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차 (창세기 35장 ~ 창세기 37장)
남쪽에서 바라본 벧엘, 곧 오늘날의 베이틴 일대 전경, 오리건주립대 특별소장자료, 이용 제한 없음
본문
창세기 35장
-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 그들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 이스라엘이 다시 길을 떠나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쳤더라
-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 레아의 아들들은 야곱의 장자 르우벤과 그 다음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이요
- 라헬의 아들들은 요셉과 베냐민이며
- 라헬의 여종 빌하의 아들들은 단과 납달리요
- 레아의 여종 실바의 아들들은 갓과 아셀이니 이들은 야곱의 아들들이요 밧단아람에서 그에게 낳은 자더라
-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하던 헤브론이더라
- 이삭의 나이가 백팔십 세라
-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창세기 36장
- 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 에서가 가나안 여인 중 헷 족속 엘론의 딸 아다와 히위 족속 시브온의 딸인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를 자기 아내로 맞이하고
- 또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을 맞이하였더니
- 아다는 엘리바스를 에서에게 낳았고 바스맛은 르우엘을 낳았고
- 오홀리바마는 여우스와 얄람과 고라를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들들이요 가나안 땅에서 그에게 태어난 자들이더라
-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모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
-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니라
- 세일 산에 있는 에돔 족속의 조상 에서의 족보는 이러하고
- 그 자손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에서의 아내 아다의 아들은 엘리바스요 에서의 아내 바스맛의 아들은 르우엘이며
- 엘리바스의 아들들은 데만과 오말과 스보와 가담과 그나스요
-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의 자손이며
- 르우엘의 아들들은 나핫과 세라와 삼마와 미사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바스맛의 자손이며
- 시브온의 손녀 아나의 딸 에서의 아내 오홀리바마의 아들들은 이러하니 그가 여우스와 얄람과 고라를 에서에게 낳았더라
- 에서 자손 중 족장은 이러하니라 에서의 장자 엘리바스의 자손으로는 데만 족장, 오말 족장, 스보 족장, 그나스 족장과
- 고라 족장, 가담 족장, 아말렉 족장이니 이들은 에돔 땅에 있는 엘리바스의 족장들이요 이들은 아다의 자손이며
- 에서의 아들 르우엘의 자손으로는 나핫 족장, 세라 족장, 삼마 족장, 미사 족장이니 이들은 에돔 땅에 있는 르우엘의 족장들이요 이들은 에서의 아내 바스맛의 자손이며
- 에서의 아내인 오홀리바마의 아들들은 여우스 족장, 얄람 족장, 고라 족장이니 이들은 아나의 딸이요 에서의 아내인 오홀리바마로 말미암아 나온 족장들이라
- 에서 곧 에돔의 자손으로서 족장 된 자들이 이러하였더라
- 그 땅의 주민 호리 족속 세일의 자손은 로단과 소발과 시브온과 아나와
- 디손과 에셀과 디산이니 이들은 에돔 땅에 있는 세일의 자손 중 호리 족속의 족장들이요
- 로단의 자녀는 호리와 헤맘과 로단의 누이 딤나요
- 소발의 자녀는 알완과 마나핫과 에발과 스보와 오남이요
- 시브온의 자녀는 아야와 아나며 이 아나는 그 아버지 시브온의 나귀를 칠 때에 광야에서 온천을 발견하였고
- 아나의 자녀는 디손과 오홀리바마니 오홀리바마는 아나의 딸이며
- 디손의 자녀는 헴단과 에스반과 이드란과 그란이요
- 에셀의 자녀는 빌한과 사아완과 아간이요
- 디산의 자녀는 우스와 아란이니
- 호리 족속의 족장들은 곧 로단 족장, 소발 족장, 시브온 족장, 아나 족장,
- 디손 족장, 에셀 족장, 디산 족장이라 이들은 그들의 족속들에 따라 세일 땅에 있는 호리 족속의 족장들이었더라
-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리던 왕들은 이러하니라
- 브올의 아들 벨라가 에돔의 왕이 되었으니 그 도성의 이름은 딘하바며
- 벨라가 죽고 보스라 사람 세라의 아들 요밥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고
- 요밥이 죽고 데만 족속의 땅의 후삼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고
- 후삼이 죽고 브닷의 아들 곧 모압 들에서 미디안 족속을 친 하닷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으니 그 도성 이름은 아윗이며
- 하닷이 죽고 마스레가의 삼라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고
- 삼라가 죽고 유브라데 강변 르호봇의 사울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고
- 사울이 죽고 악볼의 아들 바알하난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고
- 악볼의 아들 바알하난이 죽고 하달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으니 그 도성 이름은 바우며 그의 아내의 이름은 므헤다벨이니 마드렛의 딸이요 메사합의 손녀더라
