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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차 (욥기 21장 ~ 욥기 23장)

아크 용광로에서 녹인 금을 거푸집에 붓기 위해 꺼내는 모습, 남아프리카공화국 골드리프시티, Dan Brown 촬영, CC BY 2.0

아크 용광로에서 녹인 금을 거푸집에 붓기 위해 꺼내는 모습, 남아프리카공화국 골드리프시티, Dan Brown 촬영, CC BY 2.0

9일차 (욥기 21장 ~ 욥기 23장)

본문

욥기 21장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너희는 내 말을 자세히 들으라 이것이 너희의 위로가 될 것이니라
  3. 나를 용납하여 말하게 하라 내가 말한 후에 너희가 조롱할지니라
  4. 나의 원망이 사람을 향하여 하는 것이냐 내 마음이 어찌 조급하지 아니하겠느냐
  5. 너희가 나를 보면 놀라리라 손으로 입을 가리리라
  6. 내가 기억하기만 하여도 불안하고 두려움이 내 몸을 잡는구나
  7. 어찌하여 악인이 생존하고 장수하며 세력이 강하냐
  8. 그들의 후손이 앞에서 그들과 함께 굳게 서고 자손이 그들의 목전에서 그러하구나
  9. 그들의 집이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의 매가 그들 위에 임하지 아니하며
  10. 그들의 수소는 새끼를 배고 그들의 암소는 낙태하는 일이 없이 새끼를 낳는구나
  11. 그들은 아이들을 양 떼 같이 내보내고 그들의 자녀들은 춤추는구나
  12. 그들은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하고 피리 불어 즐기며
  13. 그들의 날을 행복하게 지내다가 잠깐 사이에 스올에 내려가느니라
  14. 그러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떠나소서 우리가 주의 도리 알기를 바라지 아니하나이다
  15. 전능자가 누구이기에 우리가 섬기며 우리가 그에게 기도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는구나
  16. 그러나 그들의 행복이 그들의 손 안에 있지 아니하니 악인의 계획은 나에게서 멀구나
  17. 악인의 등불이 꺼짐과 재앙이 그들에게 닥침과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들을 곤고하게 하심이 몇 번인가
  18. 그들이 바람 앞에 검불 같이, 폭풍에 날려가는 겨 같이 되었도다
  19. 하나님은 그의 죄악을 그의 자손들을 위하여 쌓아 두시며 그에게 갚으실 것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20. 자기의 멸망을 자기의 눈으로 보게 하며 전능자의 진노를 마시게 할 것이니라
  21. 그의 달 수가 다하면 자기 집에 대하여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2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높은 자들을 심판하시나니 누가 능히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겠느냐
  23. 어떤 사람은 죽도록 기운이 충실하여 안전하며 평안하고
  24. 그의 그릇에는 젖이 가득하며 그의 골수는 윤택하고
  25. 어떤 사람은 마음에 고통을 품고 죽으므로 행복을 맛보지 못하는도다
  26. 이 둘이 매 한 가지로 흙 속에 눕고 그들 위에 구더기가 덮이는구나
  27. 내가 너희의 생각을 알고 너희가 나를 해하려는 속셈도 아노라
  28. 너희의 말이 귀인의 집이 어디 있으며 악인이 살던 장막이 어디 있느냐 하는구나
  29. 너희가 길 가는 사람들에게 묻지 아니하였느냐 그들의 증거를 알지 못하느냐
  30. 악인은 재난의 날을 위하여 남겨둔 바 되었고 진노의 날을 향하여 끌려가느니라
  31. 누가 능히 그의 면전에서 그의 길을 알려 주며 누가 그의 소행을 보응하랴
  32. 그를 무덤으로 메어 가고 사람이 그 무덤을 지키리라
  33. 그는 골짜기의 흙덩이를 달게 여기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보다 앞서 갔으며 모든 사람이 그의 뒤에 줄지었느니라
  34.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헛되이 위로하려느냐 너희 대답은 거짓일 뿐이니라

욥기 22장

  1.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2.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유익하게 하겠느냐 지혜로운 자도 자기에게 유익할 따름이니라
  3. 네가 의로운들 전능자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으며 네 행위가 온전한들 그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
  4.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문하심이 너의 경건함 때문이냐
  5.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
  6.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7.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아니하였구나
  8. 권세 있는 자는 토지를 얻고 존귀한 자는 거기에서 사는구나
  9. 너는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고아의 팔을 꺾는구나
  10. 그러므로 올무들이 너를 둘러 있고 두려움이 갑자기 너를 엄습하며
  11. 어둠이 너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하고 홍수가 너를 덮느니라
  12. 하나님은 높은 하늘에 계시지 아니하냐 보라 우두머리 별이 얼마나 높은가
  13. 그러나 네 말은 하나님이 무엇을 아시며 흑암 중에서 어찌 심판하실 수 있으랴
  14. 빽빽한 구름이 그를 가린즉 그가 보지 못하시고 둥근 하늘을 거니실 뿐이라 하는구나
  15. 네가 악인이 밟던 옛적 길을 지키려느냐
  16. 그들은 때가 이르기 전에 끊겨 버렸고 그들의 터는 강물로 말미암아 함몰되었느니라
  17. 그들이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떠나소서 하며 또 말하기를 전능자가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실 수 있으랴 하였으나
  18.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그들의 집에 채우셨느니라 악인의 계획은 나에게서 머니라
  19. 의인은 보고 기뻐하고 죄 없는 자는 그들을 비웃기를
  20. 우리의 원수가 망하였고 그들의 남은 것을 불이 삼켰느니라 하리라
  21.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22. 청하건대 너는 하나님의 입에서 교훈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23.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면 네가 지음을 받을 것이며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하리라
  24. 네 보화를 티끌로 여기고 오빌의 금을 계곡의 돌로 여기라
  25.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화가 되시며 네게 고귀한 은이 되시리니
  26.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
  27.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을 네가 갚으리라
  28. 네가 무엇을 결정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치리라
  29. 사람들이 너를 낮추거든 너는 교만했노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리라
  30. 죄 없는 자가 아니라도 건지시리니 네 손이 깨끗함으로 말미암아 건지심을 받으리라

