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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차 (창세기 25장 ~ 창세기 26장)

이스라엘 브엘세바에 있는 옛 우물, 아브라함의 우물로 전해지는 유적, Russianname 촬영, CC BY-SA 2.5

이스라엘 브엘세바에 있는 옛 우물, 아브라함의 우물로 전해지는 유적, Russianname 촬영, CC BY-SA 2.5

20일차 (창세기 25장 ~ 창세기 26장)

본문

창세기 25장

  1.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
  2.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고
  3. 욕산은 스바와 드단을 낳았으며 드단의 자손은 앗수르 족속과 르두시 족속과 르움미 족속이며
  4. 미디안의 아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이니 다 그두라의 자손이었더라
  5.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
  6.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
  7.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8.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9. 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10. 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
  11.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12. 사라의 여종 애굽인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은 아들 이스마엘의 족보는 이러하고
  13. 이스마엘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 이름과 그 세대대로 이와 같으니라 이스마엘의 장자는 느바욧이요 그 다음은 게달과 앗브엘과 밉삼과
  14. 미스마와 두마와 맛사와
  15. 하닷과 데마와 여둘과 나비스와 게드마니
  16. 이들은 이스마엘의 아들들이요 그 촌과 부락대로 된 이름이며 그 족속대로는 열두 지도자들이었더라
  17. 이스마엘은 향년이 백삼십칠 세에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갔고
  18.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
  19.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20.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21.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22.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24.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25.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26.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27.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28.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29.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30.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31.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2.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창세기 26장

  1.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3.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6.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7.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8. 이삭이 거기 오래 거주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9.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분명히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10. 아비멜렉이 이르되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할 뻔하였도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
  11. 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
  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15.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17.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18.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23.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25.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26.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27.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28.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29.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30.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3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32. 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이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알리어 이르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33.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
  34.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35.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본문 해설

한 세대가 저물고 다음 세대가 서는 자리

어제 우리는 리브가가 너울을 쓰고 이삭의 장막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멈추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뒤에 이어지는 세대 교체의 기록입니다. 창세기 25장은 아브라함의 마지막 날과 쌍둥이의 출생을 담고, 26장은 이삭이 홀로 서서 흉년과 시기와 우물 다툼을 통과하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믿음의 조상이 무대에서 내려가고 그 아들이 무대에 오르는 두 장인 셈입니다.

창세기 26장은 이삭을 주인공으로 삼은 거의 유일한 장입니다. 아브라함과 야곱에 비해 이삭의 이야기가 유난히 짧은 까닭이 무엇일까요? 성경은 그를 조용히 아버지의 우물을 다시 파는 사람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은 화려한 영웅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물려받은 믿음을 자기 손으로 다시 확인해 가는 한 사람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두라와 동방으로 보낸 아들들

25장 1절부터 6절은 사라가 떠난 뒤 아브라함의 노년을 간략히 적습니다. 그는 그두라를 후처로 맞아 여섯 아들을 더 얻었습니다. 그 가운데 미디안이라는 이름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미디안은 훗날 모세가 사십 년을 머물며 이드로의 딸 십보라를 아내로 맞은 그 민족의 조상입니다. 또 드단과 스바는 아라비아 교역로의 중심 부족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집에서 갈라져 나간 이름들이 중동 전역의 족보에 흩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5절과 6절의 처리 방식에 신앙의 질서가 담겨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모든 소유를 주고, 서자들에게는 재산을 주어 생전에 동쪽 땅으로 보냈습니다.

매정해 보이시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언약의 계보를 흐리지 않으려는 분명한 분별이었고, 다툼의 씨를 미리 없애 준 배려이기도 합니다.

