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포스트

인기 태그

13일차 (욥기 35장 ~ 욥기 37장)

독일 프리처베 상공에서 촬영된 뇌우와 번개, Mathias Krumbholz 촬영, CC BY-SA 3.0

독일 프리처베 상공에서 촬영된 뇌우와 번개, Mathias Krumbholz 촬영, CC BY-SA 3.0

13일차 (욥기 35장 ~ 욥기 37장)

본문

욥기 35장

  1. 엘리후가 말을 이어 이르되
  2. 그대는 이것을 합당하게 여기느냐 그대는 그대의 의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말이냐
  3. 그대는 그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며 범죄하지 않는 것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묻지마는
  4. 내가 그대와 및 그대와 함께 있는 그대의 친구들에게 대답하리라
  5. 그대는 하늘을 우러러보라 그대보다 높이 뜬 구름을 바라보라
  6. 그대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그대의 악행이 가득한들 하나님께 무슨 상관이 있겠으며
  7. 그대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그대의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8. 그대의 악은 그대와 같은 사람에게나 있는 것이요 그대의 공의는 어떤 인생에게도 있느니라
  9. 사람은 학대가 많으므로 부르짖으며 군주들의 힘에 눌려 소리치나
  10.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며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구나
  11. 땅의 짐승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가르치시고 하늘의 새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지혜롭게 하시는 이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이도 없구나
  12. 그들이 악인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부르짖으나 대답하는 자가 없음은
  13. 헛된 것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
  14. 하물며 말하기를 하나님은 뵈올 수 없고 일의 판단하심은 그 앞에 있으니 나는 그를 기다릴 뿐이라 말하는 그대일까보냐
  15. 그러나 지금은 그가 진노하심으로 벌을 주지 아니하셨고 악행을 끝까지 살피지 아니하셨으므로
  16. 욥이 헛되이 입을 열어 지식 없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욥기 36장

  1. 엘리후가 말을 이어 이르되
  2. 나를 잠깐 용납하라 내가 그대에게 보이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아직도 할 말이 있음이라
  3. 내가 먼 데서 지식을 얻고 나를 지으신 이에게 의를 돌려보내리라
  4. 진실로 내 말은 거짓이 아니라 온전한 지식을 가진 이가 그대와 함께 있느니라
  5. 하나님은 능하시나 아무도 멸시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사
  6. 악인을 살려두지 아니하시며 고난 받는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며
  7. 그의 눈을 의인에게서 떼지 아니하시고 그를 왕들과 함께 왕좌에 앉히사 영원토록 존귀하게 하시며
  8. 혹시 그들이 족쇄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9. 그들의 소행과 악행과 자신들의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10.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나니
  11. 만일 그들이 순종하여 섬기면 형통한 날을 보내며 즐거운 해를 지낼 것이요
  12. 만일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칼에 망하며 지식 없이 죽을 것이니라
  13. 마음이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이 속박할지라도 도움을 구하지 아니하나니
  14. 그들의 몸은 젊어서 죽으며 그들의 생명은 남창과 함께 있도다
  15.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에서 구원하시며 학대 당할 즈음에 그의 귀를 여시나니
  16.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대를 환난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넉넉한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그대의 상에는 기름진 것이 놓이리라
  17. 이제는 악인의 받을 벌이 그대에게 가득하였고 심판과 정의가 그대를 잡았나니
  18. 그대는 분노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많은 뇌물이 그대를 그릇된 길로 가게 할까 조심하라
  19. 그대의 부르짖음이나 그대의 능력이 어찌 능히 그대가 곤고한 가운데에서 그대를 유익하게 하겠느냐
  20. 그대는 밤을 사모하지 말라 인생들이 밤에 그들이 있는 곳에서 끌려 가리라
  21. 삼가 악으로 치우치지 말라 그대가 환난보다 이것을 택하였느니라
  22. 하나님은 그의 권능으로 높이 계시나니 누가 그같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23. 누가 그를 위하여 그의 길을 정하였느냐 누가 말하기를 주께서 불의를 행하셨나이다 할 수 있으랴
  24. 그대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의 일을 찬송하였느니라
  25. 그의 일을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나니 먼 데서도 보느니라
  26. 하나님은 높으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의 햇수를 헤아릴 수 없느니라
  27. 그가 물방울을 가늘게 하시며 빗방울이 증발하여 안개가 되게 하시도다
  28. 그것이 구름에서 내려 많은 사람에게 쏟아지느니라
  29. 겹겹이 쌓인 구름과 그의 장막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깨달으랴
  30. 보라 그가 번갯불을 자기의 사면에 펼치시며 바다 밑까지 비치시고
  31. 이런 것들로 만민을 심판하시며 음식을 풍성하게 주시느니라
  32. 그가 번갯불을 손바닥 안에 넣으시고 그가 번갯불을 명령하사 과녁을 치시도다
  33. 그의 우레가 다가오는 풍우를 알려 주니 가축들도 그 다가옴을 아느니라

