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차 (창세기 30장 ~ 창세기 31장)
튀르키예 가지안테프 카르탈 산지에서 풀을 뜯는 아와시 양 떼와 토종 염소 떼, Zeynel Cebeci 촬영, CC BY-SA 4.0
본문
창세기 30장
-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 라헬이 이르되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 그의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 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
- 라헬이 이르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 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임신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 레아가 자기의 출산이 멈춤을 보고 그의 시녀 실바를 데려다가 야곱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더니
- 레아의 시녀 실바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으매
- 레아가 이르되 복되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
- 레아의 시녀 실바가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 레아가 이르되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아셀이라 하였더라
- 밀 거둘 때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그의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더니 라헬이 레아에게 이르되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노라
- 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라헬이 이르되 그러면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 하니라
- 저물 때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매 레아가 나와서 그를 영접하며 이르되 내게로 들어오라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그 밤에 야곱이 그와 동침하였더라
- 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다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 레아가 이르되 내가 내 시녀를 내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하고 그의 이름을 잇사갈이라 하였으며
- 레아가 다시 임신하여 여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 레아가 이르되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살리라 하고 그의 이름을 스불론이라 하였으며
- 그 후에 그가 딸을 낳고 그의 이름을 디나라 하였더라
-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시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에게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 또 이르되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가축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 라반이 이르되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야곱이 이르되 외삼촌께서 내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아도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 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
-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 떼에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며 또 염소 중에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가려내리니 이같은 것이 내 품삯이 되리이다
- 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의가 내 대답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것이나 점이 없는 것이나 양 중에 검지 아니한 것이 있거든 다 도둑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
- 라반이 이르되 내가 네 말대로 하리라 하고
- 그 날에 그가 숫염소 중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암염소 중 흰 바탕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양 중의 검은 것들을 가려 자기 아들들의 손에 맡기고
-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 길이 뜨게 하였고 야곱은 라반의 남은 양 떼를 치니라
-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 구유에 세워 양 떼를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
- 야곱이 새끼 양을 구분하고 그 얼룩무늬와 검은 빛 있는 것을 라반의 양과 서로 마주보게 하며 자기 양을 따로 두어 라반의 양과 섞이지 않게 하며
- 튼튼한 양이 새끼 밸 때에는 야곱이 개천에다가 양 떼의 눈 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이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게 하고
-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그렇게 함으로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된지라
-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창세기 31장
-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 야곱이 사람을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 떼가 있는 들로 불러다가
-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
-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 그 양 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 보니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었더라
-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 이르시되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산이 있으리요
-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여 가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
- 야곱이 일어나 자식들과 아내들을 낙타들에게 태우고
- 그 모은 바 모든 가축과 모든 소유물 곧 그가 밧단아람에서 모은 가축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있는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로 가려 할새
- 그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의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하고
- 야곱은 그 거취를 아람 사람 라반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가만히 떠났더라
- 그가 그의 모든 소유를 이끌고 강을 건너 길르앗 산을 향하여 도망한 지
- 삼 일 만에 야곱이 도망한 것이 라반에게 들린지라
- 라반이 그의 형제를 거느리고 칠 일 길을 쫓아가 길르앗 산에서 그에게 이르렀더니
-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이르시되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