백칠십오 세의 마침과 막벨라의 재회

팔레스타인 헤브론 막벨라 굴을 찾은 모습, Daniel Ventura 촬영, CC BY-SA 4.0
팔레스타인 헤브론 막벨라 굴을 찾은 모습, Daniel Ventura 촬영, CC BY-SA 4.0

7절과 8절은 믿음의 조상의 마지막을 간결하게 적습니다. 백칠십오 세에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다는 기록입니다. 창세기 15장 15절에서 하나님이 그에게 약속하신 바로 그 표현이 여기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여기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다는 말을 단순한 매장의 뜻으로만 읽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는 조상들이 묻힌 하란이 아니라 헤브론의 막벨라 굴에 장사되었으니, 이 표현은 몸의 위치가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인격의 존속을 가리킵니다. 주님이 마태복음 22장 32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며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근거가 바로 이 어법에 있습니다.

9절의 장면이 뭉클합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이 함께 아버지를 막벨라 굴에 장사했습니다. 21장에서 한 사람은 집에 남고 한 사람은 광야로 내보내졌던 두 형제가, 아버지의 관 앞에서 다시 나란히 섰던 것입니다.

그 굴은 아브라함이 은 사백 세겔을 달아 값을 치른 땅이었습니다. 평생 가진 유일한 부동산이 가족의 무덤이 되었고, 그 자리에서 사라와 아브라함이, 뒤에는 이삭과 리브가와 야곱과 레아가 함께 누웠습니다. 땅의 약속을 믿은 사람의 믿음이 흙 한 줌 위에 세대를 모아 놓은 셈입니다.

이스마엘의 열두 지도자와 광야의 길

네게브를 지나는 낙타 대상, 이스라엘 정부공보실 사진, CC BY 4.0
네게브를 지나는 낙타 대상, 이스라엘 정부공보실 사진, CC BY 4.0

12절부터 18절은 이스마엘의 족보입니다. 그에게서 열두 지도자가 나왔다고 16절이 적는데, 이것은 17장 20절에서 하나님이 하갈의 아들에게 약속하신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은 언약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하신 약속도 한 자도 흘리지 않고 지키십니다.

느바욧과 게달 같은 이름은 성경 다른 곳과 고대 기록에 다시 등장합니다. 이사야 60장 7절은 게달의 양 떼와 느바욧의 수양을 언급하고, 앗수르 왕들의 비문에도 게달 부족과의 전쟁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본문의 이름들이 실제 역사 속 부족과 맞물린다는 증거입니다.

18절은 그 거주 범위를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까지라고 적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아라비아 반도 북부에서 시나이에 이르는 광대한 사막 지대입니다. 위 사진의 낙타 대상처럼 교역로를 오가며 살아간 유목 부족의 세계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왜 이 족보를 언약의 계보 앞에 적어 둔 걸까요? 곁가지를 먼저 정리하고 본줄기로 들어가는 창세기의 서술 방식입니다. 이스마엘의 이야기를 여기서 마무리하고, 19절부터 이삭의 족보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태 속에서 싸운 두 아이

21절은 한 세대의 기도가 다음 세대에서 되풀이되는 것을 보여 줍니다. 리브가가 임신하지 못했고, 이삭은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했습니다. 20절과 26절을 맞추어 보면 결혼한 지 이십 년이 지난 뒤에야 응답이 온 셈입니다.

아버지는 스물다섯 해를 기다렸고 아들은 스무 해를 기다렸습니다. 믿음의 집안이라고 기다림이 짧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다만 아버지와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삭은 하갈을 부르지 않고 기도를 택했습니다.

22절의 상황은 참 낯섭니다. 두 아들이 태 속에서 서로 싸웠고, 리브가는 내가 어찌할꼬 하며 여호와께 물으러 갔습니다. 여기 싸운다로 옮긴 히브리어는 서로 밀치고 부딪친다는 뜻이니, 임신한 몸으로 견디기 어려운 통증이었을 것입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녀의 반응입니다. 그녀는 사람에게 묻지 않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창세기에서 여인이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 신탁을 받는 장면은 흔하지 않으니, 리브가의 영적 감각이 남달랐음을 알려 줍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신탁

페트라 인근 에돔 산지를 담은 이십 세기 초 사진, 베른하르트 모리츠 촬영, 퍼블릭 도메인
페트라 인근 에돔 산지를 담은 이십 세기 초 사진, 베른하르트 모리츠 촬영, 퍼블릭 도메인

23절의 응답은 개인의 가정사를 훌쩍 넘어서는 선언입니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하시며 두 민족의 운명을 알려 주시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고 선언하십니다. 고대 근동에서 장자가 모든 것을 상속받는 것이 상식이었으니, 이 말씀은 그 상식을 뒤집는 선언이었습니다.

