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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차 (욥기 1장 ~ 욥기 5장)

와디 럼 사막의 낙타, 요르단 남부, Jorge Láscar, CC BY 2.0

와디 럼 사막의 낙타, 요르단 남부, Jorge Láscar, CC BY 2.0

4일차 (욥기 1장 ~ 욥기 5장)

본문

욥기 1장

  1.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2. 그에게 아들 일곱과 딸 셋이 태어나니라
  3.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4. 그의 아들들이 자기 생일에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의 누이 세 명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더라
  5.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7.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9.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1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13.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
  14. 사환이 욥에게 와서 아뢰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15.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16.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양과 종들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17.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갈대아 사람이 세 무리를 지어 갑자기 낙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18.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들의 맏형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19.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한지라
  20.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기 2장

  1. 또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서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와서 여호와 앞에 서니
  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 왔나이다
  3.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
  4.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의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
  5.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6.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7.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8.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9.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10.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11. 그 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이 모든 재앙이 그에게 내렸다 함을 듣고 각각 자기 지역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 그들이 욥을 위문하고 위로하려 하여 서로 약속하고 오더니
  12. 눈을 들어 멀리 보매 그가 욥인 줄 알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일제히 소리 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13. 밤낮 칠 일 동안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고통이 심함을 보므로 그에게 한마디도 말하는 자가 없었더라

욥기 3장

  1.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2. 욥이 입을 열어 이르되
  3.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 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
  4. 그 날이 캄캄하였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않으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추지 않았더라면,
  5. 어둠과 죽음의 그늘이 그 날을 자기의 것이라 주장하였더라면, 구름이 그 위에 덮였더라면, 흑암이 그 날을 덮었더라면,
  6. 그 밤이 캄캄한 어둠에 잡혔더라면, 해의 날 수와 달의 수에 들지 않았더라면,
  7. 그 밤에 자식을 배지 못하였더라면, 그 밤에 즐거운 소리가 나지 않았더라면,
  8. 날을 저주하는 자들 곧 리워야단을 격동시키기에 익숙한 자들이 그 밤을 저주하였더라면,
  9. 그 밤에 새벽 별들이 어두웠더라면, 그 밤이 광명을 바랄지라도 얻지 못하며 동틈을 보지 못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10. 이는 내 모태의 문을 닫지 아니하여 내 눈으로 환난을 보게 하였음이로구나
  11.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12.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
  13. 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
  14. 자기를 위하여 폐허를 일으킨 세상 임금들과 모사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요
  15. 혹시 금을 가지며 은으로 집을 채운 고관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며
  16. 또는 낙태되어 땅에 묻힌 아이처럼 나는 존재하지 않았겠고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 같았을 것이라
  17. 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피곤한 자가 쉼을 얻으며
  18. 거기서는 갇힌 자가 다 함께 평안히 있어 감독자의 호통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19. 거기서는 작은 자와 큰 자가 함께 있고 종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
  20. 어찌하여 고난 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21.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보다 죽음을 구하는 것을 더하다가
  22.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나니
  23. 하나님에게 둘러 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
  24. 나는 음식 앞에서도 탄식이 나며 내가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소리 같구나
  25.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26.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욥기 4장

