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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차 (창세기 27장 ~ 창세기 29장)

요단 서안 베이틴 마을 일대의 언덕, 고대 벧엘로 알려진 지역, Bukvoed 촬영, CC BY 4.0

요단 서안 베이틴 마을 일대의 언덕, 고대 벧엘로 알려진 지역, Bukvoed 촬영, CC BY 4.0

21일차 (창세기 27장 ~ 창세기 29장)

본문

창세기 27장

  1.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2. 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3.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4.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5. 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
  6. 리브가가 그의 아들 야곱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가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7.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어 내가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8.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9.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아버지를 위하여 그가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10. 네가 그것을 네 아버지께 가져다 드려서 그가 죽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11. 야곱이 그 어머니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12.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13.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
  14. 그가 가서 끌어다가 어머니에게로 가져왔더니 그의 어머니가 그의 아버지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더라
  15. 리브가가 집 안 자기에게 있는 그의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가져다가 그의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16. 또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히고
  17. 자기가 만든 별미와 떡을 자기 아들 야곱의 손에 주니
  18.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르니 이르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19. 야곱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일어나 앉아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20. 이삭이 그의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이르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21. 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져보려 하노라
  22. 야곱이 그 아버지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이르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23. 그의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24. 이삭이 이르되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가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25. 이삭이 이르되 내게로 가져오라 내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 야곱이 그에게로 가져가매 그가 먹고 또 포도주를 가져가매 그가 마시고
  26.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
  27.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30.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 앞에서 나가자 곧 그의 형 에서가 사냥하여 돌아온지라
  31. 그가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되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32.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그가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33.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34. 에서가 그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슬피 울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35. 이삭이 이르되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앗았도다
  36. 에서가 이르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이르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37.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의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주었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38. 에서가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가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39. 그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
  40.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
  41.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42. 맏아들 에서의 이 말이 리브가에게 들리매 이에 사람을 보내어 작은 아들 야곱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 형 에서가 너를 죽여 그 한을 풀려 하니
  43.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로 피신하여
  44.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
  45.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사람을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46.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창세기 28장

  1.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2.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3.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4.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5. 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매 그가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아람 사람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머니 리브가의 오라비더라
  6.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7.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따라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8.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9.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창세기 29장

  1. 야곱이 길을 떠나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2.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워 있으니 이는 목자들이 그 우물에서 양 떼에게 물을 먹임이라 큰 돌로 우물 아귀를 덮었다가
  3. 모든 떼가 모이면 그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그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는 우물 아귀 그 자리에 다시 그 돌을 덮더라
  4.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형제여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하란에서 왔노라
  5.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이르되 아노라
  6.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평안하냐 이르되 평안하니라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
  7. 야곱이 이르되 해가 아직 높은즉 가축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게 하라
  8.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니라
  9.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동안에 라헬이 그의 아버지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더라
  10.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의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11. 그가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12.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버지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말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버지에게 알리매
  13. 라반이 그의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며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말하매
  14.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15.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
  16. 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17.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18.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19. 라반이 이르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21.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22. 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23. 저녁에 그의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24. 라반이 또 그의 여종 실바를 그의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25.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26.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27.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28.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29. 라반이 또 그의 여종 빌하를 그의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30.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31.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32.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33.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34.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35.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본문 해설

속임수로 열리고 은혜로 닫히는 세 장

오늘 본문은 성경에서 가장 솔직한 가정 기록 가운데 하나입니다. 늙은 아버지의 눈이 어두워진 사이에 어머니와 작은아들이 짜고 형의 복을 가로채고, 그 일 때문에 집안이 갈라지고 한 아들은 밤길을 떠납니다. 그런데 바로 그 도망길 한복판에서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잇는 통로를 보여 주시며 먼저 말을 거십니다. 사람의 속임수로 열린 세 장이 하나님의 은혜로운 약속으로 닫히는 것입니다.

창세기 27장부터 29장까지는 야곱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가나안의 장막을 떠나 하란에 이르고, 거기서 두 아내를 얻어 열두 지파의 뿌리가 세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이 세 장을 읽는 것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의 태동을 지켜보는 일과 같습니다.

많은 보수적인 주석가들은 야곱이 하란으로 떠날 때의 나이를 일흔일곱 살 무렵으로 계산합니다. 창세기 47장 9절에서 야곱이 애굽 왕 앞에서 자기 나이를 백삼십 세라 말한 것과, 요셉이 서른에 총리가 되어 풍년 일곱 해와 흉년 두 해를 지난 시점을 맞추어 역산한 결과입니다. 노인이 되어 떠난 길이었으니 그 밤의 외로움이 더욱 깊었을 것입니다.