에서에게서 나온 에돔은 위 사진에 보이는 세일 산지, 곧 페트라 일대의 험한 암반 지대에 자리를 잡습니다. 야곱에게서 나온 이스라엘과 에돔은 수백 년에 걸쳐 부딪쳤고, 민수기 20장에서 에돔은 이스라엘의 통행을 거절했습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로마서 9장 12절이 이 구절을 인용하기 때문에 사람의 선택과 무관하게 운명이 정해졌다고 읽으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두 민족의 역사적 역할에 대한 예고이며, 뒤이어 에서가 스스로 장자권을 팔아 버리는 장면이 곧바로 따라옵니다.

하나님의 앞선 아심과 사람의 실제 선택은 서로를 지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미리 아시는 분이시고, 사람은 그 은혜 앞에서 참으로 응답하거나 거절하는 존재입니다. 에서의 결말은 운명의 희생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고른 결과였습니다.

들사람 에서와 장막의 야곱

25절과 26절은 쌍둥이의 출생을 생생하게 그립니다. 먼저 나온 아이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에서라 불렸고, 뒤에 나온 아이는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와 야곱이라 불렸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에는 발꿈치를 잡는다는 뜻과 함께 남을 밀어낸다는 뜻도 겹쳐 있습니다.

27절은 두 아이의 성향을 대조합니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 되어 들로 나갔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 되어 장막에 머물렀습니다. 여기 조용하다로 옮긴 히브리어 탐은 흠 없고 온전하다는 뜻도 가지는 단어이니, 이 묘사는 단순한 성격 차이를 넘어섭니다.

28절은 이 가정의 균열을 한 문장으로 드러냅니다. 이삭은 에서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다는 기록입니다. 더 아픈 것은 그 사랑의 이유입니다. 아버지가 에서를 사랑한 까닭을 성경은 사냥한 고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적어 둡니다.

편애는 가정을 어떻게 망가뜨릴까요? 한쪽에게는 교만을, 다른 쪽에게는 상처와 경쟁심을 남깁니다. 27장에서 벌어질 속임수 사건의 뿌리가 이미 이 한 절에 심겨 있습니다.

팥죽 한 그릇과 가볍게 여긴 명분

붉은 렌틸콩 수프 한 그릇, Gilabrand 촬영, CC BY-SA 3.0
붉은 렌틸콩 수프 한 그릇, Gilabrand 촬영, CC BY-SA 3.0

29절부터 34절은 성경에서 가장 뼈아픈 거래 장면입니다.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 심히 피곤하여 붉은 것을 달라고 했고, 야곱은 그 틈에 장자의 명분을 팔라고 요구했습니다.

본문의 팥죽은 오늘 우리가 먹는 붉은 팥죽이 아니라 위 사진처럼 붉은 렌틸콩으로 쑨 죽입니다. 중동에서 가장 값싸고 흔한 끼니였고, 지금도 그 지역의 식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음식입니다.

장자의 명분, 곧 베코라는 무엇이었을까요? 신명기 21장 17절이 알려 주는 대로 두 배의 유산을 받는 권리이면서, 집안의 영적 지도권과 아브라함 언약의 계승이 함께 걸린 자리였습니다. 다시 말해 에서가 내놓은 것은 재산이 아니라 언약의 자리였습니다.

32절의 말에서 그의 속마음이 드러납니다.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는 말입니다. 그는 정말 죽을 지경이었을까요? 사냥꾼으로 들을 누비던 장년의 사내가 한 끼를 굶어 죽을 일은 없었으니,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눈앞의 욕구를 정당화하는 과장이었습니다.

34절의 마지막 문장이 모든 것을 요약합니다. 먹고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하는 평가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6절은 그를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자라고 부르고, 17절은 그가 뒤에 눈물로 구했으나 돌이킬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경고합니다.