- 에서에게서 나온 족장들의 이름은 그 종족과 거처와 이름을 따라 나누면 이러하니 딤나 족장, 알와 족장, 여뎃 족장,
- 오홀리바마 족장, 엘라 족장, 비논 족장,
- 그나스 족장, 데만 족장, 밉살 족장,
- 막디엘 족장, 이람 족장이라 이들은 그 구역과 거처를 따른 에돔 족장들이며 에돔 족속의 조상은 에서더라
창세기 37장
-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
-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 그가 이르되 내가 내 형들을 찾으오니 청하건대 그들이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 그 사람이 이르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하니라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 르우벤이 돌아와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 아우들에게로 되돌아와서 이르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어디로 갈까
- 그들이 요셉의 옷을 가져다가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 그의 채색옷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 하매
-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르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도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하고
-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 그 미디안 사람들은 그를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더라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본문 해설
벧엘로 다시 부르시는 음성
마침내 야곱의 귀향길이 마지막 한 걸음을 남겨 두었습니다. 세겜의 참혹한 사건을 지난 그에게 하나님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하고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벧엘의 제단에서 시작하여 라헬의 무덤과 이삭의 장례를 지나고, 채색옷을 입은 열일곱 소년이 은 이십에 팔려 애굽으로 내려가는 장면까지 이어집니다. 한 가정의 세 세대가 한꺼번에 저물고 또 새로 시작되는 긴 하루를 함께 걸어 보겠습니다.
창세기 35장은 미뤄 두었던 순종이 완성되는 장입니다. 36장은 에서의 후손이 세일 산에서 먼저 번성하는 모습을 적고, 37장은 요셉 이야기의 서막을 엽니다. 세 장을 이어 읽으면 약속의 길과 눈에 보이는 번영의 길이 서로 엇갈리며 흘러갑니다.
연대로 보면 이 사건들은 족장 시대의 한가운데에 놓입니다. 성경의 연대 기록을 문자 그대로 따라 계산하면 야곱이 벧엘에 다시 올라간 때는 주전 십구 세기 무렵으로 셈해집니다. 모세가 뒷날 이 기록을 정리해 남겼다는 사실을 예수님이 친히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벧엘이었을까요? 야곱이 하나님께 서원한 곳이 바로 그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8장 22절에서 그는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라 약속했는데, 돌아와서는 숙곳과 세겜에 머물며 그 서원을 십 년 가까이 미뤄 두었습니다.
세겜에서 벧엘까지 삼십 킬로미터
지도를 펴 놓고 보면 세겜과 벧엘 사이는 직선으로 약 삼십 킬로미터입니다. 중앙 산지의 능선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는 길이며, 성경이 올라가라고 표현한 이유도 분명합니다. 세겜의 해발 고도가 오백 미터 남짓인데 벧엘은 팔백팔십 미터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벧엘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십칠 킬로미터 떨어진 오늘날의 베이틴 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본문 6절은 이 성읍의 옛 이름이 루스였다고 밝힙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아몬드나무를 뜻하는 이 이름으로 불렀지만, 야곱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의 벧엘로 바꾸어 불렀던 것입니다.

위 사진은 십구 세기에 기록된 베이틴의 교회 유적입니다. 후대 사람들이 야곱의 꿈을 기념하려고 세웠다고 전해지는 건물의 잔해입니다. 돌 하나를 베고 누웠던 밤이 수천 년을 건너 이렇게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습니다.
5절은 아주 짧지만 묵직한 한 줄입니다. 세겜의 학살 이후 사면 고을들이 보복에 나설 만한 상황이었는데, 하나님이 그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다고 적혀 있습니다. 순종의 길로 발을 내딛는 사람을 하나님이 어떻게 지키시는지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이방 신상을 묻은 상수리나무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한 일이 2절에 나옵니다. 집안 사람 모두에게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고 명한 것입니다. 하란에서 라헬이 가져온 아버지의 신상들이 아직 이 집에 남아 있었던 셈입니다.