욥기 37장

  1. 이로 말미암아 내 마음이 떨며 그 자리에서 흔들렸도다
  2. 하나님의 음성 곧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똑똑히 들으라
  3. 그 소리를 천하에 펼치시며 번갯불을 땅 끝까지 이르게 하시고
  4. 그 후에 음성을 발하시며 그의 위엄 찬 소리로 천둥을 치시며 그 음성이 들릴 때에 번개를 멈추게 아니하시느니라
  5. 하나님은 놀라운 음성을 내시며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시느니라
  6. 눈을 명하여 땅에 내리라 하시며 적은 비와 큰 비도 내리게 명하시느니라
  7. 그가 모든 사람의 손에 표를 주시어 모든 사람이 그가 지으신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8. 그러나 짐승들은 땅 속에 들어가 그 처소에 머무느니라
  9. 폭풍우는 그 밀실에서 나오고 추위는 북풍을 타고 오느니라
  10. 하나님의 입김이 얼음을 얼게 하고 물의 너비를 줄어들게 하느니라
  11. 또한 그는 구름에 습기를 실으시고 그의 번개로 구름을 흩어지게 하시느니라
  12. 그는 감싸고 도시며 그들의 할 일을 조종하시느니라 그는 땅과 육지 표면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명령하시느니라
  13. 혹은 징계를 위하여 혹은 땅을 위하여 혹은 긍휼을 위하여 그가 이런 일을 생기게 하시느니라
  14. 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
  15. 하나님이 이런 것들에게 명령하셔서 그 구름의 번개로 번쩍거리게 하시는 것을 그대가 아느냐
  16. 그대는 겹겹이 쌓인 구름과 완전한 지식의 경이로움을 아느냐
  17. 땅이 고요할 때에 남풍으로 말미암아 그대의 의복이 따뜻한 까닭을 그대가 아느냐
  18. 그대는 그를 도와 구름장들을 두들겨 넓게 만들어 녹여 부어 만든 거울 같이 단단하게 할 수 있겠느냐
  19. 우리가 그에게 할 말을 그대는 우리에게 가르치라 우리는 아둔하여 아뢰지 못하겠노라
  20.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어찌 그에게 고할 수 있으랴 삼켜지기를 바랄 자가 어디 있으랴
  21. 그런즉 바람이 불어 하늘이 말끔하게 되었을 때 그 밝은 빛을 아무도 볼 수 없느니라
  22. 북쪽에서는 황금 같은 빛이 나오고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
  23. 전능자를 우리가 찾을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정의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심이니라
  24.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모든 자를 무시하시느니라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본문 해설

하늘을 우러러보라는 초대

엘리후의 변론이 오늘 세 장으로 끝을 맺습니다. 어제 그는 하나님이 사람의 귀를 여시는 분이라고 말했고, 하나님은 결코 불의를 행하지 않으신다고 변호했습니다. 오늘 그는 손을 들어 하늘과 구름과 번개와 눈과 얼음을 차례로 가리키며, 사람의 말이 닿을 수 없는 높이로 독자를 데려갑니다. 그리고 그 손가락이 멈추는 순간, 바로 그 하늘에서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실 것입니다.

세 장의 흐름을 먼저 잡아 두시면 읽기가 훨씬 편합니다. 35장은 사람의 의가 하나님께 무엇을 더하는가를 묻고, 36장은 고난을 통해 가르치시는 하나님을 그리며, 37장은 폭풍과 천둥 속의 위엄을 노래합니다.

35장 5절이 이 흐름의 출발점입니다. 그대는 하늘을 우러러보고 그대보다 높이 뜬 구름을 바라보라고 엘리후가 권합니다. 땅에서 벌어진 논쟁을 하늘의 높이에서 다시 보자는 초대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구름일까요? 구름은 사람이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가장 가까운 높이이기 때문입니다. 저 구름도 내 손 밖에 있는데 그 구름을 지으신 분을 내 논리 안에 담겠느냐는 물음인 셈입니다.

사람의 의가 하나님께 더하는 것

35장 6절과 7절이 던지는 질문은 날카롭습니다. 그대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으며, 그대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느냐는 물음입니다. 자칫 차갑게 들릴 수 있는 말이니 조심스럽게 풀어 보겠습니다.

이 말은 사람의 선행이 아무 의미도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8절이 곧바로 그 뜻을 밝혀 줍니다. 그대의 악은 그대와 같은 사람에게나 있는 것이요 그대의 공의는 어떤 인생에게도 있다는 설명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우리의 악과 선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사람을 세우지만, 하나님의 복되심에 무엇을 보태거나 덜어 내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이 모자라서 궁핍해지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왜 엘리후가 이 말을 꺼냈을까요? 욥이 3절에서 범죄하지 않는 것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냐고 물었기 때문입니다. 유익을 계산하는 자리에 서면 하나님은 거래 상대가 되고 마는데, 엘리후는 그 계산대를 치워 버린 것입니다.

