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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차 (창세기 41장 ~ 창세기 42장)

아스완 부근을 흐르는 나일강의 모습, Vyacheslav Argenberg 촬영, CC BY 4.0

아스완 부근을 흐르는 나일강의 모습, Vyacheslav Argenberg 촬영, CC BY 4.0

26일차 (창세기 41장 ~ 창세기 42장)

본문

창세기 41장

  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2.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 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3. 그 뒤에 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나일 강 가에 서 있더니
  4. 그 흉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5.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6.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7. 그 가는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 바로가 깬즉 꿈이라
  8.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9.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
  10. 바로께서 종들에게 노하사 나와 떡 굽는 관원장을 친위대장의 집에 가두셨을 때에
  11. 나와 그가 하룻밤에 꿈을 꾼즉 각기 뜻이 있는 꿈이라
  12. 그 곳에 친위대장의 종 된 히브리 청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말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 사람에게 해석하더니
  13. 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되고 그는 매달렸나이다
  14. 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의 옷을 갈아 입고 바로에게 들어가니
  15.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17.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꿈에 나일 강 가에 서서
  18. 보니 살지고 아름다운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19. 그 뒤에 또 약하고 심히 흉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올라오니 그같이 흉한 것들은 애굽 땅에서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이라
  20. 그 파리하고 흉한 소가 처음의 일곱 살진 소를 먹었으며
  21. 먹었으나 먹은 듯 하지 아니하고 여전히 흉하더라 내가 곧 깨었다가
  22. 다시 꿈에 보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23.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더니
  24. 그 가는 이삭이 좋은 일곱 이삭을 삼키더라 내가 그 꿈을 점술가에게 말하였으나 그것을 내게 풀이해 주는 자가 없느니라
  25.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26. 일곱 좋은 암소는 일곱 해요 일곱 좋은 이삭도 일곱 해니 그 꿈은 하나라
  27. 그 후에 올라온 파리하고 흉한 일곱 소는 칠 년이요 동풍에 말라 속이 빈 일곱 이삭도 일곱 해 흉년이니
  28. 내가 바로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
  29. 온 애굽 땅에 일곱 해 큰 풍년이 있겠고
  30. 후에 일곱 해 흉년이 들므로 애굽 땅에 있던 풍년을 다 잊어버리게 되고 이 땅이 그 기근으로 망하리니
  31. 후에 든 그 흉년이 너무 심하므로 이전 풍년을 이 땅에서 기억하지 못하게 되리이다
  32.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
  33.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시고
  34.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나라 안에 감독관들을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35. 그들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읍에 쌓아 두게 하소서
  36.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해 흉년에 대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아니하리이다
  37.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38.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39.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40.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41.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42.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43.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44.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이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
  45.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46.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47. 일곱 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은지라
  48. 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장하되 각 성읍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읍 중에 쌓아 두매
  49. 쌓아 둔 곡식이 바다 모래 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
  50.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이 나되 곧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서 낳은지라
  51.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52.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53. 애굽 땅에 일곱 해 풍년이 그치고
  54.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먹을 것이 있더니
  55. 애굽 온 땅이 굶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하니라
  56.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57.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창세기 42장

  1. 그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느냐
  2. 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러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매
  3. 요셉의 형 열 사람이 애굽에서 곡식을 사려고 내려갔으나
  4. 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은 그의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생각에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5.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양식 사러 간 자 중에 있으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6.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7.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8. 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
  9.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10.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아니니이다 당신의 종들은 곡물을 사러 왔나이다
  11.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들로서 확실한 자들이니 당신의 종들은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12.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아니라 너희가 이 나라의 틈을 엿보러 왔느니라
  13. 그들이 이르되 당신의 종 우리들은 열두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막내 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14.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한 말이 이것이니라
  15.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막내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
  16.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꾼이니라 하고
  17.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18.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19. 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20.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
  23. 그들 사이에 통역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듣는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24.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 앞에서 결박하고
  25. 명하여 곡물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 각 사람의 돈은 그의 자루에 도로 넣게 하고 또 길 양식을 그들에게 주게 하니 그대로 행하였더라
  26. 그들이 곡식을 나귀에 싣고 그 곳을 떠났더니
  27. 한 사람이 여관에서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자루를 풀고 본즉 그 돈이 자루 아귀에 있는지라
  28. 그가 그 형제에게 말하되 내 돈을 도로 넣었도다 보라 자루 속에 있도다 이에 그들이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며 말하되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하고
  29. 그들이 가나안 땅에 돌아와 그들의 아버지 야곱에게 이르러 그들이 당한 일을 자세히 알리어 아뢰되
  30. 그 땅의 주인인 그 사람이 엄하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우리를 그 땅에 대한 정탐꾼으로 여기기로
  31. 우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확실한 자들이요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32. 우리는 한 아버지의 아들 열두 형제로서 하나는 없어지고 막내는 오늘 우리 아버지와 함께 가나안 땅에 있나이다 하였더니
  33. 그 땅의 주인인 그 사람이 우리에게 이르되 내가 이같이 하여 너희가 확실한 자들임을 알리니 너희 형제 중의 하나를 내게 두고 양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34.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려 오라 그러면 너희가 정탐꾼이 아니요 확실한 자들임을 내가 알고 너희 형제를 너희에게 돌리리니 너희가 이 나라에서 무역하리라 하더이다 하고
  35. 각기 자루를 쏟고 본즉 각 사람의 돈뭉치가 그 자루 속에 있는지라 그들과 그들의 아버지가 돈뭉치를 보고 다 두려워하더니
  36. 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37. 르우벤이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리이다
  38. 야곱이 이르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가 가는 길에서 재난이 그에게 미치면 너희가 내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본문 해설

