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차 (창세기 19장 ~ 창세기 21장)
사해 남서쪽 소금 산인 하르 세돔(옛 이름 제벨 우스둠)의 소금 결정, 이스라엘, Hoshvilim 촬영, CC BY-SA 4.0
본문
창세기 19장
-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 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 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 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 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 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 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 주의 종이 주께 은혜를 입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 보소서 저 성읍은 도망하기에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를 그 곳으로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읍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네가 말하는 그 성읍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
-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
-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 이튿날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제 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 그 밤에도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
창세기 20장
-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 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 아비멜렉이 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모든 종들을 불러 그 모든 일을 말하여 들려 주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
-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기에 네가 나와 내 나라가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하지 아니한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 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 또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
-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 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종들을 이끌어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의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내고
-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네가 보기에 좋은 대로 거주하라 하고
-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 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 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가리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해결되었느니라
-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일로 아비멜렉의 집의 모든 태를 닫으셨음이더라
창세기 21장
-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
-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
-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진지라 그 자식을 관목덤불 아래에 두고
- 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
-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
-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 그가 바란 광야에 거주할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에서 아내를 얻어 주었더라
-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 아비멜렉이 이르되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에야 들었노라
-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 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냐
- 아브라함이 이르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 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갔고
-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 그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더라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본문 해설
소돔의 마지막 밤과 세 장의 흐름
어제 우리는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해 여섯 번이나 아뢰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기도가 끝난 바로 그날 저녁에서 시작합니다. 창세기 19장은 의인 열 명이 없었던 성읍의 마지막 밤을 기록하고, 20장은 아브라함이 그랄에서 또 한 번 넘어진 이야기를 적으며, 21장은 드디어 약속의 아들 이삭이 태어난 날을 전합니다. 심판과 은혜가 한 호흡으로 붙어 있는 세 장인 셈입니다.
이 세 장을 함께 읽으면 한 가지 질문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같은 하늘 아래서 어떤 사람은 멸망하고 어떤 사람은 건져졌는데, 그 갈림의 자리는 어디였을까요? 성경은 그 답을 숨기지 않고 19장 29절에 적어 두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내보내셨다는 한 문장입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은 사람의 선택을 자랑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끝까지 붙들어 끌어내시는 하나님의 손에 대한 기록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자리와 발굴 현장

소돔과 고모라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성경은 요단 들, 곧 사해 주변의 비옥한 평지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유력하게 거론되는 후보지는 사해 남동쪽의 바브 에드라와 그 남쪽 누메이라입니다.
위 사진이 바로 바브 에드라의 초기 청동기 성문입니다. 사해 남단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돌로 성벽을 쌓고 망대를 세운 성읍이었습니다. 발굴자들은 이 성이 불에 타 무너진 두꺼운 소토층과, 수천 기의 무덤이 모인 거대한 묘지를 보고했습니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북쪽의 텔 엘함맘을 소돔으로 보는 견해도 제기되어 연대 문제로 논쟁이 이어집니다. 다만 우리가 붙들 것은 분명한 한 가지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대격변은 신화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역사이며, 사해 남쪽 저지대에 남은 불탄 성읍들과 위 지도의 소아라 표기가 그 기억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 왔음을 증언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지역의 지질 자체가 성경의 서술과 잘 맞는다는 점입니다. 사해 지역은 아스팔트와 역청, 유황이 솟아나는 곳으로 고대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땅에 이미 깔아 두신 재료를 쓰셔서 심판을 집행하실 수도 있는 분입니다.
성문에 앉은 롯과 비뚤어진 환대
19장 1절의 한 구절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었다는 기록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성문은 재판과 거래가 이루어지는 공적인 자리였고, 거기 앉았다는 말은 그가 성읍의 유력자 반열에 올랐다는 뜻입니다.