웨슬리는 『구약성서 주해』에서 이 대목을 하나님의 자기 충족성에 대한 가르침으로 읽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무엇을 받으려고 우리를 부르신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시려고 우리를 부르신 분이십니다. 순종의 유익은 하나님께가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

35장 9절부터 11절에 오늘 본문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절이 숨어 있습니다. 사람은 학대가 많으므로 부르짖고 군주들의 힘에 눌려 소리치는데,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며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다는 탄식입니다.

미국 네바다주 블랙록 사막 위로 펼쳐진 밤하늘의 은하수, Steve Jurvetson 촬영, CC BY 2.0
미국 네바다주 블랙록 사막 위로 펼쳐진 밤하늘의 은하수, Steve Jurvetson 촬영, CC BY 2.0

히브리어 본문의 표현이 더 정확합니다. 하나님은 밤에 노래를 주시는 분, 곧 노테인 제미로트 발라일라로 불립니다. 제미로트는 악기를 타며 부르는 찬양을 뜻하는 낱말이니, 가장 어두운 시간에 찬양을 심어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의 부르짖음과 하나님이 주시는 노래가 여기서 대조됩니다. 고통 가운데 터져 나오는 비명은 자연스럽지만, 엘리후는 그 비명이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으로까지 올라가지 않는 경우를 지적합니다. 아프다는 소리는 큰데 하나님 어디 계시냐는 물음은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어두운 시간에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비명을 멈추게 하는 해결책이 아니라 그 밤을 견디게 하는 노래입니다.

11절이 사람의 특별함을 덧붙입니다. 하나님은 땅의 짐승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가르치시고 하늘의 새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지혜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이 짐승에서 서서히 올라온 존재가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져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선언입니다.

교만한 부르짖음과 들리지 않는 기도

35장 12절과 13절은 조금 무섭게 들립니다. 그들이 악인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부르짖으나 대답하는 자가 없고, 헛된 것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않으신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듣지 않으실 때가 있을까요? 본문은 분명히 그렇다고 답합니다. 다만 그 기준은 기도의 크기나 간절함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에 있습니다.

시편 66편 18절이 같은 원리를 말합니다.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않으셨으리라는 고백입니다. 야고보서 4장 3절도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기 때문에 받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막힌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가 먼저 점검할 것은 기도의 분량이 아닙니다. 고통에서 벗어나게만 해 달라는 외침인지, 하나님 자신을 찾는 부르짖음인지를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고난으로 귀를 여시는 하나님

36장에 들어서면 엘리후의 어조가 한결 따뜻해집니다. 5절이 그 장의 문을 엽니다. 하나님은 능하시나 아무도 멸시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다는 선언입니다.

전능과 자비가 한 문장 안에 함께 들어온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힘 있는 사람이 약한 사람을 멸시하는 일은 세상에서 너무 흔합니다. 그런데 가장 강하신 분이 가장 작은 자를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미국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으로 다가오는 뇌우 전선, Tuxyso 촬영, CC BY-SA 3.0
미국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으로 다가오는 뇌우 전선, Tuxyso 촬영, CC BY-SA 3.0

8절부터 11절이 엘리후 신학의 핵심입니다. 사람들이 족쇄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을 때 하나님이 그들의 소행을 알게 하시고,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전환이 일어납니다. 세 친구는 고난을 지나간 죄에 대한 영수증으로 읽었습니다. 반면 엘리후는 고난을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알려 주는 교실로 읽습니다.

세 친구와 엘리후의 차이가 어디에서 가장 크게 벌어질까요? 고난을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입니다. 한쪽은 뒤를 돌아보게 하고, 다른 한쪽은 앞을 바라보게 합니다.

15절이 그 마음을 한 번 더 확인해 줍니다.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에서 구원하시며 학대 당할 즈음에 그의 귀를 여신다는 말씀입니다. 귀가 열리는 때가 가장 아플 때라는 사실이 서럽고도 고맙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1절이 같은 진리를 신약의 언어로 전합니다. 무릇 징계는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으나 후에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입니다. 다만 이것이 모든 고난을 죄의 벌로 보는 공식으로 바뀌면 다시 세 친구의 길로 돌아가고 마니, 그 선을 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넉넉한 곳으로 옮기시려는 뜻

36장 16절은 조건절로 시작하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그대를 환난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넉넉한 곳으로 옮기려 하셨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어로 넉넉한 곳은 좁은 길목의 반대말이니, 숨 쉴 공간이 열린 자리를 뜻합니다.

이어지는 17절부터 21절에서 엘리후는 다시 경고로 넘어갑니다. 분노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뇌물이 그대를 그릇된 길로 가게 할까 조심하며, 삼가 악으로 치우치지 말라는 권면입니다.

20절의 표현은 특히 눈길을 끕니다. 그대는 밤을 사모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고통이 길어질 때 사람은 아침보다 밤을, 곧 모든 것이 끝나 버리는 어둠을 그리워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욥이 실제로 그런 말을 했던 적이 있지 않나요? 3장에서 그는 자기 생일을 저주하며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기를 원했습니다. 엘리후는 바로 그 마음을 겨냥하여 어둠을 사모하지 말라고 붙드는 것입니다.

