을 돌려보내며 당신들은 길에서 다투지 말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여기 쓰인 히브리어 라가즈는 흔들리고 동요하며 서로 들썩이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요셉은 무엇을 걱정했을까요? 집으로 가는 길에 형들이 서로를 탓하기 시작할 것을 내다본 것입니다. 누가 먼저 팔자고 했는지, 누가 더 잔인했는지 따지기 시작하면 가나안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 가족이 또 깨질 수 있었습니다.

용서받은 사람들끼리 다시 서로를 고발하는 모습을 우리도 자주 보게 됩니다. 요셉은 그 위험을 알고 미리 막았습니다. 참된 화해는 선언으로 끝나지 않고 그 이후의 길까지 돌보는 수고를 포함합니다.

자르 무덤 벽화를 모사한 짐 실은 나귀와 밭 가는 장면, 니나 M. 데이비스 작,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CC0
자르 무덤 벽화를 모사한 짐 실은 나귀와 밭 가는 장면, 니나 M. 데이비스 작,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CC0

위 벽화에는 짐을 실은 나귀와 밭을 가는 사람들이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 23절에서 요셉이 아버지에게 보낸 수나귀 열 필과 암나귀 열 필의 행렬도 이런 풍경이었을 것입니다. 가나안으로 올라가는 그 길이 이제는 슬픔의 길이 아니라 은혜를 실어 나르는 길이 되었습니다.

세 장을 덮으며 한 가지를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형들의 악한 손을 꺾지 않으신 채로 그 손조차 쓰셔서 한 민족과 열방을 먹이는 길을 내셨습니다. 스코필드가 약속의 세대를 설명하며 짚었듯, 이 가족의 역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었습니다.

묵상과 적용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말씀은 하나님이 악을 통과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를 팔아 버린 형들의 죄를 지우지 않은 채로, 그 사건 전체를 하나님의 파견으로 고백했습니다. 사람의 죄는 그대로 죄이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그 죄의 결과까지 붙들어 자기 뜻을 이루십니다.

이 고백은 체념과 다릅니다. 체념은 어쩔 수 없다고 손을 놓는 일이지만, 요셉의 고백은 일하시는 하나님을 알아본 신앙의 눈입니다. 지금 내 삶의 가장 아픈 자리에서도 하나님이 무언가를 준비하고 계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처를 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요셉의 답은 진실을 말하되 상대를 무너뜨리지 않는 길이었습니다. 그는 당신들이 나를 팔았다고 분명히 말한 뒤에 곧바로 근심하지 말라고 위로했습니다.

두 번째 적용은 용서가 감정이 아니라 결단이라는 점입니다. 요셉은 울었습니다. 세 번이나 숨어서 울었고, 마지막에는 바로의 궁중에까지 들릴 만큼 큰 울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울면서도 형들을 끌어안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감정이 정리되기를 기다렸다면 그는 영원히 용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용서는 마음이 편해진 뒤에 하는 일이 아니라, 마음이 여전히 아플 때 의지로 내리는 결정입니다. 지금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쓰린 사람이 있다면, 감정이 아니라 의지로 한 걸음을 떼어 보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담보가 되어 주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유다는 아버지 앞에서 동생의 보증인이 되었고, 총리 앞에서 동생을 대신해 종이 되겠다고 나섰습니다.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누군가의 짐을 자기 어깨로 옮겨 메는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이 자리를 잘 아실 것입니다. 아이의 실수를 대신 책임지고, 그 아이가 설 자리를 만들어 주는 일 말입니다. 직장에서도 후배의 잘못을 함께 안고 가는 선배가 있을 때 그 조직이 살아납니다.

네 번째 적용은 묻어 둔 죄를 끌어안고 사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형제들은 총리의 집으로 초청받았는데도 노예로 팔릴까 떨었고, 자루 속 돈을 보고도 떨었습니다. 죄가 정리되지 않은 마음에는 은혜마저 올가미처럼 느껴지는 법입니다.

혹시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불안이 밀려오는 분이 계시지 않을까요? 그 불안의 뿌리를 정직하게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은 자백하면 하나님이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신다고 약속합니다.

다섯 번째로 가족의 밥상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가장 먼저 한 일은 밥상을 차린 것이었습니다. 서로 어색하고 할 말을 찾지 못하는 사이일지라도, 한 상에 앉아 함께 먹는 시간이 관계를 다시 잇는 자리가 됩니다.

명절마다 불편해지는 가족 관계로 마음이 무거운 분들이 많습니다.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풀려고 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함께 밥을 먹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부터 시작해 보십시오.

