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차 (창세기 12장 ~ 창세기 15장)
이라크 남부에 남아 있는 우르의 대지구라트, 2007년 촬영, 미국 국방부, 퍼블릭 도메인
본문
창세기 12장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창세기 13장
-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창세기 14장
-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 이들이 다 싯딤 골짜기 곧 지금의 염해에 모였더라
- 이들이 십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십삼년에 배반한지라
- 제십사년에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이 나와서 아스드롯 가르나임에서 르바 족속을, 함에서 수스 족속을, 사웨 기랴다임에서 엠 족속을 치고
- 호리 족속을 그 산 세일에서 쳐서 광야 근방 엘바란까지 이르렀으며
- 그들이 돌이켜 엔미스밧 곧 가데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하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친지라
- 소돔 왕과 고모라 왕과 아드마 왕과 스보임 왕과 벨라 곧 소알 왕이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서 그들과 전쟁을 하기 위하여 진을 쳤더니
-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과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 네 왕이 곧 그 다섯 왕과 맞서니라
-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그들이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 오직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가질 것이니라
창세기 15장
-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본문 해설
욥기를 지나 다시 창세기 앞으로
열이틀 동안 우리는 욥과 함께 재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오늘부터 발걸음은 다시 창세기로 돌아오는데, 연대기 순서로 읽는 일독표가 욥기를 창세기 11장과 12장 사이에 놓아 두었기 때문입니다. 바벨에서 사람들이 흩어진 뒤, 하나님은 흩어진 세상을 다시 모으실 한 사람을 부르십니다. 그 한 사람의 이름이 아브람이며, 오늘 본문은 성경 전체의 흐름이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는 자리입니다.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는 온 인류를 다루는 이야기였습니다. 창조와 타락과 홍수와 바벨이 차례로 지나가면서, 사람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네 번이나 확인되었습니다. 그런데 12장에 이르면 카메라가 한 가족에게로 좁혀집니다.
좁아진 것이 축소일까요? 아닙니다. 12장 3절이 분명히 밝히듯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니, 한 사람에게 집중된 이 이야기의 과녁은 처음부터 온 세상이었습니다.
갈대아 우르와 하란, 아브람의 출발점
아브람이 살던 곳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5장 7절이 밝히듯 하나님은 그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우르는 오늘날 이라크 남부 유프라테스 강 하류에 있던 수메르의 대도시입니다.
1922년부터 1934년까지 영국의 레너드 울리가 이곳을 발굴했는데, 그가 드러낸 것은 결코 변변찮은 촌락이 아니었습니다. 글 쓰는 학교와 법정과 수로가 있었고, 왕릉에서는 정교한 금세공품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표지의 사진에 보이는 대지구라트는 달의 신 난나를 섬기던 신전탑으로, 지금도 그 터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아브람의 떠남은 미개한 땅에서 문명을 찾아간 여정이 아니었습니다. 정반대입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도시 문명을 등지고 장막을 치며 떠돌아다니는 삶으로 내려갔던 것입니다.

중간 기착지였던 하란은 위 사진의 자리입니다. 오늘날 튀르키예 남동부에 속하며, 우르와 마찬가지로 달 신 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창세기 11장 31절은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가 가족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가다가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다고 기록합니다.
여호수아 24장 2절이 한 가지를 더 알려 줍니다. 아브라함의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다른 신들을 섬겼다는 증언입니다. 다시 말해 아브람은 경건한 가문의 모범생이 아니라 우상 숭배의 한복판에서 건져 올려진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실이 왜 중요할까요? 하나님의 부르심이 사람의 자격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시는 은혜가 여기서 환하게 드러납니다.
떠나라는 부르심과 세 겹의 약속
12장 1절의 명령은 짧지만 겹겹이 아픕니다.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는 말씀입니다. 고향에서 친척으로, 친척에서 아버지의 집으로 범위가 좁아지면서 떠남의 아픔은 한 단계씩 깊어집니다.
더 눈여겨볼 것은 목적지가 끝내 지명으로 제시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이라 하셨을 뿐이니, 히브리서 11장 8절의 표현대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신앙의 첫걸음은 늘 지도가 아니라 음성에 기대어 떼게 되는 법입니다.
2절과 3절의 약속은 세 겹으로 포개집니다.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후손의 약속, 이름을 창대하게 하시겠다는 이름의 약속, 그리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으리라는 열방의 약속입니다. 여기에 7절의 땅에 관한 약속이 더해지면서 아브라함 언약의 뼈대가 세워집니다.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이 무엇을 원했는지 기억하시나요? 창세기 11장 4절에서 그들은 우리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자고 했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내려 했던 그 이름을 하나님이 아브람에게는 선물로 주신다는 대조가 참으로 선명합니다.
4절은 그가 칠십오 세에 하란을 떠났다고 적습니다. 은퇴를 생각할 나이에 새 인생을 시작한 셈이니,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늦은 나이란 없다는 사실을 조용히 가르쳐 줍니다.
세겜과 벧엘에 쌓은 제단