  1.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2. 누가 네게 말하면 네가 싫증을 내겠느냐, 누가 참고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3. 보라 전에 네가 여러 사람을 훈계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를 강하게 하였고
  4. 넘어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
  5. 이제 이 일이 네게 이르매 네가 힘들어 하고 이 일이 네게 닥치매 네가 놀라는구나
  6. 네 경외함이 네 자랑이 아니냐 네 소망이 네 온전한 길이 아니냐
  7.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8.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9. 다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하고 그의 콧김에 사라지느니라
  10. 사자의 우는 소리와 젊은 사자의 소리가 그치고 어린 사자의 이가 부러지며
  11. 사자는 사냥한 것이 없어 죽어 가고 암사자의 새끼는 흩어지느니라
  12. 어떤 말씀이 내게 가만히 이르고 그 가느다란 소리가 내 귀에 들렸었나니
  13. 사람이 깊이 잠들 즈음 내가 그 밤에 본 환상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14.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러서 모든 뼈마디가 흔들렸느니라
  15. 그 때에 영이 내 앞으로 지나매 내 몸에 털이 주뼛하였느니라
  16. 그 영이 서 있는데 나는 그 형상을 알아보지는 못하여도 오직 한 형상이 내 눈 앞에 있었느니라 그 때에 내가 조용한 중에 한 목소리를 들으니
  17.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
  18. 하나님은 그의 종이라도 그대로 믿지 아니하시며 그의 천사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19.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 앞에서라도 무너질 자이겠느냐
  20. 아침과 저녁 사이에 부스러져 가루가 되며 영원히 사라지되 기억하는 자가 없으리라
  21. 장막 줄이 그들에게서 뽑히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은 지혜가 없이 죽느니라

욥기 5장

  1. 너는 부르짖어 보라 네게 응답할 자가 있겠느냐 거룩한 자 중에 네가 누구에게로 향하겠느냐
  2.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
  3. 내가 미련한 자가 뿌리 내리는 것을 보고 그의 집을 당장에 저주하였노라
  4. 그의 자식들은 구원에서 멀고 성문에서 억눌리나 구하는 자가 없으며
  5. 그가 추수한 것은 주린 자가 먹되 덫에 걸린 것도 빼앗으며 올무가 그의 재산을 향하여 입을 벌리느니라
  6. 재난은 티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고생은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니라
  7.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 가는 것 같으니라
  8. 나라면 하나님을 찾겠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9.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이 큰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
  10. 비를 땅에 내리시고 물을 밭에 보내시며
  11.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애곡하는 자를 일으키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느니라
  12. 하나님은 교활한 자의 계교를 꺾으사 그들의 손이 성공하지 못하게 하시며
  13. 지혜로운 자가 자기의 계략에 빠지게 하시며 간교한 자의 계략을 무너뜨리시므로
  14. 그들은 낮에도 어두움을 만나고 대낮에도 더듬기를 밤과 같이 하느니라
  15.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강한 자의 칼과 그 입에서, 또한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주시나니
  16. 그러므로 가난한 자가 희망이 있고 악행이 스스로 입을 다무느니라
  17.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18.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
  19.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20. 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의 위협에서 너를 구원하실 터인즉
  21. 네가 혀의 채찍을 피하여 숨을 수가 있고 멸망이 올 때에도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22. 너는 멸망과 기근을 비웃으며 들짐승을 두려워하지 말라
  23. 들에 있는 돌이 너와 언약을 맺겠고 들짐승이 너와 화목하게 살 것이니라
  24. 네가 네 장막의 평안함을 알고 네 우리를 살펴도 잃은 것이 없을 것이며
  25. 네 자손이 많아지며 네 후손이 땅의 풀과 같이 될 줄을 네가 알 것이라
  26. 네가 장수하다가 무덤에 이르리니 마치 곡식단을 제 때에 들어올림 같으니라
  27. 볼지어다 우리가 연구한 바가 이와 같으니 너는 들어 보라 그러면 네가 알리라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본문 해설

네 번째 날의 여정: 욥기 1~5장

오늘부터 연대기 일독은 창세기를 잠시 멈추고 욥기로 들어섭니다. 욥기는 아브라함과 같은 족장 시대의 이야기로 알려져 있어서 창세기 11장 바로 다음에 놓입니다. 오늘 다섯 장에는 흠 없이 살던 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도 예배하는 장면, 그리고 위로하러 온 친구들이 입을 열기 시작하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읽으며 까닭 없이 찾아오는 고난 앞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묵상해 봅시다.

