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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차 (욥기 17장 ~ 욥기 20장)

모압 왕 메사의 석비(기원전 850년경, 요르단 디반 출토), 루브르 박물관 소장, Tangopaso 촬영, 퍼블릭 도메인

모압 왕 메사의 석비(기원전 850년경, 요르단 디반 출토), 루브르 박물관 소장, Tangopaso 촬영, 퍼블릭 도메인

8일차 (욥기 17장 ~ 욥기 20장)

본문

욥기 17장

  1. 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며 나의 날이 다하였고 무덤이 나를 위하여 준비되었구나
  2. 나를 조롱하는 자들이 나와 함께 있으므로 내 눈이 그들의 충동함을 항상 보는구나
  3. 청하건대 나에게 담보물을 주소서 나의 손을 잡아 줄 자가 누구리이까
  4.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가리어 깨닫지 못하게 하셨사오니 그들을 높이지 마소서
  5. 보상을 얻으려고 친구를 비난하는 자는 그의 자손들의 눈이 멀게 되리라
  6. 하나님이 나를 백성의 속담거리가 되게 하시니 그들이 내 얼굴에 침을 뱉는구나
  7. 내 눈은 근심 때문에 어두워지고 나의 온 지체는 그림자 같구나
  8. 정직한 자는 이로 말미암아 놀라고 죄 없는 자는 경건하지 못한 자 때문에 분을 내나니
  9. 그러므로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
  10. 너희는 모두 다시 올지니라 내가 너희 중에서 지혜자를 찾을 수 없느니라
  11. 나의 날이 지나갔고 내 계획, 내 마음의 소원이 다 끊어졌구나
  12. 그들은 밤으로 낮을 삼고 빛 앞에서 어둠이 가깝다 하는구나
  13. 내가 스올이 내 집이 되기를 희망하여 내 침상을 흑암에 펴놓으매
  14. 무덤에게 너는 내 아버지라, 구더기에게 너는 내 어머니, 내 자매라 할지라도
  15. 나의 희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희망을 누가 보겠느냐
  16. 우리가 흙 속에서 쉴 때에는 희망이 스올의 문으로 내려갈 뿐이니라

욥기 18장

  1.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너희가 어느 때에 가서 말의 끝을 맺겠느냐 깨달으라 그 후에야 우리가 말하리라
  3. 어찌하여 우리를 짐승으로 여기며 부정하게 보느냐
  4. 울분을 터뜨리며 자기 자신을 찢는 사람아 너 때문에 땅이 버림을 받겠느냐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겨지겠느냐
  5.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의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6. 그의 장막 안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 위의 등불은 꺼질 것이요
  7. 그의 활기찬 걸음이 피곤하여지고 그가 마련한 꾀에 스스로 빠질 것이니
  8. 이는 그의 발이 그물에 빠지고 올가미에 걸려들며
  9. 그의 발 뒤꿈치는 덫에 치이고 그의 몸은 올무에 얽힐 것이며
  10. 그를 잡을 덫이 땅에 숨겨져 있고 그를 빠뜨릴 함정이 길목에 있으며
  11.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라게 하고 그 뒤를 쫓아갈 것이며
  12. 그의 힘은 기근으로 말미암아 쇠하고 그 곁에는 재앙이 기다릴 것이며
  13. 질병이 그의 피부를 삼키리니 곧 사망의 장자가 그의 지체를 먹을 것이며
  14. 그가 의지하던 것들이 장막에서 뽑히며 그는 공포의 왕에게로 잡혀가고
  15. 그에게 속하지 않은 자가 그의 장막에 거하리니 유황이 그의 처소에 뿌려질 것이며
  16. 밑으로 그의 뿌리가 마르고 위로는 그의 가지가 시들 것이며
  17. 그를 기념함이 땅에서 사라지고 거리에서는 그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을 것이며
  18. 그는 광명으로부터 흑암으로 쫓겨 들어가며 세상에서 쫓겨날 것이며
  19. 그는 그의 백성 가운데 후손도 없고 후예도 없을 것이며 그가 거하던 곳에는 남은 자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
  20. 그의 운명에 서쪽에서 오는 자와 동쪽에서 오는 자가 깜짝 놀라리라
  21. 참으로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이러하니라

욥기 19장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너희가 내 마음을 괴롭히며 말로 나를 짓부수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3. 너희가 열 번이나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 아니하는구나
  4. 비록 내게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그 허물이 내게만 있느냐
  5. 너희가 참으로 나를 향하여 자만하며 내게 수치스러운 행위가 있다고 증언하려면 하려니와
  6. 하나님이 나를 억울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을 알아야 할지니라
  7. 내가 폭행을 당한다고 부르짖으나 응답이 없고 도움을 간구하였으나 정의가 없구나
  8. 그가 내 길을 막아 지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내 앞길에 어둠을 두셨으며
  9. 나의 영광을 거두어가시며 나의 관모를 머리에서 벗기시고
  10. 사면으로 나를 헐으시니 나는 죽었구나 내 희망을 나무 뽑듯 뽑으시고
  11. 나를 향하여 진노하시고 원수 같이 보시는구나
  12. 그 군대가 일제히 나아와서 길을 돋우고 나를 치며 내 장막을 둘러 진을 쳤구나
  13. 나의 형제들이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낯선 사람이 되었구나
  14. 내 친척은 나를 버렸으며 가까운 친지들은 나를 잊었구나
  15. 내 집에 머물러 사는 자와 내 여종들은 나를 낯선 사람으로 여기니 내가 그들 앞에서 타국 사람이 되었구나
  16. 내가 내 종을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니 내 입으로 그에게 간청하여야 하겠구나
  17. 내 아내도 내 숨결을 싫어하며 내 허리의 자식들도 나를 가련하게 여기는구나
  18. 어린 아이들까지도 나를 업신여기고 내가 일어나면 나를 조롱하는구나
  19. 나의 가까운 친구들이 나를 미워하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돌이켜 나의 원수가 되었구나
  20.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몸 뿐이로구나
  21.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22.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나를 박해하느냐 내 살로도 부족하냐
  23.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24.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
  28. 너희가 만일 이르기를 우리가 그를 어떻게 칠까 하며 또 이르기를 일의 뿌리가 그에게 있다 할진대
  29. 너희는 칼을 두려워 할지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장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