그는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요? 13장에서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보고 그쪽을 택한 그날부터입니다. 처음에는 장막을 옮긴 것뿐이었는데, 이제는 성문에 앉아 있습니다. 세상 쪽으로 기울어진 한 걸음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사람을 끝까지 데려가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롯에게는 삼촌에게 배운 환대의 습관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달려가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했으며, 무교병을 구워 상을 차렸습니다. 아브라함이 송아지를 잡고 세 스아의 가루를 반죽했던 그 환대가 조카에게도 흐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뒤에 이어지는 장면은 그 환대의 뿌리가 얼마나 얕았는지를 드러냅니다. 손님을 지키려다 자기 두 딸을 내어주겠다고 말하는 아버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소돔에서 보낸 세월이 그의 양심을 어떻게 갈아 놓았는지 보여 주는 끔찍한 대목입니다.
소돔의 죄와 하늘에 닿은 부르짖음
4절과 5절은 읽기가 괴로운 구절입니다. 성 사람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롯의 집을 에워쌌습니다. 성경은 이 죄가 일부 소수의 일탈이 아니라 성읍 전체의 공공연한 풍조였음을 분명히 적어 둡니다.
여기 쓰인 상관하리라라는 말은 히브리어 야다로, 본래 안다는 뜻이면서 성적인 관계를 가리키는 완곡한 표현입니다. 유다서 7절은 이 죄를 가리켜 다른 육체를 따라 음란한 것이라고 부르고, 베드로후서 2장 6절은 소돔과 고모라를 후세에 보이는 본보기로 삼으셨다고 증언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소돔의 죄를 성적인 타락 하나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에스겔 16장 49절은 그 죄악을 교만과 풍족한 음식과 태평함, 그리고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않은 것이라고 짚습니다. 풍요가 사람의 영혼을 어떻게 썩게 하는지 보여 주는 진단입니다.
혹시 하나님이 너무 성급하게 심판하신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시나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18장 20절은 그 죄악이 심히 무거웠다고 말하고, 15장 16절은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가득 차기까지 하나님이 기다리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나 참고 또 참으신 뒤에 오는 결론입니다.
지체하는 손을 붙드신 자비

14절은 참 쓸쓸한 구절입니다. 롯이 사위들에게 성이 멸망한다고 전했는데,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왜 그 말을 웃어넘겼을까요? 소돔의 성문에 앉아 살아온 장인의 말에는 더 이상 무게가 없었던 것입니다.
세상과 똑같이 살면서 세상에 경고하는 입술은 힘을 잃는 법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말이 가볍게 들린다면 말솜씨를 고치기 전에 삶의 자리를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16절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따뜻한 구절 가운데 하나로 꼽을 만합니다.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천사들이 그의 손과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성 밖에 두었다는 기록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하는 설명입니다.
여기 자비로 옮긴 히브리어 헤세드는 언약을 끝까지 지키시는 변함없는 사랑을 뜻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롯이 머뭇거리는 동안에도 그 손이 떠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구원은 내가 꽉 붙드는 힘이 아니라 나를 붙드시는 손에 달려 있습니다.
유황과 불, 그리고 작은 성읍 소알

17절의 명령은 짧고 다급합니다.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라 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롯은 그 자리에서 또 흥정을 시작합니다.
산까지는 갈 수 없으니 저 작은 성읍으로 가게 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그 성읍의 이름이 그래서 소알이 되었는데, 히브리어 초아르는 작음이라는 뜻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께 드린 첫 요청이 조금 더 쉬운 길이었다는 사실이 마음을 서늘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뜻밖입니다. 그가 네 소원을 들었다 하시며 그 성읍을 멸하지 않으시고, 더 나아가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십니다. 심판의 시계를 한 사람의 발걸음에 맞추어 멈추신 것입니다.
24절은 심판의 집행을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리셨다는 문장입니다. 사해 남쪽은 유황과 역청이 솟는 땅이니, 지질과 기상과 그 모든 것을 손에 쥐신 분이 정하신 때에 쏟아 부으신 것입니다.