- 라반이 야곱을 뒤쫓아 이르렀으니 야곱이 그 산에 장막을 친지라 라반이 그 형제와 더불어 길르앗 산에 장막을 치고
-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속이고 내 딸들을 칼에 사로잡힌 자 같이 끌고 갔으니 어찌 이같이 하였느냐
- 내가 즐거움과 노래와 북과 수금으로 너를 보내겠거늘 어찌하여 네가 나를 속이고 가만히 도망하고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으며
- 내가 내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지 못하게 하였으니 네 행위가 참으로 어리석도다
-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 이제 네가 네 아버지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옳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둑질하였느냐
-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생각하기를 외삼촌이 외삼촌의 딸들을 내게서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여 두려워하였음이니이다
- 외삼촌의 신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우리 형제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외삼촌의 것이 발견되거든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소서 하니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도둑질한 줄을 알지 못함이었더라
- 라반이 야곱의 장막에 들어가고 레아의 장막에 들어가고 두 여종의 장막에 들어갔으나 찾지 못하고 레아의 장막에서 나와 라헬의 장막에 들어가매
- 라헬이 그 드라빔을 가져 낙타 안장 아래에 넣고 그 위에 앉은지라 라반이 그 장막에서 찾다가 찾아내지 못하매
- 라헬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마침 생리가 있어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하니라 라반이 그 드라빔을 두루 찾다가 찾아내지 못한지라
- 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할새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내 뒤를 급히 추격하나이까
- 외삼촌께서 내 물건을 다 뒤져보셨으니 외삼촌의 집안 물건 중에서 무엇을 찾아내었나이까 여기 내 형제와 외삼촌의 형제 앞에 그것을 두고 우리 둘 사이에 판단하게 하소서
- 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 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딸들은 내 딸이요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 떼는 내 양 떼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라 내가 오늘 내 딸들과 그들이 낳은 자식들에게 무엇을 하겠느냐
- 이제 오라 나와 네가 언약을 맺고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
- 이에 야곱이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 또 그 형제들에게 돌을 모으라 하니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무더기를 이루매 무리가 거기 무더기 곁에서 먹고
- 라반은 그것을 여갈사하두다라 불렀고 야곱은 그것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니
- 라반의 말에 오늘 이 무더기가 너와 나 사이에 증거가 된다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며
- 또 미스바라 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에 우리가 서로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살피시옵소서 함이라
- 만일 네가 내 딸을 박대하거나 내 딸들 외에 다른 아내들을 맞이하면 우리와 함께 할 사람은 없어도 보라 하나님이 나와 너 사이에 증인이 되시느니라 함이었더라
- 라반이 또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나와 너 사이에 둔 이 무더기를 보라 또 이 기둥을 보라
- 이 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이 기둥이 증거가 되나니 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하지 않을 것이요 네가 이 무더기, 이 기둥을 넘어 내게로 와서 해하지 아니할 것이라
-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고
- 야곱이 또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니 그들이 떡을 먹고 산에서 밤을 지내고
- 라반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본문 해설
한 장막 안의 경쟁과 하나님의 응답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태어나는 장막의 안쪽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거룩한 광경이 아니라 두 자매의 치열한 경쟁과 서로를 향한 시기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어수선한 집에서 하나님은 한 민족의 뿌리를 세우시고, 이십 년 동안 속임을 당한 한 사람의 품삯을 끝까지 지켜 주십니다.
창세기 30장은 아들들의 출생과 품삯 계약을 다루고, 31장은 하란 생활의 결산과 귀향길을 적은 장입니다. 두 장을 함께 읽으면 하나님의 섭리가 사람의 다툼을 통과해 가는 방식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이 어수선한 집안 이야기를 성경이 왜 이렇게 자세히 남겼을까요? 하나님의 역사가 완벽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 하심입니다. 그래서 이 두 장은 우리에게 가장 현실적인 위로가 됩니다.
연대를 따져 보면 이 두 장은 야곱이 하란에 머문 이십 년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기록입니다. 열한 아들과 딸 디나가 이 기간에 태어났으며, 요셉이 태어난 뒤 약 육 년이 더 지나 귀향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이 짧은 두 장 안에 한 사람의 인생 중반이 압축되어 있는 셈입니다.
라헬의 절규와 야곱의 분노
30장 1절은 비명처럼 시작합니다. 라헬이 언니를 시기하여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하고 외칩니다.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한 여인이 정작 가장 깊은 결핍 앞에서 무너지는 장면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자녀가 없는 여인의 처지는 오늘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가혹했습니다. 아이는 노후의 보장이자 가문의 존속이었고, 불임은 종종 신의 저주로 해석되었습니다. 라헬의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2절의 야곱의 반응은 뜻밖에도 신학적으로 정확합니다.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하는 말입니다. 생명의 문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신다는 고백이 거기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고백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같은 문제 앞에서 이십 년을 기도했는데, 야곱은 어떻게 했을까요? 성경은 그가 기도했다는 기록을 남기지 않습니다. 옳은 말을 아는 것과 그 말대로 사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빌하와 실바: 사람의 방법이 낳은 아들들
3절에서 라헬이 내놓은 해법은 할머니 사라가 썼던 방법을 그대로 되풀이한 것이었습니다. 여종을 남편에게 들여보내 내 무릎에 두리니 하고 말하는데, 이것은 당시의 입양 관행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누지와 마리에서 나온 토판 문서들도 비슷한 관행을 보여 줍니다.

