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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차 (창세기 38장 ~ 창세기 40장)

아둘람 유적 아래로 펼쳐진 엘라 골짜기, 2014년 12월 촬영, Davidbena, CC BY-SA 3.0

아둘람 유적 아래로 펼쳐진 엘라 골짜기, 2014년 12월 촬영, Davidbena, CC BY-SA 3.0

25일차 (창세기 38장 ~ 창세기 40장)

본문

창세기 38장

  1.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2.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3.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의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4.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
  5. 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
  6.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은 다말이더라
  7.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8.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9.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10.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11.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의 아버지 집에 있으니라
  12.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그의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의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더니
  13. 어떤 사람이 다말에게 말하되 네 시아버지가 자기의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
  14.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음이라
  15. 그가 얼굴을 가리었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16.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이르되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17. 유다가 이르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담보물을 주겠느냐
  18. 유다가 이르되 무슨 담보물을 네게 주랴 그가 이르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더라
  19. 그가 일어나 떠나가서 그 너울을 벗고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으니라
  20. 유다가 그 친구 아둘람 사람의 손에 부탁하여 염소 새끼를 보내고 그 여인의 손에서 담보물을 찾으려 하였으나 그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지라
  21. 그가 그 곳 사람에게 물어 이르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창녀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기는 창녀가 없느니라
  22. 그가 유다에게로 돌아와 이르되 내가 그를 찾지 못하였고 그 곳 사람도 이르기를 거기에는 창녀가 없다 하더이다 하더라
  23. 유다가 이르되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내가 이 염소 새끼를 보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
  24. 석 달쯤 후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일러 말하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유다가 이르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25. 여인이 끌려나갈 때에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한지라
  26.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27. 해산할 때에 보니 쌍태라
  28. 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색 실을 가져다가 그 손에 매었더니
  29.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의 아우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30. 그의 형 곧 손에 홍색 실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의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

창세기 39장

  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13.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16. 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19.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창세기 40장

  1.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2.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3.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4.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5.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
  6.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7.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9. 술 맡은 관원장이 그의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10.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11.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12.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13.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키리니 당신이 그 전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드리게 되리이다
  14.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5.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16.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좋은 것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17. 맨 윗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18. 요셉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19.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 하더니
  20. 제삼일은 바로의 생일이라 바로가 그의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그의 신하들 중에 머리를 들게 하니라
  21.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22.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23.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본문 해설

두 사람의 내려감: 유다와 요셉

오늘 본문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내려가는 이야기입니다. 유다는 스스로 형제들을 떠나 아둘람으로 내려가 가나안 사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고, 요셉은 노예로 팔려 애굽으로 끌려 내려갑니다. 한 사람은 제 발로 내려갔고 다른 한 사람은 사슬에 묶여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끌려 내려간 사람을 두고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라는 말을 네 번이나 되풀이합니다.

왜 요셉 이야기 한복판에 갑자기 유다의 이야기가 끼어드는 걸까요? 이 두 장면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게 하려는 배치입니다. 매튜 헨리도 그의 주석에서 38장이 39장의 거룩함을 더욱 환히 드러내는 어두운 배경이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창세기 38장은 유다 지파의 혈통이 어떻게 보존되었는가를 적은 장입니다. 39장은 보디발의 집에서 벌어진 유혹과 거절을, 40장은 감옥에서 두 관원장의 꿈을 푸는 장면을 담습니다. 세 장을 이어 읽으면 인간의 추함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같은 종이 위에 포개어져 있습니다.

아둘람과 딤나: 셰펠라의 길목

텔 아둘람 유적의 모습, Bukvoed 촬영, CC BY 4.0
텔 아둘람 유적의 모습, Bukvoed 촬영, CC BY 4.0

1절의 아둘람은 유다 산지와 해안 평야 사이에 놓인 셰펠라, 곧 낮은 산지의 성읍입니다. 위 사진이 그 유적인 텔 아둘람이며, 대표 사진에 보이는 엘라 골짜기가 바로 그 아래로 흐릅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숨은 아둘람 굴이 사무엘상 22장 1절에 나오는데, 같은 지역을 가리킵니다.