4절에서 야곱은 그 신상들과 귀고리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습니다. 위 사진에 보이는 팔레스타인 상수리나무가 이 지역의 대표적인 큰 나무이며, 고대 근동에서는 이런 나무 아래가 종교적 의례의 장소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야곱은 바로 그런 자리에 우상을 매장했던 것입니다.
귀고리까지 함께 묻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시 귀고리와 목걸이에는 신의 형상이나 부적 문양이 새겨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매튜 헨리는 그의 주석에서 이 장면을 우상의 모든 흔적을 끊어 내는 결단으로 풀이합니다.
8절에는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의 죽음이 기록되었습니다. 그 상수리나무를 알론바굿, 곧 통곡의 상수리나무라 불렀다고 합니다. 우상을 묻은 나무와 눈물을 묻은 나무가 나란히 서 있는 장면입니다.
엘벧엘: 하나님의 집의 하나님
7절에서 야곱이 그 장소를 부른 이름을 보십시오. 엘벧엘, 곧 하나님의 집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이십 년 전에는 장소에 이름을 붙였지만, 이제는 그 장소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이름 안에 담았습니다.
이 작은 차이가 야곱의 성숙을 보여 줍니다. 처음 벧엘에서 그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면 하고 조건을 달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조건이 사라지고 하나님 자신이 중심에 놓였습니다.
9절부터 13절은 창세기 28장의 벧엘 체험이 다시 반복되는 대목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셨다는 표현이 쓰인 것에 주목해 봅시다. 웨슬리는 『구약성서 주해』에서 하나님이 은혜의 약속을 거듭 새겨 주시는 방식을 여기서 읽어 냈습니다.
14절에서 야곱은 돌 기둥을 세우고 전제물과 기름을 붓습니다. 전제는 포도주를 부어 드리는 제사이며, 기름은 구별하여 바친다는 뜻을 담습니다. 처음에는 베개로 썼던 돌이 이제 예배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전능한 하나님과 다시 주신 언약
11절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는 선언은 히브리어로 엘샤다이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할례의 언약을 주실 때 쓰신 바로 그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셨던 언약을 야곱에게 그대로 이어 주셨습니다.
이 언약의 내용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생육하며 번성하라는 창조 때의 축복이 다시 울리고,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나오며,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는 약속이 더해집니다. 땅에 대한 약속은 12절에서 다시 못을 박듯 반복됩니다.
왕들에 대한 이 약속이 언제 성취되었을까요? 사울과 다윗과 솔로몬으로 시작된 이스라엘의 왕조가 그 첫 성취였습니다. 그리고 그 혈통 끝에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으니, 궁극의 성취는 바로 그분입니다.
스코필드의 구분을 따르자면 창세기 35장은 약속의 세대 한복판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대 내내 땅과 후손과 왕권이라는 세 가닥 약속을 문자 그대로 지켜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약속의 마지막 실현도 문자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다스리실 천년왕국이 그 자리입니다.
베노니에서 베냐민으로
16절에서 길을 떠난 일행에게 슬픔이 찾아옵니다. 에브랏에 이르기 전 라헬이 심히 고생하여 난산을 겪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아들을 낳으면서 세상을 떠나는 장면입니다.

18절의 두 이름을 나란히 놓아 보십시오. 어머니가 마지막 숨으로 부른 이름은 베노니, 곧 내 슬픔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베냐민, 곧 오른손의 아들이라 고쳐 불렀습니다.
아버지가 왜 이름을 바꾸었을까요? 아이가 평생 어머니의 죽음을 제 이름으로 지고 살게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른손은 고대 근동에서 힘과 축복과 영예의 자리를 가리켰으니, 야곱은 슬픔의 자리를 축복의 자리로 고쳐 불렀던 것입니다.

19절은 라헬이 묻힌 곳을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이라고 밝힙니다. 위 사진은 이십 세기 초에 촬영된 베들레헴의 전경입니다. 라헬이 아들을 낳다 숨진 그 길목에서 훗날 다윗이 태어나고, 다시 메시아가 태어나셨다는 사실이 가슴을 울립니다.