위 사진은 북부 메소포타미아의 누지에서 출토된 토판입니다. 이런 문서들에는 자녀 없는 아내가 여종을 대리모로 세우는 조항, 상속과 입양을 규정하는 조항이 담겨 있습니다. 성경의 족장 기록이 그 시대의 실제 법 관습과 정확히 맞물린다는 증거입니다.
빌하가 낳은 두 아들의 이름이 라헬의 속마음을 보여 줍니다. 단은 그가 판단하셨다는 뜻이고, 납달리는 씨름 또는 경쟁에서 나온 말입니다. 8절에서 라헬은 아예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고 선언합니다.
레아도 질 수 없었습니다. 실바를 들여보내 갓과 아셀을 얻고 복되도다, 기쁘도다 하고 외칩니다. 두 자매가 아이의 이름으로 점수를 매기는 모습은 보기에 딱하기만 합니다.
아이들은 이 경쟁을 몰랐을까요? 자기 이름의 뜻을 들으며 자란 아이들이니, 어머니들의 다툼을 이름과 함께 평생 지고 다녔을 것입니다. 부모의 경쟁은 늘 자녀의 이름표에까지 새겨지는 법입니다.
여기서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네 아들은 사람의 조급함에서 태어났지만, 그들도 결국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그대로 포함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잘못된 방법까지 끌어안아 자기 계획을 이루시되, 그 방법을 승인하신 것은 아닙니다.
합환채 흥정과 두 아들의 이름
14절부터 16절은 이 장에서 가장 민망한 거래입니다. 르우벤이 밀 거둘 때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어머니에게 가져오자, 라헬이 그것을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자 레아는 남편과의 하룻밤을 그 대가로 요구합니다.
합환채가 무엇일까요? 히브리어로 두다임이라 불리는 이 식물은 위 사진에 보이는 맨드레이크, 곧 가지과에 속하는 야생 풀입니다. 넓은 잎이 바닥에 둥글게 퍼지고 노란 열매가 밀 추수기인 오월과 유월에 익습니다.
고대 근동과 지중해 세계에서는 이 뿌리와 열매가 임신을 돕는 약으로 여겨졌습니다. 뿌리가 사람의 몸처럼 갈라져 자라기 때문에 온갖 미신이 붙었습니다. 아가 7장 13절에도 사랑의 향기와 함께 언급되는 식물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 미신을 조용히 뒤집습니다. 합환채를 가진 라헬은 임신하지 못했고, 합환채를 내어 준 레아가 잇사갈과 스불론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17절은 그 이유를 분명히 적습니다. 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라는 한 구절입니다.
사람은 뿌리에 기대고 하나님은 사람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매튜 헨리는 이 대목을 두고 수단을 신뢰하는 어리석음을 지적합니다. 생명은 식물에서 나오지 않고 생명의 주인에게서 나오는 법입니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22절은 오랜 기다림의 끝입니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는 말로 시작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태를 여셨다고 적습니다. 여기 생각하셨다는 히브리어 자카르는 단순히 기억을 떠올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단어는 약속을 기억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하신다는 의미를 담습니다. 창세기 8장 1절에서 하나님이 노아를 생각하시고 물을 그치게 하신 그 단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기억은 늘 구체적인 개입으로 이어집니다.
23절과 24절에서 라헬은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고백하며 아들의 이름을 요셉이라 짓습니다. 요셉이라는 이름에는 더하신다는 뜻과 거두어 가신다는 뜻이 함께 겹쳐 있습니다. 그 한 아이가 뒷날 애굽의 총리가 되어 온 집안을 기근에서 건져 내게 됩니다.
혹시 응답이 너무 늦었다고 느끼신 적이 있나요? 라헬은 적어도 칠 년 넘게 기다렸고, 그 사이에 언니가 아들 여섯과 딸 하나를 낳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는 늦은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세상을 구할 때에 맞추어진 것이었습니다.
품삯을 정하는 두 사람의 속셈

25절에서 야곱이 드디어 귀향을 말합니다. 그러자 라반은 27절에서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하는 말입니다. 우상을 섬기던 사람조차 야곱에게 임한 복을 부인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30절에서 야곱이 토로하는 말이 가슴에 남습니다.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하는 말입니다. 남을 부자로 만들어 주고도 제 집 하나 없는 사람의 서러움이 여기 있습니다.