유다는 헤브론의 아버지 집을 떠나 이 길목으로 내려갔습니다. 가나안 상인들이 오가는 활기찬 교역로였으니, 돈과 사람이 모이는 자리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이것이 왜 문제가 되었을까요? 아브라함과 이삭이 아들의 혼처를 두고 그토록 애를 쓴 이유를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가나안의 신들과 섞이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는데, 유다는 그 울타리를 아주 가볍게 넘어섰습니다.

12절의 딤나는 셰펠라의 또 다른 성읍이며, 양털 깎는 때에 사람들이 모여 잔치를 벌이는 곳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양털 깎기는 한 해의 수입을 정산하는 축제였고, 포도주가 넉넉히 돌았습니다. 아내를 잃고 위로를 받은 유다가 그 자리로 올라가는 장면입니다.

엘과 오난, 그리고 멈춰 버린 약속

7절과 10절은 짧고 무섭습니다.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죽고, 둘째 오난도 같은 이유로 죽습니다. 성경은 엘의 죄가 무엇이었는지 밝히지 않지만, 오난의 죄는 분명히 적어 두었습니다.

오난이 한 일의 핵심은 생물학적 행위가 아닙니다. 형의 이름을 땅에서 끊어 버리려는 계산이 문제였습니다. 형에게 아들이 생기면 유산이 그 아이에게 가니, 자기 몫을 지키려고 형수를 이용만 한 것입니다.

8절에 나오는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은 뒷날 신명기 25장 5절에서 율법으로 명문화됩니다. 학자들은 이를 라틴어 레비르에서 온 말로 수혼제라 부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죽은 형의 이름을 잇기 위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는 제도입니다.

이 관습이 족장 시대에 실제로 있었다는 증거가 있을까요? 있습니다. 히타이트 법전과 중기 아시리아 법전에도 비슷한 조항이 남아 있으니, 창세기 38장의 배경은 그 시대의 실제 사회 제도였던 것입니다.

11절에서 유다는 다말을 친정으로 보냅니다. 겉으로는 셀라가 장성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이었지만, 속은 달랐습니다. 셀라도 죽을까 염려함이라는 구절이 그의 진심을 드러냅니다.

도장과 끈과 지팡이

이집트 제12왕조 세누스레트 3세의 이름이 새겨진 원통 인장,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CC0
이집트 제12왕조 세누스레트 3세의 이름이 새겨진 원통 인장,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CC0

18절에서 다말이 요구한 담보물을 보십시오.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 세 가지입니다. 위 사진과 같은 원통 인장은 고대 근동에서 널리 쓰였고, 끈에 매어 목에 걸거나 손목에 차고 다녔습니다.

이 세 가지가 어느 정도의 물건이었을까요? 오늘로 옮기면 신분증과 도장과 서명이 한꺼번에 담긴 물건입니다. 다말은 염소 새끼 한 마리 대신 유다라는 사람 자체를 쥐고 있었던 셈입니다.

14절의 너울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중기 아시리아 법전은 오히려 창녀가 너울을 쓰지 못하게 금했으니, 너울은 점잖은 여인의 표지였습니다. 다말은 얼굴을 가려 자기를 숨긴 것이지 창녀의 복장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21절과 22절에서 히라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합니다. 그 곳 사람들은 여기는 창녀가 없다고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다말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23절의 유다의 말이 그의 속을 다 보여 줍니다.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하며 담보물 찾는 일을 접습니다. 사람의 눈에 들통나는 것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여기 있습니다.

유다의 고백과 자기 인정

오라스 베르네가 1840년에 그린 유다와 다말, 퍼블릭 도메인
오라스 베르네가 1840년에 그린 유다와 다말, 퍼블릭 도메인

24절에서 유다의 반응은 번개처럼 빠릅니다. 며느리가 행음했다는 보고를 듣고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고 명합니다. 자기 죄는 덮으면서 남의 죄에는 불을 지르라고 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25절에서 다말이 담보물 세 가지를 내놓습니다.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라는 한마디였습니다. 변명할 틈이 없었습니다.