욥기 23장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오늘도 내게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나니 내가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무거움이라
  3.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
  4. 어찌하면 그 앞에서 내가 호소하며 변론할 말을 내 입에 채우고
  5.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며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랴
  6.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와 더불어 다투시겠느냐 아니로다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
  7. 거기서는 정직한 자가 그와 변론할 수 있은즉 내가 심판자에게서 영원히 벗어나리라
  8.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9.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11.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13.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14.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15. 그러므로 내가 그 앞에서 떨며 지각을 얻어 그를 두려워하리라
  16.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약하게 하시며 전능자가 나를 두렵게 하셨나니
  17. 이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어둠 때문이나 흑암이 내 얼굴을 가렸기 때문이 아니로다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본문 해설

반박과 확신이 나란히 선 자리

연대기 일독의 아홉째 날입니다. 오늘 읽는 세 장에는 욥의 가장 뜨거운 반박과 가장 맑은 확신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친구들의 신학이 현실과 어긋난다는 사실을 조목조목 짚어 낸 뒤에, 욥은 자기를 단련하시는 하나님께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 걸음을 오늘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자리를 먼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21장은 어제 읽은 소발의 두 번째 발언에 대한 욥의 응답이고, 이로써 두 번째 변론 순환이 닫힙니다. 22장에서 엘리바스가 세 번째로 입을 열며 욥기의 마지막 변론 순환이 열린 것입니다.

욥기의 변론은 모두 세 차례 돌아갑니다.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이 차례로 말하고 욥이 그때마다 응답하는 구조입니다. 다만 세 번째 순환에서는 소발의 발언이 아예 나오지 않고 빌닷의 말도 25장에서 겨우 여섯 절로 끝나고 맙니다.

친구들의 말이 왜 점점 짧아졌을까요? 할 말이 바닥났기 때문입니다. 같은 전제를 되풀이하는 논리는 현실 앞에서 결국 밑천을 드러내는 법입니다.

족장 시대의 한 사람, 우스 땅의 욥

연대기 일독표가 욥기를 창세기 11장 다음에 놓은 까닭을 잠시 짚어 보겠습니다. 욥기 안에는 족장 시대를 가리키는 표지들이 곳곳에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표지는 재산을 세는 방식입니다. 욥의 부는 금고에 쌓인 은이 아니라 양과 낙타와 소와 나귀의 머릿수로 계산되었습니다(욥 1:3). 아브라함과 야곱의 부를 세던 방식과 똑같습니다.

둘째 표지는 제사입니다. 욥은 제사장을 부르지 않고 집안의 가장으로서 직접 번제를 드렸습니다(욥 1:5). 레위 지파를 통한 제사 제도가 세워지기 훨씬 전의 모습인 셈입니다.

셋째 표지는 수명입니다. 욥은 모든 재앙을 지난 뒤에 백사십 년을 더 살았습니다(욥 42:16). 아브라함이 백칠십다섯 해를 살았던 시대와 어울리는 길이입니다.

그렇다면 욥이 살았던 땅은 어디일까요? 본문은 그곳을 우스 땅이라고만 밝힙니다(욥 1:1). 에돔 남쪽이나 아라비아 북부 어딘가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데만이 에돔의 한 지역이라는 점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어야 하겠습니다. 욥기를 역사가 아닌 교훈 소설로 읽는 해석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에스겔 14장 14절은 노아와 다니엘과 함께 욥을 실제 인물로 나란히 세우고, 야고보서 5장 11절도 그의 인내를 역사적 사실로 전합니다.

행위와 보응을 잇는 고대의 상식

오늘 본문을 제대로 읽으려면 당시 사람들이 품고 있던 한 가지 상식을 알아 두어야 하겠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이런 생각입니다.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악하게 살면 벌을 받는다는, 아주 단순하고 깔끔한 공식입니다.

학자들은 이것을 행위와 보응의 원리라고 부릅니다. 고대 근동의 지혜 문학에는 이 공식이 아주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교훈 문서들도 비슷한 가르침을 반복했던 것입니다.

성경도 이 원리를 통째로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잠언은 게으른 자의 가난과 정직한 자의 평안을 거듭 말씀합니다. 문제는 그 원리를 모든 개인의 모든 사건에 그대로 대입할 때 생깁니다.

세 친구가 바로 그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공식을 거꾸로 돌려 결과에서 원인을 계산해 냈습니다. 욥이 망했으니 욥에게 큰 죄가 있다는 결론이 그렇게 나온 셈입니다.