22절부터 26절에서 다시 하늘로 시선이 올라갑니다. 하나님은 그의 권능으로 높이 계시고, 누가 그를 위하여 그의 길을 정했느냐는 반문이 이어지며, 26절은 이렇게 맺습니다. 하나님은 높으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의 햇수를 헤아릴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물방울과 안개, 그리고 비

36장 27절과 28절은 성경에서 자연 현상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구절로 자주 인용됩니다. 그가 물방울을 가늘게 하시며 빗방울이 증발하여 안개가 되게 하시고, 그것이 구름에서 내려 많은 사람에게 쏟아진다는 묘사입니다.

이른 아침 골짜기에 깔린 안개, Pauline Eccles 촬영, CC BY-SA 2.0
이른 아침 골짜기에 깔린 안개, Pauline Eccles 촬영, CC BY-SA 2.0

이 두 절 안에 물의 순환이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증발과 응결과 강수라는 세 단계가 순서대로 적혀 있는 것입니다. 헨리 모리스는 『욥기의 놀라운 기록』에서 욥기가 현대 기상학이 정리한 물의 순환을 이미 담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수천 년 전의 문헌에 이런 묘사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무엇을 말해 줄까요? 성경의 기록이 당대 사람의 과학 수준에서 나온 추측이 아니라 창조하신 분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성경의 무오는 신앙의 문제에만 걸려 있지 않고 역사와 자연에 관한 진술에까지 미칩니다.

29절부터 33절은 구름과 번개를 다루는 대목입니다. 겹겹이 쌓인 구름과 그의 장막의 우렛소리를 누가 깨달으랴 하는 탄식이 나오고, 32절은 하나님이 번갯불을 손바닥 안에 넣으시고 그것을 명령하사 과녁을 치신다고 말합니다.

33절의 마지막 문장은 농부의 눈으로 쓴 관찰입니다. 그의 우레가 다가오는 풍우를 알려 주니 가축들도 그 다가옴을 안다는 묘사입니다. 소와 양이 하늘을 보고 자리를 옮기는 장면을 직접 본 사람만이 이렇게 적을 수 있습니다.

번개와 천둥 앞에 떨리는 마음

37장 1절은 엘리후의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내 마음이 떨며 그 자리에서 흔들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말하던 그 입술이 먼저 떨고 있었습니다.

모루 모양으로 솟아오른 적란운의 파노라마, fir0002, GFDL 1.2
모루 모양으로 솟아오른 적란운의 파노라마, fir0002, GFDL 1.2

하나님의 일을 가장 길게 설명한 사람이 왜 떨고 있었을까요? 설명이 깊어질수록 설명되지 않는 분의 크기가 더 또렷해졌기 때문입니다.

2절부터 5절이 천둥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묘사합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똑똑히 들으라 하고, 그 소리를 천하에 펼치시며 번갯불을 땅 끝까지 이르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위 사진처럼 모루 모양으로 솟은 적란운은 높이가 십 킬로미터를 넘기도 합니다.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번개의 온도는 태양 표면보다 높고, 천둥은 그 통로에서 공기가 폭발적으로 팽창하며 생기는 소리입니다. 사람의 어떤 기계도 그 한 번의 방전을 따라 만들지 못합니다.

5절이 그 묘사를 한마디로 맺습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음성을 내시며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신다는 선언입니다. 헤아릴 수 없다는 말이 체념이 아니라 경배의 고백으로 쓰였습니다.

눈 곳간과 얼음을 만드시는 입김

37장 6절부터 10절은 겨울을 다룹니다. 하나님이 눈을 명하여 땅에 내리라 하시며 적은 비와 큰 비도 내리게 명하시고, 하나님의 입김이 얼음을 얼게 하고 물의 너비를 줄어들게 한다는 묘사입니다.

골란고원에서 바라본 눈 덮인 헤르몬산, Someone35 촬영, CC BY-SA 3.0
골란고원에서 바라본 눈 덮인 헤르몬산, Someone35 촬영, CC BY-SA 3.0

눈이 이 지역에서 드문 손님이라는 점을 기억하셔야 하겠습니다. 성경의 땅에서 눈을 늘 볼 수 있는 곳은 위 사진의 헤르몬산 정상 일대뿐입니다. 그래서 눈은 언제나 경이의 대상이었습니다.

눈이 왜 이 땅에서 그토록 특별한 일이었을까요? 좀처럼 볼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고에서 꺼내 온 선물처럼 여겨졌던 것입니다.

9절이 방향까지 적어 둡니다. 폭풍우는 그 밀실에서 나오고 추위는 북풍을 타고 온다는 관찰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겨울의 한기는 실제로 북쪽 산지에서 내려오니, 이것은 체험에서 나온 정확한 기록입니다.