욥기 20장

  1. 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이르되
  2. 그러므로 내 초조한 마음이 나로 하여금 대답하게 하나니 이는 내 중심이 조급함이니라
  3. 내가 나를 부끄럽게 하는 책망을 들었으므로 나의 슬기로운 마음이 나로 하여금 대답하게 하는구나
  4. 네가 알지 못하느냐 예로부터 사람이 이 세상에 생긴 때로부터
  5. 악인이 이긴다는 자랑도 잠시요 경건하지 못한 자의 즐거움도 잠깐이니라
  6. 그 존귀함이 하늘에 닿고 그 머리가 구름에 미칠지라도
  7. 자기의 똥처럼 영원히 망할 것이라 그를 본 자가 이르기를 그가 어디 있느냐 하리라
  8. 그는 꿈 같이 지나가니 다시 찾을 수 없을 것이요 밤에 보이는 환상처럼 사라지리라
  9. 그를 본 눈이 다시 그를 보지 못할 것이요 그의 처소도 다시 그를 보지 못할 것이며
  10. 그의 아들들은 가난한 자에게 은혜를 구하겠고 그도 얻은 재물을 자기 손으로 도로 줄 것이며
  11. 그의 기골이 청년 같이 강장하나 그 기세가 그와 함께 흙에 누우리라
  12. 그는 비록 악을 달게 여겨 혀 밑에 감추며
  13. 아껴서 버리지 아니하고 입천장에 물고 있을지라도
  14. 그의 음식이 창자 속에서 변하며 뱃속에서 독사의 쓸개가 되느니라
  15. 그가 재물을 삼켰을지라도 토할 것은 하나님이 그의 배에서 도로 나오게 하심이니
  16. 그는 독사의 독을 빨며 뱀의 혀에 죽을 것이라
  17. 그는 강 곧 꿀과 엉긴 젖이 흐르는 강을 보지 못할 것이요
  18. 수고하여 얻은 것을 삼키지 못하고 돌려 주며 매매하여 얻은 재물로 즐거움을 삼지 못하리니
  19. 이는 그가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버렸음이요 자기가 세우지 않은 집을 빼앗음이니라
  20. 그는 마음에 평안을 알지 못하니 그가 기뻐하는 것을 하나도 보존하지 못하겠고
  21. 남기는 것이 없이 모두 먹으니 그런즉 그 행복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
  22. 풍족할 때에도 괴로움이 이르리니 모든 재난을 주는 자의 손이 그에게 임하리라
  23. 그가 배를 불리려 할 때에 하나님이 맹렬한 진노를 내리시리니 음식을 먹을 때에 그의 위에 비 같이 쏟으시리라
  24. 그가 철 병기를 피할 때에는 놋화살을 쏘아 꿰뚫을 것이요
  25. 몸에서 그의 화살을 빼낸즉 번쩍번쩍하는 촉이 그의 쓸개에서 나오고 큰 두려움이 그에게 닥치느니라
  26. 큰 어둠이 그를 위하여 예비되어 있고 사람이 피우지 않은 불이 그를 멸하며 그 장막에 남은 것을 해치리라
  27. 하늘이 그의 죄악을 드러낼 것이요 땅이 그를 대항하여 일어날 것인즉
  28. 그의 가산이 떠나가며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끌려가리라
  29. 이는 악인이 하나님께 받을 분깃이요 하나님이 그에게 정하신 기업이니라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본문 해설

가장 어두운 밤에 터져 나온 고백: 욥기 17~20장

오늘은 연대기 일독의 여덟째 날입니다. 어제 우리는 욥이 꽃처럼 지는 인생을 노래하다가 마침내 하늘에 계신 증인을 부르는 장면까지 보았습니다. 오늘 읽는 네 장에는 욥기 전체에서 가장 어두운 밤과 가장 환한 고백이 나란히 들어 있습니다. 모두에게 버림받은 사람이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라고 외치는 그 자리까지 함께 걸어가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흐름은 이렇습니다. 17장은 어제 읽은 16장에서 이어지는 욥의 탄식 마지막 부분이고, 18장은 빌닷의 두 번째 발언이며, 19장은 욥의 응답, 20장은 소발의 두 번째 발언입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로 변론의 두 번째 순환이 거의 마무리되는 셈입니다.

예루살렘 실완 지역의 바위를 깎아 만든 단일 암체 무덤, 퍼블릭 도메인
예루살렘 실완 지역의 바위를 깎아 만든 단일 암체 무덤, 퍼블릭 도메인

두 번째 순환에서 친구들의 말이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더 길어지고 더 무서워졌습니다. 빌닷과 소발은 이제 회개하면 회복된다는 권면조차 거의 생략하고, 악인의 종말을 끝까지 묘사하는 데 발언 전체를 쏟아붓습니다.

그에 비해 욥의 말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자라납니다. 16장에서 하늘의 증인을 고백한 그는, 오늘 19장에서 살아 계신 대속자와 자기 눈으로 하나님을 뵙는 날까지 바라보게 됩니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믿음의 빛도 함께 밝아지는 모습입니다.

고대의 기록 문화와 기업 무를 자 제도

오늘 본문을 제대로 맛보려면 두 가지 배경을 미리 알아 두어야 하겠습니다. 첫째는 고대 근동의 기록 문화이고, 둘째는 친족이 가족을 되찾아 주는 제도입니다.

먼저 기록 문화를 살펴보겠습니다. 욥은 19장 23~24절에서 자기 말이 책에 씌어지고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당시 사람들은 파피루스나 가죽에 글을 썼는데, 그런 재료는 세월이 지나면 삭아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남기고 싶은 말은 돌에 새겼습니다. 글 맨 위의 메사 석비는 기원전 9세기 중엽에 모압 왕 메사가 자기 업적을 새긴 비석인데, 요르단 디반에서 발견되어 지금은 루브르 박물관에 있습니다. 이렇게 삼천 년 가까이 글자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욥의 소원이 얼마나 간절한 것이었는지 짐작이 됩니다.

