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차 (욥기 29장 ~ 욥기 31장)
이스라엘 텔 단 유적의 이스라엘 시대 성문, Mboesch 촬영, CC BY-SA 4.0
본문
욥기 29장
- 욥이 풍자하여 이르되
- 나는 지난 세월과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던 때가 다시 오기를 원하노라
- 그 때에는 그의 등불이 내 머리에 비치었고 내가 그의 빛을 힘입어 암흑에서도 걸어다녔느니라
- 내가 원기 왕성하던 날과 같이 지내기를 원하노라 그 때에는 하나님이 내 장막에 기름을 발라 주셨도다
- 그 때에는 전능자가 아직도 나와 함께 계셨으며 나의 젊은이들이 나를 둘러 있었으며
- 젖으로 내 발자취를 씻으며 바위가 나를 위하여 기름 시내를 쏟아냈으며
- 그 때에는 내가 나가서 성문에 이르기도 하며 내 자리를 거리에 마련하기도 하였느니라
- 나를 보고 젊은이들은 숨으며 노인들은 일어나서 서며
- 유지들은 말을 삼가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 지도자들은 말소리를 낮추었으니 그들의 혀가 입천장에 붙었느니라
- 귀가 들은즉 나를 축복하고 눈이 본즉 나를 증언하였나니
- 이는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 줄 자 없는 고아를 내가 건졌음이라
- 망하게 된 자도 나를 위하여 복을 빌었으며 과부의 마음이 나로 말미암아 기뻐 노래하였느니라
- 내가 의를 옷으로 삼아 입었으며 나의 정의는 겉옷과 모자 같았느니라
- 나는 맹인의 눈도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의 발도 되고
- 빈궁한 자의 아버지도 되며 내가 모르는 사람의 송사를 돌보아 주었으며
- 불의한 자의 턱뼈를 부수고 노획한 물건을 그 잇새에서 빼내었느니라
- 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내 보금자리에서 숨을 거두며 나의 날은 모래알 같이 많으리라 하였느니라
- 내 뿌리는 물로 뻗어나가고 이슬이 내 가지에서 밤을 지내고 갈 것이며
- 내 영광은 내게 새로워지고 내 손에서 내 화살이 끊이지 않았노라
- 무리는 내 말을 듣고 희망을 걸었으며 내가 가르칠 때에 잠잠하였노라
- 내가 말한 후에는 그들이 말을 거듭하지 못하였나니 나의 말이 그들에게 스며들었음이라
- 그들은 비를 기다리듯 나를 기다렸으며 봄비를 맞이하듯 입을 벌렸느니라
- 그들이 의지 없을 때에 내가 미소하면 그들이 나의 얼굴 빛을 무색하게 아니하였느니라
- 내가 그들의 길을 택하여 주고 으뜸되는 자리에 앉았나니 왕이 군대 중에 있는 것과도 같았고 애곡하는 자를 위로하는 사람과도 같았느니라
욥기 30장
- 그러나 이제는 나보다 젊은 자들이 나를 비웃는구나 그들의 아비들은 내가 보기에 내 양 떼를 지키는 개 중에도 둘 만하지 못한 자들이니라
- 그들의 기력이 쇠잔하였으니 그들의 손의 힘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 그들은 곧 궁핍과 기근으로 인하여 파리하며 캄캄하고 메마른 땅에서 마른 흙을 씹으며
-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짠 나물을 꺾으며 대싸리 뿌리로 먹을 거리를 삼느니라
- 무리가 그들에게 소리를 지름으로 도둑 같이 사람들 가운데에서 쫓겨나서
- 침침한 골짜기와 흙 구덩이와 바위 굴에서 살며
-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부르짖으며 가시나무 아래에 모여 있느니라
- 그들은 본래 미련한 자의 자식이요 이름 없는 자들의 자식으로서 고토에서 쫓겨난 자들이니라
- 이제는 그들이 나를 노래로 조롱하며 내가 그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으며
- 그들이 나를 미워하여 멀리 하고 서슴지 않고 내 얼굴에 침을 뱉는도다
- 이는 하나님이 내 활시위를 늘어지게 하시고 나를 곤고하게 하심으로 무리가 내 앞에서 굴레를 벗었음이니라
- 그들이 내 오른쪽에서 일어나 내 발에 덫을 놓으며 나를 대적하여 길을 에워싸며
- 그들이 내 길을 헐고 내 재앙을 재촉하는데도 도울 자가 없구나
- 그들은 성을 파괴하고 그 파괴한 가운데로 몰려드는 것 같이 내게로 달려드니
- 순식간에 공포가 나를 에워싸고 그들이 내 품위를 바람 같이 날려 버리니 나의 구원은 구름 같이 지나가 버렸구나
- 이제는 내 생명이 내 속에서 녹으니 환난 날이 나를 사로잡음이라
- 밤이 되면 내 뼈가 쑤시니 나의 아픔이 쉬지 아니하는구나
- 그가 큰 능력으로 나의 옷을 떨쳐 버리시며 나의 옷깃처럼 나를 휘어잡으시는구나
- 하나님이 나를 진흙 가운데 던지셨고 나를 티끌과 재 같게 하셨구나
- 내가 주께 부르짖으나 주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다
- 주께서 돌이켜 내게 잔혹하게 하시고 힘 있는 손으로 나를 대적하시나이다
- 나를 바람 위에 들어 불려가게 하시며 무서운 힘으로 나를 던져 버리시나이다
- 내가 아나이다 주께서 나를 죽게 하사 모든 생물을 위하여 정한 집으로 돌려보내시리이다
- 그러나 사람이 넘어질 때에 어찌 손을 펴지 아니하며 재앙을 당할 때에 어찌 도움을 부르짖지 아니하리이까
- 고생의 날을 보내는 자를 위하여 내가 울지 아니하였는가 빈궁한 자를 위하여 내 마음에 근심하지 아니하였는가
- 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고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구나