7절과 8절도 흥미롭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손에 표를 주시어 사람이 그가 지으신 것을 알게 하시고, 짐승들은 땅 속에 들어가 그 처소에 머문다는 묘사입니다. 눈과 비가 내리면 사람의 일손이 멈추는데, 그 멈춤조차 창조주를 생각하게 하는 장치로 쓰인다는 뜻입니다.

13절이 이 모든 날씨의 목적을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혹은 징계를 위하여, 혹은 땅을 위하여, 혹은 긍휼을 위하여 하나님이 이런 일을 생기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날씨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 움직이는 통로입니다.

녹여 부어 만든 거울 같은 하늘

37장 14절부터 18절에서 엘리후가 욥에게 질문을 쏟아 놓습니다.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고 권한 뒤, 구름의 번개를 아느냐, 겹겹이 쌓인 구름을 아느냐, 남풍으로 말미암아 그대의 의복이 따뜻한 까닭을 아느냐고 묻습니다.

이집트에서 출토된 기원전 800년에서 100년 사이의 청동 거울, 웰컴 컬렉션, CC BY 4.0
이집트에서 출토된 기원전 800년에서 100년 사이의 청동 거울, 웰컴 컬렉션, CC BY 4.0

18절의 비유가 특히 생생합니다. 그대가 하나님을 도와 구름장들을 두들겨 넓게 만들어 녹여 부어 만든 거울 같이 단단하게 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입니다. 고대의 거울은 유리가 아니라 청동을 녹여 붓고 두들겨 펴서 광을 낸 금속판이었습니다.

하늘을 금속판에 비유한 까닭이 무엇일까요? 맑게 갠 하늘이 사람의 눈에 단단하게 펴진 한 장의 판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위 사진의 거울을 보시면 그 비유가 손에 잡힐 것입니다. 장인이 쇳물을 부어 식히고 망치로 두드려 평평하게 만든 뒤 매끄럽게 갈아 내야 비로소 얼굴이 비쳤습니다. 엘리후는 맑게 갠 하늘을 그렇게 단단히 펴 놓은 금속판에 비유한 것입니다.

19절과 20절에서 그의 고백이 겸손해집니다. 우리가 그에게 할 말을 가르쳐 달라고 하면서 우리는 아둔하여 아뢰지 못하겠다고 물러섭니다. 길게 말한 사람이 마지막에 자기 말의 한계를 인정하는 모습입니다.

북쪽에서 오는 빛과 두려운 위엄

37장 21절과 22절이 이 긴 변론의 마지막 그림을 보여 줍니다. 바람이 불어 하늘이 말끔하게 되었을 때 그 밝은 빛을 아무도 볼 수 없고, 북쪽에서는 황금 같은 빛이 나오고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다는 선언입니다.

스웨덴 브라스타드 상공의 여러 빛깔로 나타난 오로라, W.carter 촬영, CC BY-SA 4.0
스웨덴 브라스타드 상공의 여러 빛깔로 나타난 오로라, W.carter 촬영, CC BY-SA 4.0

이 구절을 읽으면 북쪽 하늘에 드리우는 빛이 떠오릅니다. 위 사진의 오로라처럼 북녘 하늘이 빛을 뿜는 광경이든, 북풍이 구름을 밀어낸 뒤 쏟아지는 금빛 햇살이든, 엘리후가 말하려는 것은 분명합니다. 사람의 눈이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광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23절이 그 위엄의 내용을 설명합니다. 전능자를 우리가 찾을 수 없으나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시고 정의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신다는 고백입니다. 높으시다는 말과 공의로우시다는 말이 여기서 한 몸이 됩니다.

24절이 마지막 문장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모든 자를 무시하신다는 선언으로 엘리후의 긴 말이 끝납니다. 사람의 변론은 여기까지입니다.

이 마지막 문장 바로 다음에 무엇이 오는지 아시나요? 욥기 38장 1절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라는 문장입니다. 엘리후가 가리키던 그 하늘이 입을 여는 순간이며, 우리는 내일 그 음성 앞에 서게 됩니다.

묵상과 적용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가장 먼저 건네는 말은 시선을 들어 올리라는 권면입니다. 35장 5절의 하늘을 우러러보라는 말은 고통을 가볍게 여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땅에서만 계산하던 눈을 잠시 하늘로 옮겨 보라는 초대입니다.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우리의 시야는 몹시 좁아집니다. 통장 잔고, 진단서의 숫자, 상대의 말 한마디가 세계의 전부가 되고 맙니다. 그럴 때 창밖의 구름 한 조각을 오래 바라보는 일이 의외로 깊은 영적 훈련이 되는 법입니다.

두 번째로 본문은 밤에 노래를 주시는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엘리후가 안타까워한 것은 사람들이 아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니라, 아파하면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신음과 기도는 다릅니다.