예루살렘 실로암 수로에서 발견된 히브리어 비문, 퍼블릭 도메인
예루살렘 실로암 수로에서 발견된 히브리어 비문, 퍼블릭 도메인

“철필과 납으로"라는 표현은 두 가지로 이해됩니다. 돌에 쇠 끌로 글자를 파고 그 홈에 납을 녹여 채워 글자를 또렷하게 만드는 방법을 가리킨다는 설명이 있고, 납판 위에 철필로 새겼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핵심은 같습니다. 지워지지 않게 남기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납판에 글을 새긴 고대 서판, 대영박물관 소장, Marie-Lan Nguyen 촬영, 퍼블릭 도메인
납판에 글을 새긴 고대 서판, 대영박물관 소장, Marie-Lan Nguyen 촬영, 퍼블릭 도메인

둘째 배경은 “대속자"라는 낱말입니다. 히브리어 고엘은 본래 집안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가장 가까운 친족이 나서서 되찾아 주는 사람을 가리켰습니다. 레위기 25장은 가난 때문에 팔린 땅과 사람을 친족이 값을 치르고 되찾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베들레헴 근처에서 곡식을 바람에 날려 고르는 모습, 룻과 보아스 이야기를 재현한 장면, 매트슨 사진 컬렉션,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 퍼블릭 도메인
베들레헴 근처에서 곡식을 바람에 날려 고르는 모습, 룻과 보아스 이야기를 재현한 장면, 매트슨 사진 컬렉션,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 퍼블릭 도메인

이 제도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 주는 이야기가 룻기입니다. 보아스는 베들레헴 성문에서 장로들 앞에 서서 나오미의 밭과 룻을 기업으로 받겠다고 선언했습니다(룻 4:9~10). 욥이 고엘이라는 낱말을 꺼낼 때, 그의 머릿속에는 바로 이런 장면이 있었던 것입니다.

욥기 17장: 담보물을 구하는 사람

17장은 숨이 꺼져 가는 사람의 목소리로 시작합니다. “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며 나의 날이 다하였고 무덤이 나를 위하여 준비되었구나”(17:1). 자기 무덤이 이미 파여 있다고 느끼는 상태입니다.

3절의 요청이 특별히 중요합니다. “청하건대 나에게 담보물을 주소서 나의 손을 잡아 줄 자가 누구리이까.” 여기서 “담보물"은 법정에서 보증을 세우는 일을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재판에 나갈 사람의 보증인이 되어 달라는 요청입니다.

그렇다면 욥은 누구에게 이 보증을 구했을까요?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하나님을 상대로 재판을 벌이려는 사람이 하나님께 보증을 세워 달라고 청하는 역설이 여기 있습니다. 욥은 자기를 치시는 분 외에는 자기를 도울 분이 없음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4절에서 욥은 친구들의 마음이 가려져 깨닫지 못하게 되었다고 아뢰며 그들을 높이지 말아 달라고 구합니다. 5절에서는 더 서늘한 말을 덧붙입니다. 보상을 얻으려고 친구를 비난하는 자는 그 자손의 눈이 멀게 된다는 경고입니다.

이 경고가 겨누는 자리는 어디일까요? 남의 불행을 두고 자기 입장을 세우려는 마음입니다. 친구의 고난을 설명해 내면 자기 신학이 옳다는 증거가 되기에, 세 친구는 욥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그들의 열심은 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위한 것이었던 셈입니다.

9절은 어두운 장 가운데 반짝이는 한 줄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 세 친구는 고난이 의인을 쓰러뜨린다고 했지만, 욥은 의인이 그 길을 꾸준히 간다고 선언합니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더욱 묵직한 선언입니다.

조롱거리가 된 의인

6~7절에서 욥은 자기가 당하는 모욕을 그대로 전합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백성의 속담거리가 되게 하셨고, 사람들이 얼굴에 침을 뱉으며, 눈은 근심 때문에 어두워졌다고 호소합니다. 속담거리란 동네에서 불행의 대명사로 불리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한 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사야 50장 6절은 메시아에 대해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예언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67절에서 그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욥의 고난은 무엇을 미리 보여 준 것일까요? 죄 없는 사람이 고난을 당하는 자리를 보여 주었습니다. 욥은 그 자리의 그림자였고, 그리스도는 그 자리의 실체이십니다. 그래서 욥기를 읽는 신자는 자기 고난을 주님의 고난에 잇대어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10~12절에서 욥은 친구들을 향해 다시 입을 엽니다. “너희는 모두 다시 올지니라 내가 너희 중에서 지혜자를 찾을 수 없느니라.” 다시 와서 말해 보아도 지혜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12절에서는 그들이 밤을 낮이라 하고 빛 앞에서 어둠이 가깝다고 한다며, 사실을 거꾸로 말한다고 지적합니다.

스올이 내 집이 되기를

13~16절은 욥기에서 가장 캄캄한 대목입니다. 욥은 스올이 자기 집이 되기를 바라며 흑암에 침상을 펴 놓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무덤을 아버지라 부르고 구더기를 어머니와 자매라 부르겠다고까지 말합니다.

이 표현이 지나치게 끔찍하게 느껴지시나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욥은 지금 가족 모두를 잃은 사람입니다. 자녀 열 명이 한날에 죽었고 아내마저 등을 돌린 사람에게 남은 가족은 무덤과 구더기뿐이라는 절규인 셈입니다.

15절에서 그는 다시 묻습니다. “나의 희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희망을 누가 보겠느냐.” 14장 7절에서 나무는 희망이 있다고 했던 사람이, 이제 자기 희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로 두 장 뒤에서 그 희망의 이름을 부르게 될 것입니다.

이 대조를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절망을 숨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절망을 끝까지 적어 두고 그 다음에 소망을 적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소망은 현실을 모르는 사람의 낙관이 아니라 바닥을 본 사람의 확신이 되는 것입니다.