- 내 마음이 들끓어 고요함이 없구나 환난 날이 내게 임하였구나
- 나는 햇볕에 쬐지 않고도 검어진 피부를 가지고 걸으며 회중 가운데 서서 도움을 부르짖고 있느니라
- 나는 이리의 형제요 타조의 벗이로구나
- 나를 덮고 있는 피부는 검어졌고 내 뼈는 열기로 말미암아 탔구나
- 내 수금은 통곡이 되었고 내 피리는 애곡이 되었구나
욥기 31장
-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 그리하면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분깃이 무엇이겠으며 높은 곳의 전능자께서 주시는 기업이 무엇이겠느냐
- 불의한 자에게는 환난이 아니겠느냐 행악자에게는 불행이 아니겠느냐
- 그가 내 길을 살피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
- 만일 내가 허위와 함께 동행하고 내 발이 속임수에 빨랐다면
- 하나님께서 나를 공평한 저울에 달아보시고 그가 나의 온전함을 아시기를 바라노라
- 만일 내 걸음이 길에서 떠났거나 내 마음이 내 눈을 따랐거나 내 손에 더러운 것이 묻었다면
- 내가 심은 것을 타인이 먹으며 나의 소출이 뿌리째 뽑히기를 바라노라
- 만일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문에서 숨어 기다렸다면
- 내 아내가 타인의 맷돌을 돌리며 타인과 더불어 동침하기를 바라노라
- 그것은 참으로 음란한 일이니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요
- 멸망하도록 사르는 불이니 나의 모든 소출을 뿌리째 뽑기를 바라노라
- 만일 남종이나 여종이 나와 더불어 쟁론할 때에 내가 그의 권리를 저버렸다면
- 하나님이 일어나실 때에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 내가 무엇이라 대답하겠느냐
- 나를 태 속에 만드신 이가 그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를 뱃속에 지으신 이가 한 분이 아니시냐
- 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거나 과부의 눈으로 하여금 실망하게 하였던가
- 나만 혼자 내 떡덩이를 먹고 고아에게 그 조각을 먹이지 아니하였던가
- 실상은 내가 젊었을 때부터 고아 기르기를 그의 아비처럼 하였으며 내가 어렸을 때부터 과부를 인도하였노라
- 만일 내가 사람이 의복이 없이 죽어가는 것이나 가난한 자가 덮을 것이 없는 것을 못본 체 했다면
- 만일 나의 양털로 그의 몸을 따뜻하게 입혀서 그의 허리가 나를 위하여 복을 빌게 하지 아니하였다면
- 만일 나를 도와 주는 자가 성문에 있음을 보고 내가 주먹을 들어 고아를 향해 휘둘렀다면
- 내 팔이 어깨 뼈에서 떨어지고 내 팔 뼈가 그 자리에서 부스러지기를 바라노라
- 나는 하나님의 재앙을 심히 두려워하고 그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그런 일을 할 수 없느니라
- 만일 내가 내 소망을 금에다 두고 순금에게 너는 내 의뢰하는 바라 하였다면
- 만일 재물의 풍부함과 손으로 얻은 것이 많음으로 기뻐하였다면
- 만일 해가 빛남과 달이 밝게 뜬 것을 보고
- 내 마음이 슬며시 유혹되어 내 손에 입맞추었다면
- 그것도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니 내가 그리하였으면 위에 계신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리라
- 내가 언제 나를 미워하는 자의 멸망을 기뻐하고 그가 재난을 당함으로 즐거워하였던가
- 실상은 나는 그가 죽기를 구하는 말로 그의 생명을 저주하여 내 입이 범죄하게 하지 아니하였노라
- 내 장막 사람들은 주인의 고기에 배부르지 않은 자가 어디 있느뇨 하지 아니하였는가
- 실상은 나그네가 거리에서 자지 아니하도록 나는 행인에게 내 문을 열어 주었노라
- 내가 언제 다른 사람처럼 내 악행을 숨긴 일이 있거나 나의 죄악을 나의 품에 감추었으며
- 내가 언제 큰 무리와 여러 종족의 수모가 두려워서 대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잠잠하였던가
- 누구든지 나의 변명을 들어다오 나의 서명이 여기 있으니 전능자가 내게 대답하시기를 바라노라 나를 고발하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고소장을 쓰게 하라
- 내가 그것을 어깨에 메기도 하고 왕관처럼 머리에 쓰기도 하리라
- 내 걸음의 수효를 그에게 알리고 왕족처럼 그를 가까이 하였으리라
- 만일 내 밭이 나를 향하여 부르짖고 밭이랑이 함께 울었다면
- 만일 내가 값을 내지 않고 그 소출을 먹고 그 소유주가 생명을 잃게 하였다면
- 밀 대신에 가시나무가 나고 보리 대신에 독보리가 나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고 욥의 말이 그치니라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본문 해설
잃어버린 날들과 마지막 진술
연대기 일독의 열한째 날입니다. 오늘 읽는 세 장은 욥의 마지막 진술입니다. 그는 잃어버린 지난날을 길게 그려 보이고, 지금의 비참을 숨김 없이 쏟아내고, 마지막으로 자기 삶을 조목조목 열어 하나님의 판결을 기다립니다. 31장 마지막 줄의 “욥의 말이 그치니라"라는 문장은 긴 변론의 종지부를 찍는 선언입니다.