여섯 번째 적용은 용서받은 사람끼리 다투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셉의 마지막 당부가 길에서 다투지 말라는 말이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같은 은혜로 살아난 사람들이 서로를 고발하기 시작하면, 그 공동체는 바깥의 공격이 없어도 스스로 무너집니다.

교회 안에서 이 말씀이 특별히 아프게 들립니다. 모두 똑같이 죄 사함을 받아 선 사람들이면서도 누가 더 옳은지 다투는 일이 잦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의 권면을 오늘 다시 붙들어 봅시다.

마지막으로 은혜와 성화를 함께 붙드시기 바랍니다. 유다가 달라진 것도, 요셉이 용서할 수 있었던 것도 사람의 수양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일하신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먼저 찾아와 칭의와 중생을 주시고, 그 순간부터 시작된 성화는 평생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합니다. 먼저 찾아오신 은혜 앞에 자기 죄를 꺼내 놓고, 그 은혜 안에서 날마다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이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그날을 바라보며, 오늘은 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일부터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예화

뮌헨 교회에서 내민 손: 코리 텐 붐

1921년경 스카우트 제복을 입은 코리 텐 붐, 촬영자 미상, 퍼블릭 도메인
1921년경 스카우트 제복을 입은 코리 텐 붐, 촬영자 미상, 퍼블릭 도메인

요셉이 형들을 끌어안는 장면을 읽을 때면 한 네덜란드 여성이 떠오릅니다. 1892년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코리 텐 붐입니다. 그의 가족은 하를렘의 바르텔요리스 거리에서 작은 시계점을 운영하며 살았습니다.

하를렘 바르텔요리스 거리의 텐 붐 박물관, 시계점과 박물관으로 쓰이는 건물, Jane023 촬영, CC BY-SA 3.0
하를렘 바르텔요리스 거리의 텐 붐 박물관, 시계점과 박물관으로 쓰이는 건물, Jane023 촬영, CC BY-SA 3.0

위 사진의 건물이 바로 그 집입니다. 가족은 이 집을 베예라는 애칭으로 불렀고, 독일 점령기에 침실 벽 안쪽에 비밀 공간을 만들어 유대인들을 숨겼습니다. 그렇게 목숨을 건진 사람이 수백 명에 이른다고 전해집니다.

1944년 2월 28일 밀고로 게슈타포가 집을 덮쳤습니다. 여든네 살의 아버지 카스퍼는 체포된 뒤 열흘 만에 세상을 떠납니다. 코리와 언니 벳시는 여러 수용소를 거쳐 베를린 북쪽의 라벤스브뤼크로 끌려갔습니다.

라벤스브뤼크 강제수용소 추모지의 수용소 거리, 2020년 촬영, Keijdo, CC0
라벤스브뤼크 강제수용소 추모지의 수용소 거리, 2020년 촬영, Keijdo, CC0

위 사진은 그 수용소 자리에 남은 길입니다. 두 자매는 벼룩이 가득한 막사에서 몰래 가져온 성경을 펴고 사람들에게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감시병들이 벼룩 때문에 막사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기에 그 더러움이 오히려 예배를 지켜 주었다고 코리는 훗날 적고 있습니다.

언니 벳시는 1944년 12월 16일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열이틀 뒤, 행정 착오로 코리의 석방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자매 중 한 사람만 살아서 문을 나선 것입니다.

전쟁이 끝난 뒤 코리는 유럽 각지를 돌며 용서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1947년 독일 뮌헨의 한 교회에서 집회를 마쳤을 때, 한 중년 남자가 손을 내밀며 다가왔습니다. 코리는 그 얼굴을 곧 알아봅니다. 라벤스브뤼크 샤워실 앞에 서 있던 그 간수였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그곳의 경비였으며 이제 그리스도인이 되어 용서를 구한다고 말합니다. 손을 내민 채 기다리는 그 앞에서 코리는 팔을 들 수 없었습니다. 언니가 죽어 간 자리가 한꺼번에 떠올랐던 것입니다.

그 순간 코리가 무엇을 했을까요? 마음속으로 짧게 기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용서를 명하셨으니 자기에게 용서할 마음을 달라는 기도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기계적으로 손을 들어 그 손을 잡았습니다. 코리는 그 순간 어깨에서 팔로 따뜻한 것이 흘러내려 눈물이 터졌다고 자신의 책 『주님을 위한 방랑자』에 기록합니다. 그는 그 체험을 통해 용서는 감정이 아니라 의지의 행위이며, 그 의지에 하나님이 감정을 더해 주신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고백했습니다.

창세기 45장의 요셉이 걸어간 길도 똑같습니다. 그는 울면서 형들을 안았습니다. 감정이 다 정리되어 편안해진 뒤에 용서한 것이 아니라, 아직 아픈 가슴으로 결단한 것입니다.

