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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차 (욥기 24장 ~ 욥기 28장)

이스라엘 네게브 광야 팀나 골짜기의 고대 구리 광산 지대, Zairon 촬영, CC BY-SA 4.0

이스라엘 네게브 광야 팀나 골짜기의 고대 구리 광산 지대, Zairon 촬영, CC BY-SA 4.0

10일차 (욥기 24장 ~ 욥기 28장)

본문

욥기 24장

  1. 어찌하여 전능자는 때를 정해 놓지 아니하셨는고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
  2. 어떤 사람은 땅의 경계표를 옮기며 양 떼를 빼앗아 기르며
  3. 고아의 나귀를 몰아 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 잡으며
  4. 가난한 자를 길에서 몰아내나니 세상에서 학대 받는 자가 다 스스로 숨는구나
  5. 그들은 거친 광야의 들나귀 같아서 나가서 일하며 먹을 것을 부지런히 구하니 빈 들이 그들의 자식을 위하여 그에게 음식을 내는구나
  6. 밭에서 남의 꼴을 베며 악인이 남겨 둔 포도를 따며
  7. 의복이 없어 벗은 몸으로 밤을 지내며 추워도 덮을 것이 없으며
  8. 산중에서 만난 소나기에 젖으며 가릴 것이 없어 바위를 안고 있느니라
  9. 어떤 사람은 고아를 어머니의 품에서 빼앗으며 가난한 자의 옷을 볼모 잡으므로
  10. 그들이 옷이 없어 벌거벗고 다니며 곡식 이삭을 나르나 굶주리고
  11. 그 사람들의 담 사이에서 기름을 짜며 목말라 하면서 술 틀을 밟느니라
  12. 성 중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신음하며 상한 자가 부르짖으나 하나님이 그들의 참상을 보지 아니하시느니라
  13. 또 광명을 배반하는 사람들은 이러하니 그들은 그 도리를 알지 못하며 그 길에 머물지 아니하는 자라
  14. 사람을 죽이는 자는 밝을 때에 일어나서 학대 받는 자나 가난한 자를 죽이고 밤에는 도둑 같이 되며
  15. 간음하는 자의 눈은 저물기를 바라며 아무 눈도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고 얼굴을 가리며
  16. 어둠을 틈타 집을 뚫는 자는 낮에는 잠그고 있으므로 광명을 알지 못하나니
  17. 그들은 아침을 죽음의 그늘 같이 여기니 죽음의 그늘의 두려움을 앎이니라
  18. 그들은 물 위에 빨리 흘러가고 그들의 소유는 세상에서 저주를 받나니 그들이 다시는 포도원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라
  19. 가뭄과 더위가 눈 녹은 물을 곧 빼앗나니 스올이 범죄자에게도 그와 같이 하느니라
  20. 모태가 그를 잊어버리고 구더기가 그를 달게 먹을 것이라 그는 다시 기억되지 않을 것이니 불의가 나무처럼 꺾이리라
  21. 그는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를 박대하며 과부를 선대하지 아니하는도다
  22.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능력으로 강포한 자들을 끌어내시나니 일어나는 자는 있어도 살아남을 확신은 없으리라
  23. 하나님은 그에게 평안을 주시며 지탱해 주시나 그들의 길을 살피시도다
  24. 그들은 잠깐 동안 높아졌다가 천대를 받을 것이며 잘려 모아진 곡식 이삭처럼 되리라
  25. 가령 그렇지 않을지라도 능히 내 말을 거짓되다고 지적하거나 내 말을 헛되게 만들 자 누구랴

욥기 25장

  1.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2. 하나님은 주권과 위엄을 가지셨고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시느니라
  3. 그의 군대를 어찌 계수할 수 있으랴 그가 비추는 광명을 받지 않은 자가 누구냐
  4.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여자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5. 보라 그의 눈에는 달이라도 빛을 발하지 못하고 별도 빛나지 못하거든
  6.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이랴

욥기 26장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네가 힘 없는 자를 참 잘도 도와 주는구나 기력 없는 팔을 참 잘도 구원하여 주는구나
  3. 지혜 없는 자를 참 잘도 가르치는구나 큰 지식을 참 잘도 자랑하는구나
  4. 네가 누구를 향하여 말하느냐 누구의 정신이 네게서 나왔느냐
  5. 죽은 자의 영들이 물 밑에서 떨며 물에서 사는 것들도 그러하도다
  6. 하나님 앞에서는 스올도 벗은 몸으로 드러나며 멸망도 가림이 없음이라
  7. 그는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
  8.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
  9. 그는 보름달을 가리시고 자기의 구름을 그 위에 펴시며
  10. 수면에 경계를 그으시니 빛과 어둠이 함께 끝나는 곳이니라
  11. 그가 꾸짖으신즉 하늘 기둥이 흔들리며 놀라느니라
  12. 그는 능력으로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며 지혜로 라합을 깨뜨리시며
  13. 그의 입김으로 하늘을 맑게 하시고 손으로 날렵한 뱀을 무찌르시나니
  14. 보라 이런 것들은 그의 행사의 단편일 뿐이요 우리가 그에게서 들은 것도 속삭이는 소리일 뿐이니 그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헤아리랴

욥기 27장

  1. 욥이 또 풍자하여 이르되
  2. 나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3. (나의 호흡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숨결이 아직도 내 코에 있느니라)
  4.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5.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6. 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
  7. 나의 원수는 악인 같이 되고 일어나 나를 치는 자는 불의한 자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8. 불경건한 자가 이익을 얻었으나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거두실 때에는 무슨 희망이 있으랴
  9. 환난이 그에게 닥칠 때에 하나님이 어찌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랴
  10. 그가 어찌 전능자를 기뻐하겠느냐 항상 하나님께 부르짖겠느냐
  11. 하나님의 솜씨를 내가 너희에게 가르칠 것이요 전능자에게 있는 것을 내가 숨기지 아니하리라
  12. 너희가 다 이것을 보았거늘 어찌하여 그토록 무익한 사람이 되었는고
  13. 악인이 하나님께 얻을 분깃, 포악자가 전능자에게서 받을 산업은 이것이라
  14. 그의 자손은 번성하여도 칼을 위함이요 그의 후손은 음식물로 배부르지 못할 것이며
  15. 그 남은 자들은 죽음의 병이 돌 때에 묻히리니 그들의 과부들이 울지 못할 것이며
  16. 그가 비록 은을 티끌 같이 쌓고 의복을 진흙 같이 준비할지라도
  17. 그가 준비한 것을 의인이 입을 것이요 그의 은은 죄 없는 자가 차지할 것이며
  18. 그가 지은 집은 좀의 집 같고 파수꾼의 초막 같을 것이며
  19. 부자로 누우려니와 다시는 그렇지 못할 것이요 눈을 뜬즉 아무것도 없으리라
  20. 두려움이 물 같이 그에게 닥칠 것이요 폭풍이 밤에 그를 앗아갈 것이며
  21. 동풍이 그를 들어올리리니 그는 사라질 것이며 그의 처소에서 그를 몰아내리라
  22. 하나님은 그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던져 버릴 것이니 그의 손에서 도망치려고 힘쓰리라
  23. 사람들은 그를 바라보며 손뼉치고 그의 처소에서 그를 비웃으리라