세 장의 구조가 단순하고도 선명합니다. 29장은 옛날이고, 30장은 지금이며, 31장은 결백의 맹세입니다. 과거와 현재를 나란히 세운 뒤 자기 양심을 하나님 앞에 펼쳐 놓는 순서입니다.
29장 1절은 “욥이 풍자하여 이르되"로 시작합니다. 여기 쓰인 히브리어 마샬은 비꼬는 말이 아니라 잠언처럼 다듬어진 담화를 가리킵니다. 그러니 이 세 장은 즉흥적인 넋두리가 아니라 공들여 준비한 최종 변론문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왜 욥은 옛날 이야기를 먼저 꺼냈을까요? 자기 삶이 어떤 삶이었는지 증거로 제시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이 상상으로 그려 낸 죄인의 초상과 실제로 그가 살아온 모습을 맞세우는 방식입니다.
성문에 자리를 마련하던 사람
29장 7절이 그 시절의 중심 장면입니다. “그 때에는 내가 나가서 성문에 이르기도 하며 내 자리를 거리에 마련하기도 하였느니라.” 이 한 줄을 이해하려면 고대 도시의 성문이 어떤 곳이었는지 알아야 하겠습니다.

성문은 단순한 출입구가 아니었습니다. 성벽으로 둘러싼 도시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모일 수 있는 통로였기에, 거기가 법정이자 시장이자 회의장이었습니다. 발굴된 성문 안쪽에는 돌로 만든 긴 의자가 남아 있는데, 장로들이 앉던 자리입니다.

성경에도 그 자리가 여러 번 등장합니다. 룻기 4장에서 보아스는 성문에서 장로 열 사람을 앉혀 놓고 기업 무를 일을 처리했습니다. 신명기 21장 19절은 부모가 자식의 일을 성문의 장로들에게 가져가라고 명합니다.
아모스 5장 10절은 더 날카롭습니다. 악한 자들이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한다고 고발하는 말씀입니다. 성문이 곧 정의가 세워지거나 무너지는 자리였던 셈입니다.
그러니 “내 자리를 거리에 마련하기도 하였느니라"는 말은 재판석에 앉았다는 뜻입니다. 욥은 그 도시에서 송사를 판결하고 약자를 변호하는 최고 어른이었던 것입니다.
8절부터 10절의 반응이 그 위치를 보여 줍니다. 젊은이들은 그를 보고 물러서고, 노인들도 일어서서 예를 갖추며, 유지들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지도자들은 말소리를 낮추었습니다. 그의 한마디가 곧 판결이었던 셈입니다.
맹인의 눈도 되고 다리 저는 자의 발도 되고
그렇다면 그는 그 권위를 무엇에 썼을까요? 12절부터 17절이 답을 줍니다. 그는 그 자리를 약자를 건지는 데 썼습니다.
목록을 하나씩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 줄 자 없는 고아를 건졌고, 망하게 된 자가 그를 축복했으며, 과부의 마음이 그로 말미암아 기뻐 노래했습니다. 권력이 약자를 향해 흐른 드문 경우입니다.
14절의 표현이 아름답습니다. “내가 의를 옷으로 삼아 입었으며 나의 정의는 겉옷과 모자 같았느니라.” 의를 몸에 걸치는 옷처럼 여겼다는 뜻이니, 사람들이 그를 볼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그의 정의였다는 말입니다.
15절과 16절은 더 구체적입니다. 그는 맹인의 눈이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의 발이 되고 빈궁한 자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눈이 없는 사람에게 눈을 빌려 주고, 걸을 수 없는 사람의 발이 되어 주었다는 뜻입니다.
특별히 눈여겨볼 대목은 16절 후반입니다. 그는 내가 모르는 사람의 송사까지 돌보아 주었다고 말합니다. 아는 사람을 돕는 일은 인정이지만, 모르는 사람의 억울함을 조사하는 일은 정의입니다.
17절은 조금 거칠게 들립니다. 불의한 자의 턱뼈를 부수고 노획한 물건을 그 잇새에서 빼냈다는 말입니다. 사자가 물고 있는 먹이를 입에서 빼내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니, 그의 긍휼이 말뿐이 아니었다는 증거입니다.
보금자리에서 숨을 거두리라던 계획
18절부터 20절에는 그가 세웠던 노년의 계획이 담겼습니다. 내 보금자리에서 숨을 거두며 나의 날은 모래알 같이 많으리라 하는 기대입니다. 뿌리가 물로 뻗고 이슬이 가지에 머무는 나무의 이미지가 뒤따릅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 마음이 아려 옵니다. 누구나 비슷한 계획을 품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건강하게 자녀를 키우고, 손주를 보고, 자기 집에서 조용히 생을 마치는 그림입니다.
21절부터 25절은 그 시절의 영향력을 그립니다. 사람들이 비를 기다리듯 그의 말을 기다렸고, 봄비를 맞이하듯 입을 벌렸다고 합니다. 팔레스타인에서 봄비는 수확을 결정하는 비였으니, 그의 조언이 사람들에게 생계만큼 중요했다는 뜻입니다.
25절의 마지막 표현이 묘합니다. 그는 자기가 왕이 군대 중에 있는 것과도 같았고 애곡하는 자를 위로하는 사람과도 같았다고 말합니다. 위엄과 긍휼이 한 사람 안에 있었다는 고백이 여기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29장을 읽으며 조심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욥이 그리워한 것이 권세인지 하나님인지 가려 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2절과 5절을 다시 보면 답이 보입니다. 그가 가장 먼저 그리워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던 때였습니다.