이것을 이렇게 적용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사람에게 열 번 말하기 전에 하나님께 한 번 아뢰는 순서를 지켜 보십시오. 그리고 그 밤에 찬송 한 곡을 소리 내어 불러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둠 속에서 노래를 심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한밤중에 찬송한 장면이 사도행전 16장에 있습니다. 그들은 매를 맞고 차꼬에 채워진 상태였는데도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고, 다른 죄수들이 그 노래를 들었습니다. 밤의 노래는 언제나 누군가에게 들립니다.

세 번째 적용은 고난의 해석에 관한 것입니다. 엘리후는 고난을 지나간 죄의 영수증이 아니라 귀를 여는 교실로 보았습니다. 이 관점은 우리를 자기 정죄에서 건져 내면서도 고난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움 가운데 계신 분은 두 가지를 피하셔야 하겠습니다. 하나는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일을 당하는가 하며 끝없이 자기를 뒤지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이 모든 일에 아무 뜻도 없다고 단정하는 일입니다. 그 사이에 하나님이 지금 내게 가르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기에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갑니다(빌 2:12~13). 은혜가 먼저 일하고 우리가 그 은혜에 응답하는 구조입니다. 고난의 교실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가르치시고 우리가 배우는 일이 함께 일어납니다.

네 번째로 36장 27절의 물방울은 우리에게 창조주를 가리켜 보이는 증거입니다. 물이 증발하고 구름이 되고 비로 내리는 이 순환은 우연히 생겨난 장치가 아닙니다. 수천 년 전의 본문이 그 순서를 정확히 적었다는 사실은 성경이 창조하신 분의 책이라는 증거입니다.

이 확신은 실제 삶에서 힘을 냅니다. 자녀가 학교에서 사람이 우연히 생겨났다고 배우고 돌아올 때, 부모는 흔들리지 않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때 부모는 무엇을 말해 주어야 할까요? 하나님은 엿새 동안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셨고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직접 빚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욥기 35장 11절이 사람과 짐승을 분명히 구별한 것도 같은 진리를 증언합니다.

다섯 번째로 36장 5절은 관계의 원리를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능하시나 아무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힘을 가진 사람이 그 힘을 쓰는 방식에서 그 사람의 믿음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직장에서 결재권을 쥔 분이라면 오늘 하루 가장 말수가 적은 직원의 의견을 먼저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가정에서는 아이의 서툰 설명을 끝까지 들어 주십시오. 교회에서는 봉사가 서툰 새 신자를 재촉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길입니다.

마지막으로 37장 14절의 권면을 마음에 담으시면 좋겠습니다.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분주함은 경외심의 가장 큰 적입니다.

오늘 하루 어느 한 순간이라도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시기 바랍니다. 그 하늘을 펴신 분이 나를 위해 아들을 내어 주셨다는 사실 앞에 서면, 두려운 위엄과 깊은 사랑이 한 분 안에 있다는 고백이 저절로 나옵니다. 그 고백을 품고 다시 오실 그분을 기다리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화

네 딸을 잃은 바다 위에서 쓴 찬송

1873년 11월 21일 밤, 대서양 한복판에서 프랑스 여객선 빌 뒤 아브르호가 영국 범선 로크언호와 충돌했습니다. 배는 십이 분 만에 가라앉았고, 희생자는 승객과 승무원 이백스물여섯 명입니다. 그 배에는 시카고에서 온 한 어머니와 네 딸이 타고 있었습니다.

호레이쇼 게이츠 스패포드의 사진, 퍼블릭 도메인
호레이쇼 게이츠 스패포드의 사진, 퍼블릭 도메인

어머니 애나 스패포드는 널빤지에 매달려 구조되었지만, 애니와 매기와 베시와 타네타 네 딸은 모두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구조된 그는 웨일스 카디프에 도착하여 남편에게 두 단어로 된 전보를 보냅니다. 나 홀로 구조되었음이라는 전보였습니다.

남편 호레이쇼 게이츠 스패포드는 시카고에서 일하던 변호사입니다. 그는 이미 큰 손실을 겪은 사람이었습니다. 1871년 시카고 대화재로 미시간 호숫가에 투자한 부동산이 모두 불탔고, 그 전에는 네 살 난 아들을 성홍열로 잃었던 것입니다.

전보를 받은 그는 곧바로 배를 타고 아내에게로 향했습니다. 항해 도중 선장이 그를 불러 지금 이 바다 밑이 당신의 딸들이 가라앉은 자리라고 알려 줍니다. 그 밤에 그는 선실에서 종이를 꺼내 한 편의 시를 썼습니다.

1873년 빌 뒤 아브르호의 침몰을 그린 커리어 앤드 아이브스사의 석판화, 퍼블릭 도메인
1873년 빌 뒤 아브르호의 침몰을 그린 커리어 앤드 아이브스사의 석판화, 퍼블릭 도메인

그 시가 오늘 우리가 부르는 찬송 내 평생에 가는 길입니다. 첫 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는 고백입니다.