예레미야 31장 15절은 라마에서 슬퍼하는 라헬의 울음을 노래하고, 마태복음 2장 18절은 그 구절을 베들레헴의 참극에 연결합니다. 라헬의 눈물이 성경 전체를 가로질러 메시아의 탄생과 맞닿았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르우벤의 죄와 열두 아들의 명단
22절은 아주 짧게 한 사건을 적고 지나갑니다. 장남 르우벤이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했고,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로 끝납니다. 야곱의 침묵이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 일이 뒷날 어떻게 되었을까요? 창세기 49장 3절과 4절에서 야곱은 유언을 통해 르우벤의 장자권을 거두어 갑니다. 역대상 5장 1절도 그 장자의 명분이 요셉의 자손에게 돌아갔다고 분명히 적어 두었습니다.
23절부터 26절의 열두 아들 명단은 단순한 나열이 아닙니다. 네 어머니에게서 난 아들들이 함께 묶여 한 백성의 뼈대로 세워지는 장면입니다. 가정의 부끄러운 이야기 바로 다음에 이 명단이 놓인 배치가 의미심장합니다.
헤브론에서 함께 아버지를 묻은 형제
27절에서 야곱은 드디어 헤브론에 이릅니다. 기럇아르바라 불리던 이곳은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사서 사라를 장사한 땅입니다. 야곱이 집을 떠난 뒤 이삭을 다시 만난 것은 이십 년도 더 지난 뒤였습니다.

위 사진은 막벨라 굴 위에 세워진 건물의 모습입니다. 헤롯 시대에 쌓은 거대한 석축이 지금도 아래쪽에 남아 있어 이천 년 넘게 이어진 경배의 자리임을 보여 줍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가 이 아래에 묻혔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29절의 마지막 한마디가 인상 깊습니다.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는 기록입니다. 복을 다투던 두 형제가 아버지의 관 앞에서는 함께 섰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 창세기 25장 9절의 이스마엘과 이삭이 떠오릅니다. 아브라함을 묻을 때도 두 아들이 함께 섰거든 하는 생각이 스칩니다. 하나님은 끊어진 관계를 장례의 자리에서라도 잇게 하시는 분입니다.
에돔 족보가 먼저 놓인 자리
36장은 에서의 족보로만 가득합니다. 왜 성경은 선택받지 못한 쪽의 계보를 이렇게 길게 적어 두었을까요? 하나님이 에서에게도 번성의 축복을 주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려는 기록입니다.

세일 산은 사해 남동쪽에서 아카바 만까지 험준한 산악 지대로 이어집니다. 위 사진의 붉은 사암 지형이 바로 그 땅의 모습이며, 뒷날 나바테아 사람들이 페트라를 깎아 세운 곳입니다. 에돔이라는 이름 자체가 붉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31절은 아주 중요한 한 줄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에는 이미 왕들이 있었다는 기록입니다. 일부 비평학자들은 이 문장을 후대의 삽입으로 보지만, 우리는 그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볼 필요가 없는 까닭은 바로 앞 장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35장 11절에서 야곱에게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그 약속을 알고 있었으므로, 아직 왕이 없던 자기 시대를 두고 이렇게 적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에돔이 먼저 왕국을 세운 사실은 우리에게 묵직한 교훈을 줍니다. 눈에 보이는 성취의 속도가 하나님의 선택을 증명하지 않습니다. 야곱의 후손이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 에돔은 이미 왕들을 세웠으나, 마지막에 남은 것은 약속의 길이었습니다.
채색옷과 두 꿈
37장 2절은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이었다고 밝히며 이야기를 엽니다. 창세기 41장 46절에서 그가 서른에 총리가 되니, 지금부터 십삼 년의 어둠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셈입니다. 이 숫자를 기억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3절의 채색옷은 히브리어로 케토넷 파심입니다. 여러 색을 넣었다는 뜻으로도, 손목과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옷이라는 뜻으로도 풀이됩니다. 어느 쪽이든 양 떼를 몰며 일할 옷이 아니라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의 옷이었습니다.

아버지의 편애는 네 가지 미움을 연달아 불러옵니다. 4절에서 형들은 요셉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고, 5절과 8절에서는 꿈 때문에 더욱 미워하며, 11절에서는 시기에 이릅니다. 야곱 자신이 편애의 가정에서 자라며 겪은 아픔을 고스란히 되풀이한 것입니다.
두 꿈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꿈에서는 곡식 단이 절하고, 둘째 꿈에서는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절합니다. 땅에서 하늘로 범위가 넓어지며, 하나님이 이 일을 반드시 이루시겠다고 두 번 겹쳐 말씀하신 셈입니다.