이제는 나를 비웃는 자들
30장 1절의 첫마디가 모든 것을 뒤집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29장의 모든 영광이 이 한마디 앞에서 과거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를 비웃는 자들은 누구일까요? 사회에서 가장 밀려난 사람들입니다. 2절부터 8절은 그들을 기력이 쇠잔하고 고토에서 쫓겨난 자들로 묘사합니다.

그들의 삶을 보시기 바랍니다. 메마른 땅에서 마른 흙을 씹고, 짠 나물과 대싸리 뿌리로 끼니를 잇고, 침침한 골짜기와 흙 구덩이와 바위 굴에서 살았습니다. 위 사진과 같은 광야 절벽의 굴이 그들의 집이었습니다.
9절부터 15절에서 조롱이 쏟아집니다. 그들이 그를 노래로 조롱하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덫을 놓고 길을 에워싸고 성을 무너뜨리듯 달려듭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더 낮아진 사람을 밟는 장면입니다.
11절의 설명이 의미심장합니다. 하나님이 내 활시위를 늘어지게 하셨다는 표현입니다. 활은 힘과 지위를 가리키는 상징이니, 그 줄이 풀리자 사람들이 굴레를 벗은 말처럼 날뛰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의 민낯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의 존경이 그 사람의 사람됨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가 쥔 힘을 향한 것일 때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29장에서 입을 가리던 유지들은 30장에서 어디로 갔을까요? 본문은 그들의 이름을 다시 꺼내지 않습니다.
이리의 형제요 타조의 벗
16절부터 23절은 몸과 영혼의 고통을 그립니다. 밤이 되면 뼈가 쑤셔 아픔이 쉬지 않고, 하나님이 자기를 진흙 가운데 던지셨다고 아룁니다. 20절에서 그는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24절과 25절에 뼈아픈 대조가 나옵니다. 사람이 넘어질 때 손을 펴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고 물으며, 자기는 고생의 날을 보내는 자를 위해 울었다고 말합니다. 내가 울어 준 사람들이 지금 나를 위해 울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29절의 표현은 욥기에서 가장 외로운 문장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나는 이리의 형제요 타조의 벗이로구나.” 사람의 공동체에서 밀려나 광야 짐승의 친척이 되었다는 자기 인식입니다.

왜 이리와 타조를 골랐을까요? 둘 다 밤에 울부짖는 짐승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리의 긴 울음과 타조의 거친 소리는 광야의 밤을 대표하는 소리였습니다.
성경은 이 두 짐승을 버려진 폐허의 거주자로 자주 언급합니다. 이사야 13장 21절과 34장 13절은 멸망한 성읍에 타조와 들짐승이 산다고 말씀합니다. 욥은 자기를 그 폐허에 사는 짐승으로 그려 낸 셈입니다.
30장의 마지막 절이 그 장을 봉인합니다. “내 수금은 통곡이 되었고 내 피리는 애곡이 되었구나.” 잔칫집의 악기가 장례의 악기로 바뀌었다는 선언입니다. 21장에서 악인의 집에 울리던 소고와 수금 소리가 자기 집에서는 곡소리로 변했다는 아이러니가 거기 있습니다.
눈과 맺은 약속
31장은 욥기 전체에서 가장 놀라운 장입니다. 그는 자기 삶을 열네 가지가 넘는 항목으로 나누어 하나하나 결백을 선언합니다. 형식은 고대 근동의 자기 저주 맹세를 따릅니다.
이 형식을 설명드리겠습니다. “만일 내가 ~했다면 ~하기를 바라노라” 하는 구조입니다. 거짓말이면 자기에게 저주가 임하기를 자청하는 맹세이니, 목숨을 걸고 하는 선언인 셈입니다.
그 목록의 첫 번째가 어디일까요? 놀랍게도 눈입니다.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여기 쓰인 “약속"은 히브리어 베리트, 곧 언약을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언약에 쓰이는 그 묵직한 말을 자기 눈과의 약속에 쓴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눈과 정식으로 계약서를 썼다는 뜻입니다.
이 구절이 왜 첫 자리에 놓였을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죄가 대개 눈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욥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 6절의 하와도 먼저 보았고, 여호수아 7장의 아간도 먼저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이 구절과 정확히 맞물립니다. 마태복음 5장 28절에서 그분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수천 년 전의 한 사람이 이미 그 기준으로 자기를 다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나요?

9절과 10절은 간음에 대한 맹세입니다. 만일 자기가 이웃의 문을 엿보았다면 자기 아내가 타인의 맷돌을 돌리게 되어도 마땅하다는 말입니다. 맷돌을 돌리는 일은 집 안에서 가장 천한 종이 하는 노동이었습니다.
위 사진의 손맷돌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래 돌에 곡식을 놓고 위 돌을 돌려 가는 도구인데, 하루 몇 시간을 꿇어앉아 돌려야 식구의 끼니가 나왔습니다. 욥의 맹세는 자기 가정이 가장 비참해져도 좋다는 각오를 담은 셈입니다.
같은 손에서 지어진 종과 주인
13절부터 15절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앞서간 선언 가운데 하나입니다. 욥은 남종이나 여종이 자기와 쟁론할 때에 그 권리를 저버린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이 왜 놀라운지 확인하려면 당시의 상식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고대 세계에서 종은 법적 인격이 아니라 재산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주인과 종이 법정에서 다툰다는 발상 자체가 낯선 시대입니다.