눈 어두운 아버지와 별미 한 그릇

튀르키예 아다나 코잔 지역에서 풀을 뜯는 흑염소 떼, Zeynel Cebeci 촬영, CC BY-SA 4.0
튀르키예 아다나 코잔 지역에서 풀을 뜯는 흑염소 떼, Zeynel Cebeci 촬영, CC BY-SA 4.0

27장 1절은 쓸쓸한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라는 기록입니다. 그는 이때 백삼십 대 중반이었다고 추정되며, 실제로는 백팔십 세까지 더 살게 됩니다.

이삭은 에서를 불러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 오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 조용한 불순종이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리브가에게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이삭이 몰랐을까요? 집안의 가장이 그 신탁을 전해 듣지 못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그는 알면서도 입맛에 맞는 아들에게 복을 돌리려 했던 것입니다.

매튜 헨리는 그의 주석에서 이 대목을 두고, 이삭이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애정에 끌려 움직였다고 지적합니다. 신앙의 사람에게도 편애는 분별을 흐리게 하는 안개와 같습니다. 눈이 어두워진 것은 그의 시력만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리브가의 계획과 염소 가죽

5절부터 리브가가 움직입니다. 그녀는 남편의 말을 엿듣고 곧바로 야곱을 불러 염소 새끼 두 마리를 잡아 오게 합니다. 어제 본문에서 야곱을 사랑했던 그 어머니가, 이제 아들을 속임수의 공범으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야곱의 반응은 흥미롭습니다. 그는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11절과 12절에서 들킬까 봐 두렵다고 말합니다. 죄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발각될 위험을 걱정한 것이니, 그의 양심은 이미 한참 기울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대답이 더 놀랍습니다.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라는 말입니다. 아들을 지키려는 모성이지만, 하나님의 저주를 자기가 떠안겠다는 말은 사람이 입에 올릴 만한 말이 아닙니다.

자녀를 위한 일이라면 어떤 수단이든 괜찮은 걸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행하는 죄도 여전히 죄입니다.

위 사진처럼 중동의 염소는 대개 검고 털이 거칩니다. 리브가는 그 가죽을 야곱의 손과 목에 입히고, 에서의 좋은 의복을 꺼내 입혔습니다. 들에서 사냥하던 형의 옷에는 풀과 흙과 바람의 냄새가 배어 있었을 것입니다.

음성은 야곱이나 손은 에서

18절부터 24절은 손에 땀이 날 만큼 조마조마한 문답입니다. 아버지가 네가 누구냐 묻자 야곱은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하고 대답합니다. 거짓말이 입에서 나오기 시작하면 멈추기 어렵습니다.

20절은 특히 아픕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잡았느냐는 물음에 야곱은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답합니다. 거짓을 꾸미는 자리에 하나님의 이름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22절의 이삭의 말이 이 장면의 핵심을 찌릅니다.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는 말입니다. 겉은 속일 수 있었지만 속은 끝내 감춰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드실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언약을 맡기셨을까요? 하나님은 야곱의 속임수를 승인하신 것이 아니라, 그 속임수에도 불구하고 자기 계획을 지켜 가신 것입니다. 성경은 야곱의 죄를 감추지 않고 그대로 적어 두어 우리에게 경계를 남깁니다.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

27절부터 29절은 이삭이 선포한 축복의 내용입니다. 먼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 나오는데, 이것은 가나안의 농업 현실을 정확히 짚은 표현입니다.

왜 비가 아니라 이슬을 먼저 말했을까요? 가나안에서는 넉 달이 넘도록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건기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메마른 철에 지중해에서 밀려오는 밤이슬이 포도와 곡식을 살렸으니, 이슬은 곧 생존을 가르는 은총이었습니다.

이어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라는 말이 나옵니다. 한 유목민 노인이 둘째 아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의 크기를 훌쩍 넘어섭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이 세 번째 세대로 넘어가는 공식 선언이었습니다.

29절 마지막 문장은 창세기 12장 3절을 그대로 되울립니다.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하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 말씀이 야곱 위에 다시 얹힌 것입니다.

세대주의적 성경 해석의 전통에서는 이 약속의 땅과 자손에 관한 내용을 문자 그대로 성취될 약속으로 읽습니다. 교회가 그 복을 영적으로 대신 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 후 지상에 세워질 왕국에서 이스라엘에게 실제로 이루어질 약속이라는 뜻입니다. 스코필드 주석과 라이리의 주해가 이 입장을 분명히 밝힙니다.