26절의 고백이 이 장의 정점입니다. 유다가 그는 나보다 옳도다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어로는 그가 나보다 의롭다는 뜻이며, 자기 잘못을 공개 석상에서 먼저 인정한 말입니다.

이 고백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이 사람이 창세기 44장에서 베냐민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 사람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죄를 인정한 자리에서 변화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유다의 생애가 증언합니다.

베레스와 세라: 홍색 실의 혈통

27절부터 30절의 쌍둥이 출산 장면은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를 떠오르게 합니다. 먼저 손을 내민 아이에게 산파가 홍색 실을 매었는데, 정작 먼저 태어난 아이는 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터뜨리고 나왔다는 뜻의 베레스가 되었습니다.

이 이름을 왜 기억해야 할까요? 룻기 4장 18절부터 22절이 그 답을 줍니다. 베레스에서 보아스가, 보아스에서 오벳과 이새와 다윗 왕이 나왔습니다.

더 놀라운 일이 신약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 3절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유다와 다말의 이름을 그대로 적어 넣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지우고 싶어 할 이야기를 지우지 않으시고, 바로 그 자리를 통해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창세기 49장 10절의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리니라는 약속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유다 지파의 왕권은 이렇게 아슬아슬한 길을 통과해 보존되었습니다. 인간의 추함이 하나님의 계획을 꺾지 못했던 것입니다.

애굽으로 내려간 소년과 친위대장의 집

아스완 부근을 흐르는 나일강, Vyacheslav Argenberg 촬영, CC BY 4.0
아스완 부근을 흐르는 나일강, Vyacheslav Argenberg 촬영, CC BY 4.0

39장 1절은 요셉이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렸다고 밝힙니다. 친위대장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사르 하타바힘이며, 직역하면 도살하는 자들의 우두머리입니다. 왕의 호위와 처형을 함께 맡은 고위직으로 이해됩니다.

메케트레 무덤에서 나온 고대 이집트 도살장 모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CC0
메케트레 무덤에서 나온 고대 이집트 도살장 모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CC0

위 모형은 애굽 중왕국 시대 무덤에서 나온 도살장 모형입니다. 왕실 살림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보여 주는 유물이며, 보디발이라는 직책의 세계를 짐작하게 해 줍니다. 나일강이 범람으로 길러 낸 풍요가 이 모든 조직을 떠받쳤습니다.

4절의 가정 총무는 애굽 문헌에 나오는 집의 감독이라는 직책에 해당합니다. 무덤 벽화와 파피루스에 이 직책을 가진 사람들이 실제로 등장하며, 재산 목록과 곡물 창고와 일꾼을 관리했습니다. 열일곱에 팔려 온 외국인 노예가 그 자리까지 올라갔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요셉이 내려간 애굽의 시대 배경

요셉이 애굽에 내려간 시기는 성경의 연대를 문자 그대로 따라 계산할 때 주전 십구 세기 말에서 십팔 세기 초로 셈해집니다. 애굽사로 보면 중왕국 제12왕조의 끝자락에서 제2중간기로 넘어가는 즈음입니다. 당시 애굽은 통일 왕국의 틀을 갖추고 나일강의 범람을 기준으로 농사와 세금을 운영했습니다.

이 시기에 가나안 쪽 셈족이 애굽으로 꾸준히 흘러 들어온 사실이 문헌과 유물로 확인됩니다. 나일 삼각주 동부의 텔 엘다바 발굴에서 셈족 계열 주민의 묘와 토기가 다량 나왔습니다. 외국인 노예와 관리가 왕실 가문에 섞여 있던 사회였던 셈입니다.

그러면 외국인 노예가 집안을 총괄하는 일이 실제로 가능했을까요? 가능했습니다. 애굽 문헌에는 아시아계 출신이 왕실 관직에 오른 사례가 남아 있으니, 요셉의 승진은 그 시대의 틀 안에서 충분히 설명됩니다.