뒤를 돌아본 아내와 소금 기둥

26절은 단 한 문장으로 한 사람의 결말을 적습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하는 기록입니다. 위 사진에 보이는 하르 세돔 산기슭의 소금 바위는 오늘도 순례자들에게 이 구절을 떠올리게 해 줍니다.
고개를 한 번 돌린 일이 그렇게 무거운 죄였을까요? 여기 쓰인 히브리어는 단순한 눈길이 아니라 마음이 뒤로 기울어 머무는 태도를 담고 있습니다. 몸은 성 밖으로 나왔지만 마음은 아직 소돔의 집과 가구와 살림에 붙어 있었던 셈입니다.
주님은 누가복음 17장 32절에서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이 더 무섭습니다.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보존하리라는 선언입니다.
아브라함을 기억하사 건지신 구원
27절과 28절은 장면을 헤브론 쪽 산지로 옮깁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어제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그 자리로 갔습니다. 거기서 그가 본 것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는 연기였습니다.
밤새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성경은 말하지 않지만, 어제 열 명까지 아뢰었던 중보자가 그 자리로 다시 올라갔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합니다. 기도한 사람은 결과를 보러 다시 그 자리에 오는 법입니다.
그리고 29절이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다는 문장입니다. 본문은 롯이 의로웠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중보가 한 가정을 건졌다고 말합니다.
베드로후서 2장 7절은 롯을 의로운 자라고 부르니, 그는 분명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간신히 구원받는 믿음이었고, 고린도전서 3장 15절이 말하는 불 가운데서 받는 구원과 겹쳐 보입니다. 구원은 받았으나 평생 쌓은 것은 다 타 버린 사람의 초상입니다.
굴 속의 밤과 모압·암몬의 기원
30절부터 38절은 성경이 얼마나 정직한 책인지를 보여 줍니다. 소알조차 두려워 산으로 올라간 롯은 결국 두 딸과 함께 굴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요단 들의 비옥한 땅을 골랐던 사람의 마지막 거처가 동굴이었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차마 입에 올리기 어렵습니다. 두 딸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대를 잇겠다며 아버지와 동침한 것입니다. 소돔의 공기를 마시고 자란 딸들에게는 그것이 그렇게까지 끔찍한 일로 느껴지지 않았던 듯합니다.
성경이 이런 부끄러운 기록을 왜 숨기지 않았을까요? 사람을 꾸미지 않고 은혜만 자랑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로 태어난 두 아들이 모압과 벤암미이며, 각각 모압과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두 민족은 훗날 이스라엘의 끈질긴 대적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선택이 수백 년 뒤의 국경선까지 바꾸어 놓은 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는 그 얽힌 자리에서도 길을 냅니다. 모압 여인 룻이 보아스의 아내가 되어 다윗의 증조모가 되었고, 마태복음 1장의 족보는 그 이름을 지우지 않고 기록합니다. 가장 어두운 밤의 자리에서도 구속의 실이 끊기지 않는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랄에서 되풀이된 거짓과 선지자의 기도

20장은 무대를 네게브의 그랄로 옮깁니다. 그랄은 가사 남동쪽의 큰 성읍으로, 오늘날 텔 하로르가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되는 곳입니다. 중기 청동기 시대에 남부 가나안에서 가장 큰 성읍 가운데 하나였다는 발굴 보고가 본문의 무대와 잘 어울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브라함이 또 넘어집니다. 12장에서 애굽에서 썼던 누이라고 하는 그 방법을 스물다섯 해가 지난 뒤 다시 꺼낸 것입니다. 17장에서 이름이 바뀌고 할례를 받은 사람인데도 같은 자리에서 또 미끄러졌습니다.
왜 같은 죄가 되풀이되는 걸까요? 13절이 답을 줍니다. 그는 오래전에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오라비라 하라고 약속을 맺어 두었습니다. 한 번 세운 삶의 보험이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반응입니다. 7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지자라 부르시며 그가 기도하면 아비멜렉이 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넘어진 사람을 두고도 그 호칭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17절에서 거짓말한 사람의 기도로 상대의 집이 치유되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이 대목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 먼저 찾아오시는 은혜를 생각하게 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자신의 신실하심 때문에 일하시며, 그 은혜가 우리를 다시 회개와 성화의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힘도 결국 위에서 옵니다.