11절 후반부가 참 따뜻합니다. 형들은 시기했지만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고 적혀 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 19절에서 마리아가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긴 모습과 겹쳐 보입니다.
도단의 마른 구덩이
12절부터 요셉은 헤브론 골짜기를 떠나 세겜으로 갑니다. 헤브론에서 세겜까지는 약 팔십 킬로미터이며, 걸어서 사나흘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아버지의 심부름 하나 때문에 열일곱 소년이 홀로 그 길을 걸었습니다.
17절에서 형들은 이미 도단으로 옮겨 가 있었습니다. 도단은 세겜에서 북쪽으로 다시 약 이십 킬로미터 더 올라간 곳이며, 오늘날 텔 도단으로 발굴된 유적입니다. 조셉 프리가 1953년부터 시작한 발굴을 통해 이곳이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던 성읍이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도단이 왜 중요한 자리였을까요? 길르앗에서 애굽으로 내려가는 국제 교역로가 이 평야를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팔려 가는 일이 바로 이곳에서 일어난 데에는 이런 지리적 배경이 있습니다.

24절은 구덩이에 대해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고 적습니다. 고대 팔레스타인의 구덩이는 빗물을 받아 두는 저수조였고, 입구가 좁고 아래가 넓은 병 모양이었습니다. 한번 떨어지면 혼자서는 결코 올라올 수 없는 구조였던 것입니다.
창세기 42장 21절이 그날의 소리를 뒤늦게 들려줍니다. 형들이 스스로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다고 고백하는 대목입니다. 37장은 요셉의 비명을 적지 않았지만, 그 비명은 이십 년이 지나 터져 나왔습니다.
은 이십에 팔린 소년
25절의 대상 행렬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내려오며 낙타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가는 장면입니다. 길르앗의 유향은 고대 세계의 값비싼 약재이자 향료였고, 몰약은 시신을 염하는 데도 쓰였습니다.

위 벽화는 애굽 베니하산의 크눔호텝 2세 무덤에 그려진 아시아계 셈족의 행렬입니다. 주전 십구 세기 무렵의 그림이며, 요셉의 시대와 거의 겹칩니다. 색동 무늬 옷을 입고 나귀에 짐을 실은 사람들의 모습이 오늘 본문의 장면을 눈앞에 가져다 놓습니다.
28절의 은 이십이라는 가격이 이 기록의 신빙성을 뒷받침합니다. 고대 근동 문헌을 비교한 케네스 키친의 연구에 따르면, 노예 한 사람의 값은 주전 이천 년대 초에 은 이십 세겔 정도였고 후대로 갈수록 올라갑니다. 출애굽기 21장 32절의 삼십 세겔은 그보다 몇 세기 뒤의 시세입니다.
이 작은 숫자가 왜 중요할까요? 후대 사람이 상상으로 지어냈다면 자기 시대의 가격을 적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이 바로 그 시대의 시세를 정확히 담고 있다는 사실은 성경이 실제 역사의 기록임을 조용히 증언합니다.
여기서 복음의 그림자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형제에게 미움받고 팔려 애굽으로 내려간 요셉의 모습은 은 삼십에 팔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그려 보입니다. 사도행전 7장 9절에서 스데반도 바로 이 사건을 설교의 중심에 놓았습니다.
피 묻은 채색옷 앞의 아버지
31절과 32절의 형들의 행동은 치밀하고 차갑습니다. 숫염소를 죽여 요셉의 옷을 피에 적시고, 아버지에게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 하며 보냅니다. 요셉이라는 이름조차 입에 올리지 않은 말투였습니다.
33절에서 야곱은 옷을 알아보고 무너집니다. 그가 스스로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도다 하고 결론을 내리도록 형들이 판을 짜 둔 것입니다. 한때 염소 가죽으로 아버지를 속였던 사람이 이제 염소의 피로 속임을 당했습니다.
35절의 야곱은 위로를 받지 않습니다.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옵니다. 스올은 구약에서 죽은 자들이 머무는 곳을 가리키는 말이며, 그는 남은 평생을 상복처럼 이 슬픔을 입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36절이 문을 하나 열어 둡니다. 요셉이 팔려 간 곳은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이었습니다. 하필 왕궁에 가장 가까운 집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몰라서 가만히 계셨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창세기 50장 20절에서 요셉은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구덩이와 노예 시장과 감옥을 지나는 길이 곧 한 민족을 살리는 길이었습니다.