욥은 오늘 21장에서 그 계산기를 부수어 버립니다. 그가 꺼내 든 무기는 추상적 논리가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었습니다. 악인이 멀쩡히 잘 사는 세상, 그것이 그의 증거였습니다.

악인이 형통하는 세상: 21장의 질문

7절이 오늘의 첫 번째 못입니다. “어찌하여 악인이 생존하고 장수하며 세력이 강하냐.” 친구들의 공식이 맞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질문입니다.

8절부터 13절까지 욥은 악인의 복을 하나씩 열거합니다. 자손이 눈앞에서 굳게 서고, 집이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으며, 하나님의 매가 그들 위에 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소와 양이 새끼를 잘 낳고 아이들은 양 떼처럼 뛰어놀며 춤을 춥니다.

이 목록이 특별히 아픈 까닭이 있습니다. 욥이 바로 그것들을 하루에 다 잃은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자녀 열 명과 수많은 가축과 평안한 집, 그가 열거한 복은 전부 그가 잃어버린 목록이었습니다.

우르 왕실 묘지에서 출토된 황소 머리 장식 수금,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고고인류학 박물관 소장, Binxedits 촬영, CC BY-SA 4.0
우르 왕실 묘지에서 출토된 황소 머리 장식 수금,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고고인류학 박물관 소장, Binxedits 촬영, CC BY-SA 4.0

12절의 그림을 조금 더 들여다보겠습니다. 악인의 집에서는 소고와 수금과 피리 소리가 그치지 않습니다. 소고는 손으로 두드리는 작은 북이고, 수금은 줄을 뜯는 현악기이며, 피리는 입으로 부는 관악기이니, 잔치가 끊이지 않는 집을 그린 셈입니다.

위 사진의 수금은 메소포타미아 우르의 왕실 묘지에서 나온 유물입니다. 기원전 2500년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금과 청금석으로 황소 머리를 장식했습니다. 욥이 살던 족장 시대의 부유한 집에서 울렸을 악기가 이런 모양이었던 셈입니다.

14절과 15절은 더 서늘합니다. 그렇게 즐기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놓고 말합니다. “우리를 떠나소서 우리가 주의 도리 알기를 바라지 아니하나이다” 하는 말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전능자가 누구이기에 우리가 섬기며” 하고 창조주의 자격까지 깎아내리는 말입니다. 복은 다 받아 누리면서 복의 주인은 알고 싶지 않다는 뻔뻔한 선언인 셈입니다.

바람 앞의 검불과 미루어진 심판

16절에서 욥이 한 발 물러서는 듯한 말을 합니다. “그들의 행복이 그들의 손 안에 있지 아니하니 악인의 계획은 나에게서 멀구나.” 악인의 번영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는 선 긋기입니다.

17절과 18절은 친구들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한 대목으로 읽힙니다. 악인의 등불이 꺼지고 그들이 바람 앞에 검불 같이, 폭풍에 날려가는 겨 같이 된다는 말입니다. 욥은 그렇게 되는 일이 실제로 “몇 번인가” 하고 되묻습니다.

헤브론 도로의 할훌 마을 타작마당에서 곡식을 바람에 날려 고르는 모습, 매트슨 사진 컬렉션,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 퍼블릭 도메인
헤브론 도로의 할훌 마을 타작마당에서 곡식을 바람에 날려 고르는 모습, 매트슨 사진 컬렉션,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 퍼블릭 도메인

겨의 비유를 이해하려면 타작마당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농부는 곡식을 넓은 바닥에 펴고 소나 썰매로 밟아 알곡과 껍질을 분리했습니다. 그다음 넉가래로 공중에 던지면 무거운 알곡은 떨어지고 가벼운 겨는 바람에 날려 갔습니다.

위 사진은 백 년 전 헤브론 가도의 할훌 마을에서 실제로 곡식을 날려 고르는 장면입니다. 성경이 쓰인 땅에서 수천 년 동안 거의 같은 방식으로 이 일이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겨는 성경에서 늘 심판 앞에 선 악인의 상징으로 쓰이는 것입니다.

19절부터 21절까지 욥은 친구들의 또 다른 주장을 반박합니다. 죄악의 값을 자손에게 쌓아 두신다는 설명이 그것입니다. 욥은 그런 식이면 안 된다고 못을 박습니다. 자기의 멸망을 자기 눈으로 보아야 하고, 전능자의 진노를 자기 입으로 마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23절부터 26절은 냉정한 관찰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운이 넘치는 몸으로 평안히 죽고, 어떤 사람은 고통을 품은 채 행복을 맛보지 못하고 죽습니다. 그런데 둘 다 흙 속에 눕고 구더기가 덮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욥은 결국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말한 걸까요? 아닙니다. 30절에서 그는 악인이 재난의 날과 진노의 날을 향해 끌려간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심판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심판의 시점과 방식이 사람의 계산표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관찰은 시편 73편과 똑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아삽도 악인의 형통을 보고 발이 미끄러질 뻔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답을 얻은 곳은 토론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소였습니다(시 73:17). 욥도 23장에서 바로 그 처소를 찾아 나서게 됩니다.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에돔의 지혜