파리 시리아어 성경(프랑스 국립도서관 MS syr. 341) 46r면의 욥기 채색 삽화, 퍼블릭 도메인
파리 시리아어 성경(프랑스 국립도서관 MS syr. 341) 46r면의 욥기 채색 삽화, 퍼블릭 도메인

그런데 왜 하필 창세기 11장 다음일까요? 욥기에는 모세의 율법도, 이스라엘 민족도, 성막과 제사장도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욥이 직접 가족을 위해 번제를 드리고, 재산을 가축의 수로 헤아리며, 고난 뒤에 140년을 더 살았다고 기록된 모습(42:16)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살던 족장 시대의 풍경과 꼭 닮아 있습니다.

한 가지 질문을 품고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는 사람에게도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찾아올 수 있을까요? 욥기는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그 고난의 한복판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시고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함께 보여 줍니다.

욥기를 읽는 눈: 실존 인물의 역사

우리는 욥기를 교훈을 주려고 꾸며 낸 이야기로 읽지 않습니다. 욥은 실제로 살았던 사람이며, 그의 고난은 실제로 일어난 역사입니다. 선지자 에스겔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도 건져질 의인으로 노아와 다니엘과 욥, 세 사람을 나란히 꼽았습니다(겔 14:14, 20). 야고보 사도 역시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라고 말하며 욥을 고난 속에서 인내한 실존 인물로 소개했습니다(약 5:11).

혹시 “시처럼 아름다운 책이니 문학적 창작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드시나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구약의 선지자와 신약의 사도가 모두 욥을 역사 속 인물로 언급한다면, 성경 스스로의 증언을 따르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는 욥기를 허구나 교훈적 우화로 보는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욥기의 구조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1~2장은 산문으로 쓰인 도입부이고, 3장부터 42장 6절까지는 욥과 세 친구, 그리고 하나님이 나누시는 시 형식의 대화입니다. 마지막 42장 7~17절은 다시 산문으로 돌아와 결말을 맺습니다. 오늘 읽는 1~5장은 도입부와 대화의 첫머리를 함께 담고 있는 셈입니다.

욥기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구약학자 글리슨 아처는 『구약개론』에서 사건의 배경이 족장 시대에 해당함을 여러 근거로 논증했습니다. 근본주의 진영의 헨리 모리스도 『욥의 놀라운 기록』에서 욥기를 가장 오래된 기록 가운데 하나로 보았습니다. 저자와 기록 시기처럼 알려지지 않은 부분은 겸손히 인정하되, 사건 자체의 역사성은 분명히 붙드는 것이 좋겠습니다.

족장 시대의 배경: 우스 땅의 욥

1장 1절은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로 시작합니다. 우스는 창세기 10장 23절과 36장 28절에도 이름이 보이는 지명이자 인명입니다.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에돔 남쪽과 아라비아 광야 북부 일대로 보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의 무대는 오늘날의 중동 사막 지대 어디쯤이었을 것입니다.

옛 에돔 왕국 지도, 우스 땅은 어두운 부분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됨, Samuli Lintula, 퍼블릭 도메인
옛 에돔 왕국 지도, 우스 땅은 어두운 부분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됨, Samuli Lintula, 퍼블릭 도메인

욥의 성품은 네 가지로 소개됩니다.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입니다. “온전하다"로 옮긴 히브리어 “탐"은 죄가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음이 하나님께 나뉘지 않고 흠 없이 드려졌다는 뜻이라고 풀이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의 의로움은 하나님이 직접 인정하신 것이었으므로(1:8), 이어지는 고난이 죄에 대한 벌이 아니라는 점은 처음부터 분명하게 밝혀집니다.

욥의 재산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양이 칠천 마리, 낙타가 삼천 마리, 소가 오백 겨리, 암나귀가 오백 마리였고, 아들 일곱과 딸 셋이 있었습니다. 7과 3은 성경에서 완전함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그러니 본문은 욥이 당대에 누릴 수 있는 복을 모두 누린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셈입니다.

낙타를 삼천 마리나 거느렸다는 것은 그가 광야를 오가는 대규모 상업 집단의 우두머리였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는 평가는 단지 부자라는 뜻을 넘어 지혜와 덕망으로도 존경받았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처럼 그는 재산과 명예와 가정과 신앙을 모두 가진 사람이었기에, 뒤따르는 몰락은 더욱 아프게 다가옵니다.