흉년과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는 명령

26장 1절은 다시 흉년으로 시작합니다. 아브라함 때에도 흉년이 있었고, 이제 이삭의 때에 또 흉년이 들었습니다. 가나안은 강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땅이었기에 가뭄이 들면 곧 기근으로 이어집니다.

이삭은 그랄로 내려가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습니다. 여기 블레셋이라는 이름을 두고 후대의 표기라고 보는 견해가 있지만, 우리는 본문의 기록을 그대로 받습니다. 에게 해 방면에서 가나안 남서부 해안으로 들어온 초기 이주 집단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이해하면 충분합니다.

2절에서 하나님이 나타나 분명한 선을 그으십니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하는 명령입니다. 아버지는 흉년에 애굽으로 내려가 큰 수치를 겪었는데, 아들에게는 그 길을 아예 막으신 것입니다.

3절부터 5절의 약속은 아브라함 언약을 그대로 이어 줍니다. 땅과 자손과 천하 만민의 복이 다시 확인되고, 그 근거로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였음을 들어 주십니다. 아버지의 순종이 아들의 복이 되었으니, 한 사람의 신앙은 결코 그 사람 안에서 끝나지 않는 법입니다.

그랄에서 되풀이된 아버지의 거짓

7절을 읽으며 한숨이 나옵니다. 이삭이 리브가를 내 누이라 하였다는 기록입니다. 아버지가 애굽과 그랄에서 두 번 썼던 그 방법을, 아들이 같은 그랄에서 그대로 되풀이했습니다.

죄의 습관이 왜 이렇게 대물림되는 걸까요? 자녀는 부모의 설교보다 부모의 위기 대처법을 더 정확히 배우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두려울 때 거짓말을 꺼내는 것을 보고 자란 아들에게는 그것이 기본 설정값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8절의 장면은 조금 민망하기까지 합니다.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이삭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보았습니다. 거짓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늘 사소한 틈에서 들통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넘어짐 때문에 약속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11절에서 이방 왕의 입을 통해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는 보호 명령이 내려집니다. 사람이 자기 힘으로 지키려던 것을 하나님이 다른 방식으로 지켜 주신 셈입니다.

백 배의 결실과 막힌 우물들

수확을 앞둔 익은 밀 이삭, Yyanay 촬영, CC BY-SA 3.0
수확을 앞둔 익은 밀 이삭, Yyanay 촬영, CC BY-SA 3.0

12절은 흉년의 땅에서 일어난 반전을 전합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다는 기록입니다. 고대 근동의 수확 비율은 보통 열 배에서 삼십 배 정도로 추정되니, 백 배는 사람의 농사 기술로 설명되지 않는 숫자입니다.

본문도 그 이유를 숨기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라는 한 구절이 모든 설명을 대신합니다. 흉년에, 남의 땅에서, 유목민이 농사를 지어 백 배를 얻었으니 그 일대에 소문이 퍼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복은 곧 시기를 불러옵니다. 14절은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였다고 적고, 15절은 그들이 아브라함 때에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다고 전합니다. 광야에서 우물을 메우는 일은 단순한 심술이 아니라 생존을 끊는 적대 행위였습니다.

16절에서 아비멜렉은 우리를 떠나라고 통고합니다. 복을 받은 사람이 복 때문에 쫓겨나는 역설입니다. 그런데 이삭의 대응이 놀랍습니다. 다투거나 군사를 모으지 않고 조용히 장막을 옮겨 아버지의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18절의 한 구절이 이삭이라는 사람의 됨됨이를 알려 줍니다. 그는 우물들의 이름을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새 이름을 붙여 자기 업적으로 만들 수도 있었는데, 아버지의 신앙을 그대로 이어받겠다는 고백을 그 이름에 담은 것입니다.

에섹과 싯나를 지나 르호봇으로

네게브 사막의 막테시 라몬을 하늘에서 본 모습, 2013년 촬영, Godot13, CC BY-SA 4.0
네게브 사막의 막테시 라몬을 하늘에서 본 모습, 2013년 촬영, Godot13, CC BY-SA 4.0

19절부터 22절은 세 우물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첫 번째 우물에서 다툼이 일어나 이름이 에섹이 되었는데, 그 뜻은 다툼입니다. 두 번째 우물에서도 다툼이 일어나 싯나라 불렸으니, 대적함이라는 뜻입니다.