감옥에서 왕궁으로 옮겨진 하루

오늘 본문은 한 사람의 인생이 단 하루 만에 뒤집히는 장면으로 열립니다. 십삼 년을 노예와 죄수로 지낸 서른 살 청년이 아침에 감옥 문을 나와 저녁에는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그리고 칠 년의 풍년과 칠 년의 흉년을 지나, 이십 년 전 자기를 팔아 버린 열 형제가 곡식을 사러 그 앞에 엎드립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시간을 어떻게 다루시는지 두 장에 걸쳐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41장은 바로의 꿈과 요셉의 등용과 칠 년의 저장을 담은 장입니다. 42장은 형들의 첫 번째 애굽 여행과 그들의 양심이 깨어나는 과정을 적습니다. 두 장을 이어 읽으면 섭리와 회개라는 두 실이 나란히 꿰어져 있습니다.

연대를 짚어 보면 흐름이 더 또렷해집니다. 요셉은 열일곱에 팔려 서른에 총리가 되었고, 풍년 칠 년이 지난 뒤 형들이 왔으니 헤어진 지 꼬박 이십 년이 넘은 재회입니다. 성경이 숫자를 이렇게 꼼꼼히 적어 둔 까닭은 이 일이 실제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나일강이 모든 것을 결정하던 나라

카이로 라우다 섬의 나일로미터, 나일강 수위를 재던 시설, Michal Huniewicz 촬영, CC BY-SA 4.0
카이로 라우다 섬의 나일로미터, 나일강 수위를 재던 시설, Michal Huniewicz 촬영, CC BY-SA 4.0

애굽을 이해하려면 먼저 나일강을 알아야 합니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이 땅에서 농사는 해마다 여름에 밀려오는 범람에 전적으로 달려 있었습니다. 범람이 실어 온 검은 흙이 곡식을 길러 냈고, 그 수확이 나라의 세금과 식량을 떠받쳤습니다.

위 사진의 시설은 나일로미터라 불리는 수위 측정 장치입니다. 애굽인들은 강의 수위를 재어 그 해의 세금을 미리 계산했습니다. 지금 보시는 구조물은 후대에 지은 것이지만, 수위를 재는 전통 자체는 고대 애굽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렇다면 범람이 몇 해 연속으로 약하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곧 전국적인 기근이 닥쳤습니다. 2절에서 암소가 강 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는 모습이 바로 이 농업 구조를 그대로 보여 주는 그림입니다.

메케트레 무덤에서 나온 고대 이집트 가축 우리 모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CC0
메케트레 무덤에서 나온 고대 이집트 가축 우리 모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CC0

위 모형은 애굽 중왕국 시대 무덤에서 나온 가축 우리입니다. 살진 소를 돌보는 일꾼들의 모습이 작게 조각되어 있어, 바로의 꿈에 나온 암소가 어떤 의미였는지 짐작하게 해 줍니다. 애굽에서 소는 풍요의 상징이자 신들의 형상과도 연결되던 동물입니다.

점술가들이 멈춘 자리

8절을 보면 바로가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모읍니다. 애굽에는 해몽을 전문으로 하는 사제 계층이 있었고, 꿈 해석 지침을 적은 파피루스가 실제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전문가가 입을 다물었습니다.

왜 아무도 풀지 못했을까요? 하나님이 주신 꿈은 하나님이 주시는 해석으로만 열리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2장에서 바벨론의 박사들이 멈춰 선 장면과 똑같은 구도입니다.