묵상과 적용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말씀은 미뤄 둔 순종을 마무리하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서원하고도 숙곳과 세겜에서 십 년 가까이 머물렀습니다. 그 지체된 세월에 디나의 비극과 두 아들의 칼이 들어찼습니다.
우리에게도 반쯤 해 놓은 순종이 있습니다. 끊겠다고 한 습관, 회복하겠다고 한 관계, 드리겠다고 한 시간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른 한 가지가 무엇인가요? 그것이 바로 오늘 올라가야 할 벧엘입니다. 미루는 동안 잃는 것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야곱의 십 년이 알려 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집안의 우상을 꺼내어 묻으시기 바랍니다. 야곱은 자기만 결단하지 않고 집안 사람 모두에게 신상을 내놓게 했습니다. 신앙의 갱신은 혼자 조용히 하는 결심이 아니라 가정의 공동 작업이기도 합니다.
현실적으로는 이렇게 해 보십시오. 가족이 함께 앉아 우리 집에서 하나님보다 앞서 있는 것이 무엇인지 솔직하게 말해 보는 시간입니다. 아이의 성적일 수도, 주말마다 손에서 놓지 못하는 화면일 수도, 노후를 위한 통장일 수도 있습니다.
세 번째 적용은 슬픔의 이름을 고쳐 부르는 믿음입니다. 라헬은 아이를 베노니라 불렀지만 야곱은 베냐민이라 고쳐 불렀습니다. 같은 아이를 두고 슬픔의 아들에서 오른손의 아들로 이름이 바뀐 것입니다.
상실을 겪은 분들이 분명 계실 것입니다. 그 사건의 이름을 바꾸라는 말은 아픔을 없는 척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자리에 두신 뜻을 끝까지 기다리며 아픔의 이름 옆에 은혜의 이름을 나란히 적어 두라는 권면입니다.
네 번째로 가정의 죄 앞에서 침묵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르우벤의 일을 들은 야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침묵은 결국 유언의 자리에서 터져 나왔고, 르우벤은 장자권을 잃고 말았습니다.
제때 하는 한마디가 가정을 살립니다. 아이의 거짓말이나 배우자의 위험한 습관을 눈감아 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방치일 뿐입니다. 에베소서 4장 15절은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라고 권면합니다.
다섯 번째로 편애의 옷을 입히지 마시기 바랍니다. 야곱의 채색옷 한 벌이 열 형제의 마음에 미움을 심었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같아도 표현이 한쪽으로 쏠리면 다른 아이에게는 차별로 읽히기 마련입니다.
자녀가 여럿인 가정이라면 이번 주에 한 번씩 따로 시간을 내어 보십시오. 똑같은 선물보다 각자에게 따로 쓰는 삼십 분이 훨씬 공평하게 느껴집니다. 형제 사이의 미움은 부모의 저울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섯 번째 적용은 구덩이 속에서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믿음입니다. 요셉은 물 없는 구덩이에 던져졌고, 은 이십에 팔렸고, 아버지의 집에서 완전히 끊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보디발의 집으로 이어지는 길이었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은 고통이 좋은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고통까지 자신의 계획 안에 엮어 내신다는 뜻입니다. 지금 아무 의미도 보이지 않는 자리에 계신 분들께 이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은혜와 성화를 함께 붙드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벧엘로 올라간 것은 그가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일어나 올라가라 하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먼저 임하여 칭의와 중생이 주어지면, 바로 그 순간부터 성화가 함께 시작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상을 묻는 일도 우리 힘의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부르신 분이 이미 앞서 가셨기에 우리가 따라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뵙게 될 터이니, 요한일서 3장 3절처럼 그 소망을 가진 자는 자기를 깨끗하게 합니다.
예화
부엌에서 벧엘을 쌓은 어머니: 수산나 웨슬리
야곱이 집안 사람 모두를 데리고 벧엘로 올라가는 장면을 읽을 때면 한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감리교의 어머니라 불리는 수산나 웨슬리입니다. 1669년에 태어난 그는 열아홉 명의 자녀를 낳았고 그 가운데 열 명을 어른으로 키워 냈습니다.

그의 집은 영국 링컨셔의 엡워스 목사관이었습니다. 1709년 2월의 어느 밤 그 집에 불이 났고, 다섯 살 난 존 웨슬리가 이층 창가에서 가까스로 구조됩니다. 수산나는 이 아이를 두고 불에서 꺼낸 그슬린 막대기라 표현했고, 평생 그를 특별히 하나님께 바친 아이로 여겼습니다.