이 가사가 어떤 자리에서 나왔는지 다시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재산을 잃고 아들을 잃고 네 딸을 한꺼번에 잃은 사람이었고, 바로 그 딸들이 가라앉은 바다 위를 지나가는 중이었습니다. 욥기 35장 10절이 말한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그 선실에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스패포드 부부는 이후 예루살렘으로 건너가 아메리칸 콜로니라는 공동체를 세우고 가난한 이들과 고아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들의 집은 지금도 예루살렘에 남아 있습니다. 슬픔이 그들을 삼키지 못했고, 오히려 그 슬픔이 섬김의 통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라벤스브뤼크 수용소의 벼룩

또 한 사람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네덜란드 하를럼의 시계 수리공 집안에서 자란 코리 텐 붐의 실화입니다.

젊은 시절의 코리 텐 붐, 퍼블릭 도메인
젊은 시절의 코리 텐 붐, 퍼블릭 도메인
네덜란드 하를럼 바르텔요리스 거리의 코리 텐 붐 박물관, Jane023 촬영, CC BY-SA 3.0
네덜란드 하를럼 바르텔요리스 거리의 코리 텐 붐 박물관, Jane023 촬영, CC BY-SA 3.0

텐 붐 가족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위 사진의 집 이층에 비밀 공간을 만들고 유대인들을 숨겨 주었습니다. 1944년 2월 밀고로 온 가족이 체포되고, 아버지 카스퍼는 열흘 만에 감옥에서 숨을 거둡니다. 코리와 언니 벳시는 결국 독일 라벤스브뤼크 여성 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라벤스브뤼크 강제수용소 옛터의 점호장에서 바라본 수용소 거리, Keijdo 촬영, CC0
라벤스브뤼크 강제수용소 옛터의 점호장에서 바라본 수용소 거리, Keijdo 촬영, CC0

두 사람이 배정된 28번 막사의 형편은 참혹 그 자체입니다. 짚이 썩어 가는 침상에는 벼룩이 들끓었고 숨 쉴 공간조차 모자랐습니다. 코리는 자서전 『주님은 나의 피난처』에서 그 첫날의 절망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도저히 이곳에서는 살 수 없겠다고 느꼈다는 고백입니다.

그때 언니 벳시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을 떠올렸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벳시는 함께 숨겨 들여온 성경책을 주신 것에, 빽빽하게 들어찬 사람들 덕분에 더 많은 이에게 말씀을 전할 수 있게 된 것에, 그리고 벼룩에 대해서까지 감사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코리는 솔직하게 반발했습니다. 벼룩에 감사할 수는 없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벳시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으니 벼룩도 그 범사 안에 있다고 물러서지 않았고, 두 사람은 결국 벼룩을 두고도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몇 주 뒤 두 사람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막사에서만 유독 감시병들이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여간수가 지나가는 말로 이유를 흘렸는데, 그 막사에 벼룩이 너무 많아 들어가기 싫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가능해졌을까요? 두 자매는 매일 저녁 성경을 펴고 공개적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감시의 눈이 닿지 않는 그 막사에서 수십 명의 여성이 말씀을 들었고, 그 자리는 수용소 안에서 가장 자유로운 교실이 되었습니다.

욥기 36장 15절이 떠오르지 않나요?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에서 구원하시며 학대 당할 즈음에 그의 귀를 여신다는 말씀입니다. 벳시는 1944년 12월 그 수용소에서 세상을 떠났지만, 숨을 거두기 전 코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겪은 일을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며,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깊은 구덩이보다 더 깊다는 사실을 알려 주어야 한다는 당부였습니다.

코리 텐 붐은 행정 착오로 석방된 뒤 예순 개가 넘는 나라를 다니며 그 말을 전했습니다. 두 이야기가 결국 한곳에서 만납니다. 스패포드의 선실과 라벤스브뤼크의 막사는 모두 밤이었고, 그 밤에 하나님이 노래를 주셨던 것입니다.

기도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좁아진 시야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게 하시고, 아픔 가운데서도 신음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을 찾는 부르짖음으로 나아가기를 간구합니다. 아울러 고난을 자기 정죄의 재료로도, 무의미한 우연으로도 삼지 않고 하나님의 교실에서 배우는 자리로 받아들이기를 구합니다.