심히 크게 떨던 아버지와 소리 질러 운 형

30절부터 40절은 들통난 뒤의 소란입니다. 에서가 별미를 들고 들어오자 이삭은 심히 크게 떨며 말합니다. 히브리어 본문은 거의 경련에 가까운 큰 떨림을 묘사합니다.

그가 떤 이유가 무엇일까요? 속은 분함만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려 했고 그런데도 하나님의 뜻이 관철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룩한 두려움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축복을 거두지 않고 33절에서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하고 확정합니다.

34절의 에서는 보기에 안타깝습니다. 소리 질러 슬피 울며 아버지에게 자기에게도 복을 달라고 매달립니다. 히브리서 12장 17절은 이 장면을 두고 그가 눈물로 구하였으나 돌이킬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적습니다.

36절에서 에서는 동생의 이름을 두고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하고 외칩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잊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빼앗긴 것이 아니라 팥죽 한 그릇에 스스로 팔아 버린 것이었습니다.

39절과 40절의 말은 축복이라기보다 예고입니다.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칼을 믿고 생활하겠다는 말인데, 실제로 에돔은 페트라 일대의 척박한 암반 지대에서 교역과 약탈로 살아갔습니다. 열왕기하 8장 20절은 에돔이 유다의 손에서 벗어난 일을 기록하니, 멍에를 떨쳐버리리라는 말도 역사 속에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두 번 떠나보내는 아버지

1900년대 초 남쪽에서 바라본 벧엘 일대, 오리건주립대 특별소장자료, 이용 제한 없음
1900년대 초 남쪽에서 바라본 벧엘 일대, 오리건주립대 특별소장자료, 이용 제한 없음

41절에서 에서는 마음속으로 살인을 계획합니다. 그 말이 리브가에게 들리자 그녀는 야곱을 하란으로 보냅니다. 몇 날 동안만 머물라고 했지만 그 몇 날은 이십 년이 되었고, 어머니는 아들을 다시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속임수로 얻은 것의 값이 바로 이것입니다. 복은 받았으나 고향과 어머니와 평안을 함께 잃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통해서도 자기 뜻을 이루시지만 죄의 열매를 면제해 주지는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그 몇 날은 왜 이십 년이 되었을까요? 사람이 뿌린 분노와 불신이 그만큼 오래 삭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하나님의 손에 있었고, 야곱은 그 시간을 고스란히 견뎌 내야 했습니다.

28장 1절부터 5절에서 이삭이 다시 야곱을 불렀습니다. 이번에는 속아서가 아니라 알고서 축복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복을 주시어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주시기를 원한다는 말입니다.

여기 쓰인 전능하신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 샤다이입니다. 창세기 17장 1절에서 아브라함에게 처음 나타나신 그 이름이 손자에게 다시 불려지는 것입니다. 이삭은 이제야 자기 애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에 자기를 맞추었습니다.

6절부터 9절은 에서의 뒤늦은 처신을 보여 줍니다. 아버지가 가나안 여자를 싫어하는 것을 알아채고 이번에는 이스마엘의 딸 마할랏을 아내로 맞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눈치를 보아 고친 선택은 언약의 길과 여전히 멀었습니다.

벧엘의 사닥다리와 하늘의 문

아렌트 더 헬더르가 그린 야곱의 꿈, 퍼블릭 도메인
아렌트 더 헬더르가 그린 야곱의 꿈, 퍼블릭 도메인

10절과 11절의 묘사가 참으로 처연합니다. 브엘세바를 떠난 야곱이 해가 진 어느 곳에 이르러 돌을 베개로 삼고 누웠습니다. 종도 낙타도 없이 지팡이 하나만 들고 떠난 길이었습니다.

그곳은 오늘날 요단 서안의 베이틴 마을 일대로,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십칠 킬로미터 떨어진 해발 팔백 미터대의 고지입니다. 위 사진은 이십 세기 초에 남쪽에서 그 지역을 담은 모습입니다. 돌이 많고 바람이 거친 능선이니 베개로 쓸 돌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12절에서 꿈이 시작됩니다.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고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으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여기 사닥다리로 옮긴 히브리어 술람은 구약 전체에서 이 한 번만 나오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정확히 무엇을 가리킬까요? 어원이 쌓아 올린다는 뜻의 동사와 연결되므로 사다리보다는 넓은 돌계단이나 경사로에 가깝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하늘과 땅 사이에 거대한 계단 하나가 놓인 광경입니다.