웃음이 된 이삭과 쫓겨난 하갈

21장 1절과 2절의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으며,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아들을 낳았다는 기록입니다. 같은 표현을 세 번 반복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그 성취가 정확히 맞물렸음을 못 박아 둡니다.
스물다섯 해를 기다린 약속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백 세, 사라가 구십 세일 때 이삭이 태어났으니 사람의 가능성이 완전히 끝난 뒤에 주신 아들입니다. 사라의 고백도 바뀌었습니다. 18장에서는 속으로 웃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하며 그 웃음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9절부터 21절은 하갈과 이스마엘이 집을 떠나는 아픈 이야기입니다. 이삭이 젖을 떼는 잔칫날, 사라는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것을 보고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하고 요구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매우 근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단호하면서도 자비롭습니다. 언약은 이삭으로 이어 가겠다고 선을 그으시면서도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십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물이 떨어져 울던 그 자리에도 하나님이 또 찾아오셨습니다.
17절의 표현이 특별히 귀합니다.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다는 기록입니다. 우는 사람은 하갈이었는데 하나님은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다고 하시니,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의 뜻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은 이 사건을 육체를 따라 난 자와 약속을 따라 난 자의 구분으로 풀어 줍니다.
브엘세바의 맹세와 에셀 나무

22절부터 34절은 조용하지만 묵직한 마무리입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이 군대 장관 비골을 데리고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는 고백입니다. 거짓말로 체면을 잃었던 그 사람에게서, 이방 왕이 하나님의 임재를 읽어 낸 것입니다.
두 사람은 우물 문제를 정리하고 언약을 세웁니다. 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아 우물을 판 증거로 삼았고, 그래서 그곳 이름이 브엘세바가 되었습니다. 히브리어 베에르 셰바는 일곱의 우물 또는 맹세의 우물로 읽히는데, 본문은 두 뜻을 함께 품도록 적어 두었습니다.
광야에서 우물 하나가 어떤 의미였을지 짐작이 되시나요? 그것은 생존의 문제이자 땅에 대한 권리의 표시였습니다. 텔 브엘세바 발굴지에는 성문 밖으로 깊이 파 내려간 우물이 남아 있어, 이 지역에서 물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대했는지 알려 줍니다.
33절이 이 세 장의 마지막 울림을 전합니다.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기록입니다. 에셀 나무는 소금기 있는 사막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나무이니, 천막 생활을 하던 사람이 나무를 심었다는 사실은 이 땅에 하나님의 약속이 자라날 것을 바라보았다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여기 쓰인 엘 올람, 곧 영원하신 하나님이라는 이름도 처음 등장합니다. 심판의 불이 지나가고 약속의 아들이 태어난 뒤에 불린 이름이니 더없이 어울리는 호칭입니다. 세대가 지나가고 성읍이 무너져도 그분은 영원하신 하나님으로 남으십니다.
묵상과 적용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던지는 첫 번째 말씀은 머무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롯은 처음에 장막을 옮겼을 뿐인데 나중에는 성문에 앉았고, 결국 두 딸을 내어주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우리 삶에서도 같은 일이 조용히 벌어집니다. 처음에는 한 번만 보는 영상이었고, 처음에는 한 번만 넘어가는 회계 처리였고, 처음에는 한 번만 빠지는 주일 예배였습니다. 익숙해진 죄는 더 이상 죄처럼 느껴지지 않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오늘 내가 어디에 앉아 있는지 정직하게 살펴보는 일입니다.