윌리엄 블레이크, 「욥과 그의 가족」
윌리엄 블레이크, 「욥과 그의 가족」

욥의 신앙은 가정에서도 드러났습니다. 아들들이 번갈아 잔치를 열고 나면 욥은 아침 일찍 일어나 자녀의 수대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 이유가 마음을 찌릅니다.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1:5)고 했으니, 그는 자녀들의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 하나님 앞에 올려 드리던 제사장 같은 아버지였습니다.

비잔틴 필사본 BnF MS Grec 135 18v면, 욥의 자녀들의 잔치 삽화, 프랑스 국립도서관, 퍼블릭 도메인
비잔틴 필사본 BnF MS Grec 135 18v면, 욥의 자녀들의 잔치 삽화, 프랑스 국립도서관, 퍼블릭 도메인

여기서 “욕되게 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본래 “축복하다"를 뜻하는 “바라크"입니다. 하나님께 저주를 말한다는 끔찍한 표현을 차마 그대로 쓰지 않으려고 반대말로 돌려 쓴 완곡어법으로 이해됩니다. 이 단어가 1~2장 곳곳에서 거듭 나오는 것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당시 세계의 다른 곳에서도 의로운 사람이 고난을 당하는 문제는 깊이 고민되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는 「루들룰 벨 네메키」라는 글이 전해지는데, “나는 지혜의 주를 찬양하리라"는 첫 구절로 시작하며 흔히 “의로운 고난자의 독백"이라 불립니다. 학자들은 이 글과 욥기를 자주 견주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고고학이 건져 올린 사실 자료일 뿐입니다.

「루들룰 벨 네메키」 점토판, 니느웨 아슈르바니팔 도서관 출토
「루들룰 벨 네메키」 점토판, 니느웨 아슈르바니팔 도서관 출토

그렇다면 욥기는 이웃 문화의 글을 빌려 와 고쳐 쓴 것일까요?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글에서는 고난받는 이가 신들의 변덕 속에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헤맵니다.

욥기에서는 한 분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스리시며 고난에도 한계를 정해 두십니다. 닮은 구석이 있다면 인류가 공통으로 던져 온 질문의 흔적일 뿐이고, 그 질문에 대한 참된 대답은 오직 계시된 말씀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늘의 장면: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탄

1장 6절부터 12절까지 이야기는 땅에서 하늘로 옮겨 갑니다.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욥기 38장 7절의 용례를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들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윌리엄 블레이크, 「사탄이 주 앞에서 물러가다」
윌리엄 블레이크, 「사탄이 주 앞에서 물러가다」

“사탄"은 히브리어로 “하사탄”, 곧 “그 대적자” 또는 “고발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사탄은 땅을 두루 돌아다니며 성도의 흠을 찾아내 하나님 앞에서 고발하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0절이 그를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모습입니다. 세대주의의 이해에 따르면 사탄은 장차 환난 중반에 하늘에서 쫓겨나기까지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성도를 고발하는 일을 계속합니다(계 12:7~10).

이 장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가입니다. 먼저 말씀을 꺼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사탄이 욥을 노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욥을 자랑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욥의 고난이 하나님의 무관심에서 비롯되지 않았음이 선명해집니다.

그러자 사탄이 질문을 던집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여기서 “까닭 없이"는 히브리어 “힌남"으로 “공짜로, 대가 없이"라는 뜻입니다. 사탄의 주장은 욥의 신앙이 하나님이 주신 복을 얻기 위한 거래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울타리를 쳐 주고 손으로 하는 일을 복되게 하셨으니 경외하는 척한다는 고발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사탄의 요구를 허락하셨을까요? 이 물음 앞에서 우리는 먼저 겸손해져야 합니다. 본문이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탄이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욥의 털끝 하나도 건드릴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1:12, 2:6). 다른 하나는 욥의 신앙이 거래가 아니라 참된 사랑임을 하나님이 친히 증명하려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이 구하기도 전에 먼저 찾아와 지켜 줍니다. 사탄의 입에서 나온 “울타리"라는 표현(1:10)은 의도치 않게 그 은혜의 한 단면을 증언합니다. 욥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은혜 아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울타리 안에서 하루를 살아가고 있지 않나요?