9절에서 술 맡은 관원장이 입을 엽니다.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라고 그는 말합니다. 이 년 동안 잊고 지내던 사람의 이름이 왕이 가장 절박한 그 순간에 떠올랐습니다.

12절의 표현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요셉을 친위대장의 종 된 히브리 청년이라고만 소개합니다.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그 흐릿한 기억 하나를 통로로 쓰셨습니다.

수염을 깎고 왕 앞에 선 사람

14절에는 작지만 정교한 문화적 디테일이 숨어 있습니다. 요셉이 수염을 깎고 옷을 갈아 입고 바로에게 들어갔다는 기록입니다. 애굽 사람들은 몸의 털을 밀고 지내는 것을 청결의 기준으로 삼았고, 셈족은 수염을 길렀습니다.

이 한 줄이 왜 중요할까요? 후대 사람이 상상으로 쓴 글이라면 결코 넣지 않을 세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그 시대 애굽 궁정의 예법을 정확히 알고 기록했다는 증거입니다.

16절의 요셉의 첫마디가 이 장의 심장을 이룹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라는 고백입니다. 십삼 년의 어둠을 지나 왕 앞에 선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 자기 자랑이 아니었습니다.

바로는 꿈을 푸는 능력을 가진 자를 찾았지만, 요셉은 꿈을 주신 분을 가리켰습니다. 이 차이가 그를 다른 모든 해몽가와 갈라놓습니다. 매튜 헨리는 이 대목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를 하나님이 높이신다고 풀이했습니다.

칠 년 풍년과 칠 년 흉년

아스완 근처 세헬 섬에 새겨진 이른바 기근 석비, 2006년 촬영, HoremWeb, CC BY-SA 4.0
아스완 근처 세헬 섬에 새겨진 이른바 기근 석비, 2006년 촬영, HoremWeb, CC BY-SA 4.0

25절부터 32절에서 요셉은 두 꿈이 하나의 꿈이라고 풀어 줍니다. 일곱 암소와 일곱 이삭이 각각 일곱 해를 가리키며, 앞의 일곱 해는 풍년이고 뒤의 일곱 해는 흉년입니다. 32절에서 그는 꿈이 두 번 겹친 이유까지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고 속히 행하실 것이라는 해석이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작정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선언입니다. 꿈의 반복은 확실성의 표시였던 것입니다.

위 사진은 아스완 근처 세헬 섬의 바위에 새겨진 비문입니다. 흔히 기근 석비라 불리며, 애굽에 칠 년 동안 기근이 들었다는 전승을 담고 있습니다. 비문 자체는 훨씬 후대인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 새겨졌으나, 칠 년 기근이라는 기억이 애굽 땅에 오래 남아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33절부터 36절에서 요셉은 해석에서 멈추지 않고 정책을 제안합니다. 명철한 사람을 세우고 감독관을 두어 풍년의 오분의 일을 거두어 각 성읍에 쌓아 두라는 내용입니다. 창세기 47장 24절에도 오분의 일이라는 비율이 다시 등장합니다.

신앙과 실무가 어떻게 만나는지 이 장면이 가르쳐 줍니다. 요셉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동시에 구체적인 숫자와 조직을 제시했습니다. 기도만 하고 계획을 세우지 않는 신앙도, 계획만 세우고 하나님을 묻지 않는 실무도 성경의 길은 아닙니다.

인장 반지와 세마포와 금 사슬

스카라브가 달린 고대 이집트 금 인장 반지, 루브르박물관 소장, CC BY-SA 2.0 fr
스카라브가 달린 고대 이집트 금 인장 반지, 루브르박물관 소장, CC BY-SA 2.0 fr

42절의 세 가지 하사품은 애굽의 실제 관습과 그대로 맞물립니다. 위 사진과 같은 인장 반지는 왕의 이름으로 문서를 결재할 권한을 뜻했습니다. 반지를 받은 사람은 왕의 도장을 손에 쥔 셈입니다.

세마포 옷은 애굽 상류층의 복장이었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의 이 단어는 애굽어에서 들어온 차용어로 알려져 있으며, 고운 아마포는 사제와 고위 관리의 옷감이었습니다. 노예의 옷을 입던 사람이 이제 궁정의 옷을 입습니다.

금 사슬은 더 흥미로운 디테일입니다. 애굽에는 공로를 세운 신하에게 왕이 금 목걸이를 걸어 주는 의식이 있었고, 그 장면이 여러 무덤 벽화에 그려져 있습니다. 요셉의 서임은 애굽식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성경은 이 장신구들을 하나하나 적어 두었을까요? 요셉의 지위가 애굽 법제 안에서 공식적으로 보증되었음을 밝히려는 기록입니다. 창세기 37장에서 벗겨진 채색옷이 여기서 세마포로 바뀐 셈이기도 합니다.