세 번째 우물에서는 아무도 다투지 않았고, 그 이름이 르호봇이 되었습니다. 넓은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삭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겠다는 말입니다.

이 세 이름의 순서가 무엇을 가르쳐 줄까요? 넓은 자리는 다툼을 이겨서 얻는 것이 아니라 양보하며 걸어간 끝에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삭은 두 번 물러섰고 세 번째 자리에서 하나님이 공간을 열어 주셨습니다.

로마서 12장 19절의 권면이 이 장면과 겹쳐집니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다고 주께서 말씀하셨으니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물러서는 것은 약함이 아니고 하나님께 자리를 내어 드리는 믿음의 행동입니다.

브엘세바의 제단과 맹세

텔 브엘세바 성문 밖 수로 체계 입구, Oren Rozen 촬영, CC BY-SA 4.0
텔 브엘세바 성문 밖 수로 체계 입구, Oren Rozen 촬영, CC BY-SA 4.0

23절과 24절에서 이삭은 브엘세바로 올라갑니다. 아버지가 에셀 나무를 심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 그 자리입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는 음성입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소개하시는 방식을 보시기 바랍니다.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면서도, 곧바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하시며 이삭 자신에게 약속을 주십니다. 물려받은 신앙이 자기 것이 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25절의 반응이 아름답습니다. 그는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장막을 쳤고, 종들은 또 우물을 팠습니다. 예배와 생활이 한자리에서 나란히 세워졌습니다.

26절부터 33절은 아비멜렉이 다시 찾아와 계약을 청하는 장면입니다. 그들의 고백이 인상 깊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는 말입니다. 쫓아낸 사람들이 다시 와서 평화를 구했으니, 양보하며 걸어온 길이 결국 증거가 된 것입니다.

마지막 두 절은 어두운 그림자를 남깁니다.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의 두 딸을 아내로 맞아 부모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다는 기록입니다.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긴 사람이 배우자 선택에서도 언약을 가볍게 여긴 셈이며, 이 근심이 27장의 긴 갈등으로 이어집니다.

묵상과 적용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은 분명합니다. 나는 무엇을 가볍게 여기고 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에서는 하나님을 욕하지 않았고 우상을 세우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눈앞의 한 끼를 영원한 명분보다 무겁게 여겼을 뿐입니다.

신앙은 대개 큰 배교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주일 하루를 다른 일정에 내어 주는 선택, 기도 시간을 미루고 영상을 더 보는 선택, 양심의 한 칸을 승진과 바꾸는 선택으로 조금씩 허물어집니다. 가볍게 여기는 마음이 모든 상실의 시작입니다.

그러니 오늘 한 가지를 저울에 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가 지키려고 애쓰는 것과 쉽게 내어 주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영원과 맞닿아 있나요? 그 답이 내 삶의 실제 우선순위를 알려 줄 것입니다.

두 번째로 기도를 먼저 택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은 자녀가 없을 때 하갈을 불렀고, 아들 이삭은 같은 문제 앞에서 여호와께 간구했습니다. 이십 년의 기다림이 짧아지지는 않았지만, 그 응답은 집안을 흔드는 대신 언약을 이어 주었습니다.

같은 문제라도 사람의 방법으로 풀면 열매가 오래 쓰라립니다. 직장의 난관과 자녀의 문제 앞에서 먼저 사람을 찾고 수단을 찾는 습관이 있다면, 순서를 바꾸는 작은 훈련을 오늘 시작해 보십시오.

세 번째 적용은 가정의 편애를 끊는 일입니다. 이삭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해서 에서를 사랑했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부모의 저울이 기울면 자녀의 마음은 그보다 더 크게 기웁니다.