두 번째로 구원은 붙드시는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깊이 새기시기 바랍니다. 롯은 지체했고 흥정했으며 끝까지 미적거렸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성 밖에 서 있게 된 것은 천사들이 그 손을 잡아 끌어내었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이야말로 은혜와 순종이 함께 가는 구원의 길이 또렷하게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로 시작되고 은혜로 붙들립니다. 그러나 그 은혜는 우리를 그 자리에 주저앉히지 않고, 돌아보지 말고 걸으라는 명령으로 우리를 밀어 올립니다.
그래서 세 번째 적용은 돌아보지 않는 결단입니다. 롯의 아내는 성 밖까지 나왔는데도 마음이 뒤에 남아 있었습니다. 신앙에서 가장 위험한 자리는 아예 떠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몸만 떠나고 마음은 두고 온 사람의 자리입니다.
구체적으로 점검해 보십시오. 끊었다고 말하면서 연락처를 지우지 않은 관계, 정리했다고 하면서 앱만 숨겨 둔 습관, 회개했다고 하면서 여전히 아까워하는 돈이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오늘이 뒤를 완전히 돌려세울 날입니다.
네 번째로 중보의 자리를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롯이 건져진 이유는 그의 경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가정에 신앙으로 서 있는 한 사람이 있다면, 그 한 사람이 집안 전체에 하나님의 기억을 불러오는 통로가 됩니다.
그러니 자녀가 흔들릴 때, 형제가 교회를 떠날 때 포기하지 마시고 아브라함처럼 아침마다 그 자리에 올라가십시오.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중보는 하늘에서 세어지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로 넘어진 다음의 길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그랄에서 똑같은 거짓을 되풀이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여전히 선지자라 부르시고, 그의 기도를 통해 아비멜렉의 집을 치유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가 큽니다. 같은 죄에 또 걸려 넘어진 분이 계실 텐데, 하나님은 그 사람을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세우는 쪽으로 일하십니다. 다만 아브라함처럼 옛날에 맺어 둔 나쁜 약속이 아직 내 안에서 작동하고 있지 않은지 반드시 끊어 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이삭은 말씀하신 그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사라의 속웃음이 하나님의 웃음으로 바뀌는 데 스물다섯 해가 걸렸습니다.
지금 응답 없는 기다림 가운데 계신다면,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은 아브라함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아직 땅 한 평 받지 못했으면서도 자라는 데 수십 년이 걸리는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것이 다시 오실 주님과 그분의 나라를 바라보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예화
1871년 시카고의 그 밤과 무디의 후회

1871년 10월 8일 주일 밤이었습니다. 시카고 파웰가 교회에 모인 청중 앞에서 서른네 살의 드와이트 라이먼 무디가 설교를 마치고 있습니다. 그날 그가 택한 본문은 빌라도가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하는 마태복음 27장 22절의 물음입니다.
설교를 끝낸 무디는 청중에게 이렇게 권했습니다. 한 주간 이 질문을 품고 돌아가 생각해 본 뒤, 다음 주일에 와서 결단하자는 제안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찬송 인도자 아이라 생키가 오늘 밤 예수께로 오라는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찬송이 끝나기도 전에 밖에서 소방 종이 울렸습니다. 그날 밤 시카고 전역을 삼킨 대화재가 시작된 것입니다. 불은 사흘 가까이 번져 삼백 명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십만 명이 집을 잃었으며, 무디의 교회와 집도 함께 타 버렸습니다.

그날 밤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 가운데 다시는 만나지 못한 얼굴이 적지 않습니다. 무디는 평생 이 일을 두고 쓰라린 후회를 남겼습니다. 아들 윌리엄 무디가 쓴 전기에 담긴 그의 고백은 이렇습니다. 그때 결단을 다음 주로 미루게 한 것이 자신의 사역에서 가장 큰 실수였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뒤로 그의 집회에는 결단을 다음으로 미루라는 권면이 없습니다. 평생 수백만 명 앞에 서면서 늘 오늘 밤 결단하라고 호소했습니다. 롯의 사위들이 장인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기던 그 밤과, 생키의 찬송이 울리던 시카고의 밤이 이렇게 겹쳐 보이지 않나요? 심판 앞에서 다음 주라는 시간은 아무에게도 보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타이타닉 갑판에 남은 설교자

또 한 사람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출신의 침례교 목사 존 하퍼입니다. 그는 1912년 4월, 시카고 무디 교회의 초청을 받아 설교하러 가는 길에 타이타닉호 2등실에 올랐습니다. 곁에는 여섯 살 난 외딸 나나와 조카가 있습니다.