사브낫바네아와 온의 제사장 딸

온, 곧 헬리오폴리스에 남아 있는 오벨리스크를 담은 19세기 기록 사진, 영국도서관 소장, 이용 제한 없음
온, 곧 헬리오폴리스에 남아 있는 오벨리스크를 담은 19세기 기록 사진, 영국도서관 소장, 이용 제한 없음

45절에서 바로는 요셉에게 애굽 이름을 줍니다. 사브낫바네아라는 이름이며, 그 뜻은 학자들 사이에서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생명을 주는 자 또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그가 산다는 풀이가 제시되지만,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같은 절에서 그는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아내로 맞습니다. 온은 그리스 사람들이 헬리오폴리스, 곧 태양의 도시라 부른 곳입니다. 태양신 라를 섬기는 애굽 최대의 신전 도시였습니다.

위 사진의 오벨리스크가 그 온의 유적입니다. 중왕국 제12왕조의 왕이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늘날 카이로 북동쪽에 홀로 서 있습니다. 요셉의 아내가 자란 도시의 풍경을 눈으로 더듬어 볼 수 있는 유일한 흔적인 셈입니다.

혹시 이 결혼이 신앙적으로 위험해 보이시나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두 아들에게 애굽 신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담은 히브리 이름을 붙였고, 그 집의 신앙을 지켜 냈습니다.

바다 모래 같은 곡식 창고

일꾼과 서기관이 함께 있는 고대 이집트 곡물 창고 모형, 토리노 이집트박물관 소장, CC0
일꾼과 서기관이 함께 있는 고대 이집트 곡물 창고 모형, 토리노 이집트박물관 소장, CC0

47절부터 49절은 칠 년 풍년의 결과를 적습니다. 요셉은 곡물을 중앙 한 곳에 모으지 않고 각 성읍 주위의 밭에서 거둔 것을 그 성읍에 쌓아 두었습니다. 운송 비용과 부패를 줄이는 현명한 분산 저장이었습니다.

메케트레 무덤의 곡물 창고 모형에 놓인 서기관 상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CC0
메케트레 무덤의 곡물 창고 모형에 놓인 서기관 상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CC0

위 모형에는 창고 앞에 앉아 장부를 적는 서기관들이 등장합니다. 애굽의 곡물 행정이 문서와 기록으로 운영되던 체계였음을 보여 주는 유물입니다. 49절이 쌓아 둔 곡식을 바다 모래 같이 많아 세기를 그쳤다고 표현한 것도 이런 기록 문화를 배경으로 읽으면 더 생생합니다.

51절과 52절의 두 아들 이름에 요셉의 내면이 담겼습니다. 므낫세는 잊어버리게 하셨다는 뜻이고, 에브라임은 번성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고난을 잊게 하신 은혜와 수고한 땅에서 열매를 주신 은혜를 각각 이름에 새긴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짚고 싶습니다. 요셉이 잊은 것은 상처의 고통이지 아버지의 집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형들을 만나 울게 될 때, 잊은 줄 알았던 사랑이 그대로 살아 있었음이 드러납니다.

가나안의 기근과 열 형제의 발걸음

이집트 파이윰 일대와 바흐르 유세프 수로를 표시한 1953년 지도, 미 육군 지도국 자료를 가공, 퍼블릭 도메인
이집트 파이윰 일대와 바흐르 유세프 수로를 표시한 1953년 지도, 미 육군 지도국 자료를 가공, 퍼블릭 도메인

41장 57절은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로 끝납니다. 가나안도 예외가 아니었으니, 그 땅의 농사는 비에만 의존했기에 더 취약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가족이 애굽을 바라보게 됩니다.

위 지도에 보이는 바흐르 유세프는 나일강에서 파이윰 분지로 물을 끌어들이는 수로입니다. 아랍어로 요셉의 강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지역 전승이 이 수로를 요셉과 연결해 불러 온 이름입니다. 수로의 건설 연대는 요셉 시대보다 이르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 이름이 한 사람의 기억을 사천 년 가까이 실어 온 것은 분명합니다.