22장의 화자는 데만 사람 엘리바스입니다. 세 친구 가운데 맨 먼저 말했던 사람이고, 이제 마지막 순환의 문을 엽니다. 그의 출신지 데만은 에돔 땅의 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스라엘 쪽 사해 연안에서 바라본 에돔 산지, Felagund 촬영, CC BY-SA 3.0
이스라엘 쪽 사해 연안에서 바라본 에돔 산지, Felagund 촬영, CC BY-SA 3.0

창세기 36장 11절은 에서의 손자 가운데 데만이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에돔은 사해 남쪽에서 아카바 만까지 이어지는 붉은 사암 산지였습니다. 위 사진의 산줄기가 바로 그 땅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데만이 지혜로 이름난 곳이었다는 점입니다. 예레미야 49장 7절은 에돔을 향한 심판을 선포하면서 “데만에 다시는 지혜가 없게 되었느냐"라고 묻습니다. 다시 말해 엘리바스는 지혜의 명문 출신으로 소개되는 셈입니다.

페트라 일대의 에돔 산지와 아라바 평원, 매트슨 사진 컬렉션,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 퍼블릭 도메인
페트라 일대의 에돔 산지와 아라바 평원, 매트슨 사진 컬렉션,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 퍼블릭 도메인

그런데 그 지혜가 오늘 어떻게 쓰였을까요? 사람을 찌르는 데 쓰였습니다. 출신과 명성이 지혜를 보증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엘리바스가 몸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엘리바스의 기소장: 22장의 죄목들

2절과 3절에서 엘리바스는 큰 질문을 던집니다. 사람이 의롭게 산다고 해서 하나님께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는 말입니다. 그 자체로는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서 무엇을 얻어야 하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가 이 말을 욥의 경건을 깎아내리는 데 썼다는 점입니다. 네 경건이 하나님께 아무 보탬도 되지 않으니 네 고난이 경건 때문일 리 없고 결국 숨은 죄 때문이라고 몰아갑니다. 참으로 교묘한 비약입니다.

5절에서 그는 선을 넘습니다.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 이제 추측이 아니라 단정입니다. 그리고 6절부터 9절까지 구체적인 죄목을 조목조목 붙여 나갑니다.

그가 적은 죄목을 하나씩 보겠습니다.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은 일,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긴 일,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지 않은 일,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낸 일, 고아의 팔을 꺾은 일입니다.

“볼모"는 담보를 뜻하는 옛말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돈을 빌릴 때 겉옷을 맡기던 관습이 당시에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22장 26절과 27절은 그 겉옷을 해 지기 전에 반드시 돌려주라고 명하는데, 그것이 밤에 덮을 유일한 이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엘리바스의 기소장은 고대 근동에서 가장 무거운 사회적 죄를 모아 놓은 목록입니다. 약자의 생존 수단을 빼앗는 일이 거기 전부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욥이 실제로 저지른 일이 하나라도 있었을까요? 하나도 없었습니다.

31장에 가면 욥이 조목조목 대답합니다. 그는 고아를 아비처럼 길렀고 과부를 인도했으며 나그네에게 문을 열어 주었다고 밝힙니다(욥 31:17~18, 32). 하나님도 그를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 부르셨습니다(욥 1:8). 엘리바스의 기소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통째로 거짓이었던 것입니다.

구름 뒤에서 보지 못하신다는 오해

12절부터 14절은 엘리바스가 욥의 말을 비틀어 옮기는 대목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높은 하늘에 계시고 우두머리 별이 얼마나 높은가를 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욥이 “빽빽한 구름이 그를 가린즉 그가 보지 못하시고"라고 말했다며 몰아붙입니다.

별이 가득한 밤하늘, 독일 브란덴부르크안데어하펠 근처에서 자정 무렵 촬영, Mathias Krumbholz, CC BY-SA 3.0
별이 가득한 밤하늘, 독일 브란덴부르크안데어하펠 근처에서 자정 무렵 촬영, Mathias Krumbholz, CC BY-SA 3.0

욥이 정말 그렇게 말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자기를 너무 세밀히 지켜보신다고 괴로워했던 사람입니다.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셔서” 하고 아뢴 적도 있습니다(욥 7:20).

남의 말을 비틀어 인용하는 일은 이 본문이 보여 주는 가장 위험한 죄 가운데 하나입니다. 상대가 하지 않은 말을 상대의 입에 넣고 때리면, 그 논쟁은 이미 진실과 상관없어지고 맙니다. 교회의 논쟁이 가장 자주 넘어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오빌의 금보다 귀한 보화

21절부터 30절은 엘리바스의 발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대목입니다. 그는 욥에게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권하며, 돌아오면 회복이 있으리라고 약속합니다. 문장만 떼어 놓고 보면 복음에 가까운 권면입니다.

24절과 25절이 특히 그렇습니다. 보화를 티끌로 여기고 오빌의 금을 계곡의 돌로 여기라는 말,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화가 되신다는 말입니다. 매튜 헨리도 이 구절을 두고 참된 부요가 어디 있는지 보여 주는 말씀이라고 풀이했습니다.

금 덩이, 미국 정부 기관 촬영 사진, 퍼블릭 도메인
금 덩이, 미국 정부 기관 촬영 사진, 퍼블릭 도메인

여기서 “오빌"이라는 지명이 눈에 들어옵니다. 오빌은 성경에서 최고급 금의 산지로 거듭 언급되는 곳입니다. 솔로몬의 배들이 오빌에서 금을 실어 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왕상 9:28, 10:11).