이런 배경을 알고 읽으면 본문의 세부가 훨씬 또렷해집니다. 친위대장의 집, 집의 감독이라는 직책, 왕의 죄수를 가두는 별도의 옥이 모두 애굽 행정의 실제 모습과 맞아떨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이 꾸며 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 이렇게 조용히 드러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39장은 같은 문구를 네 번 되풀이합니다. 2절과 3절과 21절과 23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라는 말이 박혀 있습니다. 성경이 이렇게 반복할 때는 그것이 이 장의 중심 주제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짚어야 합니다. 함께 계신다는 말이 상황이 좋아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요셉은 함께 계신 하나님과 함께 노예가 되었고, 함께 계신 하나님과 함께 감옥에 갇혔습니다.

2절의 형통한 자라는 표현도 오해하기 쉽습니다. 히브리어 차라흐는 하는 일이 열매를 맺는다는 뜻이며, 돈이 쌓이거나 형편이 펴진다는 말과 똑같지는 않습니다. 노예의 신분에서도 맡겨진 일마다 열매가 맺혔다는 의미입니다.

21절에는 더 따뜻한 단어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셨다고 적혀 있습니다. 여기 인자로 옮긴 히브리어 헤세드는 언약에 근거한 변함없는 사랑을 가리킵니다.

보디발의 아내와 아홉 절의 거절

7절부터 10절의 장면을 차분히 들여다봅시다. 주인의 아내가 눈짓하며 동침을 청했고,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라고 10절은 적습니다. 하루의 유혹이 아니라 날마다 이어진 압박이었습니다.

요셉의 거절에는 세 가지 이유가 담겼습니다. 주인이 모든 것을 맡겨 준 신뢰, 그 여인이 주인의 아내라는 사실, 그리고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이라는 자각입니다. 세 번째 이유가 그의 마지막 방어선이었습니다.

9절의 한마디를 소리 내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는 고백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집에서 그가 떠올린 분은 보디발이 아니라 하나님이었습니다.

요셉은 왜 끝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요? 사람의 눈을 의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 앞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다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염려한 것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10절 후반부의 지혜도 배울 만합니다. 동침하지 않은 것에서 멈추지 않고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라고 적혀 있습니다. 유혹은 이기는 것보다 자리를 피하는 것이 먼저라는 가르침입니다.

옷을 버려두고 밖으로 나간 사람

12절에서 상황이 터집니다. 여인이 옷을 붙잡자 요셉은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갑니다. 옷은 그 시대에 신분과 재산의 증표였으니, 적지 않은 것을 포기한 행동입니다.

요셉의 인생에서 옷이 두 번 벗겨진 사실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형들이 벗긴 채색옷과 보디발의 아내의 손에 남은 겉옷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41장 42절에서 하나님은 그에게 세마포 옷과 금 사슬을 입혀 주십니다.

14절과 17절의 거짓 고발에는 독이 묻어 있습니다. 그 여인은 요셉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히브리 사람과 히브리 종이라고만 말합니다. 민족을 들먹여 남편의 분노를 끌어내려는 말투였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애굽에도 비슷한 이야기 틀이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신왕국 시대의 두 형제 이야기 파피루스에 형수의 유혹과 거짓 고발 모티프가 등장합니다. 일부 학자는 이를 차용의 증거라 주장하지만 우리는 그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던 사회였음을 보여 주는 자료일 뿐입니다.