욥기 28장

  1. 은이 나는 곳이 있고 금을 제련하는 곳이 있으며
  2. 철은 흙에서 캐내고 동은 돌에서 녹여 얻느니라
  3. 사람은 어둠을 뚫고 모든 것을 끝까지 탐지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있는 광석도 탐지하되
  4. 그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떠나 갱도를 깊이 뚫고 발길이 닿지 않는 곳 사람이 없는 곳에 매달려 흔들리느니라
  5. 음식은 땅으로부터 나오나 그 밑은 불처럼 변하였도다
  6. 그 돌에는 청옥이 있고 사금도 있으며
  7. 그 길은 솔개도 알지 못하고 매의 눈도 보지 못하며
  8. 용맹스러운 짐승도 밟지 못하였고 사나운 사자도 그리로 지나가지 못하였느니라
  9. 사람이 굳은 바위에 손을 대고 산을 뿌리까지 뒤엎으며
  10. 반석에 수로를 터서 각종 보물을 눈으로 발견하고
  11. 누수를 막아 스며 나가지 않게 하고 감추어져 있던 것을 밝은 데로 끌어내느니라
  12. 그러나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고
  13. 그 길을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사람 사는 땅에서는 찾을 수 없구나
  14. 깊은 물이 이르기를 내 속에 있지 아니하다 하며 바다가 이르기를 나와 함께 있지 아니하다 하느니라
  15. 순금으로도 바꿀 수 없고 은을 달아도 그 값을 당하지 못하리니
  16. 오빌의 금이나 귀한 청옥수나 남보석으로도 그 값을 당하지 못하겠고
  17. 황금이나 수정이라도 비교할 수 없고 정금 장식품으로도 바꿀 수 없으며
  18. 진주와 벽옥으로도 비길 수 없나니 지혜의 값은 산호보다 귀하구나
  19. 구스의 황옥으로도 비교할 수 없고 순금으로도 그 값을 헤아리지 못하리라
  20. 그런즉 지혜는 어디서 오며 명철이 머무는 곳은 어디인고
  21. 모든 생물의 눈에 숨겨졌고 공중의 새에게 가려졌으며
  22. 멸망과 사망도 이르기를 우리가 귀로 그 소문은 들었다 하느니라
  23. 하나님이 그 길을 아시며 있는 곳을 아시나니
  24. 이는 그가 땅 끝까지 감찰하시며 온 천하를 살피시며
  25. 바람의 무게를 정하시며 물의 분량을 정하시며
  26. 비 내리는 법칙을 정하시고 비구름의 길과 우레의 법칙을 만드셨음이라
  27. 그 때에 그가 보시고 선포하시며 굳게 세우시며 탐구하셨고
  28. 또 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본문 해설

다섯 장을 꿰는 하나의 물음

연대기 일독의 열째 날입니다. 오늘은 욥기에서 가장 많은 장을 한 번에 읽습니다. 땅을 파고 들어가는 광부의 이야기로 끝나는 이 다섯 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물음에 매달려 있습니다. 세상의 불의는 왜 방치되는 듯 보이며, 참된 지혜는 어디서 얻을 수 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오늘 본문의 흐름을 먼저 정리해 보겠습니다. 24장은 어제 읽은 23장에서 이어지는 욥의 탄식이고, 25장은 빌닷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발언입니다. 26장과 27장은 욥의 응답이며, 28장은 지혜를 노래하는 긴 시입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이 있습니다. 세 번째 변론 순환에서 소발은 끝내 입을 열지 못하고, 빌닷의 말도 여섯 절로 끝나고 맙니다. 반면 욥의 말은 24장부터 31장까지 점점 길고 깊어집니다.

이 구조가 무엇을 말해 줄까요? 논쟁의 무게중심이 완전히 옮겨 갔다는 뜻입니다. 공식을 외운 쪽은 말이 막혔고, 하나님을 찾던 쪽은 할 말이 자라난 셈입니다.

때를 정해 놓지 아니하셨는고

24장 1절이 오늘의 문을 엽니다. “어찌하여 전능자는 때를 정해 놓지 아니하셨는고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 심판의 날짜가 달력에 적혀 있지 않은 듯 보인다는 탄식입니다.

여기서 “때"로 옮긴 히브리어 잇팀은 정해진 시기를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욥은 하나님께 심판의 일정표가 없다고 단언한 것이 아닙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이 그날을 눈으로 보지 못한다는 현실을 아프게 말한 것입니다.

성경 전체는 그날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증언합니다. 사도행전 17장 31절은 하나님이 정하신 사람으로 세계를 심판할 날을 작정하셨다고 선포합니다. 다만 그 날짜는 아버지의 권한 안에 있어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마 24:36).

그러므로 욥의 탄식과 성경의 가르침은 서로 어긋나지 않습니다. 욥은 일정표가 없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일정표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믿는 사람의 정직한 탄식이 어떤 모습인지 여기서 배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계표를 옮기는 사람들

2절부터 4절까지 욥은 구체적인 죄의 목록을 펼칩니다. 첫 번째 죄가 특별히 눈에 들어옵니다. 땅의 경계표를 옮기는 일입니다.

바벨론 왕 마르둑나딘아헤 시대의 검은 석회암 경계석, 기원전 1099~1082년, 대영박물관 소장, Gary Todd 촬영, CC0
바벨론 왕 마르둑나딘아헤 시대의 검은 석회암 경계석, 기원전 1099~1082년, 대영박물관 소장, Gary Todd 촬영, CC0

경계표가 무엇인지 잠시 설명드리겠습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밭의 경계에 돌을 세워 누구의 땅인지 표시했습니다. 위 사진의 돌은 바벨론에서 쓰던 경계석으로, 신들의 상징과 함께 경계를 옮기는 자에게 내리는 저주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돌을 밤중에 몇 걸음 옮기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남의 땅이 조용히 내 땅이 되었습니다. 측량 기술이 없고 등기부가 없던 시대였으니, 돌 하나가 곧 재산 문서였던 것입니다.