13절부터 15절의 말씀이 꿈의 핵심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하십니다. 그리고 땅과 자손과 만민의 복을 야곱에게 직접 약속하십니다.

15절은 도망자에게 주시는 네 겹의 약속입니다. 함께 있겠다, 지키겠다, 돌아오게 하겠다, 다 이루기까지 떠나지 않겠다는 네 마디가 잇따라 울립니다. 야곱이 무엇을 잘해서 받은 말씀이 아니니, 이것이 바로 먼저 찾아오시는 은혜입니다.

더 나아가 주님은 요한복음 1장 51절에서 이 꿈을 자신에게 적용하십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하늘과 땅을 잇는 그 계단은 한 사람의 꿈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는 표지였습니다.

돌기둥과 십분의 일의 서원

16절과 17절에서 야곱이 잠을 깹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하고 고백하고는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라고 외칩니다. 하나님이 특정 성소에만 계신 줄 알았던 사람의 세계관이 그 밤에 무너진 것입니다.

18절과 19절에서 그는 베개로 삼았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기름을 붓고 그 곳을 벧엘이라 부릅니다. 벧엘은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며, 이 성의 옛 이름 루스는 아몬드 나무와 연결되는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20절부터 22절의 서원을 두고 어떤 분들은 야곱이 하나님과 흥정했다고 비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조건을 단 듯한 말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구한 것은 떡과 옷과 돌아갈 길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두 가지를 약속합니다.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라는 것과,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반드시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십일조가 언급되는 두 번째 자리이며, 율법이 주어지기 수백 년 전의 자발적 헌신이었습니다.

웨슬리는 그의 『구약성서 주해』에서 이 서원을 믿음의 첫 걸음으로 높이 평가합니다. 완전하지 않은 사람의 완전하지 않은 고백을 하나님이 받으시고 거기서부터 평생의 성화를 시작하신다는 점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하란의 들과 우물가의 만남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바벨로니아, 앗수르를 그린 1903년 『성경백과사전』 수록 지도, 퍼블릭 도메인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바벨로니아, 앗수르를 그린 1903년 『성경백과사전』 수록 지도, 퍼블릭 도메인
메소포타미아 하란 평원의 우물, 데이비드 프레이저의 1909년 저서 수록 사진, 퍼블릭 도메인
메소포타미아 하란 평원의 우물, 데이비드 프레이저의 1909년 저서 수록 사진, 퍼블릭 도메인

29장 1절은 야곱이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렀다고 짧게 적습니다. 브엘세바에서 하란까지는 직선으로도 칠백 킬로미터가 넘는 길이고, 실제 대상로를 따라가면 팔백 킬로미터를 웃도는 여정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이 길을 어떤 마음으로 걸었을까요? 종도 낙타도 없이 지팡이 하나만 들고 걸었으니, 벧엘에서 들은 그 약속 외에는 붙들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2절부터 3절의 우물 묘사는 고대 근동의 생활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우물 아귀를 큰 돌로 덮어 두었다가 모든 떼가 모이면 함께 돌을 옮겼습니다. 물은 사막의 생명이었으니 아무도 혼자 쓰지 못하게 공동으로 관리한 것입니다.

위 사진은 이십 세기 초 하란 평원의 우물을 담은 기록입니다. 깊은 구덩이와 그 위를 덮는 구조가 본문의 설명과 잘 맞습니다. 이런 장면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10절에서 야곱은 라헬을 보고 혼자서 그 돌을 옮깁니다. 일흔일곱 살 노인에게서 나온 힘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전날 밤 벧엘에서 받은 약속이 그의 등을 밀고 있었다고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11절은 뜻밖의 눈물입니다. 그가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 내어 울었다고 합니다. 고향을 떠나 외롭게 걸어온 길 끝에서 친족을 만났으니, 그 울음에는 안도와 감격이 함께 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긴 사랑

튀르키예 샨르우르파 하란의 성벽 유적, Clemens Schmillen 촬영, CC BY-SA 4.0
튀르키예 샨르우르파 하란의 성벽 유적, Clemens Schmillen 촬영, CC BY-SA 4.0

하란은 유프라테스 상류의 발리크 강 유역에 있던 교역 도시이며, 오늘날 튀르키예 샨르우르파 주에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위 사진의 성벽이 그 흔적입니다. 달 신을 섬기는 신전으로 유명했던 곳이니, 야곱은 우상의 도시 한복판에서 이십 년을 버텨야 했습니다.