가나안에 들어선 아브람이 처음 멈춘 곳은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였습니다. 위 사진의 텔 발라타가 바로 그 세겜의 자리로, 두꺼운 성벽과 성문이 발굴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하는 6절의 한마디가 상황의 긴장을 그대로 전해 줍니다.
약속의 땅은 비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미 주인이 있는 땅 한복판에서 하나님은 7절에서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고 선언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과 귀에 들리는 약속이 정면으로 어긋나는 자리에서 아브람은 제단을 쌓습니다.

8절에서 그는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고 다시 제단을 쌓으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하고 기록됩니다. 위 사진이 벧엘로 알려진 베이틴 일대의 산지입니다. 장막과 제단이 나란히 놓인 이 그림이 족장들의 삶을 요약합니다.
장막과 제단은 무엇을 뜻할까요? 장막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산다는 고백이고, 제단은 하늘에 본향이 있다는 고백입니다. 아브람은 땅을 차지하기 전에 먼저 예배의 자리를 세웠던 것입니다.
애굽으로 내려간 걸음
그런데 9절과 10절에서 분위기가 급변합니다. 점점 남방으로 옮겨가던 그에게 기근이 닥쳤고, 아브람은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습니다. 성경이 올라가고 내려간다는 말을 쓸 때에는 지형만이 아니라 영적 방향을 담을 때가 많습니다.

애굽은 나일 강의 범람 덕분에 가나안에 가뭄이 들어도 곡식이 있던 땅입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 어디에도 하나님께 물었다는 기록은 없으며, 제단을 쌓았다는 말도 사라집니다.
11절부터 13절에서 아브람은 사래에게 누이라고 말하라고 부탁합니다. 사래는 아브람의 이복누이가 맞으니 거짓은 아니었지만, 아내라는 핵심을 숨겼으니 반쪽 진실이었습니다. 반쪽 진실이 온전한 거짓보다 더 교묘하게 사람을 무너뜨리는 법입니다.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사래가 바로의 궁으로 끌려 들어갔고, 아브람은 그 대가로 가축과 노비를 얻었습니다. 약속의 어머니가 될 여인이 이방 왕의 후궁으로 들어가는 위기가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위기를 누가 막았을까요? 아브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17절에서 여호와께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고, 믿음의 조상이 망쳐 놓은 자리를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 손수 수습하셨습니다.
롯의 선택과 아브람의 양보

13장은 애굽에서 올라온 아브람이 벧엘의 옛 제단 자리로 돌아오는 장면으로 열립니다. 넘어진 자리가 아니라 마지막으로 예배했던 자리로 돌아간 것이니, 회복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4절은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적습니다.
그러나 재산이 불어나면서 새로운 문제가 생깁니다. 아브람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다투었고, 그 땅이 두 집안을 함께 품기에는 너무 좁았습니다. 더구나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이 보고 있는 중이었으니, 믿는 사람들끼리의 다툼은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의 구경거리가 되기 마련입니다.
8절과 9절에서 아브람이 내놓은 해법이 놀랍습니다. 나이로 보나 부르심으로 보나 선택권은 그에게 있었는데, 그는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고 조카에게 먼저 고르게 합니다. 약속을 붙든 사람만이 부릴 수 있는 여유입니다.