성경은 이 죄를 아주 무겁게 다룹니다. 신명기 19장 14절은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고 명하고, 27장 17절은 그렇게 하는 자에게 저주가 임한다고 선언합니다. 잠언 22장 28절도 같은 경고를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3절의 죄목은 더 잔인합니다. 고아의 나귀를 몰아 가고 과부의 소를 담보로 잡는 일입니다. 나귀는 짐을 옮기는 수단이었고 소는 밭을 가는 힘이었으니, 그것을 빼앗는 일은 생계의 뿌리를 뽑는 짓이었습니다.

기름을 짜면서도 목마른 사람들

5절부터 11절까지는 성경에서 가장 처절한 가난의 묘사입니다. 땅을 잃은 사람들이 광야의 들나귀처럼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닙니다. 남의 밭에서 꼴을 베고, 악인이 남겨 둔 포도를 따며 겨우 버팁니다.

7절과 8절의 그림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덮을 옷이 없어 벗은 몸으로 밤을 지내고, 산중에서 소나기를 만나면 가릴 것이 없어 바위를 안고 있습니다. 집도 이불도 없는 사람의 밤이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가버나움 유적에 남아 있는 로마 시대의 올리브 압착기, David Shankbone 촬영, CC BY-SA 3.0
가버나움 유적에 남아 있는 로마 시대의 올리브 압착기, David Shankbone 촬영, CC BY-SA 3.0

11절은 오늘 본문에서 가장 아픈 문장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그 사람들의 담 사이에서 기름을 짜며 목말라 하면서 술 틀을 밟느니라.” 올리브 기름을 짜면서 자기는 기름이 없고, 포도를 밟으면서 자기는 목이 마른 처지입니다.

위 사진의 압착기는 갈릴리 가버나움 유적에 남아 있는 로마 시대 유물입니다. 둥근 맷돌로 올리브를 으깨고 무거운 돌을 눌러 기름을 받아 냈습니다. 이 고된 일을 하는 사람이 그 기름 한 방울도 가질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가버나움에 남아 있는 올리브 압착기, 아비샤이 테이케르 촬영, CC BY 2.5
가버나움에 남아 있는 올리브 압착기, 아비샤이 테이케르 촬영, CC BY 2.5

이 묘사가 수천 년 전 이야기로만 들리시나요? 오늘도 같은 구조가 돌아갑니다. 좋은 옷을 만드는 공장에서 입을 옷이 없고, 남의 집을 지으면서 자기 집이 없는 사람들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12절에서 욥은 결국 하나님께 화살을 돌립니다. 성 중에서 죽어 가는 사람들이 신음하는데 “하나님이 그들의 참상을 보지 아니하시느니라” 하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에 주의를 두지 않으신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보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3장 7절에서 그분은 이스라엘의 고통을 분명히 보았고 그 부르짖음을 들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욥이 쏟아낸 이 말은 사실에 대한 선언이 아니라 응답이 더딘 시간을 견디는 사람의 절규였습니다.

광명을 배반하는 밤의 사람들

13절부터 17절까지 욥은 시선을 옮깁니다. 이제 가난한 피해자가 아니라 어둠을 사랑하는 가해자들이 무대에 올라선 것입니다. 그는 그들을 “광명을 배반하는 사람들"이라 부릅니다.

세 부류가 차례로 나옵니다. 살인하는 자, 간음하는 자, 집을 뚫는 도둑입니다. 세 사람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밤을 기다린다는 점입니다.

15절의 묘사가 섬뜩합니다. 간음하는 자의 눈은 해가 저물기를 바라며 “아무 눈도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고 얼굴을 가립니다. 보는 눈이 없다고 믿는 순간 사람은 가장 대담해지는 법입니다.

17절은 그 결말을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그들은 아침을 죽음의 그늘처럼 여긴다는 것입니다. 빛이 두려워진 사람에게는 새벽이 가장 무서운 시간이 되고 맙니다.

이 대목에서 요한복음 3장 20절이 겹쳐 들립니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욥이 관찰한 밤의 사람들을 예수님이 빛과 어둠의 언어로 정리하신 셈입니다.

스올이 범죄자에게 하는 일

18절부터 25절까지 욥은 악인의 종말을 말합니다. 그들의 소유가 저주를 받고, 눈 녹은 물이 가뭄에 사라지듯 스올이 범죄자를 삼킨다는 것입니다. 20절은 모태가 그를 잊어버리고 구더기가 그를 달게 먹을 것이라고 못을 박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기지 않나요? 조금 전까지 악인의 형통을 말했던 사람이 왜 갑자기 악인의 멸망을 말하는 걸까요? 욥은 심판 자체를 부정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반대한 것은 심판의 사실이 아니라 심판의 시간표를 사람이 계산해 내는 일이었습니다. 악인은 반드시 넘어집니다. 다만 그 시점이 친구들의 설명처럼 늘 즉각적이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24절의 비유가 아름답습니다. 그들은 잠깐 높아졌다가 잘려 모아진 곡식 이삭처럼 된다고 합니다. 수확기의 밭에 서 있던 이삭이 베여 한 아름으로 거두어지는 장면입니다.

빌닷의 마지막 여섯 절

25장에서 빌닷이 세 번째로 말합니다. 그런데 그의 발언은 겨우 여섯 절로 끝나고 맙니다. 처음에 길게 쏟아냈던 사람이 이제 짧은 몇 마디만 남기는 것입니다.

벨기에 아무아에서 촬영한 보름에 가까운 달, Luc Viatour 촬영, CC BY-SA 3.0
벨기에 아무아에서 촬영한 보름에 가까운 달, Luc Viatour 촬영, CC BY-SA 3.0

그가 남긴 말의 앞부분은 참으로 옳습니다. 하나님께 주권과 위엄이 있으시고, 그의 군대를 사람이 셀 수 없으며, 그의 눈에는 달과 별도 빛을 발하지 못한다는 고백입니다. 하늘의 영광보다 더 밝으신 분을 그린 그림입니다.

위 사진의 달을 보며 이 말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밤하늘에서 가장 환한 것이 달인데, 하나님 앞에서는 그 빛조차 희미해진다는 선언입니다. 여기까지는 성경 전체의 가르침과 하나로 이어집니다.