20절에서 요셉은 옥에 갇힙니다. 그 옥이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다는 설명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보디발이 사형을 명하지 않은 것도, 요셉이 왕궁의 관원들과 같은 공간에 갇힌 것도 모두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포도나무 세 가지와 떡 세 광주리

테베 나흐트 무덤 벽화의 포도 수확과 새 사냥 장면, 퍼블릭 도메인
테베 나흐트 무덤 벽화의 포도 수확과 새 사냥 장면, 퍼블릭 도메인

40장은 두 관원장의 꿈으로 열립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애굽 궁정에서 왕의 잔을 책임지는 자리였고, 왕의 생명을 지키는 측근이었습니다. 위 벽화처럼 애굽에는 포도를 재배하고 포도주를 담그는 전통이 깊이 뿌리내려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빵 굽는 장면을 재현한 모형, 오스트리아 파네움 빵 박물관, Wolfgang Sauber 촬영, CC0
고대 이집트의 빵 굽는 장면을 재현한 모형, 오스트리아 파네움 빵 박물관, Wolfgang Sauber 촬영, CC0

떡 굽는 관원장의 자리도 가볍지 않았습니다. 위 모형이 보여 주듯 애굽의 제빵은 수십 가지 모양과 맛으로 분화된 기술이었습니다. 왕의 식탁을 책임지는 두 사람이 한 감옥에 함께 있었던 셈입니다.

6절과 7절의 요셉을 보십시오. 자기도 억울하게 갇힌 처지인데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를 알아보고 먼저 말을 건넵니다. 자기 상처에만 갇혀 있지 않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8절의 대답이 요셉 신앙의 뼈대입니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라고 그는 되묻습니다. 애굽의 해몽가들이 전문 기술로 먹고살던 나라에서, 이 청년은 자기 재능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13절과 19절에 쓰인 머리를 들고라는 표현이 참 묘합니다. 같은 말이 한 사람에게는 복직을, 다른 사람에게는 나무에 달림을 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갈리는지 보여 주는 언어입니다.

잊혀진 이름과 이 년의 침묵

20절의 제삼일은 바로의 생일이었습니다. 고대 근동의 왕들이 즉위 기념일이나 생일에 사면을 베푸는 관행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요셉의 해석은 사흘 만에 글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14절에서 요셉이 부탁한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이 집에서 건져 달라는 말이었습니다. 삼 년 가까이 갇혀 있던 사람이 처음으로 사람의 손을 붙잡으려 한 순간입니다.

그런데 23절이 차갑게 끝납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는 한 줄입니다. 창세기 41장 1절은 그 뒤로 만 이 년이 더 흘렀다고 알려 줍니다.

이 이 년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사람에게 잊힌 시간이지만 하나님께는 때를 맞추시는 시간이었습니다. 바로가 꿈을 꾸기 바로 전에 요셉이 풀려났다면, 그는 그저 집으로 돌아간 한 노예로 남았을 것입니다.

웨슬리는 『구약성서 주해』에서 이 대목을 두고 사람의 망각이 하나님의 기억을 지우지 못한다고 풀이했습니다. 요셉은 잊혔지만 버려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응답이 늦어 보이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시간표를 신뢰할 수 있습니다.

묵상과 적용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말씀은 내려가는 방향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유다는 아무도 그를 쫓지 않았는데 스스로 형제들을 떠나 아둘람으로 내려갔습니다. 신앙의 추락은 대개 큰 사건이 아니라 작은 이동에서 시작됩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이동이 있습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조금 멀어지고, 함께 기도하던 사람들과 조금 멀어지고, 그러다 가치관이 다른 세계에 자리를 잡습니다. 유다에게는 그 길목이 아둘람과 딤나였습니다.

지금 내 발이 어디로 향하고 있나요? 한 주간의 시간표를 펼쳐 보면 금방 답이 나옵니다. 어디에 가장 많은 시간을 두는지가 곧 내가 내려가고 있는 방향입니다.

두 번째로 자기 죄를 먼저 말하는 용기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유다는 며느리에게 불을 지르라고 명할 만큼 단호했지만, 증거를 보고는 그는 나보다 옳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한마디가 그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가정과 교회에서 가장 어려운 말이 이 말입니다. 내가 잘못했다는 말, 그 사람이 나보다 옳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인정하지 않은 죄는 반드시 다른 자리에서 다시 터지기 마련입니다.

세 번째 적용은 유혹의 자리를 아예 피하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거절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함께 있지도 아니하였습니다. 이기려고 버티기보다 자리를 옮기는 쪽이 훨씬 지혜롭습니다.