롯은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보았고, 물이 넉넉한 그 땅을 택해 동쪽으로 옮겨 갔습니다. 본문은 그 선택을 묘사하면서 두 가지를 덧붙입니다. 하나는 그곳이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13절의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하는 평가입니다.
롯의 눈에 들어온 것은 수량과 토질뿐이었습니다.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영적 상태는 계산에 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처음에 소돔까지 장막을 옮겼다가, 결국 그 성 안에 자리를 잡고 말았던 것입니다.
롯이 떠난 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눈을 들어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하시고, 보이는 땅을 네 자손에게 영원히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조카에게 한 쪽을 양보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사방을 다 주신 셈입니다.
네 왕과 다섯 왕, 그리고 삼백십팔 명
14장은 창세기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국제 전쟁 기록입니다. 시날 왕 아므라벨, 엘라살 왕 아리옥, 엘람 왕 그돌라오멜, 고임 왕 디달이 동맹을 이루어 사해 남쪽의 다섯 성읍을 쳤습니다. 시날은 바벨로니아 지역을 가리키고 엘람은 오늘날 이란 남서부에 해당하니, 메소포타미아의 연합군이 가나안까지 원정을 온 것입니다.

이런 기록이 과장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프라테스 중류의 마리에서 나온 위와 같은 점토판 문서들은 기원전 2천년기 전반의 근동이 동맹과 조공과 원정이 일상이던 세계였음을 생생하게 보여 줍니다. 열두 해 동안 조공을 바치다가 열셋째 해에 배반했다는 4절의 서술도 그 시대의 정치 관행과 정확히 맞물립니다.
전쟁의 불똥은 롯에게 튀었습니다. 소돔에 거주하던 롯이 재물과 함께 사로잡혀 끌려간 것입니다. 좋아 보이는 땅을 골랐던 선택이 포로의 사슬로 돌아온 셈입니다.

소식을 들은 아브람의 행동이 뜻밖입니다. 그는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갔습니다. 위 사진의 텔 단이 그 북쪽 끝 지점이며, 거기서 다시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추격합니다.

삼백십팔 명으로 연합군을 이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으시나요? 본문은 그 비결을 15절에 적어 두었습니다. 밤에 나뉘어 쳤다는 기습 전술이며, 20절은 그 승리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돌립니다. 양보하던 사람이 정작 조카가 위험에 처하자 목숨을 걸고 달려간 이 장면은, 아브람의 양보가 결코 비겁함이 아니었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의 떡과 포도주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목에서 두 왕이 아브람을 맞이합니다. 한 사람은 소돔 왕이고 다른 한 사람은 살렘 왕 멜기세덱입니다. 18절은 그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고 소개합니다.