갈라섰던 두 친구의 마지막 예우: 웨슬리와 휫필드

존 러셀이 그린 조지 휫필드의 초상, 퍼블릭 도메인
존 러셀이 그린 조지 휫필드의 초상, 퍼블릭 도메인

18세기 영국의 부흥을 이끈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감리교 운동의 창시자 존 웨슬리와, 야외 설교로 수만 명을 모았던 조지 휫필드입니다. 둘은 옥스퍼드의 홀리 클럽에서 만난 동료였고, 함께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1740년 무렵 두 사람은 심하게 갈라집니다. 웨슬리가 자유로운 은총을 주제로 한 설교를 펴내 예정론을 반박했고, 휫필드는 1740년 말 조지아에서 이를 조목조목 비판하는 공개 서신을 썼습니다. 1741년 봄 런던에서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가기로 합의하고 헤어집니다.

조지 롬니가 그린 존 웨슬리의 초상, 퍼블릭 도메인
조지 롬니가 그린 존 웨슬리의 초상, 퍼블릭 도메인

지지자들은 더 격렬했습니다. 양쪽 진영에서 상대를 공격하는 글이 쏟아졌고, 같은 부흥 운동 안에서 두 당파가 생겨났던 것입니다. 사람의 일로만 보면 이 우정은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며 두 사람은 조용히 서로를 다시 찾습니다. 교리의 차이를 덮어 버리지는 않았으나, 구원의 근본에서는 같은 복음을 붙들고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서로의 강단을 오가고 함께 기도하는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그 회복의 결말이 어떻게 드러났을까요? 휫필드의 마지막 뜻에서 드러났습니다. 그는 자기가 멀리서 죽게 되면 런던에서 자기 장례 설교를 할 사람으로 존 웨슬리를 원한다고 미리 밝혀 둔 것입니다.

휫필드는 1770년 9월 30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뉴버리포트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 뜻에 따라 유언 집행자들은 웨슬리에게 추도 설교를 부탁했고, 웨슬리는 1770년 11월 18일 주일에 토트넘 코트 로드 채플과 무어필즈 태버내클에서 차례로 설교했습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그의 일기에 적혀 있습니다.

설교의 제목은 「조지 휫필드 목사의 죽음에 관하여」이며, 웨슬리의 설교집 53번으로 지금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웨슬리는 두 사람이 달랐던 점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를 하나로 묶는 근본 교리가 무엇인지를 더 길게 이야기했습니다.

갈라진 형제들이 다시 한 상에 앉는 일이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다만 누군가 먼저 손을 내밀고, 다른 누군가 그 손을 잡아야 합니다.

요셉은 자기를 판 형들에게 가까이 오라고 불렀습니다. 휫필드는 자기를 비판했던 친구에게 마지막 강단을 맡겼습니다. 복음을 아는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화해의 쪽으로 몸을 기울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오래 묻어 둔 상처를 하나님 앞에 꺼내 놓고, 감정이 아니라 의지로 용서의 한 걸음을 떼는 결단을 구합니다. 내 인생의 아픈 자리에서도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믿는 눈을 함께 구하고 싶습니다.

가정을 위해서는, 서로 어색해진 관계가 한 밥상에서부터 회복되기를 구합니다. 누군가의 짐을 대신 메는 유다 같은 사람이 각 가정에 세워지기를 기도드립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는, 같은 은혜로 살아난 사람들이 서로를 고발하지 않고 함께 길을 걷게 되기를 아룁니다. 이 사회가 갈라진 자리마다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일어나기를, 그리고 기근과 전쟁으로 흩어진 열방의 가족들에게 다시 모이는 날이 주어지기를 간절히 올려 드립니다.

사람의 악한 손조차 붙들어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오늘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은 구덩이에 던져진 소년을 애굽의 창고 앞에 세우시고, 그 손으로 자기를 팔아 버린 형제들을 먹이셨습니다. 저희 인생의 가장 어두운 대목까지 주님의 손 안에 있음을 고백하며 감사의 마음으로 엎드립니다.

눈물을 아시는 주님, 요셉이 안방에 들어가 몰래 울던 그 시간을 주님은 보고 계셨습니다. 저희에게도 아무에게 말하지 못한 울음의 자리가 있음을 주님께 아룁니다. 그 눈물을 닦아 주시고, 울면서도 손을 내미는 용기를 더하여 주옵소서.