구체적으로 적용해 보십시오. 늦은 밤 혼자 보는 화면, 둘만 남는 약속, 선을 넘는 대화방이 그 자리입니다. 요셉처럼 옷을 두고 나오는 손해를 각오해야 지킬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네 번째로 하나님의 눈 앞에서 사는 훈련을 하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집에 아무도 없을 때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의 눈이 없는 자리에서 드러나는 것이 그 사람의 실체입니다.

유다와 요셉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유다는 사람들에게 들킬 부끄러움을 염려했고, 요셉은 하나님께 범할 죄를 두려워했습니다. 두려움의 대상이 삶의 수준을 결정합니다.

다섯 번째 적용은 억울한 자리에서도 맡은 일을 해내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노예의 자리에서 집을 관리했고, 감옥에서 죄수들의 일을 처리했습니다. 그는 자기 처지를 이유로 일을 놓지 않았습니다.

직장에서 공로를 가로채인 분, 가정에서 수고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손을 놓으면 상황은 그대로이고 나만 더 작아집니다. 하나님이 그 자리에서 맺히는 열매를 보고 계십니다.

여섯 번째로 잊힌 시간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잊었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 년이 없었다면 바로의 꿈과 요셉의 등용은 서로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이 늦다고 느끼는 분들께 이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늦으신 적이 없고, 다만 우리보다 더 큰 그림을 보고 계실 뿐입니다. 시편 40편 1절의 참고 기다렸다는 고백이 그 자리에서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은혜와 성화를 함께 붙드시기 바랍니다. 유다의 족보에서 메시아가 나온 것은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은혜가 먼저 임하여 칭의와 중생이 주어지면, 바로 그 순간부터 성화가 함께 시작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의 정결함도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함께 계신 하나님이 그를 붙드셨기 때문에 그가 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화의 길 끝에서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뵙게 될 터이니, 요한일서 3장 3절의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소망을 오늘도 붙들어 봅시다.

예화

감옥에서 쓴 책: 존 번연

억울하게 갇힌 요셉의 이야기를 읽을 때면 영국 베드퍼드의 한 감옥이 떠오릅니다.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의 감옥입니다. 1628년 베드퍼드셔의 엘스토우에서 땜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토머스 새들러가 1684년에 그린 존 번연의 초상, 퍼블릭 도메인
토머스 새들러가 1684년에 그린 존 번연의 초상, 퍼블릭 도메인

청년 시절 그는 내전에 병사로 참여했고, 돌아와 결혼한 뒤 아내가 가져온 두 권의 신앙 서적을 읽으며 심한 영적 고투를 겪었습니다. 그 기록은 뒷날 『넘치는 은혜』라는 자서전에 남아 있습니다. 회심한 뒤 그는 베드퍼드의 작은 교회에서 설교를 시작했고, 글을 모르는 사람들도 알아듣는 비유로 유명해졌습니다.

그를 가로막은 것은 당시의 법입니다. 1660년 왕정이 복고된 영국에서는 국교회의 허가를 받지 않은 집회가 금지되었습니다. 1660년 11월 번연은 설교 중에 체포되었고, 설교를 그만두겠다고 약속하면 풀어 주겠다는 제안을 받습니다.

그가 어떻게 답했을까요? 오늘 풀려나도 내일 다시 말씀을 전할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열두 해 동안 베드퍼드 감옥에 갇혔습니다.

존 번연이 목회했던 베드퍼드의 번연 미팅 교회, RichTea 촬영, CC BY-SA 2.0
존 번연이 목회했던 베드퍼드의 번연 미팅 교회, RichTea 촬영, CC BY-SA 2.0

그 열두 해가 가장 힘들었던 이유는 가족 때문입니다. 맹인으로 태어난 큰딸 메리를 두고 그는 자기 뼈에서 살점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고 적었습니다. 감옥 안에서 그는 구두끈을 꼬아 팔아 가족의 생계를 조금이나마 도왔다고 전해집니다.