하루에 무너진 모든 것

1장 13절부터 19절은 욥의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를 보여 줍니다. 아들들이 맏형의 집에서 잔치를 열던 날, 사환이 헐레벌떡 달려와 첫 소식을 전합니다. 스바 사람이 소와 나귀를 빼앗고 종들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스바는 아라비아 남서쪽에 자리한 상업 민족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이 약탈자로 돌변한 것입니다.

고대 남아라비아 스바(사바) 왕국의 영역 지도, Wario2, CC BY-SA 4.0
고대 남아라비아 스바(사바) 왕국의 영역 지도, Wario2, CC BY-SA 4.0
윌리엄 블레이크, 「사자들이 욥에게 재앙을 알리다」
윌리엄 블레이크, 「사자들이 욥에게 재앙을 알리다」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두 번째 사람이 도착합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양과 종들을 살라 버렸다는 소식입니다. 이어 세 번째 사환이 갈대아 사람들이 세 무리로 나뉘어 낙타를 빼앗았다고 전합니다. 갈대아 사람은 훗날 바벨론 제국을 세우는 민족이지만, 이 시기에는 아직 광야를 떠돌며 약탈을 일삼는 유목 집단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욥기의 배경이 제국 이전의 이른 시기임을 보여 주는 단서로 자주 거론됩니다. 가장 무서운 소식은 마지막에 옵니다.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불어와 집 네 모퉁이를 치는 바람에 자녀 열 명이 한꺼번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재산이 모두 사라진 것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욥은 같은 날 열 명의 자녀까지 잃었습니다.

네 사람이 모두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라는 같은 말로 끝맺는 것은 그 비극이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말해 줍니다. 한 가지 더 눈여겨볼 점이 있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벌어진 약탈과 자연에서 일어난 불과 바람이 뒤섞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탄은 인간의 악과 자연의 힘을 모두 이용할 수 있었지만, 그 모든 일은 하나님이 정하신 울타리 안에서만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욥의 눈에는 약탈자와 번개와 폭풍만 보였으나 실제로는 하늘의 법정에서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우리의 고난도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원인 뒤에 우리가 알 수 없는 하늘의 사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원인을 다 알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의심할 이유가 있을까요?

아닙니다. 욥의 이야기는 그 반대를 가르칩니다.

예배로 응답한 욥: 주신 이도 거두신 이도

욥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1장 20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미는 것은 당시 가장 깊은 슬픔을 표현하는 행위였습니다. 욥은 감정을 억누르지도 슬픔을 숨기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귀스타브 도레, 「욥이 재앙의 소식을 듣다」(욥기 1장 1~22절) 삽화, 퍼블릭 도메인
귀스타브 도레, 「욥이 재앙의 소식을 듣다」(욥기 1장 1~22절) 삽화, 퍼블릭 도메인

그러나 그의 슬픔은 하나님을 등지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땅에 엎드려 예배했습니다. 슬픔과 예배가 한 몸짓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어지는 고백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신앙의 고백 가운데 하나입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1:21).

이 고백은 창세기 3장 19절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흙으로 지음 받은 사람이 흙으로 돌아간다는 선고 말입니다. 욥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처음부터 자기 것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맨몸으로 왔다가 맨몸으로 갈 사람에게 재산과 자녀는 하나님이 잠시 맡기신 선물이었다는 고백입니다.

그렇다면 욥은 아무렇지도 않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픔을 모르는 사람이라서 찬송한 것이 아니라, 아픔 한가운데서 하나님을 선택한 것입니다.

1장 22절은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고 결론짓습니다. 사탄의 첫 번째 고발은 이렇게 무너졌습니다.