15절에서 라반이 품삯 이야기를 꺼냅니다. 조카를 공짜로 부릴 수 없다는 명분이지만, 실제로는 노동력을 묶어 두려는 계산이 깔린 제안이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위하여 칠 년을 섬기겠다고 답합니다.

고대 근동에서 신랑은 신부의 집에 모하르라 불리는 결혼 예물을 지불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과 누지에서 나온 토판 문서들이 이런 관행을 보여 줍니다. 돈이 없는 야곱은 자기 몸의 노동으로 그 값을 치른 것입니다.

라반은 왜 칠 년이라는 긴 기간을 선뜻 받아들였을까요? 숙련된 목자 한 사람을 공짜로 칠 년 동안 쓰는 계약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조카는 가족이기 전에 값싼 노동력이었던 셈입니다.

20절의 한 문장이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표현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하는 말입니다. 사랑이 시간의 무게를 바꾸어 놓는다는 사실을 이보다 잘 보여 주는 구절을 찾기 어렵습니다.

아침에 보니 레아였던 밤

튀르키예 하란의 벌집 모양 흙집, Dosseman 촬영, CC BY-SA 4.0
튀르키예 하란의 벌집 모양 흙집, Dosseman 촬영, CC BY-SA 4.0

22절부터 25절은 통쾌하면서도 서늘한 반전입니다. 잔치가 끝난 저녁에 라반은 레아를 들여보냈고, 야곱은 아침에 보니 레아라 하고 깨닫습니다. 형을 속인 사람이 똑같은 방식으로 속임을 당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당시 신부는 두꺼운 너울을 쓰고 있었고, 혼인 잔치에서는 포도주가 넘쳤으며, 위 사진처럼 창이 거의 없는 흙집의 밤은 칠흑처럼 어두웠습니다. 속임의 조건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25절에서 야곱이 외치는 말을 보시기 바랍니다.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하는 항의입니다. 속였다는 그 히브리어 단어는 27장 35절에서 이삭이 야곱을 가리켜 쓴 바로 그 말과 같습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라반의 변명입니다.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하는 말입니다. 그런 관습이 정말 있었다면 칠 년 전에 말했어야 했으니, 이것은 관습을 빌린 뒤늦은 핑계였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의 말씀이 여기서 울립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는 말씀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지만, 자기가 심은 속임의 씨도 고스란히 거두어야 했습니다.

레아의 네 아들과 유다라는 이름

31절에서 본문의 시선이 갑자기 레아에게 옮겨집니다.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하는 기록입니다. 집안에서 가장 서러운 자리에 있던 여인을 하나님이 가장 먼저 보셨습니다.

르우벤이라는 이름에는 보라 아들이라는 뜻과 함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다는 고백이 담겼습니다. 둘째 시므온은 들으심이라는 뜻이고, 셋째 레위는 연합한다는 뜻입니다. 세 아들의 이름이 모두 남편의 사랑을 향한 호소였습니다.

그런데 넷째에서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35절에서 레아는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말하며 아들의 이름을 유다라 짓습니다. 사람의 사랑을 구하던 입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입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 작은 변화가 어디까지 이어졌을까요? 바로 그 유다의 혈통에서 다윗이 나오고, 다윗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십니다. 마태복음 1장 2절과 3절이 그 계보를 또박또박 적어 둡니다.

사랑받지 못한 여인의 찬송 한마디가 구원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세상이 쳐다보지 않는 자리에서 가장 큰 일이 자라나는 법입니다.

묵상과 적용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먼저 묻는 것은 수단의 문제입니다. 야곱이 받은 복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었지만, 그가 사용한 방법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옳은 목표를 옳지 않은 길로 가려는 유혹이 신앙인에게 늘 찾아옵니다.

직장에서 정당한 승진을 바라며 동료의 공로를 슬쩍 가져오는 일, 교회에서 선한 사역을 위해 숫자를 조금 부풀리는 일, 가정을 지키려고 작은 거짓말을 쌓아 가는 일이 모두 같은 구조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 한 가지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간절히 원하는 그 일을 위해 쓰고 있는 수단을, 하나님 앞에 그대로 내놓을 수 있나요? 이 질문 하나가 많은 후회를 막아 줍니다.

두 번째로 가정의 편애를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삭의 입맛과 리브가의 애정이 한 집안을 두 편으로 갈라 놓았고, 그 금은 이십 년의 이별로 벌어졌습니다. 부모의 사소한 기울기가 자녀의 인생을 결정하는 지렛대가 되기도 합니다.