32절에서 야곱이 제시한 품삯 조건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양 중에는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염소 중에는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자기 삯으로 달라는 요구입니다. 겉보기에는 아주 겸손한 제안이었습니다.
왜 겸손한 제안이었을까요? 위 사진처럼 중동의 아와시 양은 대부분 흰색이고, 그 지역 염소는 대부분 검정색입니다. 다시 말해 야곱이 요구한 것은 양 떼 가운데 드물게 나타나는 소수의 무늬였습니다.
그래서 34절에서 라반은 즉시 승낙합니다. 그러고는 35절과 36절에서 이미 무늬 있는 짐승을 모두 빼내어 아들들에게 맡기고 사흘 길 떨어진 곳으로 보냅니다. 승낙하는 입과 행동하는 손이 전혀 달랐던 셈입니다.
껍질 벗긴 가지와 하나님의 꿈
37절부터 42절은 성경에서 가장 오해받는 단락 가운데 하나입니다.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가지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물 구유에 세웠다는 기록입니다. 그 결과 얼룩무늬와 점 있는 새끼가 태어났습니다.
이것을 야곱의 교활한 축산 기술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는 것이 태아에게 영향을 준다는 고대의 민간 신앙을 야곱이 이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 스스로 전혀 다른 설명을 내놓습니다.
31장 10절부터 12절에서 야곱은 그 비밀을 털어놓습니다.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양 떼를 보여 주시며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하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9절에서 그는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하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렇다면 가지는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의 역사를 눈에 보이게 담아낸 믿음의 표지였을 뿐입니다. 사람의 기술로는 설명되지 않는 일이 벌어졌고, 야곱도 뒤늦게 그것을 알아차렸습니다.
43절은 그 결과를 담담히 적습니다.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아졌다는 기록입니다. 지팡이 하나로 요단을 건넌 사람이 두 떼를 이룰 만큼 불어난 것입니다.
열 번 바뀐 품삯과 벧엘의 하나님
31장 1절과 2절은 분위기의 급변을 알립니다. 라반의 아들들이 수군거리고, 라반의 안색이 전과 같지 아니했습니다. 복이 커질수록 주변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지는 것은 어느 시대나 같습니다.
바로 그때 3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는 음성입니다. 사람의 눈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 야곱을 움직였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7절의 고백이 이십 년의 실상을 요약합니다. 라반이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다는 말입니다. 열 번이라는 숫자가 문자 그대로인지 여러 번을 뜻하는 관용 표현인지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어느 쪽이든 계약을 뒤집는 일이 상습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같은 문장의 뒷부분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라는 말입니다. 품삯은 열 번 바뀌었지만 하나님의 보호는 한 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 이십 년 동안 야곱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요? 당장은 억울함만 보였을 것입니다. 지나고 나서야 막아 주신 손이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 믿음의 흔한 순서입니다.
13절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소개하시는 방식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하시며, 야곱이 기둥에 기름을 붓고 서원한 그 자리를 그대로 들추십니다. 이십 년 전의 약속을 하나님은 한 글자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라헬의 드라빔과 몰래 떠난 길

19절에 어두운 한 줄이 끼어듭니다.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간 사이에 라헬이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했다는 기록입니다. 드라빔은 집안에 두고 섬기던 작은 수호신상을 가리킵니다.
위 사진은 훗날 유다 지역에서 출토된 토기 여인상들로, 이스라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족장 시대의 드라빔과 같은 물건은 아니지만, 고대 근동의 가정에서 이런 소형 신상을 두고 섬기는 일이 흔했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줍니다. 성경이 이 물건을 늘 단호하게 배격한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라헬은 왜 그것을 가져갔을까요? 누지 문서를 근거로 가장의 신상 소유가 상속권과 연결된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애착이나 미신 때문이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는데, 어느 쪽이든 그것이 우상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 사건이 남긴 그림자는 길었습니다. 창세기 35장 2절에서 야곱은 집안에 들어온 이방 신상을 다 버리라고 명하게 되며, 라헬은 베냐민을 낳다가 길에서 숨을 거둡니다. 신앙의 가정에 숨어든 우상은 반드시 값을 요구하는 법입니다.