두 번째 시험: 몸에 닥친 고난

2장은 1장과 똑같은 하늘의 장면으로 다시 시작되지만, 이번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한 문장이 더해집니다.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2:3). 사탄의 고발이 틀렸음이 드러났다는 선언입니다. 그런데도 사탄은 물러서지 않고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라는 속담 같은 말로 새로운 주장을 내놓습니다.

이 표현은 사람이 자기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다른 것은 얼마든지 내어 줄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자녀와 재산을 잃어도 욥의 몸이 건강하니 아직 견딜 만하다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이번에는 욥의 뼈와 살을 치게 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허락하시되 분명한 선을 그으십니다. “다만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2:6).

윌리엄 블레이크, 「종기로 욥을 치는 사탄」
윌리엄 블레이크, 「종기로 욥을 치는 사탄」

사탄은 욥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심한 종기가 나게 했습니다. 욥은 재 가운데 앉아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고 있었습니다. 재는 쓰레기를 태우고 남은 자리이니, 한때 동방에서 가장 훌륭하다던 사람이 마을 밖 쓰레기 더미 위로 밀려난 것입니다. 몸의 고통에 수치와 고립이 겹쳐진 모습입니다.

이때 욥의 아내가 입을 엽니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2:9). 매튜 헨리는 이 여인을 두고 욥에게 남겨진 시험하는 자였다고 풀이했습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열 명의 자녀를 하루에 잃은 어머니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고통이 사람을 어디까지 몰아가는지 우리는 짐작할 따름입니다.

욥의 대답은 단호하면서도 부드럽습니다.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2:10). 여기서 그는 아내를 “어리석은 여자"라고 부르지 않고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아니라 말을 책망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세 친구의 침묵: 가장 좋았던 위로

2장 11절부터 13절에는 세 친구가 등장합니다. 데만 사람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소발입니다. 데만은 에돔의 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고, 수아는 아브라함이 그두라에게서 낳은 아들의 이름(창 25:2)과 이어지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서, 이들이 모두 동방의 지혜로운 사람들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이들은 소식을 듣고 서로 약속한 뒤 먼 길을 한걸음에 달려온 것입니다.

요르단 페트라의 알카즈네(보물창고), 나바테아 시대 유적, 옛 에돔 지역에 위치, Diego Delso, CC BY-SA 3.0
요르단 페트라의 알카즈네(보물창고), 나바테아 시대 유적, 옛 에돔 지역에 위치, Diego Delso, CC BY-SA 3.0

멀리서 본 욥은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변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소리 내어 울며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해 티끌을 날려 머리에 뿌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욥과 함께 땅에 앉아 밤낮 칠 일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유대인이 장례 뒤에 이레 동안 애도하는 풍습이 있으니, 낯설지 않은 모습입니다.

제임스 티소, 「욥과 세 친구」(욥기 2장 13절) 펜 스케치, 퍼블릭 도메인
제임스 티소, 「욥과 세 친구」(욥기 2장 13절) 펜 스케치, 퍼블릭 도메인

그렇다면 고난당하는 이웃 앞에서 우리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먼저 찾아가 곁에 앉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욥의 친구들이 가장 잘한 일은 바로 이 칠 일입니다. 고난당하는 사람 곁에서 해결책을 내놓으려 애쓰지 않고 그저 함께 앉아 있어 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침묵이 깨지는 순간부터 위로는 비수가 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욥기는 말이 많은 위로보다 함께 있어 주는 위로가 더 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먼저 가르칩니다.

생일을 저주한 욥: 탄식과 믿음

3장은 침묵을 깨는 욥의 입에서 터져 나온 탄식입니다. 눈여겨보셔야 할 것은 첫 절입니다.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그는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저주의 대상은 자기가 태어난 날이었습니다. 사탄은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라고 장담했지만, 욥은 끝내 그 선을 넘지 않았던 것입니다.