구체적으로 점검해 보십시오. 자녀 가운데 성적이나 성격이나 나와 비슷한 점 때문에 더 눈길이 가는 아이가 있는지, 그래서 다른 아이가 집에서 덜 사랑받는다고 느끼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일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같은 점검이 필요합니다.

네 번째로 이삭처럼 물러서는 믿음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는 우물을 두 번 양보하고 세 번째 자리에서 르호봇을 얻었습니다. 그가 약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복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밀어붙여 쟁취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다투어 얻은 땅에는 평안이 없고, 하나님이 넓혀 주신 자리에는 다툼 없는 번성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공로를 가로채인 분, 교회 봉사에서 억울함을 겪은 분이 계시다면 오늘 한 발 물러서는 그 선택이 르호봇으로 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다섯 번째로 아버지의 우물을 다시 파시기 바랍니다. 이삭은 메워진 우물을 파내고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을 그대로 불렀습니다. 앞선 세대가 쌓은 신앙의 유산이 우리 시대에 흙으로 메워져 있을 수 있습니다.

새벽기도와 성경 통독, 십일조와 주일 성수, 가정 예배처럼 낡은 것처럼 보이는 그 우물들을 다시 파 보시기 바랍니다. 물은 유행에서 나오지 않고 늘 같은 깊이에서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물려받은 믿음을 자기 것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브엘세바의 밤에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 하시고는 곧 내가 너와 함께 있어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모의 신앙은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그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이삭은 그 밤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은혜로 시작된 구원이 각자의 결단과 순종을 거쳐 거룩한 삶으로 자라 가는 길이 여기 있으니, 오늘 우리도 우리 자리에 제단 하나를 쌓고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예화

유산을 다 내어 준 크리켓 선수

1882년 무렵의 찰스 토머스 스터드, 퍼블릭 도메인
1882년 무렵의 찰스 토머스 스터드, 퍼블릭 도메인

1882년 영국의 크리켓 팬들에게 가장 익숙한 이름 가운데 하나가 찰스 토머스 스터드였습니다. 흔히 C. T. 스터드로 불린 그는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에 다니며 영국 대표로 호주와 맞붙은 선수이고, 당대 최고의 올라운더로 꼽히는 사람입니다. 아버지는 인도에서 큰 재산을 모은 사업가였으니, 그에게는 명성과 부가 함께 예비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것은 아버지의 회심입니다. 무디의 집회에서 회심한 아버지가 집안을 복음으로 뒤흔들었고, 그 영향으로 아들도 돌아섰습니다. 1885년 그는 케임브리지의 동료 여섯 명과 함께 중국내지선교회 선교사로 중국에 가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중국으로 떠나기 전의 케임브리지 세븐, 1885년, 퍼블릭 도메인
중국으로 떠나기 전의 케임브리지 세븐, 1885년, 퍼블릭 도메인

영국 사회가 받은 충격은 대단합니다. 운동장의 영웅들과 명문가 자제들이 안락한 미래를 버리고 중국으로 간다는 소식에 신문이 들끓었고, 그들의 송별 집회는 대학가에 선교 열풍을 일으켰습니다. 이 일곱 사람을 가리켜 케임브리지 세븐이라고 부릅니다.

결정적인 장면은 1887년 그의 스물여섯 번째 해에 찾아왔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으로 약 이만 구천 파운드를 상속받게 된 것입니다.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수백만 파운드에 이르는 큰돈이었습니다.

그는 그 돈으로 무엇을 했을까요? 중국에서 편지를 써서 거의 전액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무디의 사역에, 조지 뮐러의 고아원과 선교 기금에, 윌리엄 부스의 구세군에, 그리고 여러 선교 단체에 보냈습니다. 그는 남겨 둔 삼천사백 파운드마저 결혼한 뒤 아내 프리실라와 의논하여 전부 내어놓습니다.

그 뒤의 삶도 한결같았습니다. 중국에서 인도로, 다시 쉰두 살의 나이에 아프리카 중앙부로 들어가 사역을 시작했고, 1931년 콩고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에서는 한 그릇 죽에 영원한 명분을 팔았고, 이 사람은 이만 구천 파운드에 영원한 상을 산 셈입니다. 어느 쪽이 더 남는 거래였을까요? 히브리서 11장 26절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고 증언합니다.