위 사진의 건물이 바로 불이 난 뒤 다시 지어진 엡워스 목사관입니다. 이 집에서 수산나는 놀라운 규칙을 지켰습니다. 자녀 한 사람 한 사람과 일주일에 한 시간씩 따로 만나 그 아이의 영혼을 돌보는 시간입니다.
더 인상적인 일은 1712년 겨울에 일어났습니다. 남편 새뮤얼 웨슬리가 런던의 교회 회의에 오래 머물러 있었고, 대신 강단에 선 보조 목사의 설교는 메마르기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산나는 주일 오후에 집 부엌에 가족과 하인들을 모아 성경을 읽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문이 퍼지자 교인들이 하나둘 찾아왔습니다. 많을 때는 이백 명이 그 부엌과 마당에 모였다고 전해집니다. 남편이 편지로 염려를 표하자 그는 답장에 자기 양심이 하나님 앞에서 이 일을 멈출 수 없다고 적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것이 무엇일까요? 벧엘은 거창한 성전이 아니라 한 가정의 부엌에서도 쌓인다는 사실입니다. 야곱이 가족을 이끌고 제단으로 올라간 그 걸음이, 천팔백 년 뒤 엡워스의 부엌에서 다시 걸어진 셈입니다.
수산나는 1742년 세상을 떠났고, 런던의 번힐 필즈에 묻혔습니다. 그의 두 아들 존과 찰스는 영국과 미국을 뒤흔든 부흥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지킨 한 시간씩의 만남이 한 시대의 제단이 되었던 것입니다.
은 이십에 팔린 사람들을 위하여: 윌리엄 윌버포스
요셉이 은 이십에 팔리는 장면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아픈 거래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구절을 평생의 사명으로 받아 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영국의 하원 의원 윌리엄 윌버포스입니다.

그는 1759년 헐에서 태어나 스물한 살에 하원에 들어간 전도유망한 정치인이었습니다. 1785년 무렵 그의 삶이 뒤집힙니다. 복음주의 신앙으로 돌이킨 뒤 정치를 떠날 생각까지 했지만, 존 뉴턴을 비롯한 신앙의 선배들이 하나님이 너를 바로 그 자리에 두셨다며 그를 붙들었습니다.
1787년 일기에 그는 자기 사명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기 앞에 두 가지 큰 목표를 두셨는데, 노예 무역의 폐지와 풍습의 개혁이라는 내용입니다. 당시 영국 경제의 큰 몫이 노예 무역에 걸려 있었으니, 이 결심은 정치적 자살에 가까운 선택이었습니다.
1789년 그는 하원에서 첫 번째 긴 연설을 합니다. 아프리카에서 서인도 제도로 사람을 실어 가는 배의 선창 구조와 사망률을 자료로 제시하며, 이 거래가 사람을 짐으로 셈하는 일임을 폭로했습니다. 법안은 부결되었고, 그는 이후 십팔 년 동안 거의 매년 같은 법안을 다시 올렸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포기하지 않은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이라는 확신 때문입니다. 암살 위협이 날아들고 건강이 무너져 여러 해 동안 병석에 누웠지만, 마침내 1807년 2월 노예 무역 폐지 법안이 하원에서 압도적으로 통과됩니다. 의원들이 일어나 환호할 때 윌버포스는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고 전해집니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무역이 아니라 노예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법안이 1833년 7월 26일 하원을 통과하는데, 윌버포스는 그 소식을 듣고 사흘 뒤인 7월 29일에 숨을 거둡니다. 사십육 년을 매달린 싸움의 결말을 눈으로 확인하고 눈을 감았던 것입니다.
요셉은 은 이십에 팔렸고, 윌버포스가 싸운 배 안의 사람들은 그보다 더 헐값에 거래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값이 매겨지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그 값표를 찢는 자리에 섭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도 사람을 숫자로 셈하는 자리가 남아 있지 않은지 함께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기도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미뤄 둔 순종을 오늘 마무리할 용기를 구하며,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작은 우상들을 끝까지 끄집어내어 묻게 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아울러 슬픔의 이름 옆에 은혜의 이름을 적어 넣는 믿음을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가정을 위해서는, 아버지의 침묵과 편애가 자녀의 상처가 되지 않도록 제때 바른 말을 하고 고르게 사랑하는 집이 되기를 구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는, 엡워스의 부엌처럼 작은 자리에서도 말씀과 기도의 제단이 쌓이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이 사회가 사람을 값으로 셈하는 자리에서 돌아서기를, 그리고 지금도 인신매매와 강제 노동에 갇힌 열방의 이웃들이 자유를 얻기를 간절히 아룁니다.