문제는 마지막 6절입니다.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이랴.” 하나님의 크심에서 사람의 무가치함으로 곧장 건너뛰고 말았습니다.

구더기 같은 사람이라는 말의 함정

빌닷의 결론이 왜 위험할까요? 성경이 사람을 그렇게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은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분명히 기록합니다.

시편 8편은 더 놀랍습니다. 사람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다고 노래합니다. 사람은 죄인이지만 벌레는 아닙니다. 타락한 왕자이지 처음부터 구더기였던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분명히 구분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는 죄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가치의 문제입니다. 사람은 죄로 완전히 망가졌으나, 그 망가진 존재를 하나님이 여전히 사랑하신다는 사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빌닷의 신학에는 복음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는 4절에서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라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고는 답을 주지 않고 사람을 벌레라 부르며 입을 닫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질문의 답은 어디에 있을까요? 로마서 3장 24절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 빌닷이 닫아 버린 문을 복음이 열어 준 셈입니다.

복음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납니다. 사람은 전적으로 부패했으나,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 먼저 찾아오시는 은혜가 응답할 길을 열어 줍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설교는 죄를 깊이 말하면서도 사람을 결코 벌레로 끝내지 않습니다.

참 잘도 도와 주는구나

26장에서 욥이 응답합니다. 2절과 3절의 어조를 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네가 힘 없는 자를 참 잘도 도와 주는구나.” 이것은 칭찬이 아니라 뼈아픈 반어법입니다.

쉽게 풀어 말씀드리면 이런 뜻입니다. 힘없는 사람 하나를 돕지도 못할 말을 길게 늘어놓고, 큰 지식을 자랑하기는 참 잘한다는 비꼼입니다. 4절에서 그는 아예 묻습니다. 누구의 정신이 네게서 나왔느냐 하는 말입니다.

여기에 깊은 통찰이 숨어 있습니다. 위로는 지식의 양이 아니라 사랑의 방향으로 전달된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교리를 말하면서 한 사람은 일으키고 다른 한 사람은 쓰러뜨리는 까닭이 거기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욥은 놀라운 일을 합니다. 빌닷이 노래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빌닷보다 훨씬 깊고 길게 노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심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더 잘 알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스올과 멸망, 죽음을 가리키는 이름들

26장 5절과 6절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여기에는 죽음의 세계를 가리키는 낱말들이 나란히 등장합니다. 성경을 처음 읽는 분께는 낯선 이름들이니 하나씩 풀어 드리겠습니다.

5절의 “죽은 자의 영들"은 히브리어 르파임을 옮긴 말입니다. 이 낱말은 이미 죽어 스올에 내려간 사람들을 가리킬 때 쓰입니다. 욥은 그 르파임이 물 밑에서 떨고 있다고 말합니다.

6절의 “스올"은 무엇일까요? 죽은 사람이 머무는 곳을 가리키는 구약의 낱말입니다. 무덤 자체를 뜻할 때도 있고, 죽음의 세계 전체를 뜻할 때도 있습니다.

같은 절의 “멸망"은 히브리어 아바돈입니다. 요한계시록 9장 11절에 다시 등장하는 이름이며, 구약에서는 주로 스올과 나란히 놓여 죽음의 깊은 자리를 가리킵니다.

욥이 이 이름들을 왜 끌어왔을까요? 하나님의 시야가 거기까지 미친다는 점을 말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 눈에는 무덤 아래가 완전한 암흑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벗은 몸처럼 환히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시편 139편 8절이 같은 고백을 담았습니다. 스올에 내 자리를 펴도 거기 계시다는 선언입니다. 잠언 15장 11절도 스올과 멸망이 여호와의 눈앞에 있다고 못을 박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가 무엇일까요?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낸 가정에 바로 이 말씀이 닿습니다. 흙으로 돌아간 몸이 하나님의 시야 밖으로 나간 것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

이제 욥의 시선은 무덤 아래에서 하늘과 땅으로 올라옵니다. 7절을 보겠습니다. “그는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 성경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자연 묘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폴로 8호 승무원 빌 앤더스가 1968년 12월 24일 달 궤도에서 촬영한 지구, 미국 항공우주국, 퍼블릭 도메인
아폴로 8호 승무원 빌 앤더스가 1968년 12월 24일 달 궤도에서 촬영한 지구, 미국 항공우주국, 퍼블릭 도메인

이 구절이 왜 특별한지 비교해 보면 금방 드러납니다. 고대의 여러 민족은 땅이 무언가 위에 올려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거북의 등이나 거인의 어깨 위에 땅이 놓였다는 이야기가 여러 문화에 전해집니다.

그런데 욥기는 전혀 다르게 말합니다. 땅이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옮긴 히브리어 벨리마는 말 그대로 받칠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위 사진은 1968년 성탄 전야에 달 궤도에서 촬영된 지구입니다. 삼천오백 년 전에 기록된 한 문장이 이 사진 한 장으로 확인된 셈입니다. 성경이 고대 신화를 베꼈다는 주장을 우리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알려 주신 것이 아니라면 설명할 길이 없는 문장이기 때문입니다.

8절부터 10절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는데 그 구름이 찢어지지 않는다는 말, 수면에 경계를 그으셔서 빛과 어둠이 함께 끝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구름이 수백만 톤의 물을 담고도 터지지 않는 일이 지금도 우리 머리 위에서 일어납니다.

라합을 깨뜨리시는 손

11절부터 13절에는 힘찬 장면이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꾸짖으시면 하늘 기둥이 흔들리고, 능력으로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며, 지혜로 라합을 깨뜨리신다는 것입니다.

“라합"이 무엇인지 설명이 필요하겠습니다. 라합은 히브리어로 교만이나 사나움을 뜻하며, 성경에서는 바다의 혼돈을 의인화한 이름으로 쓰입니다. 시편 87편 4절과 이사야 30장 7절에서는 애굽을 가리키는 별명으로도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이웃 민족의 바다 괴물 신화를 사실로 인정한 걸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당시 사람들이 두려워하던 가장 거대한 힘을 끌어와, 그것조차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점을 보여 주었을 뿐입니다.

이 구도를 기억하면 복음서의 한 장면이 달라집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님이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잔잔하게 하셨을 때(막 4:39), 제자들은 욥기 26장의 그 손을 눈앞에서 본 것입니다.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는 분이 배 안에 앉아 계셨다는 뜻입니다.