구체적으로 이렇게 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에 자녀 가운데 평소 말을 덜 걸었던 아이에게 먼저 다가가 따로 시간을 내어 보십시오. 교회의 소그룹에서도 눈에 덜 띄는 한 사람에게 같은 무게의 관심을 내어 보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적용은 가장 깊은 위로입니다. 하나님은 벧엘에서 야곱이 회개한 다음에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그가 여전히 속임의 결과를 끌어안고 도망하던 그 밤에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우리 구원의 시작도 이와 같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사람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그 찾아오심에 응답하는 순간 칭의와 중생이 주어집니다. 지금 실패의 한복판에 계신 분이 있다면 그 자리가 바로 하늘의 문일 수 있습니다.

네 번째로 서원과 성화를 함께 붙드시기 바랍니다. 야곱은 돌기둥을 세우고 십분의 일을 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은혜는 공짜로 받지만 그 은혜는 반드시 구체적인 헌신으로 열매 맺습니다.

재정으로 말하면 수입의 정직한 비율을 드리는 결단이고, 시간으로 말하면 하루의 첫 시간을 말씀과 기도에 떼어 놓는 훈련입니다. 거룩한 삶은 감정이 아니라 지켜 낸 약속의 축적으로 자랍니다.

다섯 번째로 심은 대로 거두는 질서를 겸손히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야곱은 용서받았으나 라반의 집에서 속임을 되돌려 받았고, 자기 아들들에게서 또 한 번 속임을 당하게 됩니다. 용서가 결과의 면제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오늘 지고 있는 무거운 결과가 있다면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 그 자리에서 다시 심기를 택하시기 바랍니다. 정직하게 심은 씨도 때가 되면 반드시 거두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레아의 자리에 서 있는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덜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분이 분명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는 분이시며, 가장 서러운 자리에 구원의 혈통을 심으셨습니다.

그 여인은 네 번째 아들에게서 사람의 사랑을 구하는 일을 멈추고 찬송을 택했습니다. 우리도 억울함을 세는 일에서 찬송을 세는 일로 옮겨 갈 수 있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 앞에서 그 찬송은 하나도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예화

속이던 청년에서 기도의 사람으로: 조지 뮐러

조지 뮐러의 초상, 『Men and Women of Deep Piety』 수록 삽화, 퍼블릭 도메인
조지 뮐러의 초상, 『Men and Women of Deep Piety』 수록 삽화, 퍼블릭 도메인

야곱의 젊은 날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인물이 있습니다. 평생 수만 명의 고아를 돌본 조지 뮐러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를 기도의 거인으로만 기억하는데, 그의 소년 시절은 야곱과 놀랄 만큼 닮아 있었습니다.

1805년 프로이센에서 세무 관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돈을 몰래 빼내는 일을 반복합니다. 아버지가 의심하여 액수를 세어 두면, 그는 미리 일부를 숨겨 놓고 계산이 맞는 것처럼 꾸몄습니다. 열 살 소년이 이미 속이는 기술을 익힌 셈입니다.

열네 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그 밤에도 그는 친구들과 술집에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열여섯 살에는 고급 여관을 돌며 묵고 돈을 내지 않아 감옥에 갇혔고, 아버지가 빚과 비용을 치르고서야 풀려나게 됩니다. 아버지의 돈으로 신학을 공부하면서도 그 돈을 유흥에 썼습니다.

그의 인생이 바뀐 날은 1825년 11월의 어느 토요일 저녁입니다. 할레에서 공부하던 중 친구의 권유로 베타라는 상인의 집에서 열린 작은 기도 모임에 따라갔습니다. 거기서 한 사람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날의 기억을 그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회고합니다. 자기가 평생 누린 모든 쾌락을 합친 것보다 그 저녁이 더 행복했다는 고백입니다. 거짓과 빚과 감옥으로 얼룩진 스무 살 청년에게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가 무언가를 결심해서 받은 은혜였을까요? 그는 설교를 들으러 간 것도 아니고 회개하려고 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벧엘의 돌베개처럼, 그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입니다.