욥기 18장: 빌닷이 그리는 악인의 그물

18장의 화자는 다시 빌닷입니다. 그는 욥의 말이 자기들을 짐승처럼 여기는 것이라며 발끈하고(18:3), 울분을 터뜨리며 자기 자신을 찢는 사람이라고 욥을 부릅니다. 그러고 나서 5절부터 끝까지 악인의 종말을 쉬지 않고 묘사하기 시작했습니다.

5~6절에서 그는 빛과 등불로 말을 시작합니다. 악인의 빛은 꺼지고 장막 안의 등불도 꺼진다는 것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집 안의 등불은 그 집이 살아 있다는 표시였습니다. 밤새 등불을 켜 두는 집은 번영하는 집이었고, 등불이 꺼진 집은 끝난 집이었습니다.

7~10절에서는 사냥 도구가 줄줄이 등장합니다. 그물, 올가미, 덫, 올무, 함정이 차례로 나옵니다. 짧은 네 절 안에 덫을 가리키는 낱말이 여섯 개나 쓰인 셈입니다. 빌닷은 악인이 어디로 발을 옮겨도 걸리게 되어 있다는 점을 그렇게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에 담긴 숨은 뜻이 무엇일까요? 욥이 19장 6절에서 하나님이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셨다고 받아치는 데서 알 수 있습니다. 빌닷의 그물 이야기는 결국 욥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욥은 그 비유를 그대로 돌려주며 자기 억울함을 호소한 것입니다.

사망의 장자와 공포의 왕

11~14절에는 유난히 무서운 표현이 나옵니다.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라게 하고, 질병이 그의 피부를 삼키며 사망의 장자가 그의 지체를 먹고, 마침내 공포의 왕에게로 잡혀간다는 것입니다.

“사망의 장자"는 가장 치명적인 질병을 가리키는 시적 표현으로 이해됩니다. 장자가 집안에서 가장 큰 몫을 받듯, 사망이 낳은 여러 재앙 가운데 가장 강한 것을 그렇게 부른 셈입니다. “공포의 왕"은 죽음 그 자체를 왕처럼 그려 낸 표현으로 읽힙니다.

여기서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이런 표현은 이웃 나라의 신화를 사실로 인정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당시 사람들이 두려워하던 죽음의 힘을 시의 언어로 의인화한 것일 뿐입니다. 성경은 오히려 그 사망의 권세를 누가 꺾으셨는지를 분명히 알려 줍니다.

히브리서 2장 14~15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를 멸하시고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종이 된 모든 자들을 놓아 주셨다는 선포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5절은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고 외칩니다. 공포의 왕이라 불리던 자는 이미 폐위된 왕인 것입니다.

사해 남서쪽 소금산(하르 소돔)의 소금 동굴, Hoshvilim 촬영, CC BY-SA 4.0
사해 남서쪽 소금산(하르 소돔)의 소금 동굴, Hoshvilim 촬영, CC BY-SA 4.0

15절의 “유황이 그의 처소에 뿌려질 것이며"라는 말도 설명이 필요합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정복한 성읍 터에 소금이나 유황을 뿌려 다시는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게 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19장 24절에서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이 내린 사건도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빌닷의 발언은 21절에서 못을 박습니다. “참으로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이러하니라.” 이름을 부르지 않았으나 손가락은 욥의 집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한날에 자녀를 모두 잃고 집이 무너진 사람 앞에서 할 말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욥기 19장: 열 번이나 학대하는 말

19장에서 욥이 응답합니다. “너희가 열 번이나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 아니하는구나”(19:3). 여기서 “열 번"은 정확한 횟수가 아니라 여러 번 거듭했다는 뜻의 표현입니다. 말로 사람을 짓부수는 일이 얼마나 반복되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2절의 “말로 나를 짓부수기를"이라는 표현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히브리어로는 가루가 되도록 빻는다는 뜻을 가진 말이 쓰였습니다. 몸을 때리지 않아도 말로 사람을 가루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욥은 몸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말의 힘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가르칠까요? 야고보서 3장 6절은 혀를 불이라 부르고, 잠언 18장 21절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라고 선언합니다. 우리가 교회와 가정에서 나누는 말 한마디가 사람을 세우기도 하고 가루로 만들기도 하는 법입니다.

6~12절에서 욥은 다시 하나님께 시선을 돌립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그물로 에워싸셨고, 길을 막아 어둠을 두셨고, 영광과 관모를 벗기셨으며, 군대를 보내 자기 장막을 포위하셨다고 말합니다. 성을 공격하는 군대의 비유를 자기 한 몸에 적용한 것입니다.

모두가 떠난 자리

13~19절은 성경에서 가장 외로운 목록입니다. 형제들이 떠났고, 아는 사람들이 낯선 사람이 되었고, 친척이 버렸고, 친지들이 잊었습니다. 집에 머무는 종들조차 그를 낯선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16~19절로 가면 더 아픕니다. 종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아 종에게 간청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아내는 숨결을 싫어하며, 자식들은 그를 가련하게 여기고, 어린 아이들까지 업신여기며 조롱한다고 합니다. 사랑했던 사람들이 돌이켜 원수가 되었다는 말로 이 목록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20절의 표현은 특별히 유명합니다.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몸 뿐이로구나.” 영어권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는 뜻으로 쓰는 관용구가 바로 이 구절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욥은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상태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21절에서 그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짧은 말을 합니다.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한 데서 그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그가 끝까지 구한 것은 설명이 아니라 긍휼이었습니다.

22절은 더 서늘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나를 박해하느냐 내 살로도 부족하냐.” 하나님의 편에 서서 말한다던 친구들이 하나님 흉내를 내며 사람을 치고 있다는 고발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해 심판하려는 모든 입술이 이 구절 앞에서 멈춰 서야 하겠습니다.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23~24절에서 욥은 자기 말이 영원히 남기를 소원합니다. 책에 씌어지고 철필과 납으로 돌에 새겨지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 소원은 그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크게 이루어졌습니다. 이 말은 돌이 아니라 성경에 새겨져 온 세상의 언어로 읽히고 있으니 말입니다.