바로 그 감옥에서 『천로역정』이 쓰였습니다. 1678년에 출간된 이 책은 영어권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으로 꼽히고, 이백 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어 지금도 읽힙니다. 요셉의 감옥이 애굽을 살리는 통로가 되었듯, 번연의 감옥이 수백 년의 교회를 먹인 식탁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하나님은 갇힌 자리를 쓰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는 자리가 하나님께는 가장 좋은 작업실일 수 있습니다.

주일에 트랙에 서지 않은 사람: 에릭 리델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한 거절을 읽을 때면 1924년 파리의 한 육상 선수가 떠오릅니다. 스코틀랜드의 에릭 리델입니다. 1902년 중국 톈진에서 선교사 부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에든버러 대학 시절 영국에서 가장 빠른 단거리 선수로 꼽혔습니다.

1924년 7월 런던 스탬퍼드 브리지 경기에 출전한 에릭 리델, 퍼블릭 도메인
1924년 7월 런던 스탬퍼드 브리지 경기에 출전한 에릭 리델, 퍼블릭 도메인

파리 올림픽의 주 종목은 그의 100미터였습니다. 그런데 일정표가 나오자 100미터 예선이 주일에 배정된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는 주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날로 지켜 왔기에 출전을 포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가 받은 압박이 어느 정도였을까요? 영국 올림픽 위원회와 언론이 그를 설득하고 비난했으며, 나라를 배신한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그래도 그는 양심을 꺾지 않습니다.

1924년 파리 올림픽 400미터 결승에서 1위로 들어오는 에릭 리델, 르 미루아 데 스포르 수록 사진, 퍼블릭 도메인
1924년 파리 올림픽 400미터 결승에서 1위로 들어오는 에릭 리델, 르 미루아 데 스포르 수록 사진, 퍼블릭 도메인

대신 그는 자기 종목이 아닌 400미터에 나섰습니다. 1924년 7월 11일 결승에서 그는 처음부터 전력으로 뛰어나가 47초 6이라는 세계 기록으로 금메달을 땄습니다. 위 사진이 바로 그 결승선의 장면입니다.

이야기의 진짜 무게는 그 다음에 있습니다. 올림픽이 끝난 이듬해 그는 스물세 살에 중국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톈진과 샤오창에서 교사와 전도자로 이십 년을 보냈고, 전쟁이 닥쳐도 중국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1943년 그는 일본군에 의해 산둥의 웨이팡 수용소에 수감됩니다. 수용소 안에서 그는 아이들에게 과학과 성경을 가르치고, 환자를 돌보고, 다투는 사람들을 화해시켰습니다. 함께 갇혀 있던 사람들은 그를 수용소에서 가장 요긴한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1945년 2월 21일 그는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해방을 다섯 달 앞둔 때였고,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완전한 항복이라는 뜻의 짧은 문장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주일 하루를 지키려고 금메달의 종목을 포기한 청년이, 끝내 자기 생애 전부를 드리는 자리까지 걸어간 것입니다.

요셉도 그랬습니다. 하루의 쾌락을 거절한 그 손이 결국 한 민족을 먹이는 손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지키는 작은 거절 하나가 먼 훗날 어떤 열매로 돌아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기도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스스로 내려가는 발걸음을 돌이킬 분별을 구하며,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눈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아울러 내 잘못을 먼저 말하는 용기와 유혹의 자리를 피하는 결단을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가정을 위해서는, 부모의 이중성이 자녀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말과 삶이 하나 되는 집이 되기를 구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는, 서로의 죄를 덮어 주되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분별 있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이 사회가 사람을 쾌락의 수단으로 삼는 흐름에서 돌아서기를, 그리고 억울하게 갇힌 열방의 성도들이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동행을 경험하기를 간절히 아룁니다.