은 티스푼 두 개가 전부라던 사람

조지 롬니가 그린 존 웨슬리의 초상, 퍼블릭 도메인
조지 롬니가 그린 존 웨슬리의 초상, 퍼블릭 도메인

또 한 사람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입니다. 그는 돈에 대해 아주 단순한 세 가지 원칙을 평생 지켰습니다. 1744년에 쓴 설교 「돈의 사용」에서 그는 할 수 있는 만큼 벌고, 할 수 있는 만큼 아끼고, 할 수 있는 만큼 주라고 가르칩니다.

그 원칙을 그는 자기 삶에서 먼저 실험했습니다. 옥스퍼드의 펠로우로 있을 때 연 수입이 삼십 파운드였는데, 이십팔 파운드로 살고 두 파운드를 나누는 방식입니다. 이듬해 수입이 육십 파운드로 올랐을 때도 여전히 이십팔 파운드로 살고 서른두 파운드를 나누었습니다.

수입이 아흔 파운드, 백이십 파운드로 늘어도 그의 생활비는 좀처럼 변하지 않습니다. 늘어난 전부가 가난한 이들에게 흘러갔습니다. 평생 그의 책이 영국 전역에서 팔려 큰 돈이 들어왔지만, 세상을 떠날 때 그의 수중에 남은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런던의 웨슬리 채플, 감리교의 본부 교회, Jwslubbock 촬영, CC BY-SA 4.0
런던의 웨슬리 채플, 감리교의 본부 교회, Jwslubbock 촬영, CC BY-SA 4.0

1776년에 벌어진 일 하나가 특히 재미있습니다. 영국 국세청이 은 식기류에 세금을 매기면서 웨슬리에게도 보유 내역을 신고하라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유명한 설교자이니 은그릇이 많을 것이라 짐작한 것입니다.

그가 보낸 답장이 지금도 전해집니다. 자기에게 있는 은은 티스푼 두 개가 전부이며, 영국에 가난한 사람이 먹을 것이 없는 동안에는 더 사지 않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신고할 재산이 없다는 통보를, 그는 복음의 선언으로 바꾸어 보낸 셈입니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무엇이 보이시나요? 그들은 가난을 사랑한 사람이 아니고 값을 정확히 알아본 사람이었습니다. 에서는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것의 값만 보았고, 스터드와 웨슬리는 영원까지 남는 것의 값을 보았습니다. 성화의 은혜는 사람의 눈을 이렇게 바꾸어 놓으며, 그 눈이 열린 사람은 손을 펴는 일이 아깝지 않게 됩니다.

기도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눈앞의 한 끼를 영원한 명분보다 무겁게 여기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를 구하며, 가볍게 여기던 신앙의 자리들을 다시 소중히 붙들기를 간구합니다. 아울러 문제 앞에서 사람의 방법보다 기도를 먼저 택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가정을 위해서는, 편애의 저울을 바로잡아 어느 자녀도 덜 사랑받는다고 느끼지 않는 집이 되기를 구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는, 앞선 세대가 파 놓은 우물을 다시 파내고 그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이 사회가 다툼으로 땅을 넓히려는 자리에서 양보로 길을 내는 성도들이 세워지기를, 그리고 열방의 메마른 땅에 생수의 우물이 열리기를 간절히 아룁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며 또한 저희 각 사람의 하나님이신 주님, 오늘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은 한 세대가 저물어도 약속을 거두지 않으시며, 아버지에게 하신 말씀을 아들에게 다시 확인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그 변함없으심을 생각하며 감사의 마음으로 엎드립니다.

흉년의 땅에서 백 배의 결실을 주신 주님, 저희 형편이 메말랐을 때에도 주님이 복의 근원이심을 잊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손에 쥔 것이 적을 때 두려움이 앞서는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고,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 하신 그 음성에 순종할 힘을 주시기 바랍니다.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던 에서의 마음이 저희 안에도 있음을 고백합니다. 당장의 편안과 작은 이익 앞에서 영원한 것을 쉽게 내어 준 날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값을 바르게 알아보는 눈을 열어 주시고, 다시 돌이킬 기회를 주신 은혜에 감사하게 하여 주옵소서.