이름의 뜻부터 풀어 보겠습니다.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라는 뜻이고, 살렘은 평화를 뜻하는 샬롬과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로 훗날의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히브리서 7장 2절이 이 두 뜻을 그대로 풀이해 놓았습니다.
이 인물이 왜 그토록 중요할까요? 아론의 제사장 제도가 생기기 수백 년 전에 이미 왕이면서 제사장인 사람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시편 110편 4절은 메시아를 향해 네가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선언하고, 히브리서 7장은 그 구절을 근거로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이 레위 계통보다 우월함을 논증합니다.
아브람은 그에게 얻은 것의 십분의 일을 주었습니다. 율법이 주어지기 훨씬 전에 드려진 이 십일조는, 십일조가 제도 이전에 이미 있던 감사의 표현임을 알려 줍니다. 반면 소돔 왕에게는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가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못 박았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단호했을까요? 23절에 이유가 적혀 있습니다.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였으니, 그의 부요의 출처가 오직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선언이었습니다.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
15장 1절은 이 모든 일 뒤에 찾아온 말씀입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시는 음성입니다. 큰 전쟁을 치른 사람에게 방패라는 말이 얼마나 깊이 들어왔을지 짐작이 됩니다.
그런데 아브람의 대답은 찬송이 아니라 아주 솔직한 하소연이었습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하는 말입니다. 당시 근동에서는 자식이 없을 때 신실한 종을 상속자로 삼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 대목이 보여 주는 바가 참 귀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이 품은 의문을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5절의 장면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하시고는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십니다. 전깃불 하나 없던 밤하늘이 위 사진처럼 쏟아졌을 테니, 그 약속의 무게가 온몸으로 밀려들었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여기심
6절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는 말씀입니다. 짧은 한 문장이지만 신약의 복음 전체가 여기서 흘러나옵니다.
믿었다고 옮긴 히브리어 아만은 몸을 기대어 의지한다는 뜻을 품고 있으며, 우리가 예배 끝에 말하는 아멘이 바로 이 낱말에서 왔습니다. 여겼다고 옮긴 하샤브는 회계 장부에 금액을 기입한다는 뜻의 낱말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하나님이 아브람의 계좌에 의를 입금해 주셨다는 그림입니다.
이 구절이 신약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보시면 더욱 선명해집니다. 로마서 4장 3절과 갈라디아서 3장 6절이 이 구절을 인용하여 사람이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선언합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아브람이 아직 할례를 받기 전이었고 율법은 한참 뒤에나 주어졌다는 점입니다.
의롭다 하심이란 하나님이 죄인을 용서하시고 그리스도의 의를 돌려 받아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성화가 함께 시작된다는 점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창세기 15장 6절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아브람이 17장에서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부르심을 받는 흐름이 이와 정확히 겹칩니다.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간 횃불
8절에서 아브람은 다시 묻습니다.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하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물음에 아주 엄숙한 의식으로 답하십니다.
9절과 10절에서 삼 년 된 암소와 암염소와 숫양을 가져다가 중간을 쪼개어 마주 대하여 놓게 하십니다. 이것은 고대 근동에서 언약을 맺던 방식으로, 히브리어로 언약을 맺는다는 표현이 문자적으로는 언약을 자른다는 말입니다. 예레미야 34장 18절과 19절이 그 의식을 설명해 주는데,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는 사람은 이 약속을 어기면 자기도 이렇게 되겠다고 맹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날 누가 그 사이로 지나갔을까요? 17절이 답합니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하는 기록이며, 이 불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냅니다.
아브람은 12절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쌍방 계약이라면 둘이 함께 지나가야 하는데 하나님 홀로 지나가셨으니, 이 언약의 성취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이 장면 앞에서 우리는 복음의 구조를 봅니다. 사람이 지킬 수 없는 언약을 하나님이 홀로 짊어지셨고, 그 맹세의 대가를 결국 십자가에서 치르신 분이 계십니다. 아브람이 잠들어 있는 동안 불이 지나간 그 밤이 갈보리의 그림자였습니다.
사백 년과 사대, 그리고 아모리 족속의 죄악
13절부터 16절은 먼 미래를 내다보는 예고입니다.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사백 년 동안 괴롭힘을 당하겠으나,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 것이며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는 말씀입니다. 출애굽의 밑그림이 사백 년 전에 미리 그려진 셈입니다.
16절의 마지막 구절이 특히 깊습니다.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는 말씀입니다. 가나안 정복이 왜 수백 년이나 미루어졌는지를 하나님이 친히 밝히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기다리셨을까요? 심판을 서두르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9절이 같은 성품을 증언하니,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18절부터 21절은 언약의 범위를 적습니다. 애굽 강에서부터 유브라데까지의 땅과 열 족속의 이름이 하나하나 열거되는데, 이 약속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 지리로 주어진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의 약속이 교회로 대체되어 사라졌다고 보지 않으며, 다시 오실 주님이 세우실 천년왕국에서 문자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기다립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거처는 헤브론의 마므레 상수리 수풀이었습니다. 위 사진의 고목은 전승이 그 자리로 지목해 온 나무입니다. 아브람은 거기서도 가장 먼저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고, 내일 본문에서 우리는 바로 그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만남을 보게 됩니다.
묵상과 적용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말씀은 부르심은 자격이 아니라 은혜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람은 달 신을 섬기던 도시에서 자란 사람이었고, 여호수아 24장 2절은 그의 조상들이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분명히 적습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니 과거의 이력 때문에 주저앉아 계신 분이 있다면 고개를 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깨끗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부르신 사람을 깨끗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 먼저 찾아오시는 그 은혜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두 번째 적용은 떠남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말씀은 물리적 이주보다 붙들고 놓지 못하는 안전망을 내려놓으라는 부름으로 다가옵니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더 좋은 조건의 자리를 포기하고 교회 사역의 자리를 지키는 결단일 수 있고, 어떤 분에게는 자녀를 세상의 기준에 맞춰 몰아가던 방식을 내려놓는 일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손에 꼭 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 손을 펴는 데서 아브람의 여정이 시작됩니다.
세 번째로 본문은 넘어진 뒤의 회복을 가르칩니다. 아브람은 기근 앞에서 하나님께 묻지 않고 애굽으로 내려갔고, 거기서 아내를 누이라 속이는 비겁한 선택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13장에서 그는 처음 제단을 쌓았던 자리로 돌아옵니다.
실패한 뒤에 우리가 가야 할 곳이 바로 거기입니다. 자책의 골짜기가 아니라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예배했던 그 자리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이 약속하듯 자백하면 미쁘시고 의로우사 죄를 사하시니,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네 번째로 롯의 선택은 우리에게 분별의 기준을 묻습니다. 그는 물이 넉넉한 땅을 보았지만 그곳 사람들의 영적 상태는 보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사할 동네를 정할 때, 직장을 옮길 때, 자녀의 진로를 결정할 때 조건만 보고 영적 환경은 계산에 넣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반대로 아브람은 눈앞의 좋은 땅을 양보하고도 아무것도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사방을 보여 주시며 영원히 주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붙든 사람은 양보할 여유가 있는 법이니, 오늘 가정과 교회에서 먼저 한 걸음 물러서는 쪽을 택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섯 번째로 15장 6절은 우리 구원의 뿌리입니다. 아브람은 할례도 받기 전이었고 율법도 없던 시대의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이 그를 의롭다 여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도 쌓은 공로가 아니라 받은 은혜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절반만 들은 것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은 그 순간부터 성화가 시작되며, 하나님은 17장에서 아브라함에게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부르십니다. 은혜로 시작하여 거룩으로 자라 가는 길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않았다는 말씀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서두르지 않으시고 회개의 기회를 길게 열어 두시는 분이십니다.
혹시 오래전에 포기했던 어떤 이름이 지금 떠오르시나요? 그 사람이 바로 오늘 기도의 자리로 불려 나온 이름입니다. 그 오래 참으심이 지금도 우리 이웃과 가족에게 열려 있으니, 포기했던 그 이름을 다시 들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예화
브라이턴 해변의 한 줄 기도
1865년 6월 25일 주일이었습니다. 영국 남부의 휴양지 브라이턴에 서른세 살의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가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는 중국 선교지에서 건강이 무너져 영국으로 돌아와 있던 중입니다.