억울한 자리에까지 함께 내려가 주시는 하나님, 오늘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은 요셉이 노예가 되었을 때에도,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그와 함께 계셨습니다. 형편이 좋아지는 것이 함께 계심의 증거가 아님을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유다의 족보에서 메시아를 보내신 주님, 저희의 부끄러운 이야기도 주님의 손 안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지우고 싶은 과거를 지우지 않으시고 그 자리를 통해 구원을 이루시는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희의 어두운 밤도 주님의 계획 안에서 쓰임받게 하여 주옵소서.

거룩하신 주님, 날마다 밀려오는 유혹 앞에서 저희를 지켜 주옵소서. 요셉처럼 하나님께 죄를 지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입술을 주시고, 옷을 두고라도 그 자리를 떠나는 발을 주시기 바랍니다. 어두운 밤에 혼자 켜 든 화면 앞에서도 주님을 기억하게 하여 주옵소서.

사람에게 잊힌 자리를 기억하시는 주님, 응답이 늦어 보이는 성도들을 붙들어 주옵소서. 이 년의 침묵 끝에 요셉을 왕 앞에 세우신 주님이시니, 저희의 기다림에도 반드시 때가 있음을 믿게 하여 주옵소서.

잊히신 적 없는 주 예수님, 주님도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거짓으로 고발당하셨음을 기억합니다. 요셉의 감옥과 번연의 감옥 위에 주님의 십자가가 있음을 고백하며, 저희도 오늘 맡겨진 자리에서 손을 놓지 않겠습니다. 이 모든 말씀을 저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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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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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John Wesley, Explanatory Notes upon the Old Testament, Bristol: William Pine, 1765. (창세기 38~40장 주해)
  4. John Wesley, Sermon 43: 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 1765. (칭의와 성화의 동시 시작)
  5. Henry M. Morris, The Genesis Record: A Scientific and Devotional Commentary on the Book of Beginnings,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76.
  6. C. I. Scofield, ed., The Scofield Reference Bibl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09. (유다 지파의 왕권 약속에 관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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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K. A. Kitchen,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2003. (족장 시대 사회 제도와 애굽 궁정 직제의 대조)
  11. Martha T. Roth, Law Collections from Mesopotamia and Asia Minor, 2nd ed., Atlanta: Scholars Press, 1997. (히타이트 법전과 중기 아시리아 법전의 수혼·너울 관련 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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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Manfred Bietak, Avaris: The Capital of the Hyksos — Recent Excavations at Tell el-Dab’a, London: British Museum Press, 1996. (나일 삼각주 동부의 셈족 계열 주민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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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John Brown, John Bunyan: His Life, Times and Work, London: Hulbert Publishing, 1885. (1660년 체포와 베드퍼드 감옥의 열두 해에 관한 사료 정리)
  17. David McCasland, Eric Liddell: Pure Gold, Grand Rapids: Discovery House, 2001.
  18. Duncan Hamilton, For the Glory: The Untold and Inspiring Story of Eric Liddell, London: Doubleday, 2016. (1924년 파리 올림픽과 웨이팡 수용소 기록)
  19. 이미지 출처(모두 위키미디어 공용에서 크기를 줄여 주소로 임베딩함): 아둘람 아래 엘라 골짜기 사진, Davidbena, CC BY-SA 3.0 / 텔 아둘람 유적 사진, Bukvoed, CC BY 4.0 / 세누스레트 3세 원통 인장, 메트로폴리탄미술관, CC0 / 오라스 베르네의 유다와 다말, 퍼블릭 도메인 / 아스완 부근 나일강 사진, Vyacheslav Argenberg, CC BY 4.0 / 메케트레 무덤의 도살장 모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CC0 / 나흐트 무덤 벽화, 퍼블릭 도메인 / 파네움 빵 박물관의 애굽 제빵 모형, Wolfgang Sauber, CC0 / 토머스 새들러의 존 번연 초상, 퍼블릭 도메인 / 베드퍼드 번연 미팅 교회 사진, RichTea, CC BY-SA 2.0 / 1924년 에릭 리델 사진, 퍼블릭 도메인 / 1924년 400미터 결승 사진, 르 미루아 데 스포르, 퍼블릭 도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