그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아내를 일찍 잃고 홀로 딸을 키우며 글래스고에서 교회를 개척했고, 수백 명이 모이는 교회로 자라게 한 사람입니다. 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결코 미룰 수 없는 과업입니다.
4월 14일 밤 열한 시 사십 분, 배가 빙산에 부딪혔습니다. 승객 명부와 생존자 기록에 따르면 하퍼는 어린 딸과 조카를 구명보트에 태워 보냈고, 자신은 배에 남았습니다. 1,500명 넘는 사람이 그 밤 차가운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고 그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의 시신은 끝내 수습되지 못했으며, 당시 서른아홉이었습니다.
글래스고의 그의 교회는 그 해 주일학교 명부에서 담임 목사의 이름을 지우며 짧은 기록 하나를 남깁니다. 바다에서 주님께로 갔다는 문장입니다. 그는 배가 침몰하는 그 밤에도 자기 자리를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롯과 이 사람을 나란히 놓아 보시기 바랍니다. 한 사람은 성 밖으로 끌어내어야 했고, 한 사람은 끝까지 그 자리에서 사람들을 향했습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이 그다음에 어떤 사람이 되는지가 이 두 장면의 차이입니다. 그리고 그 차이를 만드는 힘은 성화의 은혜이니, 우리 안에서 그 일을 시작하신 분이 끝까지 이루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기도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소돔의 성문에 앉는 자리로 조금씩 옮겨 가지 않도록 지켜 주시기를 구하며, 익숙해져 더 이상 죄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들을 오늘 분별하여 끊어 내기를 간구합니다. 아울러 결단을 다음으로 미루는 게으른 마음을 떨치고 오늘 순종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가정을 위해서는, 집안에 한 사람이라도 아브라함처럼 아침마다 그 자리에 올라가는 중보자로 서기를 구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는, 세상과 똑같이 살면서 세상에 경고하는 가벼운 입술이 아니라 삶으로 증언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이 나라의 풍요가 영혼을 썩게 하지 않기를, 그리고 심판을 모르고 살아가는 열방에 복음이 긴급하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아룁니다.
의로우시며 또한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오늘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은 죄악이 가득 차기까지 참고 기다리시는 분이시며, 때가 되면 반드시 공의로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그 두 가지가 한 분 안에 함께 있음을 생각하며 두렵고 감사한 마음으로 엎드립니다.
지체하는 롯의 손을 잡아 끌어내신 주님, 저희의 머뭇거리는 손도 그렇게 붙들어 주옵소서. 스스로 붙드는 힘으로는 하루도 버틸 수 없는 저희임을 고백합니다. 주께서 더하신 자비가 없었다면 저희는 이미 그 성 안에서 끝났을 것입니다.