그날 아침 그는 예배당 안에 앉아 있었지만 마음이 전혀 편하지 않았습니다. 찬송을 부르는 천 명의 회중을 바라보면서,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채 죽어 가는 중국 내륙의 수많은 사람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는 견디지 못하고 예배 도중에 밖으로 나왔습니다.

위 사진의 해변을 홀로 거닐며 그는 오래 씨름합니다. 중국 내륙 열한 개 성과 몽골에 선교사를 보내려면 적어도 스물네 명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서 있었지만, 그만한 사람을 모집하고 책임질 생각을 하니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사람을 보냈다가 그들이 죽기라도 하면 그 짐을 어떻게 지겠느냐는 물음이 그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해변에서 생각이 뒤집혔습니다. 사람을 부르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지키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니, 자기는 순종만 하면 된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는 들고 있던 성경 여백에 짧은 한 줄을 적어 둡니다.
그 한 줄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었을까요? 스물네 명의 자원하는 유능한 일꾼을 구하며 기도했다는 기록입니다.
이 짧은 메모에서 중국내지선교회가 태어납니다. 그해 이 단체가 세워졌고 이듬해 테일러 부부는 램머뮤어호를 타고 다시 중국으로 떠났으며, 그가 세상을 떠날 무렵 중국 전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는 팔백 명을 넘어서 있었습니다. 창세기 12장의 부르심이 그랬듯, 모든 일은 한 사람이 떠나기로 결심한 자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제물포에 닿은 부활주일 아침
또 한 사람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한국 감리교회의 첫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입니다.