라기스(텔 에드 두웨이르)에서 출토된 오스트라콘 제4호 서신, 웰컴 컬렉션, CC BY 4.0
라기스(텔 에드 두웨이르)에서 출토된 오스트라콘 제4호 서신, 웰컴 컬렉션, CC BY 4.0

그리고 25절에서 욥기의 정점이 터져 나옵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모두에게 버림받은 사람이 나는 안다는 말로 문장을 시작합니다. 느낌이 아니라 지식이고, 추측이 아니라 확신입니다.

“대속자"로 옮긴 고엘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친족이 되어 값을 치르고 되찾아 주는 분을 뜻합니다. 욥에게는 그를 변호할 친족이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늘에 그를 자기 식구로 여기시는 분이 계시다는 고백이 여기 터져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고엘은 누구실까요? 출애굽기 6장 6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속량하여” 내시겠다고 말씀하셨고, 이사야 44장 6절은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라고 선포합니다. 신약은 그 이름을 또렷하게 알려 줍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대속되었다고 증언합니다(벧전 1:19).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는 구절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히브리어는 마지막에 티끌 위에 서신다는 뜻으로 읽히는데, 이는 대속자가 실제로 이 땅을 밟으실 날을 가리킵니다. 스가랴 14장 4절은 그날 그분의 발이 예루살렘 앞 올리브 산에 서리라고 예언했습니다.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6~27절은 구약에서 육체의 부활을 가장 또렷하게 증언하는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이 구절의 원어를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육체 밖에서"로 옮긴 히브리어 전치사는 ~로부터라는 뜻도 가지기 때문에, 내 육체에서 하나님을 보리라로 읽는 번역도 널리 쓰입니다. 영어 성경 가운데 여럿이 그렇게 옮겼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으로 읽어야 할까요? 바로 다음 문장이 답을 줍니다. 욥은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본다는 말은 몸을 가진 상태로 뵙는다는 뜻이니, 이 고백은 분명히 육체의 부활에 대한 소망입니다.

이 소망은 성경 전체의 가르침과 하나로 이어집니다. 다니엘 12장 2절은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던 자들이 깨어난다고 알려 주고, 사도 바울은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게 될 날을 약속합니다(고전 15:53). 사도신경이 “몸이 다시 사는 것"을 고백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어 두고 싶습니다. 욥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막연한 안개처럼 그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바라본 것은 영혼이 어디론가 흩어지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시 세워 주신 몸으로 그분을 마주 뵙는 일이었습니다.

이 구분이 왜 중요할까요? 세상에는 죽음 뒤를 설명하는 이야기가 수없이 많지만, 성경만이 창조주가 지으신 몸을 다시 일으키신다고 약속하기 때문입니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분이 흙으로 돌아간 몸을 다시 일으키지 못하실 까닭이 없습니다. 창조를 믿는 믿음과 부활을 믿는 믿음은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하나의 믿음인 셈입니다.

28~29절에서 욥은 친구들에게 마지막 경고를 남깁니다. 일의 뿌리가 자기에게 있다고 몰아붙인다면 칼을 두려워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심판장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고 덧붙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42장에서 세 친구를 책망하시며 욥에게 중보 기도를 부탁하게 하셨습니다(욥 42:8).

욥기 20장: 소발이 말하는 악인의 재물

20장에서 소발이 두 번째로 말합니다. 그는 자기 마음이 초조하고 조급하다며 서둘러 입을 엽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바로 앞 19장 27절에서 욥도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라고 했다는 점입니다. 같은 초조함이 한 사람에게는 소망의 간절함으로, 다른 사람에게는 반박의 충동으로 나타난 셈입니다.

4~11절에서 소발은 악인의 번영이 잠시뿐이라고 선언합니다. 존귀함이 하늘에 닿고 머리가 구름에 미칠지라도 영원히 망하고, 꿈처럼 지나가며 밤에 보이는 환상처럼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 말 자체는 시편 37편과 73편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10절에서 소발은 악인의 아들들이 가난한 자에게 은혜를 구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자녀를 모두 잃은 아버지 앞에서 자녀의 몰락을 말한 것입니다. 빌닷이 8장 4절에서 이미 했던 말을 소발이 다시 꺼낸 셈이니, 욥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12~16절의 비유는 생생합니다. 악인이 악을 달콤한 음식처럼 혀 밑에 감추고 입천장에 물고 있다가, 결국 그것이 뱃속에서 독사의 쓸개가 된다는 것입니다. 삼킨 재물을 토해 내게 하시고, 그가 독사의 독을 빨며 뱀의 혀에 죽으리라고 말합니다.

팔레스타인 살무사(Daboia palaestinae), Zuhair Amr 촬영, CC BY 3.0
팔레스타인 살무사(Daboia palaestinae), Zuhair Amr 촬영, CC BY 3.0

위 사진의 살무사는 이스라엘과 요르단 일대에 사는 독사입니다. 성경이 쓰인 땅에서 가장 위험한 뱀으로 알려져 있어, 소발의 비유는 듣는 사람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을 것입니다. 달게 먹은 것이 독으로 바뀐다는 그림만큼 죄의 성격을 잘 보여 주는 비유도 드뭅니다.

독사의 쓸개와 하나님의 진노

17절의 표현이 뜻깊습니다. “그는 강 곧 꿀과 엉긴 젖이 흐르는 강을 보지 못할 것이요.” 꿀과 젖이 흐르는 땅은 성경이 약속의 땅을 가리킬 때 쓰는 표현입니다. 악인은 그 복의 강을 멀리서도 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18절도 함께 보아야 하겠습니다. 수고하여 얻은 것을 삼키지 못하고 돌려주며, 매매하여 얻은 재물로 즐거움을 삼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쉽게 풀어 보면 벌어도 누리지 못한다는 뜻이니, 전도서가 거듭 경고하는 헛됨과 맞닿아 있는 그림입니다.

19절은 소발의 발언 가운데 가장 구체적인 죄목을 말합니다. 악인이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버렸으며 자기가 세우지 않은 집을 빼앗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죄를 가볍게 보지 않습니다. 야고보서 5장 4절은 품꾼의 삯을 가로챈 자들을 향해 그 삯이 하늘에 호소한다고 경고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문제가 생깁니다. 욥이 그런 사람이었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욥은 31장에서 가난한 자의 소원을 거절한 적이 없고 고아의 몫을 빼앗은 적이 없다고 조목조목 밝히고, 하나님도 그를 온전한 자라 부르셨습니다. 소발은 있지도 않은 죄목으로 기소장을 쓴 셈입니다.