그 뒤의 삶은 우리가 아는 그대로입니다. 1836년 브리스톨에서 고아 서른 명을 돌보는 일로 시작해, 애슐리 다운에 다섯 채의 큰 고아원을 세워 모두 만 명 넘는 아이를 길렀습니다. 평생 한 번도 모금 호소를 하지 않고 오직 기도로만 필요를 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브리스톨 애슐리 다운의 고아원 건물들, 퍼블릭 도메인
브리스톨 애슐리 다운의 고아원 건물들, 퍼블릭 도메인

위 그림이 그 애슐리 다운의 고아원들입니다. 아버지의 돈을 속여 쓴 소년이 남의 돈을 한 푼도 요청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은혜가 사람을 바꾸는 방향은 늘 이렇게 정확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존 뉴턴의 폭풍 밤

존 뉴턴의 초상, 웨일스 국립도서관 소장 판화, 퍼블릭 도메인
존 뉴턴의 초상, 웨일스 국립도서관 소장 판화, 퍼블릭 도메인

한 사람을 더 소개하고 싶습니다. 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쓴 존 뉴턴입니다. 그는 1725년 런던에서 태어나 일곱 살에 신앙 깊은 어머니를 잃고, 열한 살부터 아버지의 배를 타며 거친 뱃사람으로 자랐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노예 무역선에서 일했고, 입이 험해 선원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날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서아프리카에서는 한때 노예 상인의 손아래에서 자신이 종처럼 학대받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벧엘로 향하던 야곱처럼 갈 곳 없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결정적인 밤은 1748년 3월 10일에 찾아왔습니다. 그가 탄 그레이하운드 호가 북대서양에서 폭풍을 만나 배가 부서지기 시작했고, 그는 화물을 묶는 줄에 몸을 묶은 채 몇 시간 동안 물을 퍼내야 했던 것입니다. 그 와중에 자기 입에서 나온 한마디가 그를 흔들었습니다.

주님의 자비를 구하는 그 외침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비웃던 입으로 자비를 부르짖은 자신을 보고 그는 깊이 떨었습니다. 뉴턴은 그날을 평생 자기 구원의 기념일로 지켰고, 매년 3월 10일에 금식하며 그 밤을 되새겼다고 합니다.

1779년 『올니 찬송집』에 실린 「어메이징 그레이스」 원문,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 퍼블릭 도메인
1779년 『올니 찬송집』에 실린 「어메이징 그레이스」 원문,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 퍼블릭 도메인

회심 이후의 길은 단번에 곧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동안 노예선 선장으로 더 일했고, 건강 문제로 바다를 떠난 뒤 오랜 공부와 기다림을 거쳐 1764년에야 올니의 교구 사제가 되었습니다. 성화는 한순간의 감격이 아니라 평생에 걸친 걸음이었던 것입니다.

1773년 무렵 그는 올니에서 한 편의 찬송시를 썼습니다. 위 사진은 1779년에 출간된 『올니 찬송집』에 실린 그 원문입니다. 놀라운 은혜가 나 같은 비참한 자를 구원했다는 그 첫 줄은 자기 이야기를 그대로 적은 고백이었습니다.

말년에 기억을 잃어 가던 그가 남긴 말이 전해집니다. 기억하는 것이 두 가지뿐인데, 자기가 큰 죄인이라는 것과 그리스도가 큰 구주라는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배운 것도 바로 이 두 가지가 아닐까요? 자기를 똑바로 보는 눈과, 그런 자기를 찾아오신 분을 알아보는 눈입니다.

기도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옳은 것을 바라면서도 옳지 않은 길을 고르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를 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기다리는 사람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아울러 벧엘의 밤처럼 실패의 한복판에서도 먼저 찾아오시는 은혜를 알아보는 눈을 열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가정을 위해서는, 편애의 저울이 기울어 어느 자녀도 뒤로 밀려나지 않는 집이 되기를 구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는, 레아처럼 눈에 덜 띄는 성도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실제로 느끼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이 사회가 수단을 가리지 않는 성취를 떠받드는 자리에서 정직한 길을 택하는 성도들이 세워지기를, 그리고 우상의 도시 한복판에서 신앙을 지키는 열방의 형제자매들이 보호받기를 간절히 아룁니다.

도망하는 자의 베개 옆에 서 계시는 하나님, 오늘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은 사람이 주님을 찾기 전에 먼저 사람을 찾으시는 분이시며, 자격이 아니라 약속으로 일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그 신실하심을 생각하며 감사의 마음으로 엎드립니다.

속임의 손으로 복을 붙들려 했던 야곱의 마음이 저희 안에도 있음을 고백합니다. 더 빠른 길과 더 쉬운 길을 찾느라 주님의 이름까지 끌어다 쓴 날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정직이 손해처럼 보이는 자리에서도 끝까지 바른 길을 걸을 용기를 주시기 바랍니다.