오빌이 어디인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아라비아 남부, 아프리카 동해안, 인도 서해안이 후보로 거론됩니다. 그런데 이 지명이 성경 밖 유물에서도 확인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1946년 텔 카실레에서 발견된 토기 조각에는 고대 히브리어로 오빌의 금, 벧호론에 보냄, 삼십 세겔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기원전 8세기 무렵의 영수증 같은 기록입니다. 성경의 지명이 당대 상거래 문서에 그대로 등장한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권면에 무엇이 빠져 있을까요? 전제가 빠져 있습니다. 엘리바스의 권면은 욥이 회개할 죄를 숨기고 있다는 가정 위에 서 있었고, 그 가정이 틀렸기에 옳은 말이 흉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전할 때 내용만 옳으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같은 말씀이라도 상대의 자리를 잘못 읽으면 위로가 아니라 낙인이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 없는 정확함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배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처소를 찾아 나선 사람

23장에서 욥이 응답합니다. 2절의 고백이 놀랄 만큼 솔직합니다. “오늘도 내게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나니 내가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무거움이라.” 탄식으로 다 담아낼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짐이라는 뜻입니다.

3절부터 7절까지 욥은 한 가지 소원을 쏟아냅니다. 하나님을 발견하여 그의 처소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앞에서 호소하고 변론할 말을 입에 채우고 싶다는 간절함입니다.

이 대목에는 법정 용어가 빽빽하게 들어 있습니다. 호소하고 변론하고 대답을 듣고 심판자 앞에 선다는 말이 줄줄이 나옵니다. 욥은 지금 하나님을 재판장으로 모신 정식 재판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6절입니다.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와 더불어 다투시겠느냐 아니로다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 하나님이 힘으로 자기를 짓누르지 않으시고 끝까지 들어주실 분이라는 신뢰입니다.

이 신뢰가 어디서 왔을까요? 하나님을 직접 겪어 본 세월에서 왔습니다. 세 친구가 하나님을 공식으로만 알았던 반면, 욥은 그분의 성품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앞에도 뒤에도 보이지 않는 분

8절과 9절은 가슴이 내려앉는 고백입니다. 앞으로 가도 계시지 않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않으며, 왼쪽에서 일하시나 만날 수 없고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방을 다 더듬었으나 손에 닿지 않는 하나님입니다.

네게브 광야 세이핌 평원 우브다 골짜기의 와디, HonzaGreen 촬영, CC BY-SA 4.0
네게브 광야 세이핌 평원 우브다 골짜기의 와디, HonzaGreen 촬영, CC BY-SA 4.0

이 장면을 광야의 와디에 비유해 보면 좋겠습니다. 와디는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 마른 골짜기입니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아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가도 바닥에 돌만 드러나 있을 때가 있습니다.

혹시 지금 그런 자리에 서 계시나요?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말씀을 펴도 마음이 메마른 날이 분명히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날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대로 적어 두었습니다.

여기서 꼭 붙들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욥이 하나님을 찾지 못한 그 시간에도 하나님은 욥을 한순간도 잃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1장과 2장을 읽은 우리는 그 사실을 압니다. 욥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있었으나, 그 어둠은 하나님의 손바닥 위였습니다.

단련하신 후에 순금 같이

10절이 오늘 본문의 정점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바로 앞 절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했던 사람의 입에서 터져 나온 선언입니다.

용광로에서 녹인 금을 금괴 거푸집에 붓기 위해 준비된 장비, 남아프리카공화국 골드리프시티, Dan Brown 촬영, CC BY 2.0
용광로에서 녹인 금을 금괴 거푸집에 붓기 위해 준비된 장비, 남아프리카공화국 골드리프시티, Dan Brown 촬영, CC BY 2.0

“단련하신"으로 옮긴 히브리어 바한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낱말은 본래 금속을 시험하여 순도를 가려내는 일에 쓰였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금을 불에 녹여 참된 금인지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고대의 금 제련은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캐낸 광석을 도가니에 넣고 숯불로 녹이면 불순물이 위로 떠오릅니다. 제련하는 사람은 그 찌꺼기를 걷어 내고 순금이 거울처럼 자기 얼굴을 비출 때까지 작업을 반복했습니다.

욥이 이 비유를 선택한 데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불은 금을 없애지 않습니다. 불이 태우는 것은 금이 아니라 금에 섞인 찌꺼기일 뿐입니다.

여기서 조심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욥은 자기 고난의 이유를 알아낸 것이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캄캄한 가운데 있었고, 다만 자기 길을 아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붙들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모습입니다.

11절과 12절에서 욥은 자기가 걸어온 길을 밝힙니다. 그분의 걸음을 바로 따랐고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않았으며, 정한 음식보다 그분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다는 고백입니다. 끼니를 챙기는 일보다 말씀을 챙기는 일을 앞세웠다는 뜻입니다.

이 고백이 우리를 찌릅니다. 밥은 하루도 빠뜨리지 않으면서 말씀은 며칠씩 건너뛰는 일이 얼마나 흔한지요. 욥의 이 한마디가 고난을 견디는 힘의 출처를 알려 줍니다.