14절이 26장의 결론을 맺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일들이 겨우 그분의 행사의 단편일 뿐이고, 우리가 들은 것은 속삭이는 소리일 뿐이라는 고백입니다. 우렛소리는 아직 들어 보지도 못했다는 겸손이 여기 있습니다.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27장은 맹세로 시작합니다. 2절의 표현이 묘하고도 깊습니다. 욥은 자기의 정당함을 물리치시고 자기 영혼을 괴롭게 하신 하나님의 사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이 문장을 다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를 아프게 하신 분의 생명을 걸고 맹세한다는 뜻입니다. 원망과 신뢰가 한 호흡 안에 들어 있는 기도이고, 성경이 믿음을 그려 내는 가장 솔직한 방식입니다.

4절부터 6절에서 욥은 세 가지를 선언합니다. 거짓을 말하지 않겠다는 것, 죽기까지 자기 온전함을 버리지 않겠다는 것,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온전함"은 완벽함을 뜻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툼마는 안과 밖이 갈라지지 않은 상태, 곧 일관된 사람됨을 가리킵니다. 사람들이 보는 모습과 혼자 있을 때의 모습이 같다는 뜻입니다.

이 대목이 특별히 무거운 까닭이 있습니다. 욥이 거짓 자백 한 번으로 모든 고통을 끝낼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친구들이 원하는 대로 “내가 큰 죄를 지었다"고 말하면 논쟁은 즉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거짓으로 회개하는 일이 참된 회개보다 더 큰 죄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정직함이 무엇인지 배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악인이 받을 분깃

11절에서 욥은 선생의 자리에 섭니다. 하나님의 솜씨를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13절부터 23절까지 악인의 종말을 길게 묘사합니다.

내용을 들어 보면 친구들의 말과 거의 같습니다. 자손이 칼을 위하여 번성하고, 은을 티끌같이 쌓아도 그 옷을 의인이 입는다는 것입니다. 그가 지은 집은 좀의 집 같고 파수꾼의 초막 같다고도 합니다.

“파수꾼의 초막"이라는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추수기나 포도 수확기에 밭을 지키려고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엮어 세운 임시 움막을 가리킵니다. 수확이 끝나면 버려져 비바람에 주저앉는 집입니다.

21절의 “동풍"도 설명이 필요하겠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동풍은 아라비아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열풍입니다. 들판의 풀을 하루 만에 말려 버릴 만큼 강해서, 성경은 심판의 바람을 가리킬 때 자주 이 낱말을 씁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지 않나요? 친구들과 같은 내용을 말하면서 욥은 왜 다투었던 걸까요? 결론은 같았으나 적용이 전혀 달랐기 때문입니다. 악인에게 심판이 있다는 사실에는 둘 다 동의했고, 욥이 악인이라는 전제만 욥이 거부한 것입니다.

갱도를 뚫고 매달려 흔들리는 사람

28장은 욥기의 보석 같은 장입니다. 그런데 이 위대한 시가 광산 이야기로 시작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은과 금, 철과 동을 캐내는 현장 묘사입니다.

이스라엘 팀나 공원의 동석기 시대 구리 광산 갱도, Wilson44691 촬영, 퍼블릭 도메인
이스라엘 팀나 공원의 동석기 시대 구리 광산 갱도, Wilson44691 촬영, 퍼블릭 도메인

고대의 광산을 머릿속에 그려 보시기 바랍니다. 위 사진은 이스라엘 남부 팀나 골짜기에 남아 있는 구리 광산의 갱도입니다. 이 지역에서는 수천 년 전부터 구리를 캐냈고, 고고학자들이 제련 시설과 수직 갱도를 발굴해 냈습니다.

팀나 골짜기의 구리 광산 지대, Zairon 촬영, CC BY-SA 4.0
팀나 골짜기의 구리 광산 지대, Zairon 촬영, CC BY-SA 4.0

4절의 묘사가 사실적입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떠나 갱도를 깊이 뚫고,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매달려 흔들린다고 합니다. 줄에 몸을 매고 수직 통로를 내려가는 광부의 모습이 그대로 보입니다.

5절도 놀랍습니다. “음식은 땅으로부터 나오나 그 밑은 불처럼 변하였도다.” 같은 땅의 겉면에서는 밀과 보리가 자라는데, 그 아래에서는 광석을 녹이는 불이 타오른다는 대조입니다.

7절과 8절에서 욥은 한 가지를 강조합니다. 그 길은 솔개도 알지 못하고 사자도 지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나는 새와 땅을 누비는 짐승이 가지 못하는 곳에 사람은 들어갑니다.

이 모든 묘사의 결론이 무엇일까요? 사람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칭찬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탐구하고 캐내고 만드는 능력을 욥은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고대의 광산과 그 안의 사람들

28장의 광산 묘사가 얼마나 사실적인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고학은 욥기가 말하는 그 현장을 여러 곳에서 찾아냈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이 시나이 반도의 세라비트 엘카딤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기원전 두 번째 천년기에 이곳에서 터키석을 캐냈고, 바위벽에 수백 개의 비문을 남겼습니다. 가까운 와디 마가라에도 같은 시기의 채굴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스라엘 남부의 팀나 골짜기는 또 다른 현장입니다. 고고학자 베노 로텐버그가 1960년대부터 이곳을 발굴하여 수직 갱도와 제련 시설과 이집트 신전 터를 찾아냈습니다. 구리를 녹이던 노의 바닥에서는 지금도 굳은 찌꺼기가 발견됩니다.

그곳에서 일한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전쟁 포로와 죄수 같은 강제 노역자가 동원된 곳도 적지 않았습니다. 물조차 부족한 사막의 바위를 쪼아 광석을 캐는 일이었으니, 28장 4절의 사람이 없는 곳에 매달려 흔들린다는 표현이 조금도 과장이 아닙니다.

채굴 방법도 본문과 맞아떨어집니다. 먼저 바위에 불을 놓아 달군 뒤 물을 부어 갈라지게 했고, 그 틈에 끌을 박아 광석을 떼어 냈습니다. 9절의 “굳은 바위에 손을 대고"라는 말과 11절의 누수를 막는 작업이 그런 공정을 가리키는 셈입니다.

여기서 욥의 논지가 한층 또렷해집니다. 사람은 불과 물과 끌로 바위를 열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기술을 가진 사람이 지혜 하나만은 열어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보석으로도 값하지 못하는 것

그런데 12절에서 문장이 급히 꺾입니다. “그러나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고.” 땅속 깊은 곳의 청옥까지 찾아낸 사람이 지혜만은 찾지 못했다는 선언입니다.