뒤를 돌아보는 마음을 고쳐 주옵소서. 끊었다고 말하면서 아직 남겨 둔 것들, 회개했다고 하면서 여전히 아까워하는 것들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몸만 나오고 마음은 두고 온 신앙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같은 죄에 다시 걸려 넘어진 저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아브라함을 여전히 선지자라 불러 주신 그 은혜로 저희를 다시 세워 주시고, 오래전에 맺어 둔 잘못된 약속들을 오늘 끊게 하여 주옵소서. 은혜로 시작하신 구원을 거룩한 삶으로 이어 가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말씀하신 그 시기에 이삭을 주신 신실하신 주님, 저희의 기다림에도 반드시 끝을 주실 줄 믿습니다. 아직 땅 한 평 받지 못한 자리에서도 에셀 나무를 심은 아브라함처럼, 다시 오실 주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오늘 심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이 모든 말씀을 저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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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런스
-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대한성서공회, 1998. 본문 출처: https://www.bskorea.or.kr
- 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Vol. 1 (Genesis to Deuteronomy), 1708–1710;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판 참조. (창 19~21장 주해)
- John Wesley, Explanatory Notes upon the Old Testament, Bristol: William Pine, 1765. (창세기 19~21장 주해)
- John Wesley, Sermon 43: 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 1765. (선행은총과 칭의, 성화의 동시 강조)
- Henry M. Morris, The Genesis Record: A Scientific and Devotional Commentary on the Book of Beginnings,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76.
- C. I. Scofield, ed., The Scofield Reference Bibl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09. (소돔 심판과 언약의 경륜에 관한 주)
- John MacArthur, ed., The MacArthur Study Bible, Nashville: Word Publishing, 1997. (창 19~21장 주)
- Kenneth A. Mathews, Genesis 11:27–50:26, The New American Commentary 1B, Nashville: Broadman & Holman, 2005.
- Walter E. Rast and R. Thomas Schaub, Bâb edh-Dhrâʿ: Excavations at the Town Site (1975–1981), Winona Lake: Eisenbrauns, 2003. (바브 에드라 성읍 발굴 보고)
- Bryant G. Wood, “Locating Sodom: A Critique of the Northern Proposal,” Bible and Spade, Associates for Biblical Research, 2013. (소돔 위치에 관한 남쪽 설의 변호)
- Eliezer D. Oren, “Haror, Tel,” in The New Encyclopedia of Archaeological Excavations in the Holy Land, ed. Ephraim Stern, Jerusalem: Israel Exploration Society, 1993. (그랄의 후보지 텔 하로르 발굴)
- Ze’ev Herzog, Beer-Sheba II: The Early Iron Age Settlements, Tel Aviv: Tel Aviv University Institute of Archaeology, 1984. (텔 브엘세바 발굴과 우물 체계)
- William R. Moody, The Life of Dwight L. Moody, New York: Fleming H. Revell, 1900. (1871년 10월 8일 시카고 집회와 대화재에 관한 기록)
- Ira D. Sankey, My Life and the Story of the Gospel Hymns, Philadelphia: The Sunday School Times Company, 1907. (대화재 당시 집회에서 부른 찬송에 관한 회고)
- 이미지 출처(모두 위키미디어 공용에서 크기를 줄여 주소로 임베딩함): 하르 세돔 소금 결정 사진, Hoshvilim, CC BY-SA 4.0 / 바브 에드라 초기 청동기 성문 사진, Deg777, CC BY-SA 4.0 / 마다바 지도의 소아라 모자이크 사진, Deg777, CC BY-SA 4.0 / 「소돔을 떠나는 롯」 동판화, 벤체슬라우스 홀라르, 퍼블릭 도메인 / 「소돔과 고모라」, 존 마틴, 퍼블릭 도메인 / 롯의 아내 바위와 소금 바위 사진, Shayshal2, CC BY-SA 4.0 / 네게브 사막 풍경 사진, Rosewoman, CC BY 2.0 / 「광야의 하갈과 이스마엘」, 안드레아 사키, 퍼블릭 도메인 / 브엘세바 아브라함 우물 사진, 오리건주립대 특별소장자료, 이용 제한 없음 / 에셀나무 사진, Krzysztof Ziarnek (Kenraiz), CC BY-SA 4.0 / 텔 브엘세바 발굴지 전경 사진, gugganij, CC BY-SA 3.0 / 드와이트 라이먼 무디 사진, 미국 의회도서관, 퍼블릭 도메인 / 시카고 대화재 석판화, 커리어 앤드 아이브스, 퍼블릭 도메인 / 사우샘프턴 항의 타이타닉호 사진, 퍼블릭 도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