뜻이 일정하신 하나님 앞에서

13절과 14절에서 욥은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합니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하나님은 변덕을 부리는 분이 아니시고, 작정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라는 선언입니다.

15절부터 17절은 그 고백의 다른 면을 보여 줍니다. 욥은 그 앞에서 떨며 지각을 얻어 그를 두려워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마음을 약하게 하셨다고도 아룁니다. 주권을 인정하는 일이 곧 마음이 편해지는 일은 아니라는 솔직함입니다.

17절은 번역이 쉽지 않은 구절입니다. 두려움의 원인이 어둠이나 흑암이 아니라는 뜻으로 읽히는데, 이는 욥이 두려워한 대상이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었음을 가리킵니다. 그가 끝까지 상대한 분은 재난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세 장을 어떻게 한 줄로 묶어야 할까요? 이렇게 묶을 수 있겠습니다. 친구들은 공식을 들고 왔고, 욥은 공식 대신 하나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한 사람은 답을 가졌고 한 사람은 질문을 가졌는데, 하나님은 42장에서 질문을 가진 사람의 손을 들어 주셨습니다. 이 결말을 미리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정답을 외운 입술보다 자기를 찾는 발걸음을 기뻐하십니다.

묵상과 적용

오늘 본문이 우리 손에 쥐어 주는 첫 번째 선물은 21장의 솔직함입니다. 욥은 악인이 잘 사는 현실을 보고도 눈을 감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모순을 하나님 앞으로 들고 갔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위험한 태도가 무엇일까요? 보이는 모순을 보지 못한 척하는 태도입니다. 성경은 그런 억지 평온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앞서가는 동료가 승진하고,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사업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볼 때 마음이 흔들린다면, 그 흔들림을 숨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편 73편의 아삽처럼 그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하나님의 성소로 들어가는 것이 믿음의 길입니다.

둘째로, 결과에서 원인을 거꾸로 계산하는 습관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세 친구의 잘못은 바로 그 계산이었습니다. 우리도 비슷한 일을 자주 합니다.

사업이 어려워진 성도를 보면 십일조를 떠올리고, 병든 사람을 보면 숨은 죄를 추측하는 마음이 그것입니다. 그 추측은 위로가 아니라 두 번째 재앙이 됩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 제자들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물었을 때 주님이 어떻게 대답하셨는지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엘리바스의 실수를 교회 안에서 되풀이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그의 말은 내용만 보면 대부분 옳았습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의 자리를 잘못 읽은 옳은 말은 흉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실천을 하나 제안드립니다. 고난 중인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기 전에 먼저 두 가지를 물어보십시오. 이 사람이 지금 무엇을 가장 아파하는지, 그리고 내가 이 말을 하려는 동기가 사랑인지 아니면 내 신학을 입증하려는 욕구인지입니다.

넷째로, 23장 10절을 자기 고백으로 받아야 하겠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라고 말했습니다. 이 고백의 중심은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고백은 구원의 큰 흐름과 맞닿아 있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되고, 칭의의 순간에 성화가 함께 시작되어 평생 이어집니다. 다시 말해 고난은 하나님이 그 성화를 이루어 가시는 손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니 불을 두려워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불이 태우는 것은 금이 아니라 찌꺼기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녹여 없애려 하시지 않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거울처럼 비칠 때까지 우리 안의 불순물을 걷어 내시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23장 12절을 이번 주의 과제로 삼아 보시면 좋겠습니다. 욥은 정한 음식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겼습니다. 이 말씀을 하루 일정표에 그대로 옮겨 보십시오.

방법은 단순합니다. 아침 식사 전에 성경 한 장을 읽기로 정하고, 휴대전화를 식탁에서 멀리 치워 두시는 것입니다. 말씀이 밥보다 먼저 들어오는 순서가 한 달만 지속되어도 마음의 체질이 달라집니다.

여섯째로, 재물에 대한 22장 24절의 권면을 그냥 흘리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오빌의 금을 계곡의 돌처럼 여기라는 말은 재물을 미워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무엇을 보화라 부르는지를 다시 정하라는 요청입니다.

가정에서 이 점검을 함께 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집의 지출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이 무엇인지, 그 항목이 우리가 고백하는 보화와 일치하는지 이야기해 보십시오. 그리고 이번 달에 한 사람의 필요를 조용히 채우는 일을 하나 정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일곱째로, 심판의 시점이 우리 손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욥은 악인이 진노의 날을 향해 끌려간다고 말했습니다(욥 21:30). 심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그날이 오지 않았을 뿐입니다.

성경은 그날의 순서를 분명히 알려 줍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고, 천 년 동안 이 땅을 의로 다스리시며(계 20:4~6), 마지막에 모든 사람이 행위대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계 20:11~15). 그러므로 오늘 억울한 일 앞에서 내 손으로 저울을 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당부드립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계절을 지나는 분이 계시다면, 사방을 더듬어도 손에 닿지 않던 욥의 그 자리를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어둠 속에서 그는 자기 길을 아시는 분을 붙들었습니다.

그 붙듦이 곧 믿음입니다. 느낌이 사라진 자리에서도 사실을 붙드는 일, 그것이 우리를 순금처럼 통과하게 만듭니다. 오늘 하루 그 사실 하나만 붙들고 걸어가 봅시다.