청금석 원석, 미국 중앙정보국 촬영 자료, 퍼블릭 도메인
청금석 원석, 미국 중앙정보국 촬영 자료, 퍼블릭 도메인

15절부터 19절에는 고대 세계의 보물 목록이 줄줄이 나옵니다. 순금과 은, 오빌의 금, 청옥수와 남보석, 황금과 수정, 정금 장식품, 진주와 벽옥, 산호, 구스의 황옥입니다. 당시 상인이 다룰 수 있는 가장 값진 물건들을 모두 늘어놓은 셈입니다.

위 사진의 청금석은 아프가니스탄 산지에서 캐내어 수천 킬로미터를 실려 오던 보석입니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와 우르의 수금에도 이 돌이 박혀 있습니다. 왕이 아니면 만져 볼 수도 없던 물건이었습니다.

이집트 샤름엘셰이크 라스 카티 앞 홍해의 산호, Diego Delso 촬영, CC BY-SA 4.0
이집트 샤름엘셰이크 라스 카티 앞 홍해의 산호, Diego Delso 촬영, CC BY-SA 4.0

18절은 지혜의 값이 산호보다 귀하다고 말합니다. 홍해에서 건져 올린 산호는 고대에 매우 값진 장식 재료였습니다. 그러나 이 목록 전체를 한 저울에 올려도 지혜 쪽이 기울지 않습니다.

여기서 욥의 논리가 선명해집니다. 지혜는 캐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땅을 아무리 파도, 바다를 아무리 뒤져도 거기에는 지혜가 없습니다.

21절과 22절은 그 사실에 못을 박습니다. 지혜는 모든 생물의 눈에 숨겨졌고, 멸망과 사망조차 소문만 들었다고 고백합니다. 가장 깊은 곳까지 다 뒤졌으나 아무도 그것을 손에 쥐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주를 경외함, 지혜의 시작

23절에서 방향이 완전히 바뀝니다. “하나님이 그 길을 아시며 있는 곳을 아시나니.” 사람이 찾지 못한 것을 하나님은 처음부터 알고 계셨다는 선언입니다.

24절부터 27절은 그 근거를 제시합니다. 하나님은 땅 끝까지 감찰하시며 바람의 무게를 정하시고 물의 분량을 정하시며 비 내리는 법칙을 만드셨습니다. 자연의 질서를 세우신 분이기에 지혜가 어디 있는지 아신다는 논리입니다.

“바람의 무게"라는 표현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공기에 무게가 있다는 사실은 17세기에 토리첼리와 파스칼의 실험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욥기는 삼천 년 이상 앞서 바람의 무게가 정해져 있다고 적어 두었습니다.

헨리 모리스는 이 구절을 두고 성경의 놀라운 정확성을 보여 주는 사례로 꼽습니다. 우리는 이런 구절을 두고 성경이 과학 교과서라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성경이 자연을 말할 때에도 오류가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붙듭니다.

그리고 28절이 그 결론입니다. “또 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 긴 탐사 끝에 도달한 결론이 한 문장으로 주어집니다.

이 구절에 한 가지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여기 쓰인 아도나이라는 이름은 욥기 전체에서 이 구절에만 등장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그 사실을 근거로 이 절을 후대의 삽입이라 주장하지만, 우리는 그런 비평학의 결론을 따르지 않습니다. 성경은 한 글자도 사람이 임의로 덧붙인 책이 아닙니다.

그러면 경외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무서워 떠는 감정이 아니라 그분이 하나님이시고 나는 아니라는 사실 앞에 엎드리는 태도입니다. 잠언 1장 7절과 9장 10절도 똑같은 결론을 선포합니다.

28장의 아름다움이 여기서 완성됩니다. 사람은 땅을 파서 금은 캐낼 수 있으나 지혜는 캘 수 없습니다. 지혜는 캐내는 것이 아니라 주시는 분 앞에 무릎을 꿇어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은 그 지혜의 이름을 알려 줍니다. 고린도전서 1장 24절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지혜라 부르고, 골로새서 2장 3절은 그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선포합니다. 욥이 열거한 모든 보석을 합한 것보다 귀한 보화가 한 분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묵상과 적용

오늘 본문은 다섯 장에 걸쳐 두 가지 질문을 우리 앞에 놓습니다. 세상의 불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질문과, 참된 지혜를 어디서 얻을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두 질문은 결국 하나로 모입니다.

먼저 24장의 목록을 우리 시대의 말로 옮겨 보시기 바랍니다. 경계표를 옮기는 일은 남의 몫을 조용히 내 쪽으로 옮기는 모든 행위를 가리킵니다. 계약서의 작은 글씨, 정산에서 슬쩍 빼는 금액, 성과를 가로채는 보고서가 다 거기 들어갑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점검해 보십시오. 이번 달 내가 처리한 일 가운데 상대가 알면 불편해할 계산이 있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 돌을 제자리로 다시 옮겨 놓는 일이 오늘의 회개입니다.

둘째로, 기름을 짜면서 목마른 사람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24장 11절의 그 사람들은 지금도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새벽에 남의 집 청소를 하고, 남의 아이를 돌보며, 남의 밥상을 차리는 분들입니다.

실천을 하나 제안드립니다. 우리 집과 일터에서 가장 약한 자리에 있는 사람 한 명의 이름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이번 주에 그분의 처우에 관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조정이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품꾼의 삯을 늦추지 않는 일이 곧 신앙입니다(약 5:4).

셋째로, 하나님이 보지 않으시는 듯한 시간을 어떻게 견딜지 배워야 하겠습니다. 욥은 그 시간을 침묵으로 삭이지 않고 기도로 쏟아냈습니다. 성경은 그 거친 기도를 지우지 않고 그대로 실어 주었습니다.

그러니 응답이 더딘 기도 앞에서 억지로 평온한 척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다만 그 말을 사람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불평과 탄식을 가르는 경계선입니다.

넷째로, 25장의 실수를 교회에서 되풀이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빌닷은 하나님의 크심을 말하면서 사람을 벌레로 만들었습니다. 그런 설교는 사람을 낮추기는 하지만 일으키지는 못합니다.

성경의 균형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죄로 철저히 망가진 존재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존재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우리를 깊이 찌르고,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입니다.

자녀 양육에서도 이 균형이 중요합니다. 아이의 잘못을 지적할 때 행동과 존재를 분리해서 말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네가 한 일은 틀렸다고 말하는 것과 너는 아무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말입니다.