레옹 보나, 「욥」(1880)
레옹 보나, 「욥」(1880)

욥의 탄식은 세 단계로 흘러갑니다. 3~10절에서는 자기가 태어난 날이 아예 없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11~19절에서는 차라리 태에서 죽어 나왔다면 평안히 누워 쉬고 있었을 것이라는 한탄이 이어집니다.

20~26절에서는 고난 중에 있는 사람에게 왜 빛과 생명이 주어지느냐고 묻습니다. 이 탄식 속에는 깊은 고통이 가감 없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인이 이렇게 탄식해도 되는 걸까요?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욥의 탄식을 부끄러운 약점으로 숨기지 않고 그대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시편에도 눈물과 탄식의 기도가 가득합니다. 중요한 것은 고통을 하나님 앞에 쏟아 놓느냐, 아니면 하나님을 떠나 홀로 삭이느냐입니다.

3장 8절의 “리워야단"은 구약에서 혼돈과 악의 세력을 상징하는 바다 괴물로 자주 쓰이는 이름입니다. 욥은 날을 저주하는 일에 능숙한 자들까지 불러내 그 밤을 저주하게 하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만큼 고통이 극에 달해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시적인 과장 속에서도 그는 끝내 하나님을 직접 저주하지는 않았습니다.

귀스타브 도레, 「리워야단의 멸망」(이사야 27장 1절) 판화, 1865년, 퍼블릭 도메인
귀스타브 도레, 「리워야단의 멸망」(이사야 27장 1절) 판화, 1865년, 퍼블릭 도메인

3장 17~19절에서 욥은 죽음 이후를 “거기서는 피곤한 자가 쉼을 얻으며"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당시 욥이 가졌던 제한된 지식 안에서의 표현입니다. 부활의 소망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신 뒤에야 온전히 밝혀졌습니다. 그래도 욥기의 뒷부분에서 그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리라”(19:25)는 놀라운 고백에 이르게 됩니다.

3장 25절의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는 욥이 평소 마음 한구석에 감추어 두었던 불안을 보여 줍니다. 아무리 온전한 사람도 사랑하는 것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안고 살았던 것입니다. 다만 1~2장이 분명히 밝히는 고난의 원인은 욥의 두려움이나 죄가 아니라, 하늘에서 시작된 시험이었습니다.

엘리바스의 첫 변론: 반쪽의 진리

4장부터는 친구들의 변론이 시작됩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나이가 가장 많았을 것으로 보이는 엘리바스입니다. 그의 말투는 처음에는 정중한 편입니다. “누가 네게 말하면 네가 싫증을 내겠느냐.” 그는 욥이 이전에 여러 사람을 훈계하고 넘어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음을 상기시키며(4:3~4), 이제 그 자신이 당한 일 앞에서 흔들린다고 지적합니다.

그러고는 핵심 주장으로 들어갑니다.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4:7~8). 심은 대로 거둔다는 원리입니다. 틀린 말일까요? 갈라디아서 6장 7절도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하니, 일반 원리로서는 옳습니다.

욥기 4장 10~11절에 나오는 사자, 나미비아의 수사자 사진, Kevin Pluck, CC BY 2.0
욥기 4장 10~11절에 나오는 사자, 나미비아의 수사자 사진, Kevin Pluck, CC BY 2.0

그렇다면 엘리바스의 잘못은 무엇일까요? 일반 원리를 모든 경우에 적용한 것입니다. 그는 고난을 받는 사람은 반드시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단정했습니다.

그러나 욥기의 독자는 1~2장을 이미 읽었기에 이 단정이 틀렸음을 압니다. 욥은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점에서 욥기는 고난과 죄를 기계적으로 연결하는 사고방식에 대한 하나님의 교정입니다.