예화

벽돌 하나와 작은 책: 새뮤얼 로건 브렝글

구세군 사관 새뮤얼 로건 브렝글은 1860년 6월 1일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보스턴 신학교에서 공부하며 성결의 가르침을 만났고, 좋은 설교자로 앞길이 열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영국으로 건너가 윌리엄 부스를 만나고 구세군 사관의 길을 택합니다.

성경을 읽고 있는 새뮤얼 로건 브렝글, Evabooth 업로드, CC0
성경을 읽고 있는 새뮤얼 로건 브렝글, Evabooth 업로드, CC0

구세군에 들어간 그에게 맡겨진 첫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사관들의 구두를 닦는 일이었습니다. 신학교를 마친 설교자에게 그 일은 자존심을 긁는 자리였을 것입니다.

그 후 그는 보스턴의 어려운 지역에 있는 부대로 파견됩니다. 1880년대 말의 어느 날, 그는 길거리에서 노천 집회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앞서 집회를 어지럽혀 내보냈던 한 남자가 술에 취한 채 서 있습니다.

그 남자가 벽돌을 집어 들어 브렝글의 머리를 향해 던졌습니다. 벽돌은 정확히 머리에 맞았고, 브렝글은 그대로 쓰러집니다. 상처가 깊어 열여덟 달 동안 설교를 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을 한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좋은 길을 포기하고 들어온 사역이었고,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았는데 길거리에서 벽돌에 맞아 모든 일정이 멈춰 버린 것입니다. 그의 마음에 어떤 질문이 떠올랐을지 짐작이 됩니다.

회복을 기다리는 그 긴 시간에 브렝글은 펜을 들었습니다. 그는 구세군 기관지 『전쟁의 함성』(The War Cry)에 성결에 관한 짧은 글들을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글들이 모여 한 권의 작은 책이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성결의 도움』입니다.

이 책은 그 뒤로 세계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수많은 사람을 성결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브렝글은 훗날 이 일을 돌아보며 담담하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벽돌이 없었다면 그 작은 책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여기서 욥기 23장 10절이 다시 들립니다. 하나님은 벽돌을 막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벽돌을 열여덟 달의 집필실로 바꾸셨습니다. 설교단에서 나왔을 말이 벽돌에 막혔을 때, 하나님은 그 말을 활자로 바꾸어 백 년을 가게 하신 것입니다.

스무 해의 병상에서도 멈추지 않은 펜: 에이미 카마이클

인도 선교사 에이미 카마이클은 1867년 12월 16일 북아일랜드 밀일에서 태어났습니다. 1895년 인도에 도착한 그는 남부 도흐나부르에 자리를 잡고, 1901년 도흐나부르 펠로우십을 세웁니다.

도흐나부르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는 에이미 카마이클, 1920년 무렵, CC BY-SA 4.0
도흐나부르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는 에이미 카마이클, 1920년 무렵, CC BY-SA 4.0

그가 한 일은 당시 인도에서 가장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힌두 사원에 바쳐져 성적으로 착취당하던 여자아이들을 데려와 길러 내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수백 명의 아이들이 그를 암마, 곧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던 1931년 10월 24일, 예순네 살을 앞둔 그에게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어스름한 저녁에 공사 중인 건물을 살피러 들어갔다가, 엉뚱한 자리에 파 놓은 구덩이에 발을 넣고 쓰러진 것입니다. 다리가 부러지고 발목이 빠지고 척추가 뒤틀렸습니다.

그 사고가 그의 사역을 끝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남은 스무 해를 거의 침상에서 보냈고, 바로 그 방에서 여러 권의 책과 수많은 편지를 써 냈습니다. 그가 평생 남긴 책은 서른다섯 권에 이릅니다.

특별히 1933년에 펴낸 『가시에서 핀 장미』는 병상에 누운 사람들을 위해 쓴 책입니다. 아픈 사람에게 아픈 사람이 건네는 글이라는 점에서 이 책의 무게가 남다릅니다. 건강한 사람의 위로와는 결이 다른 문장들이 거기 담겨 있습니다.

그가 세운 도흐나부르의 사역은 그 침상의 세월 동안 오히려 넓어졌습니다. 그는 1951년 1월 18일 그 땅에서 세상을 떠났고, 자기 무덤에 비석을 세우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대신 아이들은 그가 묻힌 자리에 새들의 물그릇을 놓고 암마라고만 적었다고 전해집니다.

북아일랜드 뱅고어 해밀턴가에 세워진 소녀 시절 에이미 카마이클의 청동 조상, Johannes Schade 촬영, CC BY-SA 4.0
북아일랜드 뱅고어 해밀턴가에 세워진 소녀 시절 에이미 카마이클의 청동 조상, Johannes Schade 촬영, CC BY-SA 4.0

두 이야기에서 같은 무늬가 보이지 않나요? 한 사람은 벽돌에 맞아 강단을 잃었고, 한 사람은 구덩이에 빠져 걸음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멈춤의 자리에서 두 사람 모두를 글로 말하게 하셨습니다.

욥도 자기 말이 책에 기록되기를 바랐던 사람입니다(욥 19:23). 하나님은 고난의 자리를 허락하시고, 그 자리에서 나온 말을 오래 남기십니다. 그러니 지금 멈춰 서 있는 자리가 곧 끝은 아닌 셈입니다.