42장 1절의 야곱의 말이 재미있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느냐라고 아들들을 다그칩니다. 스무 해 전의 그 사건 때문에 아들들의 발이 묶여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4절에서 야곱은 베냐민을 보내지 않습니다.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라헬이 남긴 아들을 향한 그 조심스러운 사랑이 이십 년이 지나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알아보는 자와 알아보지 못하는 자

샤를앙투안 쿠아펠이 그린 형들에게 자신을 알리는 요셉,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CC0
샤를앙투안 쿠아펠이 그린 형들에게 자신을 알리는 요셉,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CC0

6절에서 형들이 요셉 앞에 땅에 엎드려 절합니다. 열일곱 소년이 꾸었던 꿈이 이십 년 만에 그대로 이루어진 순간입니다. 꿈을 비웃던 사람들이 그 꿈의 성취 속으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8절은 양쪽의 눈을 대조합니다.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고 적혀 있습니다. 애굽식으로 수염을 밀고 세마포를 입고 통역을 통해 말하는 총리를, 형들이 알아볼 길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왜 곧바로 자신을 밝히지 않았을까요? 형들이 정말로 변했는지 확인하려는 과정이었습니다. 특히 라헬의 또 다른 아들 베냐민을 그들이 어떻게 대하는지가 핵심이었습니다.

15절과 16절에 쓰인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라는 표현도 애굽식 관용구입니다. 왕의 생명을 걸고 하는 맹세가 애굽 문헌에 실제로 등장하니, 요셉이 애굽 관리로서 말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세부가 이렇게 들어맞습니다.

18절의 한마디는 그 가면 아래의 진심을 비칩니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라는 말입니다. 생명을 보전하라는 조치가 형벌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길이었음을 알려 줍니다.

사흘의 옥과 이십 년 묻어 둔 죄

17절에서 요셉은 형들을 사흘 동안 가둡니다. 자기가 구덩이에 던져졌던 그 경험을 형들이 아주 짧게 맛보게 한 셈입니다. 그러고는 열 명을 다 가두지 않고 한 사람만 남기는 쪽으로 조건을 완화합니다.

그 사흘이 무슨 일을 했을까요? 이십 년 동안 묻어 둔 죄를 끌어올렸습니다. 21절에서 그들은 서로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라고 말합니다.

이 고백이 참 중요합니다. 지금 겪는 어려움은 정탐꾼 혐의인데, 그들이 떠올린 것은 이십 년 전 구덩이 앞에서 외면한 동생의 애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양심을 흔드실 때 사람은 자기 인생의 진짜 죄를 기억하게 됩니다.

22절의 르우벤은 조금 다릅니다.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다며 자기를 변호하는 말투입니다. 책임을 나누기보다 자기를 먼저 변명하는 모습이 장자의 입에서 나옵니다.

24절은 참 마음이 저린 구절입니다.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말을 이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통역 뒤에서 모든 말을 듣고 있던 사람의 가슴이 터져 버린 것입니다.

왜 하필 시므온을 결박했을까요? 성경이 직접 밝히지는 않으나, 장자 르우벤 대신 그다음 형이 선택된 점은 분명합니다. 시므온은 세겜에서 칼을 들었던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돌아온 돈과 떨리는 아버지

25절에서 요셉은 곡물을 채우고 각 사람의 돈을 자루에 도로 넣게 합니다. 값을 받지 않고 양식을 준 것이니, 이것은 은혜의 선물입니다. 길 양식까지 따로 챙겨 주었습니다.

그런데 28절의 반응이 뜻밖입니다. 돈을 발견한 형제들이 혼이 나서 떨며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셨는가 하고 말합니다. 양심에 걸림이 있는 사람에게는 은혜조차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이 장면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죄를 정리하지 않은 마음은 선물을 선물로 받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호의가 두렵게 느껴진다면 먼저 돌아볼 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36절의 야곱은 지쳐 있습니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이라며 모든 일이 자기를 해롭게 한다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그의 온 가족을 살릴 길을 이미 열어 두셨습니다.

38절의 마지막 말이 다음 장으로 가는 문을 닫아 둡니다. 베냐민을 보내지 않겠다는 완강한 거절입니다. 하지만 기근은 더 깊어질 터이니, 야곱은 결국 자기가 가장 붙들고 싶었던 것을 내놓는 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 두 장을 덮으며 기억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꿈을 주신 분이시고, 그 꿈을 이십 년에 걸쳐 한 치의 오차 없이 이루신 분입니다. 스데반이 사도행전 7장에서 이 이야기를 설교한 까닭도 거기 있습니다.

묵상과 적용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말씀은 하나님의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이 년을 더 잊힌 채 지냈지만, 바로가 꿈을 꾸는 그 아침에 감옥 문이 열렸습니다. 하루 빨랐어도 안 되고 하루 늦어도 안 되는 날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기다림도 그렇습니다. 지금 응답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여러 사람의 마음과 상황을 동시에 움직이고 계십니다. 요셉이 풀려나려면 바로의 꿈도, 관원장의 기억도 함께 준비되어야 했습니다.