20절과 21절에서 야곱은 거취를 알리지 않고 가만히 떠나 강을 건너 길르앗 산으로 향합니다. 하나님이 돌아가라 하셨으니 떠나는 것은 옳았습니다. 그러나 떠나는 방식은 또다시 몰래 빠져나가는 그의 옛 습관이었습니다.
길르앗 산의 추격과 밤의 현몽

22절과 23절에서 라반은 삼 일 만에 소식을 듣고 칠 일 길을 쫓아 길르앗 산에서 야곱을 따라잡습니다. 하란에서 길르앗까지는 육백 킬로미터를 넘는 거리이니, 가축과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야곱의 행렬이 따라잡힌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길르앗은 요단 동편의 고원 지대로, 오늘날 요르단의 아즐룬과 제라시 일대에 해당합니다. 위 사진처럼 숲과 능선이 겹치는 산지이며, 예레미야 8장 22절에 나오는 유향으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습니다. 쫓기는 사람이 숨을 고를 만한 땅이었습니다.
24절이 이 장의 결정적인 전환입니다. 밤에 하나님이 라반에게 현몽하여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고 경고하십니다. 칠 일을 달려온 사람의 손을 하나님이 하룻밤에 묶어 버리신 것입니다.
29절에서 라반이 스스로 그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하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이 말씀하셨기에 손을 쓰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야곱은 자기가 어떻게 보호되고 있었는지 그 밤에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왜 야곱에게 미리 알려 주지 않으셨을까요? 미리 알았다면 그는 또 제 방식으로 대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일이 끝난 뒤에야 손을 보여 주심으로 우리를 더 깊이 가르치십니다.
33절부터 35절의 장면에는 씁쓸한 웃음이 섞여 있습니다. 라반이 장막마다 뒤지는 동안 라헬은 드라빔을 낙타 안장 아래에 넣고 그 위에 앉아 몸이 불편하다고 말합니다. 신이라 섬기던 물건이 사람의 안장 밑에 깔려 있었으니, 참으로 무력한 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십 년의 결산과 갈르엣의 돌무더기
36절부터 42절은 야곱이 평생 참았던 말을 쏟아 내는 대목입니다. 그는 암양이 낙태하지 않았고 숫양을 먹지 않았으며, 들짐승에게 물려 찢긴 것도 자기 돈으로 보충했다고 조목조목 밝힙니다. 목자의 책임을 법 이상으로 다한 사람의 이력서입니다.
40절의 한 문장이 특히 절절합니다.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하는 말입니다. 광야의 기온 차는 지금도 낮과 밤이 이십 도 이상 벌어지니, 과장이 아니라 사실의 기록입니다.
그러나 그의 결산은 자기 공로로 끝나지 않습니다. 42절에서 그는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빈손으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이십 년의 수고를 셈하던 입이 마지막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 것입니다.
이 고백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자기 공로로 번창했다고 믿는 사람은 그 재산이 흔들릴 때 함께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자기 손의 수고를 하나님의 손에 얹어 놓는 법을 그 이십 년 동안 배운 셈입니다.
44절부터 54절에서 두 사람은 돌무더기를 쌓아 언약을 맺습니다. 라반은 아람어로 여갈사하두다라 부르고 야곱은 히브리어로 갈르엣이라 불렀는데, 둘 다 증거의 무더기라는 뜻입니다. 같은 핏줄이 서로 다른 말을 쓰게 되었다는 사실이 이 집안의 거리를 보여 줍니다.
49절의 미스바라는 이름은 망대 또는 살핌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살피시옵소서라는 그 말은 오늘날 축복의 인사처럼 쓰이기도 하지만, 본래는 서로를 믿지 못하는 두 사람의 경계선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신뢰가 무너진 자리에 세운 울타리였던 것입니다.
그래도 55절의 마지막 장면은 다행스럽습니다. 라반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고 축복하고 떠났다는 기록입니다. 하나님이 막아 주신 밤 덕분에 피를 보지 않고 헤어질 수 있었습니다.