1885년 4월 5일, 그날은 부활주일입니다. 스물일곱 살의 아펜젤러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내 엘라와 함께 일본을 거쳐 제물포 항에 내렸습니다. 당시 조선은 서양 선교사에게 결코 안전한 땅이 아니었고, 두 해 전까지도 기독교 전파는 목숨을 거는 일이었습니다.
그날 그가 선교 본부로 보낸 보고에 담긴 기도문이 지금까지 전해집니다. 사망의 빗장을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 백성을 얽어맨 굴레를 끊으시고 빛과 자유를 주시옵소서 하는 간구였습니다. 부활주일에 도착한 사람이 올린 기도로 이보다 더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 뒤의 발걸음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배재학당을 세워 조선의 청년들을 가르쳤고, 위 사진의 정동제일교회를 세웠으며, 성경 번역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1902년 목포로 가는 배가 충돌 사고를 당했을 때 그는 함께 가던 한국인 소녀를 구하려다 바다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말씀이 이 두 사람에게서 그대로 되살아납니다. 테일러는 영국의 안온한 자리를 떠났고 아펜젤러는 미국의 안전한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으리라 하신 창세기 12장 3절의 약속이, 오늘 이 땅에서 예배하는 우리를 통해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기도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과거의 이력과 환경을 이유로 주저앉지 않고 먼저 찾아오신 은혜 앞에 일어서기를 구하며, 손에 꼭 쥐고 있던 안전망을 내려놓고 음성을 따라 떠나는 용기를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넘어진 날에도 자책의 골짜기가 아니라 예배의 자리로 돌아가는 습관을 갖게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가정을 위해서는, 조건만 보고 선택하던 눈을 고쳐 영적 환경을 먼저 살피는 가정이 되기를 구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는, 다투기보다 먼저 양보하여 세상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한국 사회에 복음이 다시 흘러가기를, 그리고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열방의 백성에게 보내심을 받는 일꾼이 우리 가운데서 일어나기를 간절히 아룁니다.
한 사람을 불러 온 세상을 복 주기로 작정하신 하나님, 오늘 주님 앞에 엎드립니다. 주님은 우상의 도시 한복판에서 아브람을 찾아내신 분이시며, 자격 없는 자를 불러 복의 통로로 삼으시는 분이십니다. 그 은혜가 오늘 저희에게도 임하였음을 감사드립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간 아브람처럼 저희도 음성 하나를 붙들고 걷게 하여 주옵소서. 보이는 지도가 없어도 말씀하신 분을 신뢰하는 믿음을 주시고, 떠나야 할 자리에서 머뭇거리지 않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기근 앞에서 애굽으로 내려갔던 아브람의 걸음이 저희의 모습이기도 함을 고백합니다. 급하면 먼저 계산부터 하고 주님께는 나중에 묻는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넘어진 날에도 벧엘의 제단으로 돌아가 다시 주님의 이름을 부르게 하여 주옵소서.
쪼갠 고기 사이로 홀로 지나가신 주님을 찬송합니다. 저희가 지킬 수 없는 언약을 주님이 홀로 짊어지셨고, 그 맹세의 값을 십자가에서 치르셨음을 믿습니다. 믿음을 의로 여겨 주시는 그 은혜 앞에 저희의 자랑을 내려놓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주신 그 순간부터 거룩함으로 저희를 빚어 가시는 주님, 날마다 주님 앞에서 행하여 온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차기까지 기다리셨던 그 오래 참으심으로, 아직 돌아오지 않은 저희 가족과 이웃을 품고 기도하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열방이 아브라함의 자손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복을 받게 하시고, 다시 오실 그날에 이루실 모든 약속을 소망하며 오늘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아브라함의 자손이시며 저희의 구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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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런스
-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대한성서공회, 1998. 본문 출처: https://www.bskorea.or.kr
- 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Vol. 1 (Genesis to Deuteronomy), 1708–1710;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판 참조. (창 12~15장 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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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Wesley, “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 (Sermon 43), 1765; The Works of John Wesley, Vol. 2 수록. (칭의와 성화의 동시성)
- Henry M. Morris, The Genesis Record: A Scientific and Devotional Commentary on the Book of Beginnings,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76.
- C. I. Scofield, ed., The Scofield Reference Bibl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09. (아브라함 언약에 관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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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MacArthur, ed., The MacArthur Study Bible, Nashville: Word Publishing, 1997. (창 12~15장 주)
- Kenneth A. Mathews, Genesis 11:27–50:26, The New American Commentary 1B, Nashville: Broadman & Holman, 2005.
- C. Leonard Woolley, Ur of the Chaldees: A Record of Seven Years of Excavation, London: Ernest Benn, 1929. (우르 발굴 기록)
- Howard Taylor and Geraldine Taylor, Hudson Taylor and the China Inland Mission: The Growth of a Work of God, London: China Inland Mission, 1918. (1865년 6월 25일 브라이턴 해변의 기도 기록)
- William Elliot Griffis, A Modern Pioneer in Korea: The Life Story of Henry G. Appenzeller, New York: Fleming H. Revell, 1912. (1885년 부활주일 제물포 상륙과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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