지금 가장 간절히 기다리는 응답이 무엇인가요? 그 기다림이 길다고 느껴지신다면 요셉의 이 년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잊힌 시간은 버려진 시간이 아닙니다.

두 번째로 높아질 때 입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왕 앞에서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라고 먼저 말했습니다. 자기 능력을 증명할 가장 좋은 기회에 자기를 지운 것입니다.

직장에서 성과를 발표할 때, 교회에서 간증할 때 우리의 첫마디가 어디를 향하는지 돌아봅시다. 사람의 칭찬은 참 달지만, 그 달콤함에 오래 머물면 다음 자리에서 반드시 넘어지기 마련입니다.

세 번째 적용은 믿음과 실력을 함께 갖추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다음 오분의 일 저장이라는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았습니다. 기도와 기획은 서로 반대말이 아닙니다.

가정 재정에도 이 원리가 그대로 통하는 법입니다. 풍년에 저축하지 않으면 흉년을 견딜 수 없으니, 수입의 일부를 미리 떼어 두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일수록 숫자에 더 정직하고 더 성실해야 합니다.

네 번째로 상처를 잊되 사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아들의 이름에 므낫세라 붙이며 고난을 잊게 하신 은혜를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형들을 보았을 때 그는 돌아서서 울었습니다. 고통은 치유되었지만 사랑은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용서는 기억 상실이 아닙니다. 그 일을 떠올려도 이제는 무너지지 않는 상태, 그리고 그 사람을 다시 품을 수 있는 상태가 용서입니다. 지금 떠올리기만 해도 아픈 사람이 있다면 그 치유를 먼저 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섯 번째 적용은 묻어 둔 죄를 꺼내라는 것입니다. 형들은 이십 년 동안 그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사흘의 옥에서 모든 것이 터져 나왔습니다. 덮어 둔 죄는 사라지지 않고 잠복할 뿐입니다.

혹시 오래 전 일인데 아직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으신가요?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리라는 생각은 사실이 아닙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은 자백하면 하나님이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신다고 약속합니다.

여섯 번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두려움으로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형들은 자루 속의 돈을 보고 떨었습니다. 죄가 정리되지 않은 마음에는 은혜마저 함정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혹시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불안해지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 불안의 뿌리를 정직하게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칭의의 은혜를 받아들인 사람만이 하나님의 선물을 선물로 누릴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은혜와 성화를 함께 붙드시기 바랍니다. 요셉이 총리가 된 것도, 형들의 양심이 깨어난 것도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일하신 결과입니다. 은혜가 먼저 임하여 칭의와 중생이 주어지면, 바로 그 순간부터 성화가 함께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합니다. 먼저 찾아오신 은혜 앞에 자기 죄를 꺼내 놓고, 그 은혜 안에서 날마다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이 한 민족을 먹였듯, 다시 오실 주님이 모든 것을 바로 세우실 그 날까지 우리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이웃을 먹이는 손이 되어야 합니다.

예화

피난민의 밥상을 차린 목사: 한경직

요셉이 창고를 열어 기근의 백성을 먹이는 장면을 읽을 때면 한국 교회의 한 목사가 떠오릅니다. 영락교회를 세운 한경직 목사입니다. 1902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난 그는 평양 숭실학교와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를 거쳐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1991년 12월 성탄 대담 때의 한경직 목사, Ransah1963, CC BY-SA 4.0
1991년 12월 성탄 대담 때의 한경직 목사, Ransah1963, CC BY-SA 4.0

해방 직후 북에서 공산 정권의 압박이 심해지자 그는 월남합니다. 1945년 12월 서울 저동의 빈 건물에서 스물일곱 명의 피난민과 함께 베다니 전도교회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영락교회의 출발이었습니다. 교회가 자리를 잡기도 전에 한국 전쟁이 터집니다.

1951년 1월 강릉 부근에서 남쪽으로 피난하는 사람들, 미 육군 촬영, 퍼블릭 도메인
1951년 1월 강릉 부근에서 남쪽으로 피난하는 사람들, 미 육군 촬영, 퍼블릭 도메인

위 사진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피난 행렬이 그 시절의 풍경입니다. 한경직 목사는 부산으로 내려가 피난민 교회를 돌보고, 전쟁이 남긴 고아와 과부와 노인을 위한 시설을 잇달아 세웠습니다. 영락보린원과 다비다모자원 같은 기관이 그 열매입니다.

그의 사역은 교회 담장 안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폐허가 된 숭실대학을 서울에서 다시 일으켜 세웠고, 전쟁으로 흩어진 신학 교육을 재건하는 일에도 손을 댔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창고를 열었듯 그는 한국 교회의 창고를 열어 이웃을 먹였습니다.