그런데 욥은 종의 말을 들었고, 그 권리를 인정했습니다. 그 근거가 15절에 나옵니다. “나를 태 속에 만드신 이가 그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를 뱃속에 지으신 이가 한 분이 아니시냐.”
이 논리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욥은 사회적 지위나 계약이 아니라 창조에 근거하여 사람의 평등을 말했습니다. 같은 손이 지었으니 같은 존엄을 가진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성경의 인간 이해가 또 한 번 드러납니다. 사람의 가치는 창세기 1장 27절의 하나님의 형상에서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짐승처럼 다룰 수 없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노예제 폐지 운동이 바로 이 논리를 들었다는 점입니다. 영국의 윌리엄 윌버포스와 그의 동료들은 모든 사람이 한 창조주의 손에서 나왔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의회에서 반복했습니다. 욥기 31장 15절은 그 주장의 가장 오래된 뿌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공평한 저울과 고아의 몫
16절부터 23절에는 가난한 이웃을 향한 맹세가 이어집니다.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은 적이 없고, 과부의 눈을 실망시킨 적이 없으며, 떡덩이를 혼자 먹고 고아에게 조각을 주지 않은 적이 없다는 선언입니다.
18절의 고백이 특별히 따뜻합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고아 기르기를 그의 아비처럼 하였다고 말합니다. 한두 번 도운 것이 아니라 아버지 노릇을 했다는 뜻입니다.
19절과 20절도 구체적인 장면을 보여 줍니다. 덮을 것이 없어 죽어 가는 사람을 못 본 체하지 않았고, 자기 양털로 그 몸을 따뜻하게 입혔다는 말입니다. 어제 읽은 24장에서 벗은 몸으로 밤을 지내던 사람들이 떠오르지 않나요?
21절의 표현은 법정의 한 장면을 그려 줍니다.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이 성문에 있는 것을 보고 주먹을 들어 고아를 향해 휘두른 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쉽게 풀면 재판에서 인맥을 이용해 약자를 눌러 본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6절에서 그는 한 가지를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공평한 저울에 달아 주시기를 바란다는 요청입니다. 사람의 저울이 아니라 하나님의 저울이면 괜찮다는 자신감이 거기 있습니다.
금에 소망을 두지 않은 손
24절부터 28절은 우상 숭배에 관한 맹세입니다. 두 가지가 나란히 놓인 점이 중요합니다. 하나는 금에 소망을 두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해와 달에게 절하는 일입니다.
욥은 재물을 의뢰한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순금에게 “너는 내 의뢰하는 바라” 하고 부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재물을 하나님과 겨루는 신으로 다룬다는 사실이 여기서도 확인됩니다.
26절과 27절은 고대 근동의 종교 행위를 보여 줍니다. 해가 빛나고 달이 뜬 것을 보고 손에 입을 맞추는 동작입니다. 멀리 있는 신에게 경배를 보내는 몸짓이었고, 애굽과 메소포타미아에서 널리 행해졌습니다.
이 대목에서 욥이 어떤 신앙을 가졌는지 분명해집니다. 그는 해와 달을 신으로 섬기던 세상 가운데서 창조주 한 분만을 하나님으로 알았습니다. 이것을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라 부른 데서 그 확신의 강도가 느껴집니다.
문을 열어 둔 집과 숨기지 않은 죄
29절부터 34절에는 뜻밖의 항목들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원수의 멸망을 기뻐한 적이 없다는 선언입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자가 재난을 당할 때 즐거워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 항목이 왜 놀라운지 짚어 보겠습니다. 원수가 망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죄입니다. 그런데 욥은 마음속 즐거움까지 자기 목록에 올렸습니다.
32절은 손 대접에 관한 맹세입니다. 나그네가 거리에서 자지 않도록 행인에게 문을 열어 주었다는 말입니다. 여관이 드물던 시대에 문을 여는 일은 곧 생명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33절은 번역을 짚어 볼 만한 구절입니다. “다른 사람처럼 내 악행을 숨긴 일"로 옮긴 부분은 히브리어로 아담처럼이라고도 읽힙니다. 여러 영어 성경이 그렇게 번역했습니다.
이 독법이 사실이라면 무엇을 뜻할까요? 욥이 아담의 숨음을 역사적 사건으로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3장 8절에서 아담은 나무 사이에 숨었고, 호세아 6장 7절도 아담의 언약 파기를 역사적 사실로 언급합니다.
우리는 아담을 신화적 상징으로 보는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아담은 실제로 살았던 첫 사람이며, 로마서 5장 12절은 그 한 사람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선포합니다. 욥기 31장 33절은 그 이해와 조용히 맞물려 있는 구절입니다.
나의 서명이 여기 있으니
35절에서 욥은 법정의 마지막 절차로 들어갑니다. “누구든지 나의 변명을 들어다오 나의 서명이 여기 있으니.” 여기서 “서명"으로 옮긴 히브리어는 타브, 곧 표를 뜻하는 낱말입니다.

고대의 문서를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위 사진처럼 점토판에 계약 내용을 적고, 당사자가 도장을 누르거나 표를 새겨 책임을 확인했습니다. 욥은 지금 자기 진술서 끝에 직접 표를 그려 넣는 몸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담대한 요청을 덧붙입니다. 자기를 고발하는 자가 있다면 고소장을 쓰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 고소장을 받으면 어깨에 메고 왕관처럼 머리에 쓰겠다고도 말합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의 고소장이라면 그것조차 영광으로 받겠다는 뜻입니다. 무죄를 주장하면서도 하나님의 판결 자체는 기꺼이 받겠다는 태도이니, 교만과는 전혀 다른 자리입니다.