23~28절에서 소발은 심판의 장면을 길게 그립니다. 하나님이 맹렬한 진노를 비처럼 쏟으시고, 놋화살이 몸을 꿰뚫고, 사람이 피우지 않은 불이 그를 멸하며, 하늘이 그의 죄악을 드러내고 땅이 그를 대항하여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는 표현은 신명기 30장 19절과도 닿아 있습니다.

29절은 소발의 결론입니다. “이는 악인이 하나님께 받을 분깃이요 하나님이 그에게 정하신 기업이니라.” 분깃과 기업은 본래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복을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소발은 그 아름다운 낱말을 심판의 몫을 가리키는 데 뒤집어 쓴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요? 친구들은 악인의 기업을 말했고, 욥은 살아 계신 대속자를 말했습니다. 한쪽은 사람을 심판대에 세웠고, 다른 한쪽은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우리가 어느 편의 말을 입에 담아야 하는지는 이미 분명하지 않나요?

묵상과 적용

오늘 본문이 우리 손에 쥐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19장 25절의 고백입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이 한 문장이 터져 나온 자리를 다시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가족도 친구도 종들도 모두 등을 돌린 자리였습니다.

그러니 이 고백은 모든 것이 갖추어진 사람의 여유로운 신앙 고백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사람이 마지막으로 붙든 손잡이였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많은 것을 잃은 자리에 서 있다면, 바로 그 자리가 이 고백이 태어나는 자리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적용해 보겠습니다. 오늘 하루 중 한 번,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라는 문장을 소리 내어 말해 보십시오. 아침에 거울 앞에서, 출근길 지하철에서, 설거지를 하면서도 좋습니다. 입으로 고백한 진리가 마음을 붙들어 주는 경험을 하게 되실 것입니다.

둘째로, 고엘이라는 낱말을 깊이 새겨야 하겠습니다. 기업 무를 자는 남이 아니라 친족이어야 했고, 값을 치를 능력이 있어야 했으며, 그 일을 자기 책임으로 받아들일 마음이 있어야 했습니다. 세 가지가 모두 갖추어진 사람만 고엘이 될 수 있는 법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세 가지를 다 갖추셨습니다. 그분은 사람이 되셔서 우리의 형제가 되셨고(히 2:11), 자기 피로 값을 치르셨고(벧전 1:19), 스스로 기쁘게 그 일을 맡으셨습니다(요 10:18). 그러므로 우리는 법적으로 완전하게 되찾아진 사람들인 셈입니다. 이 사실이 흔들릴 때마다 룻기 4장의 성문 장면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19장 21절의 간구를 우리 공동체의 말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욥이 구한 것은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였습니다. 지금 내 주변에 이 말을 속으로 되뇌고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대개 가장 말이 없어진 사람입니다.

실천은 작아도 됩니다. 이번 주에 교회에서 요즘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고 연락을 해 보십시오. 긴 설명 없이 “요즘 어떠세요” 하고 묻고, 상대가 말하는 동안 조언하고 싶은 충동을 참아 보시기 바랍니다. 긍휼은 말수가 적을 때 더 잘 전달되는 법입니다.

넷째로, 하나님 흉내를 내는 말을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욥은 친구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나를 박해하느냐"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편을 든다는 생각으로 심판의 자리에 올라앉는 일은 교회가 가장 자주 넘어지는 지점입니다.

구체적인 점검 항목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불행을 설명할 때 원인을 찾아 주려는 말이 입에서 나오려 하면 잠시 멈추어 보십시오. 그리고 “나는 이 일의 뿌리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 아시는 영역을 남겨 두는 것이 겸손의 시작입니다.

다섯째로, 부활의 소망을 오늘의 힘으로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욥은 자기 눈으로 하나님을 뵙는 날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소망은 장례식장에서만 꺼내 쓰는 위로가 아닙니다. 요한일서 3장 3절은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고 가르칩니다.

여기서 성화의 길을 함께 기억하면 큰 도움이 되는 셈입니다. 칭의와 함께 성화가 시작되어 평생 이어지고, 마침내 사랑 안에서의 온전함에 이르도록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그러니 부활을 바라보는 사람은 오늘 하루를 다르게 삽니다. 재물을 쓰는 방식, 말을 고르는 태도, 시간을 쓰는 우선순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섯째로, 재물에 대한 20장의 경고를 그냥 넘기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소발은 욥에게 그 말을 잘못 적용했지만, 악을 달게 여겨 혀 밑에 감추면 결국 독이 된다는 원리는 참된 가르침입니다.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남의 집을 빼앗는 일에 하나님이 침묵하지 않으신다는 경고도 그대로 유효합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 재정을 한 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군가의 몫을 가로채고 있지 않은지, 약자의 사정을 알고도 모른 체한 일이 없는지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가능하다면 한 사람의 필요를 조용히 채워 주는 일을 실천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일곱째로, 오늘 본문은 말의 무게를 다시 재어 보게 합니다. 욥은 친구들이 말로 자기를 가루가 되도록 빻았다고 했습니다. 몸에 남는 상처는 눈에 보이지만, 말이 남긴 상처는 보이지 않는 채로 오래 남는 법입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 한 가지만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기 전에 한 번 숨을 고르는 일입니다. 그 짧은 틈이 가루로 만드는 말과 세우는 말을 가르는 경계가 됩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의 권면대로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을 골라 보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날을 바라봅니다. 욥의 대속자는 마침내 땅 위에 서실 것이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천 년 동안 이 땅을 다스리실 것입니다(계 20:4~6). 그 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모든 눈물이 씻기게 됩니다(계 21:4). 욥이 무덤을 아버지라 부르던 그 밤에 품었던 소망이, 그날 완전히 채워질 것입니다.