묵상과 적용
오늘 본문이 우리 마음을 먼저 찌르는 것은 비교의 문제입니다. 라헬은 사랑을 가졌는데 자녀가 없었고, 레아는 자녀를 가졌는데 사랑이 없었습니다. 서로가 가진 것을 보지 못하고 서로에게 없는 것만 세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자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회망 서비스를 넘기며 남의 집과 남의 자녀와 남의 승진을 보는 동안, 내 손에 이미 주어진 것들은 흐려집니다. 비교는 감사를 먹어 치우고 시기라는 쓴 열매를 남깁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저녁에 내가 부러워하던 한 사람의 이름을 적고, 그 옆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 세 가지를 적어 보십시오. 그 목록을 소리 내어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기울기가 달라집니다.
두 번째로 수단과 기도의 순서를 바로잡으시기 바랍니다. 라헬은 여종을 들였고 합환채를 구했으나, 태를 여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레아는 흥정으로 하룻밤을 샀지만, 아들을 주신 분은 소원을 들으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도 자녀 문제와 건강 문제와 진로 문제 앞에서 수단을 먼저 찾습니다. 좋은 수단을 쓰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수단을 하나님의 자리에 앉히는 순간 문제가 시작됩니다. 병원과 학원과 인맥을 사용하되 무릎을 먼저 꿇는 순서를 지키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적용은 억울하게 수고하는 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야곱은 이십 년간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는 사람 밑에서 일했고, 밤낮으로 추위와 더위를 견뎠습니다. 그런데 그 이십 년의 결산에서 그는 빈손이 아니었습니다.
직장에서 공로를 가로채이거나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분이 계실 것입니다. 사람은 계약을 바꿀 수 있지만 하나님의 장부는 고쳐지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6장 10절은 하나님이 너희 수고와 사랑을 잊지 않으신다고 분명히 약속합니다.
네 번째로 성실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자랑한 것은 재산이 아니라 낙태하지 않은 암양과 먹지 않은 숫양이었습니다. 보는 사람이 없는 밤에도 그는 양을 지켰습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은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하라고 권면합니다. 사장이 보지 않는 시간, 교사가 보지 않는 자리, 성도들이 보지 않는 봉사의 뒷정리에서 우리의 진짜 신앙이 드러나는 법입니다.
다섯 번째로 집안에 숨어든 드라빔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라헬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집안의 안주인이었으면서도 안장 밑에 신상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예배와 함께 몰래 끼고 가는 무엇이 있지 않을까요?
사주와 점괘를 못 버린 마음, 돈의 액수가 평안을 결정하는 습관, 자녀의 성적이 하나님보다 더 큰 자리를 차지한 가정이 모두 같은 자리입니다. 창세기 35장에서 야곱이 명령한 것처럼 이방 신상을 버리고 벧엘로 올라가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돌아가라는 부르심에 민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의 하나님이라 하시며 이십 년 전의 서원을 다시 꺼내셨습니다. 은혜로 시작된 구원은 첫 자리를 다시 찾는 성화의 걸음으로 자라야 합니다.
지금 신앙의 어느 지점이 흐려졌다면, 처음 결단했던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회복의 출발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5절의 말씀처럼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권면이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화
평생 맹인이었던 찬송 시인: 패니 크로스비

라헬과 레아의 이야기를 읽을 때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팔천 편이 넘는 찬송 시를 쓴 패니 크로스비입니다. 「저 죄인을 부르소서」와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같은 찬송이 그의 손에서 나왔습니다.
1820년 뉴욕 주 퍼트넘 카운티에서 태어난 그녀는 생후 여섯 주 만에 눈에 염증이 생깁니다. 당시 마을 의사가 없어 떠돌이 치료사가 뜨거운 찜질을 처방했고, 그 처치 뒤에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에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그를 길렀습니다. 할머니는 손녀에게 성경을 읽어 주며 자연을 말로 그려 주었고, 패니는 어린 나이에 모세오경과 복음서의 상당 부분을 외워서 암송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열다섯 살에 뉴욕 맹인학교에 들어가 거기서 평생 시와 음악을 배웠습니다.
그녀의 생애에 가장 깊은 슬픔은 자녀와 관련된 일입니다. 1858년 같은 학교 교사였던 알렉산더 밴 알스타인과 결혼했고, 얼마 뒤 딸을 낳았으나 그 아이가 갓난아기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평생 이 일을 거의 입에 올리지 않았고, 아주 뒤늦게야 짧게만 언급했습니다.