벧엘에서 하늘의 문을 열어 보여 주신 주님, 저희 눈도 열어 주옵소서. 주님이 계시지 않는 줄 알았던 그 거친 자리에 주님이 계셨음을 깨닫게 하시고, 그 깨달음이 돌기둥 하나로 남아 평생의 표지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십분의 일을 드리겠다고 서원한 야곱처럼, 저희도 받은 은혜를 구체적인 헌신으로 바꾸게 하여 주옵소서. 재정과 시간과 말과 관계에서 주님께 먼저 떼어 드리는 몫이 있게 하시고, 그 작은 약속들을 끝까지 지키는 힘을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는 주님, 오늘 서러운 자리에 있는 저희 형제와 자매를 기억하여 주옵소서. 사람의 사랑을 세는 일을 멈추고 주님을 찬송하는 입을 열게 하시고, 그 찬송의 혈통에서 유다가 나오고 다윗이 나오고 마침내 그리스도가 오신 것을 기억하게 하여 주옵소서. 다시 오실 주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정직하게 걷겠습니다. 이 모든 말씀을 저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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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런스

  1.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대한성서공회, 1998. 본문 출처: https://www.bskorea.or.kr
  2. 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Vol. 1 (Genesis to Deuteronomy), 1708–1710;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판 참조. (창 27~29장 주해)
  3. John Wesley, Explanatory Notes upon the Old Testament, Bristol: William Pine, 1765. (창세기 27~29장 주해, 벧엘의 서원)
  4. John Wesley, Sermon 43: 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 1765. (선행은총과 칭의, 성화의 동시 강조)
  5. John Wesley, Sermon 85: On Working Out Our Own Salvation, 1785.
  6. Henry M. Morris, The Genesis Record: A Scientific and Devotional Commentary on the Book of Beginnings,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76.
  7. C. I. Scofield, ed., The Scofield Reference Bibl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09. (아브라함 언약의 문자적 성취에 관한 주)
  8. Charles C. Ryrie, Dispensationalism, Chicago: Moody Publishers, 1995 (개정판).
  9. John MacArthur, ed., The MacArthur Study Bible, Nashville: Word Publishing, 1997. (창 27~29장 주)
  10. Kenneth A. Mathews, Genesis 11:27–50:26, The New American Commentary 1B, Nashville: Broadman & Holman, 2005.
  11.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95. (술람의 어의와 벧엘 전승)
  12. Ephraim A. Speiser, Genesis, The Anchor Bible 1, New York: Doubleday, 1964. (누지 문서와 족장 시대의 결혼·상속 관행에 관한 자료)
  13. Seton Lloyd and William Brice, “Harran,” Anatolian Studies, Vol. 1 (1951), pp. 77–111. (하란의 성벽과 달 신 신전에 관한 조사)
  14. George Müller, A Narrative of Some of the Lord’s Dealings with George Müller, London: J. Nisbet & Co., 1837–1886 (전 4권). (소년기의 절도와 1825년 할레의 기도 모임에서의 회심)
  15. Arthur T. Pierson, George Müller of Bristol, New York: Baker and Taylor, 1899. (애슐리 다운 고아원의 설립 과정)
  16. John Newton, *An Authentic Narrative of Some Remarkable and Interesting Particulars in the Life of *******, London: 1764. (1748년 3월 폭풍 밤의 기록)
  17. John Newton and William Cowper, Olney Hymns, in Three Books, London: W. Oliver, 1779. (「어메이징 그레이스」 초판 수록면)
  18. 이미지 출처(모두 위키미디어 공용에서 크기를 줄여 주소로 임베딩함): 베이틴 일대 사진, Bukvoed, CC BY 4.0 / 아다나 흑염소 떼 사진, Zeynel Cebeci, CC BY-SA 4.0 / 남쪽에서 본 벧엘 사진, 오리건주립대 특별소장자료, 이용 제한 없음 / 야곱의 꿈 회화, 아렌트 더 헬더르, 퍼블릭 도메인 / 하란 평원의 우물 사진, 데이비드 프레이저, 퍼블릭 도메인 / 하란 성벽 사진, Clemens Schmillen, CC BY-SA 4.0 / 하란 벌집 흙집 사진, Dosseman, CC BY-SA 4.0 / 조지 뮐러 초상, 퍼블릭 도메인 / 애슐리 다운 고아원 그림, 퍼블릭 도메인 / 존 뉴턴 초상, 웨일스 국립도서관, 퍼블릭 도메인 / 『올니 찬송집』 수록면, 미국 의회도서관, 퍼블릭 도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