여기서 욥기 전체의 흐름을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욥은 하나님께 대답해 주시기를 요청했고, 하나님은 38장에서 실제로 대답하셨습니다. 폭풍 가운데서 들려온 그 음성이 사흘 뒤 우리가 읽을 본문입니다.
밀 대신에 가시나무
38절부터 40절은 마지막 항목입니다. 땅에 관한 맹세인데, 표현이 특별합니다. 만일 내 밭이 나를 향하여 부르짖고 밭이랑이 함께 울었다면 하는 가정입니다.

땅이 부르짖는다는 말이 어디서 왔을까요? 창세기 4장 10절입니다. 아벨의 피가 땅에서 하나님께 호소했다는 말씀이고, 욥은 그 장면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39절이 그 가정의 내용을 밝힙니다. 값을 내지 않고 소출을 먹었거나 소유주의 생명을 잃게 한 일이 있었다면 하는 말입니다. 땅을 빼앗고 사람을 죽이는 죄를 가리키며, 나중에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을 때 그대로 저지른 죄입니다(왕상 21장).
40절의 저주가 재미있습니다. 그렇다면 밀 대신에 가시나무가 나고 보리 대신에 독보리가 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입니다. 위 사진의 독보리는 밀과 비슷하게 자라지만 먹을 수 없는 풀이어서, 농부에게는 헛수고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줄이 조용히 덧붙습니다. “욥의 말이 그치니라.” 서른 장 가까이 이어진 긴 변론이 이렇게 끝나고 맙니다.
이 침묵을 잠시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욥은 할 말을 다 했고,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일뿐입니다. 신앙의 가장 깊은 자리가 어쩌면 여기인지도 모릅니다.
묵상과 적용
오늘 본문은 한 사람의 이력서를 하나님 앞에 펼쳐 놓습니다. 그래서 묵상의 첫 질문도 자연스럽게 이렇게 됩니다. 내 삶을 조목조목 열어 보일 때 무엇이 드러나겠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먼저 29장의 자리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욥에게는 성문의 자리가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각자의 자리가 있습니다. 직장의 직책, 가정의 역할, 교회의 직분이 다 그 자리입니다.
핵심은 그 자리를 무엇에 쓰는지입니다. 욥은 자기 권위를 맹인의 눈과 다리 저는 자의 발로 바꾸어 썼습니다. 오늘 내 자리가 누구의 눈이 되고 누구의 발이 되고 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적용해 보겠습니다. 이번 주에 내 결정권이 닿는 사람 가운데 가장 약한 한 사람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유리한 결정을 하나만 내려 보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29장 16절의 그 한 구절을 붙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모르는 사람의 송사를 돌보아 주었다는 고백입니다. 아는 사람을 돕는 일은 누구나 하지만, 모르는 사람의 억울함에 시간을 쓰는 일은 신앙이 아니면 하기 어렵습니다.
셋째로, 30장의 조롱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욥을 비웃은 사람들은 그가 힘을 잃은 뒤에 몰려왔습니다. 사람의 평가가 그의 사람됨보다 그의 형편을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여기서 배웁니다.
그러니 두 가지를 결심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는 남의 평가에 내 정체성을 걸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형편이 기울어진 사람을 대하는 내 태도를 바꾸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과 다른 점이 바로 여기서 드러납니다.
넷째로, 31장 1절을 이 시대의 언어로 옮겨야 하겠습니다. 욥은 자기 눈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가 살던 세상에는 눈을 지키는 일이 지금보다 훨씬 쉬웠습니다.
오늘 우리 손에는 세상의 모든 형상이 들어오는 작은 창이 들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눈과의 언약은 마음의 결심만으로는 지켜지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장치가 필요한 셈입니다.
실천을 세 가지 제안드립니다. 침실에 휴대전화를 두지 않는 것, 기기에 차단 장치를 설치하는 것, 그리고 한 사람에게 정기적으로 점검을 부탁하는 것입니다. 욥이 눈과 계약서를 썼다면 우리도 종이에 적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다섯째로, 31장 15절을 가정과 일터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나를 지으신 분이 그도 지으셨다는 고백입니다. 이 한 문장이 사람을 대하는 모든 태도의 뿌리가 됩니다.
구체적으로 적용할 자리가 많습니다. 아파트 경비실과 배달 기사와 돌봄 노동자, 사무실의 신입과 외국인 동료가 다 그 자리입니다. 그분들을 부르는 말투 하나가 같은 창조주를 고백하는지 아닌지를 보여 줍니다.
여섯째로, 31장 24절의 경고를 재정에 적용해야 하겠습니다. 금에 소망을 두는 일은 선언 없이 조용히 일어납니다. 통장 잔고가 늘면 마음이 놓이고 줄면 불안해지는 그 반응이 이미 의뢰의 대상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점검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지난달 가장 많이 확인한 숫자가 무엇이었을까요? 그 숫자가 내 평안을 좌우한다면 그것이 내 신이 된 셈입니다.
일곱째로, 31장이 자기 의의 선언이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욥은 긴 목록을 다 말한 뒤에도 42장 6절에서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합니다. 결백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는 입을 가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은혜와 삶의 균형이 중요해집니다.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로 주어지며, 그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서 31장 같은 삶의 목록이 자라납니다. 목록이 구원을 만들지 않고, 구원이 목록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을 자기 점수표로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변호자는 우리 자신의 이력이 아니라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요일 2:1). 욥이 서명한 진술서 위에 그분의 피가 덮여 있다는 사실이 복음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침묵을 배우고 싶습니다. “욥의 말이 그치니라"라는 한 줄 뒤에 하나님의 음성이 옵니다. 우리도 할 말을 다 쏟아낸 뒤에는 입을 닫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응답은 대개 우리가 조용해진 다음에 들려오기 때문입니다.