눈도 보이지 않고 품에 안은 아이도 잃은 여인이 어떻게 팔천 편의 찬송을 썼을까요? 그녀가 남긴 유명한 말에 답이 있습니다. 만일 태어날 때 선택할 수 있었다면 그래도 맹인으로 태어나기를 택했을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이유가 더 놀랍습니다. 세상의 어지러운 것들로 눈이 흐려지지 않았기에 하늘의 것을 더 또렷이 볼 수 있었다는 설명이며, 천국에서 가장 먼저 보고 싶은 얼굴이 자기 구주의 얼굴이라는 고백이었습니다. 레아가 네 번째 아들에게서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돌아섰던 그 전환이 여기서도 보입니다.
1873년에 그녀가 쓴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의 첫 줄은 복된 확신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자기에게 없는 것을 세던 자리에서 이미 받은 것을 세는 자리로 옮겨 간 사람의 노래입니다. 비교는 감사를 죽이고 감사는 찬송을 낳습니다.
불에 타 버린 십 년의 원고: 윌리엄 캐리

야곱의 이십 년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또 한 사람은 근대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캐리입니다. 1761년 영국 노샘프턴셔의 가난한 직조공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구두를 수선하며 라틴어와 히브리어를 혼자 익혔습니다. 1793년 인도로 떠나 사십일 년을 머물며 한 번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은 사람입니다.
인도에서의 첫 칠 년은 참담했습니다. 회심자가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고, 다섯 살 난 아들 피터가 이질로 죽었으며, 아내 도로시는 그 충격 이후 정신 질환을 얻어 오래 고통받습니다. 그래도 그는 세람포어에 인쇄소를 세우고 성경 번역에 몰두했습니다.

1812년 3월 11일 저녁, 그 인쇄소에서 불이 납니다. 캐리는 그때 출장 중이었고, 이튿날 돌아와 재가 된 건물 앞에 섰습니다. 산스크리트어 사전의 원고, 여러 언어의 문법서, 번역이 끝난 성경 원고와 활자 세트가 십 년의 수고와 함께 타 버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가 한 말이 전기에 전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낮추셨다는 것,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울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울면서도 다시 책상에 앉은 것입니다.
그 뒤의 일이 더 놀랍습니다. 영국에서 소식을 들은 성도들이 모금을 시작했고, 필요한 금액이 오십 일 만에 다 채워졌습니다. 재건된 인쇄소는 이전보다 더 큰 규모로 움직여 마흔 개가 넘는 언어와 방언으로 성경을 펴내는 일로 이어졌습니다.
위 사진은 오늘날 세람포어 대학에 있는 캐리 박물관입니다. 그가 쓰던 책상과 의자와 시계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라반의 집에서 밤을 지키던 야곱처럼, 캐리도 보는 사람 없는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쌓았습니다.
그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전해집니다. 자기를 천재라 부르지 말고 꾸준히 한 걸음씩 걷는 사람이라 불러 달라는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장부는 재능보다 성실을 더 정확히 기록하신다는 사실을 두 사람의 생애가 함께 증언합니다.
기도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남의 것을 세느라 내 손에 주어진 은혜를 흐리게 만드는 비교의 습관에서 벗어나기를 구하며, 수단보다 기도를 먼저 붙드는 사람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아울러 보는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도 성실을 지키는 하루하루가 쌓이기를 기도드립니다.
가정을 위해서는, 형제와 자매가 서로의 결핍만 바라보며 다투지 않고 서로의 몫을 축복하는 집이 되기를 구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는, 안장 밑에 감추어 둔 드라빔을 내어놓고 함께 벧엘로 올라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이 사회가 정당한 품삯을 열 번씩 고쳐 쓰는 자리에서 약속을 지키는 성도들이 세워지기를, 그리고 눈 붙일 겨를 없이 수고하는 열방의 일꾼들이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기를 간절히 아룁니다.
라헬을 생각하신 하나님, 레아의 소원을 들으신 하나님, 오늘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은 사람의 흥정과 다툼이 뒤엉킨 자리에서도 약속을 기억하시고 때를 따라 응답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그 신실하심을 생각하며 감사의 마음으로 엎드립니다.