예화

헨델의 「메시아」: 스물넷 날에 태어난 욥기 19장의 노래

욥기 19장 25절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불린 노래가 되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덕분입니다. 1685년 독일 할레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한 헨델은 1740년 무렵 깊은 침체에 빠져 있었습니다.

발타자르 데너가 그린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의 초상, 퍼블릭 도메인
발타자르 데너가 그린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의 초상, 퍼블릭 도메인

그가 기대를 걸었던 이탈리아 오페라 사업은 런던에서 거듭 실패로 끝납니다. 빚이 쌓이고 건강이 흔들렸으며, 몇 해 전에는 뇌졸중으로 오른팔을 쓰지 못한 일도 있었습니다. 쉰이 넘은 음악가에게 다시 일어설 길이 보이지 않는 시기였습니다.

그 무렵 찰스 제넨스라는 사람이 대본 하나를 보내옵니다. 새로 쓴 시가 아니라 성경 구절을 엮어 만든 대본이었습니다. 구약의 예언과 복음서와 서신서의 구절을 그리스도의 오심과 고난과 부활과 영원한 통치의 순서로 배열한 대본입니다.

헨델은 1741년 8월 22일에 작곡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9월 14일에 전곡을 마칩니다. 꼭 스물네 날이었습니다. 그 기간에 그는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헨델이 직접 쓴 「메시아」 자필 악보 가운데 아멘 합창 부분, 퍼블릭 도메인
헨델이 직접 쓴 「메시아」 자필 악보 가운데 아멘 합창 부분, 퍼블릭 도메인

초연은 1742년 4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의 피시앰블 가에 있던 음악당에서 열렸습니다. 이 연주회는 돈을 벌기 위한 공연이 아니라 더블린의 여러 자선 기관을 돕기 위한 모금 연주회였습니다. 육백 석 규모의 공간에 칠백 명이 넘게 들어찼다고 전해집니다.

「메시아」가 초연된 더블린 피시앰블 가의 옛 음악당을 그린 도판,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퍼블릭 도메인
「메시아」가 초연된 더블린 피시앰블 가의 옛 음악당을 그린 도판,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퍼블릭 도메인

이제 오늘 본문과 만나는 지점입니다. 「메시아」의 제3부, 곧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다루는 마지막 부분은 소프라노의 아리아로 시작합니다. 그 첫 가사가 바로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신 줄을 내가 아노라입니다. 욥기 19장 25~26절을 그대로 옮긴 가사이고, 뒤에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이 이어집니다.

더블린 피시앰블 가 19번지에 붙은 「메시아」 초연 기념 동판, Spudgun67 촬영, CC BY-SA 4.0
더블린 피시앰블 가 19번지에 붙은 「메시아」 초연 기념 동판, Spudgun67 촬영, CC BY-SA 4.0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것을 잃은 족장 시대의 한 사람이 어둠 속에서 내뱉은 고백이, 삼천 년이 지난 뒤 사업이 무너진 한 음악가의 손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되었습니다. 욥은 자기 말이 돌에 새겨지기를 바랐는데, 하나님은 그 말을 사람들의 목소리에 새겨 주신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헨델은 1759년 세상을 떠나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는데, 그를 기리는 기념 조상에는 바로 이 아리아의 악보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기념비에 남은 한 구절이 바로 욥의 고백인 셈입니다.

짐 엘리엇: 잃을 수 없는 것을 위하여

19장 27절의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이라는 소망을 삶으로 증명한 젊은이가 있습니다. 1927년 10월 8일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난 짐 엘리엇입니다. 휘튼 대학에서 공부하며 헬라어를 익히고 선교를 준비한 청년입니다.

짐 엘리엇을 그린 흑백 스케치, Tinihere, CC BY-SA 4.0
짐 엘리엇을 그린 흑백 스케치, Tinihere, CC BY-SA 4.0

스물두 살이던 1949년 10월 28일, 그는 일기에 한 문장을 적었습니다. 영원히 지킬 수 없는 것을 내어 주고 결코 잃을 수 없는 것을 얻는 사람은 결코 바보가 아니라는 고백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6장 9절을 묵상하던 중에 적은 문장으로 알려져 있고, 십칠 세기 영국의 설교자 필립 헨리가 비슷한 말을 남긴 것으로도 전해집니다.

짐 엘리엇의 일기, 퍼블릭 도메인
짐 엘리엇의 일기, 퍼블릭 도메인

1952년 그는 에콰도르로 떠났습니다. 먼저 밀림의 키추아 부족 가운데서 사역하던 그가 마음에 품은 곳은 아마존 깊은 곳의 와오라니 부족입니다. 외부인을 보면 창으로 공격하는 것으로 알려진 부족이어서, 당시 사람들은 그들을 아우카라고 불렀습니다. 짐은 밀림의 말과 생활을 익히며 몇 해를 준비하는 길을 걷습니다.

1955년 9월부터 다섯 명의 선교사가 작전을 시작했습니다. 조종사 네이트 세인트가 작은 비행기로 와오라니 거주지 위를 돌며 선물을 담은 바구니를 줄에 달아 내려 줍니다. 몇 달 동안 선물이 오가고 손을 흔드는 응답이 왔습니다.

네이트 세인트가 쓰던 경비행기의 복원된 기체, 항공선교회(MAF) 본부 전시, CC BY-SA 2.5
네이트 세인트가 쓰던 경비행기의 복원된 기체, 항공선교회(MAF) 본부 전시, CC BY-SA 2.5

1956년 1월 3일, 다섯 사람은 쿠라라이 강의 모래톱에 야영지를 세웁니다. 그들이 팜 비치라고 부른 자리입니다. 처음 만난 와오라니 세 사람과는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희망이 보이는 듯했던 순간입니다.