기도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악인이 형통한 듯 보이는 세상에서 발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지켜 주시기를 구하며,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내 길을 아시는 분을 붙들게 하여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아울러 정한 음식보다 주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는 하루의 순서를 세우기를 기도합니다.

가정을 위해서는, 무엇을 보화라 부르며 살아가는 집인지 함께 돌아보고 재물보다 주님을 앞세우는 가정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는, 고난당하는 성도에게 옳은 말로 상처를 입히지 않고 사랑으로 다가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구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담보로 겉옷마저 빼앗기고 울고 있는 이웃들이 정의와 긍휼을 경험하고, 열방에서 보이지 않는 어둠을 지나며 사역하는 선교사들이 순금처럼 단련되어 나오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를 단련하시는 하나님, 오늘 말씀 앞에 나아왔습니다. 주님은 뜻이 일정하신 분이시며 작정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심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길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시는 그 눈길에 감사드립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세상의 저울을 보며 흔들렸던 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악하게 사는 사람이 편히 웃는 모습을 보고 주님의 공의를 의심했던 날들을 고백합니다. 심판의 때와 방식을 우리 손에 쥐려 했던 교만을 씻어 주옵소서.

엘리바스의 입술을 닮았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옳은 말을 들고 가서 사람을 찌른 일, 상대가 하지 않은 말을 상대의 입에 넣고 몰아세운 일, 남의 불행으로 제 신학을 세우려 한 일을 용서하여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우리의 말이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여 주옵소서.

보이지 않는 계절을 지나는 성도들을 붙들어 주옵소서. 앞으로 가도 뒤로 가도 주님이 보이지 않는다며 울고 있는 이들에게, 그 어둠이 주님의 손바닥 위라는 사실을 알려 주옵소서. 응답이 더딘 기도의 자리에서도 끝까지 기다리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을 주옵소서. 주님의 불이 태우는 것은 저희 자신이 아니라 저희 안의 찌꺼기뿐임을 믿습니다. 은혜로 시작하신 구원을 성화로 이어 가시는 주님의 손길에 저희를 온전히 맡겨 드립니다.

다시 오실 주님, 그날에 모든 저울이 바로 세워질 것을 믿습니다. 그날까지 우리 손으로 심판하지 않고 맡기며, 받은 것으로 약한 이웃의 필요를 채우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벽돌에 맞아 멈춰 선 자리에서도, 구덩이에 빠져 일어나지 못하는 자리에서도 주님의 일이 이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말씀을 우리를 순금처럼 다듬어 가시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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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런스

  1.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대한성서공회, 1998. 본문 출처: https://www.bskorea.or.kr
  2. John E. Hartley, The Book of Job,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88. (욥 21~23장 주해)
  3. 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Vol. 3 (Job to Song of Solomon), 1708–1710;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판 참조. (욥 22:21~30 주해)
  4. John MacArthur, ed., The MacArthur Study Bible, Nashville: Word Publishing, 1997. (욥 21~23장 주)
  5. Henry M. Morris, The Remarkable Record of Job: The Ancient Wisdom, Scientific Accuracy, and Life-Changing Message of an Amazing Book,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8.
  6. C. I. Scofield, ed., The Scofield Reference Bibl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09. (욥기 서론 및 주)
  7. John Wesley, “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 (Sermon 43, 1765), in The Works of John Wesley, Vol. 2, ed. Albert C. Outler, Nashville: Abingdon Press, 1985.
  8. John Wesley, Explanatory Notes upon the Old Testament, Bristol: William Pine, 1765. (욥기 주해)
  9. Benjamin Mazar, “The Excavations at Tell Qasîle: Preliminary Report,” Israel Exploration Journal 1 (1950–51): 61–76. (오빌의 금 오스트라콘 보고)
  10. Clarence W. Hall, Samuel Logan Brengle: Portrait of a Prophet, New York: The Salvation Army, 1933.
  11. Samuel Logan Brengle, Helps to Holiness, London: Salvation Army Book Department, 1896.
  12. Frank Houghton, Amy Carmichael of Dohnavur: The Story of a Lover and Her Beloved, London: SPCK, 1953.
  13. Amy Carmichael, Rose from Brier, London: SPCK, 1933.
  14. 이미지 출처(모두 위키미디어 공용에서 크기를 줄여 주소로 임베딩함): 아크 용광로의 금 제련 사진 2장, Dan Brown, CC BY 2.0 / 우르 왕실 묘지 수금 사진, Binxedits, 펜실베이니아 대학 박물관, CC BY-SA 4.0 / 할훌 타작마당 사진, 매트슨 컬렉션, 미국 의회도서관, 퍼블릭 도메인 / 에돔 산지 사진, Felagund, CC BY-SA 3.0 / 페트라와 아라바 평원 사진, 매트슨 컬렉션, 미국 의회도서관, 퍼블릭 도메인 / 밤하늘 사진, Mathias Krumbholz, CC BY-SA 3.0 / 금 덩이 사진, 미국 정부, 퍼블릭 도메인 / 네게브 와디 사진, HonzaGreen, CC BY-SA 4.0 / 브렝글 사진, Evabooth 업로드, CC0 / 도흐나부르의 에이미 카마이클 사진, CC BY-SA 4.0 / 뱅고어의 에이미 카마이클 조상 사진, Johannes Schade, CC BY-SA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