응답이 늦다고 느껴질 때마다 조급하게 제 방법을 꺼내 들었던 날들을 고백합니다. 합환채를 찾던 손과 흥정하던 입을 용서하여 주시고, 생명과 때를 주관하시는 주님만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기다림이 길어질 때에도 주님의 때가 가장 좋은 때임을 믿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십 년의 수고를 지켜보신 주님, 지금 억울한 자리에서 일하는 저희 형제와 자매를 기억하여 주옵소서. 사람의 계약은 바뀌어도 주님의 장부는 바뀌지 않음을 믿게 하시고, 밤의 추위와 낮의 더위를 견디는 그 수고에 반드시 열매를 더하여 주옵소서.
밤에 라반을 막아 주신 주님, 저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주님이 막아 주신 위험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보이지 않는 보호에 감사하는 입술을 주시고, 두려움보다 주님의 동행을 더 크게 보는 눈을 열어 주시기 바랍니다.
벧엘의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알려 주신 주님, 저희가 처음 드렸던 서원을 다시 기억하게 하여 주옵소서. 집안에 숨어든 우상을 미련 없이 버리게 하시고, 은혜로 시작하신 구원이 날마다 거룩한 삶으로 자라 가게 하여 주옵소서. 다시 오실 주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오늘 한 걸음을 성실하게 걷겠습니다. 이 모든 말씀을 저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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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런스
-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대한성서공회, 1998. 본문 출처: https://www.bskorea.or.kr
- 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Vol. 1 (Genesis to Deuteronomy), 1708–1710;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판 참조. (창 30~31장 주해, 합환채에 관한 주)
- John Wesley, Explanatory Notes upon the Old Testament, Bristol: William Pine, 1765. (창세기 30~31장 주해)
- John Wesley, Sermon 85: On Working Out Our Own Salvation, 1785. (은혜와 성화의 동시 강조)
- Henry M. Morris, The Genesis Record: A Scientific and Devotional Commentary on the Book of Beginnings,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76. (가지와 양 떼 번식에 관한 설명)
- C. I. Scofield, ed., The Scofield Reference Bibl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09.
- John MacArthur, ed., The MacArthur Study Bible, Nashville: Word Publishing, 1997. (창 30~31장 주)
- Kenneth A. Mathews, Genesis 11:27–50:26, The New American Commentary 1B, Nashville: Broadman & Holman, 2005.
-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95. (자카르의 용례와 드라빔 논의)
- Ephraim A. Speiser, Genesis, The Anchor Bible 1, New York: Doubleday, 1964. (누지 토판과 드라빔·대리모 관행에 관한 자료)
- Michael Zohary, Plants of the Bibl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2. (두다임과 만드라고라의 식물학적 설명)
- Nelson Glueck, The River Jordan,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46. (길르앗과 요단 동편 고원 지대에 관한 조사)
- Fanny J. Crosby, Memories of Eighty Years, Boston: James H. Earle & Company, 1906. (시력 상실의 경위와 생애 회고)
- Bernard Ruffin, Fanny Crosby: The Hymn Writer, Uhrichsville: Barbour Publishing, 1995.
- S. Pearce Carey, William Carey, London: Hodder and Stoughton, 1923. (1812년 세람포어 인쇄소 화재와 재건의 기록)
- George Smith, The Life of William Carey, Shoemaker and Missionary, London: John Murray, 1885.
- 이미지 출처(모두 위키미디어 공용에서 크기를 줄여 주소로 임베딩함): 카르탈 산지 아와시 양 떼 사진, Zeynel Cebeci, CC BY-SA 4.0 / 누르다으 아와시 양 떼 사진, Zeynel Cebeci, CC BY-SA 4.0 / 누지 토판 사진, Zunkir, CC BY-SA 4.0 / 합환채 사진, H. Zell, CC BY-SA 3.0 / 유다 토기 여인상 사진, Chamberi, CC BY-SA 3.0 / 아즐룬 산지 사진, hikinginjordan, CC BY-SA 3.0 / 길르앗 지도, 『성경백과사전』 1903, 퍼블릭 도메인 / 패니 크로스비 사진, 퍼블릭 도메인 / 윌리엄 캐리 판화, 웨일스 국립도서관, 퍼블릭 도메인 / 세람포어 캐리 박물관 사진, PIN 712201, CC BY-SA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