서울 영락교회 건물, 2007년 촬영, 퍼블릭 도메인
서울 영락교회 건물, 2007년 촬영, 퍼블릭 도메인

그런데 이 이야기의 정점은 1992년에 찾아옵니다. 그해 그는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을 수상했고, 상금 전액을 교회와 사회 사업에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수상 보고 예배의 강단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말을 꺼냅니다.

그가 무슨 말을 했을까요? 자신이 일제 강점기에 신사 참배를 했던 죄인이라는 공개 고백이었습니다. 아흔을 넘긴 노목사가 생애 최고의 영예를 받은 자리에서 자기 인생의 가장 부끄러운 일을 스스로 끌어냈던 것입니다.

창세기 42장의 형들은 사흘의 옥을 거쳐서야 죄를 입에 올렸습니다. 한경직 목사는 아무도 묻지 않은 자리에서 먼저 말했습니다. 은혜를 깊이 맛본 사람만이 자기 죄를 담담히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의 노년이 보여 줍니다.

백악관에서 감옥으로: 찰스 콜슨

이십 년 묻어 둔 죄가 터져 나오는 장면을 읽을 때면 또 한 사람이 떠오릅니다. 미국 백악관의 특별고문이었던 찰스 콜슨입니다. 1931년 보스턴에서 태어난 그는 해병대 장교와 변호사를 거쳐 닉슨 대통령의 측근이 되었습니다.

백악관 특별고문 시절의 찰스 콜슨, 백악관 사진, 퍼블릭 도메인
백악관 특별고문 시절의 찰스 콜슨, 백악관 사진, 퍼블릭 도메인

그는 정적을 무너뜨리는 일을 맡아 처리하던 사람입니다. 언론은 그를 백악관의 해결사라 불렀고, 그 자신도 대통령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러다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며 백악관의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1973년 여름 그는 친구인 기업인 톰 필립스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 자리에서 필립스가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를 읽어 주었고, 교만을 다룬 대목에서 콜슨은 자기 모습을 그대로 보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밤 그는 차를 길가에 세우고 한참을 울었다고 자서전에 적고 있습니다.

회심한 사람에게 가장 먼저 찾아온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법정이었습니다. 1974년 그는 검찰과의 거래로 가벼운 처분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수사 방해 혐의에 대해 스스로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그 결정으로 그는 앨라배마의 맥스웰 연방 교도소에 수감되어 일곱 달을 보냅니다. 변호사 자격도 잃고 이름도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감옥 안에서 그는 함께 갇힌 사람들의 처지를 보며 새로운 사명을 발견합니다.

출소한 이듬해인 1976년 그는 교도소 선교회를 세웠습니다. 이 단체는 그가 세상을 떠난 2012년까지 수십 개 나라로 퍼졌고, 수감자와 그 가족과 피해자를 함께 돌보는 사역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같은 해 출간된 자서전 『거듭남』은 수백만 부가 팔린 책입니다.

1993년 그는 템플턴상을 받았고, 상금 전액을 교도소 선교회에 기부했습니다. 백악관의 해결사가 감옥의 친구로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요셉의 감옥이 애굽을 먹였듯, 콜슨의 감옥은 세계의 감옥을 비추는 등불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함께 붙들고 싶습니다. 죄를 인정하는 순간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사명이 시작되는 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42장에서 입을 연 형들도 결국 아버지의 집을 살리는 사람들로 쓰임받았습니다.

기도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응답이 늦어 보이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는 믿음을 구하며, 높아지는 자리에서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라고 먼저 말하는 입술을 간구합니다. 아울러 오래 묻어 둔 죄를 오늘 꺼내어 자백하는 정직을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가정을 위해서는, 풍년에 흉년을 준비하는 지혜와 서로의 잘못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신뢰가 세워지기를 구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는, 영락교회의 그 밥상처럼 가난하고 외로운 이웃의 식탁을 차리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이 사회가 기근과 같은 어려움 속에서 서로를 밀어내지 않기를, 그리고 전쟁과 굶주림에 갇힌 열방의 이웃들에게 양식과 복음이 함께 전해지기를 간절히 아룁니다.

사람의 시간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오늘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은 요셉이 잊힌 이 년 동안에도 바로의 꿈과 관원장의 기억을 함께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저희의 기다림도 그 섭리의 손 안에 있음을 믿으며 감사의 마음으로 엎드립니다.