벧엘에서 다시 부르시는 하나님, 오늘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은 야곱이 서원을 잊고 머뭇거리던 십 년을 아시면서도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일어나라 하고 부르셨습니다. 그 끈질긴 사랑을 생각하며 감사의 마음으로 엎드립니다.
전능한 하나님 엘샤다이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언약을 한 치도 어기지 않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땅과 후손과 왕권을 약속하신 그대로 이루셨으니, 다시 오셔서 다스리실 그 날의 약속도 문자 그대로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그 소망으로 오늘 하루를 깨끗하게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라헬의 눈물을 아시는 주님, 저희 가정의 상실과 아픔도 주님의 손에 올려 드립니다. 베노니라 부를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베냐민이라 고쳐 부르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위로를 거절하던 야곱의 마음까지 품어 주신 주님께 저희의 밤을 맡깁니다.
구덩이에 던져진 요셉과 함께 계셨던 주님, 지금 아무 의미도 보이지 않는 자리에 있는 성도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그 구덩이가 끝이 아니라 길이었음을 요셉의 생애로 보여 주셨으니, 저희도 보이지 않는 손을 끝까지 신뢰하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미움받고 팔려 가신 주 예수님, 요셉의 길 끝에 주님의 십자가가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저희를 값으로 셈하지 않으시고 피로 사 주신 그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저희도 사람을 값으로 세지 않는 눈을 가지고 한 걸음 걸어가겠습니다. 이 모든 말씀을 저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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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런스
-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대한성서공회, 1998. 본문 출처: https://www.bskore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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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Wesley, Explanatory Notes upon the Old Testament, Bristol: William Pine, 1765. (창세기 35~37장 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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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 A. Kitchen,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2003. (고대 근동 노예 가격의 시대별 변화와 창 37:28의 은 이십)
- Joseph P. Free, “The First Season of Excavation at Dothan,” Bulletin of the 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 No. 131 (1953), pp.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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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rcy E. Newberry, Beni Hasan, Part I, Archaeological Survey of Egypt, London: Egypt Exploration Fund, 1893. (크눔호텝 2세 무덤의 아시아계 행렬 벽화 기록)
- Charles Wallace Jr., ed., Susanna Wesley: The Complete Writing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엡워스 목사관의 가정 예배와 1712년 부엌 모임에 관한 서신)
- Robert Isaac Wilberforce and Samuel Wilberforce, The Life of William Wilberforce, London: John Murray, 1838. (1787년 일기의 두 가지 큰 목표, 1807년과 1833년의 입법 과정)
- John Pollock, Wilberforce, London: Constable, 1977.
- 이미지 출처(모두 위키미디어 공용에서 크기를 줄여 주소로 임베딩함): 남쪽에서 본 벧엘 사진, 오리건주립대 특별소장자료, 이용 제한 없음 / 베이틴의 교회 유적 기록 사진, 뉴욕공공도서관, 퍼블릭 도메인 / 팔레스타인 상수리나무 사진, Davidbena, CC BY-SA 4.0 / 베들레헴 라헬의 묘 사진, Onceinawhile, CC BY-SA 4.0 / 베들레헴 전경 사진, 매트슨 컬렉션, 퍼블릭 도메인 / 막벨라 굴 건물 야경, DGtal, CC BY-SA 4.0 / 에돔 산지와 아라바 평원 사진, 매트슨 컬렉션, 퍼블릭 도메인 / 텔 도단 발굴 현장 사진, Daniel Ventura, CC BY-SA 3.0 / 텔 도단의 요셉의 구덩이 사진, 위키미디어 공용 기여자, CC BY-SA 4.0 / 베니하산 아시아계 행렬 벽화 합성 이미지, 퍼블릭 도메인 / 바키아카의 형들에게 팔리는 요셉, CC BY-SA 3.0 / 수산나 웨슬리 초상, 퍼블릭 도메인 / 엡워스 옛 목사관 사진, Peter Church, CC BY-SA 2.0 / 존 러셀의 윌리엄 윌버포스 초상, 퍼블릭 도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