예화
애슐리 다운의 아버지: 조지 뮐러
욥기 29장 12절과 31장 17절의 그 삶을 가장 또렷하게 살아 낸 사람을 소개드리고 싶습니다. 영국 브리스틀의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뮐러입니다. 그는 1805년 9월 27일 프로이센의 크로펜슈테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젊은 시절은 모범과 거리가 먼 세월입니다. 그는 거짓말과 도둑질을 일삼았고, 여행비를 떼어먹어 감옥에 갇힌 적도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돈을 훔치던 소년이 훗날 만 명이 넘는 고아의 아버지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스무 살 무렵 그는 한 가정 집회에 참석했다가 회심합니다. 그리고 1832년 브리스틀로 옮겨 사역을 시작합니다. 당시 영국의 거리에는 부모를 잃고 떠도는 아이들이 넘쳐났습니다.
1836년, 그는 윌슨가에 있는 자기 집을 비워 서른 명의 여자아이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모든 일의 시작입니다. 아이들이 늘어나자 그는 애슐리 다운이라는 언덕에 집을 짓기로 결심합니다.

1849년에 첫 번째 건물이 문을 열었고, 1857년과 1862년과 1868년과 1870년에 차례로 집이 늘어났습니다. 다섯 채가 완성되었을 때 그곳은 이천 명이 넘는 아이들과 백 명이 넘는 직원이 사는 작은 마을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가장 놀라운 점이 무엇일까요? 그가 평생 단 한 번도 사람에게 돈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필요를 하나님께만 아뢰고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아찔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애슐리 다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애비게일 타운센드가 남긴 회고에 그런 아침 하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날 식당에는 삼백 명의 아이들이 앉아 있었는데 식탁에 음식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뮐러는 아이들을 둘러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학교에 늦지 않아야 한다고 일러 준 뒤, 손을 모아 기도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실 음식을 미리 감사드린다는 내용입니다.
기도가 끝나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동네 빵집 주인입니다. 그는 밤에 잠이 오지 않아 하나님이 뮐러의 집을 위해 빵을 구우라 하시는 줄 알고 새벽에 일어나 빵을 구워 왔다고 말했습니다.
뮐러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 빵이 있을 뿐 아니라 갓 구운 빵이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곧 또 한 번 문이 열렸습니다. 고아원 앞에서 우유 수레의 바퀴가 부서진 것입니다. 수레를 끌던 사람은 우유가 상할 테니 아이들에게 주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뮐러가 세상을 떠난 1898년 3월 10일까지 그가 돌본 아이는 일만 이십사 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유산을 거의 남기지 않았고, 브리스틀 시민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와 그의 장례를 지켰습니다.
욥기 31장 18절이 다시 들립니다. 젊었을 때부터 고아 기르기를 그의 아비처럼 하였다는 고백입니다. 뮐러는 그 한 구절을 육십 년 넘게 살아 낸 사람입니다.
모데스토의 밤: 네 가지 약속
31장 1절의 그 언약을 제도로 만든 이야기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1948년 가을,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데스토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때 빌리 그레이엄은 서른 살을 앞둔 젊은 전도자였습니다.

그가 당시 어떤 광경을 보고 있었을까요? 미국 전역을 돌며 집회를 인도하던 순회 전도자들이 하나씩 무너지는 모습이었습니다. 돈 문제와 성적인 추문, 지역 교회를 향한 비난, 부풀린 성과 보고가 그 원인으로 꼽힙니다.
그 도시의 한 모텔에 묵던 날, 그는 동료들을 방으로 불렀습니다. 음악을 맡은 클리프 바로스, 독창자 베브 셰이, 친구 그레이디 윌슨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그레이엄은 각자 방에 들어가 전도자들이 넘어지는 이유를 적어 오라고 부탁했습니다.
얼마 뒤 네 사람이 각자 적은 종이를 들고 다시 모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네 사람의 목록이 거의 똑같았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돈이었습니다. 당시 전도자들은 집회 헌금으로 생활했기에, 감정을 자극해 헌금을 끌어내는 유혹이 늘 따라붙습니다. 그들은 헌금을 강조하지 않고 집회 재정을 지역 준비위원회에 맡기기로 결정했습니다.
둘째는 성적인 죄입니다. 가족과 떨어져 몇 주씩 여행하는 삶이 그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내가 아닌 여성과 단둘이 있지 않기로 약속합니다. 방이든 차든 식탁이든 예외를 두지 않는 규칙이었습니다.
셋째는 지역 교회를 향한 태도입니다. 집회를 성공시키려고 지역 목회자들을 깎아내리는 일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넷째는 성과의 과장입니다. 참석자 수나 결신자 수를 부풀리지 않고 경찰이나 주최 측의 집계를 그대로 쓰기로 정했습니다.
이 네 가지 결심은 뒷날 모데스토 선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레이엄은 자서전에서 이 밤을 자기 사역의 분수령으로 회고했습니다. 그가 육십 년 넘게 공적 추문 없이 사역할 수 있었던 까닭이 그 밤에 있었던 셈입니다.