가정을 위해서는, 힘을 가진 사람이 약한 사람을 멸시하지 않는 하나님의 성품이 식탁 위에서 먼저 드러나기를 기도드립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는, 밤을 지나는 성도 곁에서 함께 찬송을 불러 주는 공동체가 되기를 구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재난과 질병으로 가족을 잃은 이들이 위로를 얻고, 열방에서 가장 어두운 자리에 있는 교회들이 노래를 잃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밤에 노래를 주시는 하나님, 오늘 말씀 앞에 엎드립니다. 주님은 구름을 펼치시고 번개를 손바닥 안에 넣으시는 전능자이시며, 동시에 곤고한 자를 결코 멸시하지 않으시는 자비의 아버지이심을 고백합니다. 그 두 이름이 한 분 안에 있다는 사실이 저희에게 가장 큰 위로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물방울을 가늘게 하시고 빗방울을 안개가 되게 하시는 그 손길을 찬양합니다. 수천 년 전에 기록된 말씀이 오늘의 하늘과 한 치도 어긋나지 않음을 보며, 성경이 주님의 책임을 다시 확인합니다. 저희 믿음이 사람의 학문 앞에서 흔들리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어둠을 사모하던 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고통이 길어질 때 차라리 모든 것이 끝나기를 바랐던 밤들이 있었습니다. 그 밤에도 주님은 저희를 붙들고 계셨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귀를 열어 주옵소서. 환난의 줄에 얽혔을 때 원망부터 쏟아 내지 않게 하시고, 주님이 무엇을 가르치시는지 묻는 자리에 먼저 앉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 배움을 통해 저희가 그리스도를 닮아 가게 하여 주옵소서.

가만히 서서 주님의 오묘한 일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분주함에 밀려 하늘 한 번 올려다보지 못한 날들을 돌이키며, 오늘 하루 걸음을 멈추는 시간을 저희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 멈춤의 자리에서 주님의 두려운 위엄과 깊은 사랑을 함께 보게 하여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이 땅의 모든 밤이 끝나고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을 기다립니다. 그날까지 저희에게 노래를 주시고, 그 노래가 곁에 있는 누군가의 귀에 들리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하루를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저희를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말씀을 폭풍우 가운데서도 함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보면 좋은 영상

제자광성교회 | 하나님의 성품 (1) - 모르면, 영원히 망하여 죽는다 (2020-11-13 금요철야) | 박한수 목사
제자광성교회 | 하나님의 성품 (10) - 거룩하신 하나님 (2021-01-15 금요성령집회) | 박한수 목사
주를위한교회 | 하나님의 음성듣기 5 -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는 비결 | 김장군 목사
주를위한교회 | 야고보서 강해 15 - 교회들이 회복해야 할 고난과 질병 해결법 | 김장군 목사
Grace to You | God's Purpose in Our Pain (2 Corinthians 12:7-10) | John MacArthur
Answers in Genesis | They Just Discovered Something UNBELIEVABLE About Nature

레퍼런스

  1.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대한성서공회, 1998. 본문 출처: https://www.bskorea.or.kr
  2. 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Vol. 3 (Job to Song of Solomon), 1708–1710;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판 참조. (욥 35~37장 주해)
  3. John Wesley, Explanatory Notes upon the Old Testament, Bristol: William Pine, 1765. (욥기 35~37장 주해)
  4. John Wesley, “On Working Out Our Own Salvation” (Sermon 85, 1785), in The Works of John Wesley, Vol. 3, ed. Albert C. Outler, Nashville: Abingdon Press, 1986.
  5. John E. Hartley, The Book of Job,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88. (엘리후 담화 주해)
  6. John MacArthur, ed., The MacArthur Study Bible, Nashville: Word Publishing, 1997. (욥 35~37장 주)
  7. Henry M. Morris, The Remarkable Record of Job,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8. (욥기에 나타난 물의 순환과 기상 현상)
  8. Robert L. Alden, Job, The New American Commentary 11, Nashville: Broadman & Holman, 1993.
  9. C. I. Scofield, ed., The Scofield Reference Bibl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09. (욥기 주)
  10. Bertha Spafford Vester, Our Jerusalem: An American Family in the Holy City, 1881–1949, Garden City: Doubleday, 1950. (빌 뒤 아브르호 침몰과 스패포드 가족의 기록)
  11. Corrie ten Boom with John and Elizabeth Sherrill, The Hiding Place, Washington Depot: Chosen Books, 1971. (라벤스브뤼크 수용소 28번 막사 기록)
  12. 이미지 출처(모두 위키미디어 공용에서 크기를 줄여 주소로 임베딩함): 프리처베 뇌우 사진, Mathias Krumbholz, CC BY-SA 3.0 / 블랙록 사막 은하수 사진, Steve Jurvetson, CC BY 2.0 / 조슈아트리 뇌우 전선 사진, Tuxyso, CC BY-SA 3.0 / 이른 아침 골짜기 안개 사진, Pauline Eccles, CC BY-SA 2.0 / 모루구름 파노라마 사진, fir0002, GFDL 1.2 / 헤르몬산 설경 사진, Someone35, CC BY-SA 3.0 / 이집트 청동 거울 사진, 웰컴 컬렉션, CC BY 4.0 / 브라스타드 오로라 사진, W.carter, CC BY-SA 4.0 / 호레이쇼 스패포드 사진, 퍼블릭 도메인 / 빌 뒤 아브르호 침몰 석판화, 커리어 앤드 아이브스, 퍼블릭 도메인 / 코리 텐 붐 사진, 퍼블릭 도메인 / 코리 텐 붐 박물관 사진, Jane023, CC BY-SA 3.0 / 라벤스브뤼크 기념관 사진, Keijdo, CC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