다섯째로, 27장의 온전함을 오늘의 과제로 받아야 하겠습니다. 욥은 거짓 자백으로 고통을 끝낼 수 있었으나 그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그가 붙든 것은 안과 밖이 갈라지지 않은 사람됨이었습니다.

직장에서 이 원칙을 지켜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윗사람이 원하는 답을 말하면 당장 편해지는 자리가 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욥의 선언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하던 그 한마디입니다.

여섯째로, 26장 7절의 고백을 창조주 신앙으로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신 분이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우주를 던져 놓고 떠나신 분이 아니라 지금도 붙들고 계시는 분입니다.

이 사실이 우리 일상에 어떻게 닿을까요? 히브리서 1장 3절이 답을 줍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신다는 선포입니다. 지구를 허공에 매달아 두시는 손이 오늘 우리 가정과 직장도 붙들고 계신 셈입니다.

일곱째로, 지혜와 지식을 구분하는 눈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정보를 손에 쥐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정보의 양이 지혜를 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28장은 그 이유를 또렷하게 알려 줍니다. 지식은 캐내는 것이고 지혜는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검색창을 열기 전에 먼저 성경을 펴는 순서가 그토록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경외라는 낱말을 다시 배워야 하겠습니다. 주를 경외함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은혜로 시작된 구원은 경외 가운데 성화로 자라 갑니다(빌 2:12~13).

그리고 그 지혜의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오실 그분이 천 년 동안 이 땅을 의로 다스리실 날에는(계 20:4~6), 오늘 욥이 울며 고발한 모든 불의가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날을 바라보는 사람은 오늘 하루를 다르게 살아갑니다.

예화

탄광 소년에서 부흥의 도구로: 에반 로버츠

욥기 28장은 땅을 파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해 주를 경외함이 지혜라는 결론으로 끝납니다. 그 두 장면을 한 생애에 담은 사람이 있습니다. 1878년 6월 8일 웨일스 남부 러커에서 태어난 에반 로버츠입니다.

에반 로버츠의 사진, 웨일스 국립도서관 인물 자료, 퍼블릭 도메인
에반 로버츠의 사진, 웨일스 국립도서관 인물 자료, 퍼블릭 도메인

그의 집은 가난했습니다. 열두 살이 되기 직전, 탄광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소년 에반은 학교를 그만두고 아버지를 거들러 탄광으로 내려갑니다.

그가 받은 첫 일자리는 무엇이었을까요? 갱도의 문을 여닫는 도어보이였습니다. 환기를 위해 세워 둔 문을 수레가 지날 때마다 열고 닫는 일이고, 어두운 갱도에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웨일스 남부 트레해리스의 딥 내비게이션 탄광 입구, Tom Jolliffe 촬영, CC BY-SA 2.0
웨일스 남부 트레해리스의 딥 내비게이션 탄광 입구, Tom Jolliffe 촬영, CC BY-SA 2.0

그 어둠 속에서 소년은 성경을 읽었습니다. 등불 아래에서 말씀을 옮겨 적고 외웠다고 전해집니다. 욥기 28장 3절의 표현을 그대로 가져오면, 그는 어둠을 뚫고 광석을 탐지하는 자리에서 다른 보물을 캐고 있었던 셈입니다.

스물여섯 살이 된 1904년 9월 29일, 그는 블라이난에르흐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설교자 세스 조슈아가 인도하는 모임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에반 로버츠는 나를 꺾으소서 하고 부르짖으며 무너집니다.

웨일스 러커의 모리아 교회당, Jaggery 촬영, CC BY-SA 2.0
웨일스 러커의 모리아 교회당, Jaggery 촬영, CC BY-SA 2.0

그 체험 이후 그는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1904년 10월 31일, 러커의 모리아 교회당 부속 교실에서 작은 기도 모임이 열렸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은 열몇 명의 청년들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모임에서 무엇이 시작되었을까요? 웨일스 전역을 뒤흔든 1904년 대부흥이 시작되었습니다. 몇 주 만에 교회당이 넘치고, 밤새 기도와 찬송이 이어지고, 탄광촌 전체가 흔들렸습니다.

부흥의 결과는 숫자로도 남아 있습니다. 한 해 동안 웨일스에서 약 십만 명이 그리스도께 돌아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술집이 비고 사람들이 묵은 빚을 갚으며 훔친 물건을 돌려주는 일이 줄을 이었습니다.

웨일스 아버시넌 탄광 광부 기념물, Jaggery 촬영, CC BY-SA 2.0
웨일스 아버시넌 탄광 광부 기념물, Jaggery 촬영, CC BY-SA 2.0

여기서 꼭 짚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에반 로버츠는 신학교를 마친 명망 있는 설교자가 아니었습니다. 땅속에서 문을 여닫던 소년이 지혜의 출처를 아는 사람이 되었을 때, 하나님이 그를 한 민족을 깨우는 도구로 쓰신 것입니다.

욥기 28장 28절이 다시 들립니다. 사람이 캐낼 수 있는 것은 은과 금이고, 캐낼 수 없는 것은 지혜입니다. 그 지혜는 주를 경외하는 무릎 앞에 주어집니다.

땅콩을 들고 하나님께 물은 사람: 조지 워싱턴 카버

28장의 또 다른 면을 보여 주는 이야기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미국의 농학자 조지 워싱턴 카버의 삶입니다. 그는 1860년대 중반 미주리주에서 노예의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1906년 프랜시스 벤저민 존스턴이 촬영한 조지 워싱턴 카버, 퍼블릭 도메인
1906년 프랜시스 벤저민 존스턴이 촬영한 조지 워싱턴 카버, 퍼블릭 도메인

어린 시절 그는 몸이 약해 밭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식물을 돌보는 일을 맡아, 동네 사람들이 그를 식물 의사라고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글을 배우려고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먼 마을의 학교를 찾아간 소년입니다.

그는 아이오와 주립대학에서 공부한 뒤 1896년 터스키기 학교로 옮겨 평생을 가르쳤습니다. 남부의 흙이 면화 농사로 메말라 갈 때, 그가 내놓은 처방은 땅콩과 고구마를 심어 땅을 살리는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일으킨 작물의 쓰임새를 찾느라 실험실에서 밤을 새웠습니다.

1921년 1월 21일, 그는 미국 하원 세입위원회에 출석했습니다. 그 자리에 선 까닭은 땅콩 산업에 관해 증언하기 위함입니다. 처음에 주어진 시간은 겨우 십 분이었으나, 위원들이 그의 설명에 빠져들어 발언을 계속 연장해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증언이 끝날 무렵 위원장이 물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어디서 배웠는지 묻는 질문입니다. 카버는 오래된 책 한 권에서 배웠다고 대답했습니다.