그런데 1월 8일, 열 명 남짓한 전사들이 창을 들고 들이닥쳤습니다. 다섯 사람은 모두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고 맙니다. 짐 엘리엇은 스물여덟 살이었고, 아내 엘리자베스와 열 달 된 딸 발레리가 남았습니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났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몇 해 뒤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어린 딸을 데리고 와오라니 마을로 들어가 함께 살며 복음을 전했고, 네이트 세인트의 누이 레이첼도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남편을 죽인 사람들 곁에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부족의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고, 창을 들었던 사람 가운데 몇 명은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그 이야기를 『영광의 문을 통하여』와 『전능자의 그늘』에 기록해 남겼습니다. 욥이 “내가 그를 보리니” 하고 바라본 그 소망이, 죽음조차 손해로 계산하지 않는 삶을 낳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두 이야기에서 어떤 공통점을 보시나요? 헨델은 무너진 자리에서 욥의 고백을 노래로 만들었고, 짐 엘리엇은 그 고백을 삶으로 증명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살아 계신 대속자를 붙들었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 고백을 이어받는 것은 우리 차례입니다.

기도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자리에서도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다고 고백할 믿음을 주시기를 구하며, 내 눈으로 주님을 뵙는 날을 바라보며 오늘을 거룩하게 살아가기를 간구합니다. 아울러 하나님을 대신하는 심판자의 자리에 올라앉지 않도록 우리의 입술과 마음을 지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가정을 위해서는, 가족 가운데 가장 말이 없어진 한 사람을 알아보고 긍휼로 다가가는 식구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는, 고난당하는 성도에게 죄의 뿌리를 캐묻지 않고 함께 울며 곁을 지키는 공동체가 되기를 구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품꾼의 삯을 빼앗기고 약한 자리에서 울고 있는 이웃들이 정의를 경험하고, 열방에서 복음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은 선교사들의 수고가 열매를 맺기를 기도합니다.

값을 치르고 우리를 되찾아 주신 대속자 하나님, 오늘 말씀 앞에 나아왔습니다. 우리를 남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친족이 되어 주시며, 자기 피를 값으로 치르시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는 변호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나 주님께서 친히 우리 편에 서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욥의 친구들처럼 말로 사람을 가루로 만들었던 날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편을 든다는 생각으로 이웃을 치고, 알지 못하는 일의 뿌리를 안다고 말했던 모든 교만을 씻어 주옵소서. 우리의 혀가 불이 되지 않고 생명을 세우는 도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마침내 땅 위에 서실 주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무덤을 아버지라 부를 만큼 캄캄한 밤을 지나는 성도들에게 그 소망의 빛을 비추어 주시고, 병상에서 밤을 지키는 이들과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낸 가정들을 품어 주옵소서.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게 될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의 고통을 견디게 하여 주옵소서.

달게 여긴 악이 독이 된다는 말씀을 기억하게 하여 주옵소서. 재물을 쌓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고, 가난한 자의 몫을 가로채는 일에서 우리를 지켜 주시며, 우리에게 맡기신 것으로 한 사람의 필요를 채우는 기쁨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분깃과 기업이 되시는 주님만으로 만족하게 하여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다시 오실 주님, 그날에는 공포의 왕이라 불리던 사망이 완전히 사라지고 모든 눈물이 씻길 것을 믿습니다. 그날까지 깨어 기도하며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지고 걸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만나는 한 사람에게 “너를 불쌍히 여긴다"는 말 대신 조용히 곁에 앉는 손길을 내밀게 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의 대속자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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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런스

  1.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대한성서공회, 1998. 본문 출처: https://www.bskorea.or.kr
  2. John E. Hartley, The Book of Job,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88. (욥 17:3, 19:23~27 주해)
  3. 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Vol. 3 (Job to Song of Solomon), 1708–1710;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판 참조. (욥 19:25 주해)
  4. John MacArthur, ed., The MacArthur Study Bible, Nashville: Word Publishing, 1997. (욥 17~20장 주)
  5. Henry M. Morris, The Remarkable Record of Job: The Ancient Wisdom, Scientific Accuracy, and Life-Changing Message of an Amazing Book,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8.
  6. C. I. Scofield, ed., The Scofield Reference Bibl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09. (욥 19:25 주)
  7. John Wesley, “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 (Sermon 43, 1765), in The Works of John Wesley, Vol. 2, ed. Albert C. Outler, Nashville: Abingdon Press, 1985.
  8. John Wesley, Explanatory Notes upon the Old Testament, Bristol: William Pine, 1765. (욥기 주해)
  9. Charles Jennens(대본), George Frideric Handel(작곡), Messiah, HWV 56, 1741; 초연 1742년 4월 13일 더블린 피시앰블 가 음악당.
  10. Donald Burrows, Handel: Messiah, Cambridge Music Handbook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1.
  11. Elisabeth Elliot, Through Gates of Splendor, New York: Harper & Brothers, 1957. (한국어판 『영광의 문을 통하여』)
  12. Elisabeth Elliot, Shadow of the Almighty: The Life and Testament of Jim Elliot, New York: Harper & Brothers, 1958. (1949년 10월 28일 일기)
  13. 이미지 출처(모두 위키미디어 공용에서 내려받아 크기를 줄여 사용함): 메사 석비 사진, Tangopaso, 루브르 박물관, 퍼블릭 도메인 / 실완 단일 암체 무덤 사진, 퍼블릭 도메인 / 실로암 비문 사진, 퍼블릭 도메인 / 납 서판 사진, Marie-Lan Nguyen, 대영박물관, 퍼블릭 도메인 / 베들레헴 타작 사진, 매트슨 컬렉션, 미국 의회도서관, 퍼블릭 도메인 / 소금산 소금 동굴 사진, Hoshvilim, CC BY-SA 4.0 / 라기스 오스트라콘 사진, 웰컴 컬렉션, CC BY 4.0 / 팔레스타인 살무사 사진, Zuhair Amr, CC BY 3.0 / 발타자르 데너의 헨델 초상, 퍼블릭 도메인 / 「메시아」 자필 악보, 퍼블릭 도메인 / 피시앰블 가 옛 음악당 도판, 프랑스 국립도서관, 퍼블릭 도메인 / 헨델 기념 동판 사진, Spudgun67, CC BY-SA 4.0 / 짐 엘리엇 스케치, Tinihere, CC BY-SA 4.0 / 짐 엘리엇의 일기 사진, 퍼블릭 도메인 / 네이트 세인트의 비행기 사진, 선교항공선교회, CC BY-SA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