담보가 되신 주님, 유다가 동생을 위해 종이 되겠다고 나선 그 자리에서 저희는 주님의 십자가를 봅니다. 주님은 저희를 대신하여 값을 치르시고 저희를 아버지의 집으로 데려가셨습니다. 그 은혜를 받은 저희가 이제 누군가의 짐을 함께 메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가까이 오라 부르시는 주님, 두려워 뒷걸음질 치는 저희를 늘 먼저 부르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죄가 정리되지 않아 은혜조차 두려워하던 저희 마음을 정직하게 열어 주시고, 자백하는 자를 용서하신다는 약속을 붙들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주님의 선물을 선물로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길에서 다투지 말라 하신 주님, 저희 가정과 교회가 서로를 탓하는 자리에서 돌이키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다시 오셔서 모든 것을 바로 세우실 그날을 바라보며, 오늘은 한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겠습니다. 이 모든 말씀을 저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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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런스

  1.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대한성서공회, 1998. 본문 출처: https://www.bskorea.or.kr
  2. 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Vol. 1 (Genesis to Deuteronomy), 1708–1710;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판 참조. (창 43~45장 주해, 유다의 탄원에 관한 풀이)
  3. John Wesley, Explanatory Notes upon the Old Testament, Bristol: William Pine, 1765. (창세기 43~45장 주해)
  4. John Wesley, Sermon 43: 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 1765. (칭의와 성화의 동시 시작)
  5. John Wesley, Sermon 53: On the Death of the Rev. Mr. George Whitefield, preached at Tottenham Court Road Chapel and the Tabernacle near Moorfields, 18 November 1770.
  6. John Wesley, The Journal of the Rev. John Wesley, ed. Nehemiah Curnock, London: Epworth Press, 1909–1916. (1741년 3월 휫필드와의 결별과 1770년 11월 18일 추도 설교 기록)
  7. Henry M. Morris, The Genesis Record: A Scientific and Devotional Commentary on the Book of Beginnings,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76.
  8. C. I. Scofield, ed., The Scofield Reference Bibl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09. (약속의 세대와 섭리에 관한 주)
  9. John MacArthur, ed., The MacArthur Study Bible, Nashville: Word Publishing, 1997. (창 43~45장 주)
  10. Kenneth A. Mathews, Genesis 11:27–50:26, The New American Commentary 1B, Nashville: Broadman & Holman, 2005.
  11.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95. (창 43:11의 예물 목록과 44:5의 점복 용어 논의)
  12. K. A. Kitchen,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2003. (애굽 궁정 칭호와 요셉 기사의 애굽적 세부)
  13. James K. Hoffmeier, Israel in Egypt: The Evidence for the Authenticity of the Exodus Tradi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고센의 위치, 셈족의 애굽 왕래, 베니하산 벽화의 의미)
  14. Herodotus, The Histories, Book II, trans. A. D. Godley, Loeb Classical Library,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20. (애굽인의 식탁 금기에 관한 기록)
  15. Percy E. Newberry, Beni Hasan, Part I, Archaeological Survey of Egypt, London: Egypt Exploration Fund, 1893. (크눔호테프 2세 무덤의 아무 사람들 행렬 기록)
  16. Corrie ten Boom with John and Elizabeth Sherrill, The Hiding Place, Washington Depot: Chosen Books, 1971.
  17. Corrie ten Boom with Jamie Buckingham, Tramp for the Lord, Fort Washington: Christian Literature Crusade, 1974. (1947년 뮌헨에서 라벤스브뤼크 간수를 만난 일화)
  18. Arnold A. Dallimore, George Whitefield: The Life and Times of the Great Evangelist of the Eighteenth-Century Revival, 2 vols., Edinburgh: Banner of Truth, 1970–1980.
  19. 이미지 출처(모두 위키미디어 공용에서 크기를 줄여 주소로 임베딩함): 나일 삼각주 위성 사진, 미 항공우주국, 퍼블릭 도메인 / 크눔호테프 2세 무덤의 아무 사람들 행렬 합성 이미지, 퍼블릭 도메인 / 피스타키아 테레빈투스 열매 사진, greffer.net, CC BY-SA 2.5 / 니안크네수트 무덤 부조, 뮌헨 이집트미술관, ArchaiOptix, CC BY-SA 4.0 / 네바문 무덤 잔치 장면 모사도, 니나 M. 데이비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CC0 / 연꽃 무늬 파이앙스 잔, 토리노 이집트박물관, CC0 / 투탕카멘의 전차 사진, Heidi Kontkanen, CC BY-SA 2.0 / 자르 무덤의 나귀와 밭갈이 모사도, 니나 M. 데이비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CC0 / 코리 텐 붐 사진, 촬영자 미상, 퍼블릭 도메인 / 하를렘 텐 붐 박물관 사진, Jane023, CC BY-SA 3.0 / 라벤스브뤼크 추모지 사진, Keijdo, CC0 / 존 러셀의 조지 휫필드 초상, 퍼블릭 도메인 / 조지 롬니의 존 웨슬리 초상, 퍼블릭 도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