꿈을 주시고 그 꿈을 이루시는 주님, 열일곱 소년의 꿈을 이십 년에 걸쳐 한 치의 오차 없이 이루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희 인생의 흩어진 조각들도 주님의 손에서 하나의 그림이 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작업을 끝까지 신뢰하게 하여 주옵소서.

높이시는 주님, 저희가 서는 모든 자리에서 주님의 이름이 먼저 불리게 하여 주옵소서. 재능과 성과를 자랑하려는 마음을 꺾어 주시고,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고백이 저희의 첫마디가 되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양심을 흔드시는 주님, 저희가 덮어 둔 일들을 아시는 주님께 모두 내어 드립니다. 사흘의 옥을 통해 형들의 입을 여신 주님이시니, 저희의 굳은 입도 열어 주시고 용서를 구할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게 하여 주옵소서.

창고를 열어 백성을 먹이신 주님, 저희에게 맡기신 것으로 이웃을 먹이는 손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다시 오셔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그 날을 바라보며, 오늘은 한 사람의 밥상을 차리는 일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 모든 말씀을 저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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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런스

  1.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대한성서공회, 1998. 본문 출처: https://www.bskorea.or.kr
  2. 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Vol. 1 (Genesis to Deuteronomy), 1708–1710;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판 참조. (창 41~42장 주해)
  3. John Wesley, Explanatory Notes upon the Old Testament, Bristol: William Pine, 1765. (창세기 41~42장 주해)
  4. John Wesley, Sermon 43: 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 1765. (칭의와 성화의 동시 시작)
  5. Henry M. Morris, The Genesis Record: A Scientific and Devotional Commentary on the Book of Beginnings,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76.
  6. C. I. Scofield, ed., The Scofield Reference Bibl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09. (약속의 세대와 섭리에 관한 주)
  7. John MacArthur, ed., The MacArthur Study Bible, Nashville: Word Publishing, 1997. (창 41~42장 주)
  8. Kenneth A. Mathews, Genesis 11:27–50:26, The New American Commentary 1B, Nashville: Broadman & Holman, 2005.
  9.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95. (사브낫바네아의 어원 논의와 애굽 서임 절차)
  10. K. A. Kitchen,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2003. (애굽 궁정 예법, 금의 영예 수여, 오분의 일 세율에 관한 비교 자료)
  11. James K. Hoffmeier, Israel in Egypt: The Evidence for the Authenticity of the Exodus Tradi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요셉 기사의 애굽적 세부와 그 역사성)
  12. Miriam Lichtheim, Ancient Egyptian Literature, Vol. 3,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0. (세헬 섬 기근 석비의 번역과 연대)
  13. Alan H. Gardiner, Egypt of the Pharaohs: An Introduction, Oxford: Clarendon Press, 1961. (헬리오폴리스와 중왕국 행정 제도)
  14. 김은섭, 『한경직: 한국 교회의 영원한 스승』, 서울: 킹덤북스, 2013.
  15.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 편, 『한경직 목사 설교 전집』, 서울: 영락교회, 2009. (1992년 템플턴상 수상 보고 예배의 신사 참배 고백 기록)
  16. Charles W. Colson, Born Again, Old Tappan: Chosen Books, 1976.
  17. Charles W. Colson, Life Sentence, Lincoln: Chosen Books, 1979. (1974년 유죄 인정과 맥스웰 교도소 수감, 교도소 선교회 창립 과정)
  18. 이미지 출처(모두 위키미디어 공용에서 크기를 줄여 주소로 임베딩함): 아스완 부근 나일강 사진, Vyacheslav Argenberg, CC BY 4.0 / 카이로 라우다 섬 나일로미터 사진, Michal Huniewicz, CC BY-SA 4.0 / 메케트레 무덤의 가축 우리 모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CC0 / 세헬 섬 기근 석비 사진, HoremWeb, CC BY-SA 4.0 / 애굽 금 인장 반지, 루브르박물관, CC BY-SA 2.0 fr / 헬리오폴리스 오벨리스크 기록 사진, 영국도서관, 이용 제한 없음 / 토리노 이집트박물관의 곡물 창고 모형, CC0 / 메케트레 무덤 곡물 창고의 서기관 상, 메트로폴리탄미술관, CC0 / 파이윰과 바흐르 유세프 지도, 미 육군 지도국 자료 가공, 퍼블릭 도메인 / 쿠아펠의 형들에게 자신을 알리는 요셉, 메트로폴리탄미술관, CC0 / 한경직 목사 사진, Ransah1963, CC BY-SA 4.0 / 1951년 피난 행렬 사진, 미 육군, 퍼블릭 도메인 / 서울 영락교회 사진, 퍼블릭 도메인 / 찰스 콜슨 사진, 백악관, 퍼블릭 도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