에섹과 싯나를 지나 르호봇에 이른 이삭처럼, 저희도 다투는 자리에서 한 걸음 물러설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억울함을 스스로 갚으려는 손을 내려놓게 하시고, 주님이 넓혀 주시는 자리를 기다리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브엘세바의 밤에 제단을 쌓은 이삭처럼, 물려받은 신앙을 저희 자신의 신앙으로 세우게 하여 주옵소서. 은혜로 시작하신 구원이 날마다 거룩한 삶으로 자라 가게 하시고, 다시 오실 주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오늘 심고 오늘 나누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저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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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런스

  1.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대한성서공회, 1998. 본문 출처: https://www.bskorea.or.kr
  2. 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Vol. 1 (Genesis to Deuteronomy), 1708–1710;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판 참조. (창 25~26장 주해)
  3. John Wesley, Explanatory Notes upon the Old Testament, Bristol: William Pine, 1765. (창세기 25~26장 주해)
  4. John Wesley, Sermon 50: The Use of Money, 1744. (벌고 아끼고 주라는 세 가지 원칙)
  5. John Wesley, Sermon 85: On Working Out Our Own Salvation, 1785. (은혜와 성화의 동시 강조)
  6. Henry M. Morris, The Genesis Record: A Scientific and Devotional Commentary on the Book of Beginnings,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76.
  7. C. I. Scofield, ed., The Scofield Reference Bibl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09. (장자권과 언약 계승에 관한 주)
  8. John MacArthur, ed., The MacArthur Study Bible, Nashville: Word Publishing, 1997. (창 25~26장 주)
  9. Kenneth A. Mathews, Genesis 11:27–50:26, The New American Commentary 1B, Nashville: Broadman & Holman, 2005.
  10.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95. (장자권 베코라의 법적 의미)
  11. Ze’ev Herzog, Beer-Sheba II: The Early Iron Age Settlements, Tel Aviv: Tel Aviv University Institute of Archaeology, 1984. (텔 브엘세바의 우물과 수로 체계)
  12. Ephraim Stern, ed., The New Encyclopedia of Archaeological Excavations in the Holy Land, Jerusalem: Israel Exploration Society, 1993. (그랄과 네게브 지역 발굴 자료)
  13. Norman P. Grubb, C. T. Studd: Cricketer and Pioneer, London: Religious Tract Society, 1933. (1887년 유산 기부와 케임브리지 세븐의 기록)
  14. John Pollock, The Cambridge Seven: The True Story of Ordinary Men Used in No Ordinary Way, London: Inter-Varsity Fellowship, 1955.
  15. John Telford, ed., The Letters of the Rev. John Wesley, 8 vols., London: Epworth Press, 1931. (1776년 국세청에 보낸 은 식기 신고 답장)
  16. 이미지 출처(모두 위키미디어 공용에서 크기를 줄여 주소로 임베딩함): 브엘세바 옛 우물 사진, Russianname, CC BY-SA 2.5 / 헤브론 막벨라 굴 사진, Daniel Ventura, CC BY-SA 4.0 / 네게브 낙타 대상 사진, 이스라엘 정부공보실, CC BY 4.0 / 에돔 산지 사진, 베른하르트 모리츠, 퍼블릭 도메인 / 붉은 렌틸콩 수프 사진, Gilabrand, CC BY-SA 3.0 / 익은 밀 사진, Yyanay, CC BY-SA 3.0 / 막테시 라몬 항공 사진, Godot13, CC BY-SA 4.0 / 텔 브엘세바 수로 체계 사진, Oren Rozen, CC BY-SA 4.0 / C. T. 스터드 사진, 퍼블릭 도메인 / 케임브리지 세븐 사진, 퍼블릭 도메인 / 존 웨슬리 초상, 조지 롬니, 퍼블릭 도메인 / 런던 웨슬리 채플 사진, Jwslubbock, CC BY-SA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