위원장이 어떤 책인지 되묻습니다. 그의 대답은 성경이었습니다. 성경이 땅콩에 관해 알려 주느냐는 질문이 이어졌을 때, 그는 조용히 이렇게 답했다고 전해집니다. 성경은 땅콩을 만드신 하나님에 관해 알려 주며, 그분께 땅콩으로 무엇을 할지 보여 달라고 구했더니 보여 주셨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장면이 욥기 28장과 겹치지 않나요? 카버는 흙과 뿌리와 껍질을 끝까지 탐지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지혜의 출처로 지목한 곳은 실험실이 아니라 창조주 앞에 꿇은 무릎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같은 결론이 들려옵니다. 탄광의 소년과 실험실의 농학자는 모두 땅을 파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땅에서 나오지 않는 보물을 알고 있었습니다.

기도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남의 몫을 조용히 내 쪽으로 옮기는 모든 계산에서 벗어나기를 구하며, 정보를 쌓는 일보다 주를 경외하는 일을 앞세우는 하루를 살기를 간구합니다. 아울러 안과 밖이 갈라지지 않은 사람됨을 끝까지 지켜 내기를 기도합니다.

가정을 위해서는, 자녀의 잘못을 지적할 때에도 그 존재를 벌레로 깎아내리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세워 주는 부모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크심을 말하면서 사람을 일으키는 강단이 되기를 구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기름을 짜면서도 목이 마른 이웃들이 정당한 삯과 쉼을 누리고, 열방에서 땅을 파며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에게 하늘의 지혜가 넉넉히 주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달아 두신 하나님, 오늘 말씀 앞에 나아왔습니다. 바람의 무게를 정하시고 물의 분량을 정하시며 비 내리는 법칙을 세우신 주님의 솜씨를 찬양합니다. 그 크신 손이 지금도 저희 가정과 일터를 붙들고 계심을 믿습니다.

공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의 불의를 보며 주님이 보지 않으신다고 중얼거렸던 입술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경계표를 옮기듯 남의 몫을 가져오고도 마음이 편했던 날들을 고백합니다. 고아의 나귀와 과부의 소를 지켜 주시는 주님의 마음을 저희 손끝에도 새겨 주옵소서.

빌닷의 입술을 닮았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주님의 위대하심을 말하면서 사람을 벌레로 만들고, 가장 중요한 질문에 복음으로 답하지 못했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말이 사람을 낮추기만 하지 않고 다시 일으켜 세우게 하여 주옵소서.

거짓 자백으로 고통을 끝내려는 유혹에서 지켜 주옵소서. 편해지려고 없는 죄를 꾸며 말하지 않게 하시고, 두려움 때문에 아는 진실을 삼키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죽기까지 온전함을 버리지 않겠다던 욥의 결심을 저희에게도 허락하여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지혜의 주인이신 주님, 저희는 땅을 파서 금은 캐낼 수 있으나 지혜는 캐낼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음을 고백하며, 그 보화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주를 경외함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악을 떠남으로 하루를 마치게 하여 주옵소서.

다시 오실 주님, 그날에는 오늘 저희가 울며 고발한 모든 불의가 자취를 감출 것을 믿습니다. 그날까지 약한 이웃의 곁을 지키며, 받은 것으로 한 사람의 필요를 채우며 걸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어두운 갱도에서도 말씀을 붙들었던 한 소년처럼 저희도 각자의 자리에서 주님을 붙들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지혜이시며 저희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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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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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John E. Hartley, The Book of Job,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88. (욥 24~28장 주해)
  3. 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Vol. 3 (Job to Song of Solomon), 1708–1710;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판 참조. (욥 28장 주해)
  4. John MacArthur, ed., The MacArthur Study Bible, Nashville: Word Publishing, 1997. (욥 24~28장 주)
  5. Henry M. Morris, The Remarkable Record of Job: The Ancient Wisdom, Scientific Accuracy, and Life-Changing Message of an Amazing Book,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8. (욥 26:7, 28:25 주해)
  6. C. I. Scofield, ed., The Scofield Reference Bibl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09. (욥기 주)
  7. John Wesley, Explanatory Notes upon the Old Testament, Bristol: William Pine, 1765. (욥기 주해)
  8. John Wesley, “On Working Out Our Own Salvation” (Sermon 85, 1785), in The Works of John Wesley, Vol. 3, ed. Albert C. Outler, Nashville: Abingdon Press, 1986.
  9. Beno Rothenberg, Timna: Valley of the Biblical Copper Mines, London: Thames & Hudson, 1972.
  10. Beno Rothenberg, ed., The Egyptian Mining Temple at Timna, London: Institute for Archaeo-Metallurgical Studies, 1988.
  11. Eifion Evans, The Welsh Revival of 1904, Bridgend: Evangelical Press of Wales, 1969.
  12. Moriah Chapel, Loughor 공식 자료, “1904 Revival” (https://moriahchapel.org.uk).
  13. Linda O. McMurry, George Washington Carver: Scientist and Symbol,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81. (1921년 1월 21일 하원 세입위원회 증언)
  14. 이미지 출처(모두 위키미디어 공용에서 크기를 줄여 주소로 임베딩함): 팀나 골짜기 구리 광산 사진 2장, Zairon, CC BY-SA 4.0 / 팀나 동석기 시대 갱도 사진, Wilson44691, 퍼블릭 도메인 / 바벨론 경계석 사진, Gary Todd, 대영박물관, CC0 / 가버나움 올리브 압착기 사진, David Shankbone, CC BY-SA 3.0 / 가버나움 올리브 압착기 사진, 아비샤이 테이케르, CC BY 2.5 / 보름달 사진, Luc Viatour, CC BY-SA 3.0 / 아폴로 8호 지구 사진, NASA/Bill Anders, 퍼블릭 도메인 / 청금석 사진, 미국 중앙정보국, 퍼블릭 도메인 / 홍해 산호 사진, Diego Delso, CC BY-SA 4.0 / 에반 로버츠 사진, 웨일스 국립도서관, 퍼블릭 도메인 / 딥 내비게이션 탄광 사진, Tom Jolliffe, CC BY-SA 2.0 / 모리아 교회당 사진, Jaggery, CC BY-SA 2.0 / 아버시넌 탄광 기념물 사진, Jaggery, CC BY-SA 2.0 / 조지 워싱턴 카버 사진, Frances Benjamin Johnston, 퍼블릭 도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