두 이야기가 한곳을 가리키지 않나요? 조지 뮐러는 고아의 아버지가 되기로 결심했고, 네 사람은 눈과 손과 입을 지키기로 결심했습니다. 욥기 29장과 31장은 그런 결심들이 쌓여 만들어진 한 생애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기도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지금 맡겨진 자리를 약한 이웃의 눈과 발로 쓰는 사람이 되기를 구하며, 눈과 손과 입을 지키는 구체적인 언약을 세우고 끝까지 지켜 내기를 간구합니다. 아울러 우리의 결백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를 변호로 삼는 믿음을 지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가정을 위해서는, 집 안에서 가장 낮은 일을 하는 식구의 수고를 알아보고 감사하는 가정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는, 형편이 기울어진 성도를 향한 태도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공동체가 되기를 구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들과 돌봄 없이 남겨진 노인들이 보호를 받고, 열방에서 고아와 과부를 섬기는 선교의 손길에 필요한 것이 넉넉히 채워지기를 기도합니다.
공평한 저울을 손에 드신 하나님, 오늘 말씀 앞에 나아왔습니다. 주님은 사람의 겉모습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며, 종과 주인을 한 손으로 지으신 창조주이심을 고백합니다. 그 저울 앞에 저희 삶을 올려놓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자리가 있을 때 그 자리를 저를 위해서만 썼던 날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모르는 사람의 억울함을 외면하고, 아는 사람에게만 친절했던 좁은 마음을 고백합니다. 맹인의 눈과 다리 저는 자의 발이 되는 일에 저희 시간을 내어 드리고 싶습니다.
형편에 따라 사람을 다르게 대했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힘이 있을 때 입을 가리던 사람들이 힘이 사라지자 침을 뱉었던 그 장면이 저희 안에도 있음을 아옵니다. 조롱받는 자리에 선 성도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 눈과 언약을 맺게 하여 주옵소서. 손안의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모든 유혹 앞에서 마음의 결심만 믿지 않게 하시고, 구체적인 담장을 세울 지혜를 주시기 바랍니다. 어두운 곳에서 보는 것들이 저희 영혼을 좀먹지 않도록 저희를 건져 주옵소서.
재물에 소망을 두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통장의 숫자가 평안을 좌우하지 않게 하시고, 순금을 의뢰하는 바라 부르는 입술에서 저희를 지켜 주옵소서. 주신 것으로 고아의 떡덩이를 나누고 나그네에게 문을 여는 집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욥의 말이 그친 그 자리를 저희도 배우기를 원합니다. 할 말을 다 쏟은 다음 입을 닫고 주님의 음성을 기다리게 하여 주옵소서. 다시 오실 주님께서 이 땅을 의로 다스리실 그날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거룩하게 살아가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말씀을 우리를 변호하시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보면 좋은 영상
레퍼런스
-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대한성서공회, 1998. 본문 출처: https://www.bskorea.or.kr
- John E. Hartley, The Book of Job,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88. (욥 29~31장 주해)
- 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Vol. 3 (Job to Song of Solomon), 1708–1710;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판 참조. (욥 31장 주해)
- John MacArthur, ed., The MacArthur Study Bible, Nashville: Word Publishing, 1997. (욥 29~31장 주)
- Henry M. Morris, The Remarkable Record of Job,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8.
- C. I. Scofield, ed., The Scofield Reference Bibl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09. (욥기 주)
- John Wesley, Explanatory Notes upon the Old Testament, Bristol: William Pine, 1765. (욥기 주해)
- John Wesley, “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 (Sermon 43, 1765), in The Works of John Wesley, Vol. 2, ed. Albert C. Outler, Nashville: Abingdon Press, 1985.
- William F. Badè, Excavations at Tell en-Nasbeh 1926–1935, Berkeley: Palestine Institute of Pacific School of Religion. (성문 구조 보고)
- George Müller, A Narrative of Some of the Lord’s Dealings with George Müller, London: J. Nisbet & Co., 1837–1886.
- Arthur T. Pierson, George Müller of Bristol, London: James Nisbet & Co., 1899.
- Roger Steer, George Müller: Delighted in God, Wheaton: Harold Shaw Publishers, 1975. (애비게일 타운센드의 회고 포함)
- Billy Graham, Just As I Am: The Autobiography of Billy Graham, New York: HarperCollins/Zondervan, 1997. (모데스토 선언)
- 이미지 출처(모두 위키미디어 공용에서 크기를 줄여 주소로 임베딩함): 텔 단 이스라엘 시대 성문 사진, Mboesch, CC BY-SA 4.0 / 텔 단 가나안 시대 성문 사진, 퍼블릭 도메인 / 텔 엔나스베 성문 발굴 사진, 매트슨 컬렉션, 미국 의회도서관, 퍼블릭 도메인 / 쿰란 제4굴 사진, SuperJew, CC BY-SA 3.0 / 아라비아늑대 사진, Ahmad Qarmish12, CC BY-SA 4.0 / 이스라엘의 타조 사진, 퍼블릭 도메인 / 손맷돌 사진, 두프니차 역사박물관, CC BY-SA 4.0 / 바빌로니아 고용 계약 점토판 사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CC0 / 밀밭 사진, Teneab, CC BY 3.0 / 독보리 사진, H. Zell, CC BY-SA 3.0 / 조지 뮐러 초상, 퍼블릭 도메인 / 애슐리 다운 고아원 사진, 퍼블릭 도메인 / 조지 뮐러 고아원 박물관 교복 사진, Silver Shiney, CC BY-SA 3.0 / 빌리 그레이엄 사진, 로스앤젤레스 데일리 뉴스, CC BY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