밤의 환상과 사람의 한계

윌리엄 블레이크, 「엘리바스의 환상」(1825), 미국 국립미술관
윌리엄 블레이크, 「엘리바스의 환상」(1825), 미국 국립미술관

4장 12~21절에서 엘리바스는 자신이 밤에 본 환상을 이야기합니다. 깊은 잠이 든 즈음에 두려움과 떨림이 닥치고, 영이 얼굴 앞으로 지나가 몸의 털이 주뼛 섰으며, 조용한 가운데 한 목소리가 들렸다는 것입니다. 그 목소리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4:17)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중해야 합니다. 엘리바스가 말한 환상의 출처가 하나님인지는 본문이 확인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훗날 욥의 세 친구에게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하였음이라"고 책망하십니다(42:7). 그러므로 성경이 어떤 말을 기록했다고 해서 그 말이 모두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은 오류 없이 사실을 기록하되, 그 사람의 말이 맞는지는 전체 문맥이 판단하게 합니다.

그렇다고 엘리바스의 말이 전부 거짓이었을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 할 수 없다는 4장 17절의 내용은 성경 전체의 가르침과 일치합니다.

바울도 고린도전서 3장 19절에서 욥기 5장 13절을 인용하며 “지혜 있는 자들을 그들의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엘리바스의 말 가운데는 참된 진리가 섞여 있습니다. 문제는 그 진리를 욥에게 잘못 겨냥했다는 데 있습니다.

4장 18~19절은 하나님이 종이라도 그대로 믿지 아니하시고 천사라도 미련하다 하신다고 말합니다.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은 사람이야 오죽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7절에서 사람이 흙으로 빚어졌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입니다. 사람의 연약함에 대한 이 고백은 옳지만, 고난 중에 있는 사람 앞에서 연약함을 훈계처럼 늘어놓을 때에는 위로가 아니라 정죄가 됩니다.

엘리바스의 권면: 맞는 말, 틀린 적용

5장에서 이어지는 엘리바스의 권면도 마찬가지입니다. 3~4절에서 그는 미련한 자가 뿌리내리는 것을 보고 그의 집을 저주했더니 “그의 자식들은 구원에서 멀고 성문에서 억눌리나 구하는 자가 없다"고 말합니다. 자녀를 잃은 욥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암시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말하는 사람은 일반론을 펼쳤을 뿐이지만, 듣는 사람의 가슴에는 칼이 꽂힙니다.

5장 7절의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가는 것 같으니라"는 창세기 3장에서 땅이 저주를 받은 뒤 사람이 평생 수고하며 살게 되었다는 사실과 이어집니다. 엘리바스는 인생에 고난이 따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죄로 말미암은 타락의 결과입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지어진 것이 아니라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들어온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위로 날아오르는 불꽃(욥기 5장 7절), 장작불 사진, Friedrich Haag, CC BY-SA 4.0
위로 날아오르는 불꽃(욥기 5장 7절), 장작불 사진, Friedrich Haag, CC BY-SA 4.0

5장 8절부터 16절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대목입니다.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이 큰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고”, 비를 땅에 내리시며, 낮은 자를 높이시고 가난한 자를 구출하십니다. 이 내용 자체에는 흠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나라면 하나님을 찾겠고”(5:8)에는 욥이 하나님을 찾지 않고 있다는 암시가 깔려 있습니다. 욥은 한순간도 하나님을 떠난 적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17절에서 엘리바스는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합니다. 잠언 3장 11~12절과 히브리서 12장 5~11절이 가르치는 진리와 맞닿아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욥의 경우는 징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이 죄를 지어서 고난을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고난 중에는 죄 때문에 오는 징계도 있고, 죄와 상관없이 오는 시험도 있습니다. 그리고 둘을 구별하는 일은 사람의 몫이 아닙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가르치는 중요한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웃의 고난 앞에서 원인을 판정하는 재판관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엘리바스의 마지막 약속은 어떨까요? 그는 회개하고 돌아서면 여섯 가지 환난에서 구원받고 일곱 가지 환난에서도 해를 입지 않으며, 자손이 번성하고 장수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5:19~26). 훗날 욥은 실제로 갑절의 복을 받게 되지만, 그것은 엘리바스가 말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5장 27절은 “우리가 연구한 바가 이와 같으니 너는 들어 보라"로 끝납니다. 확신에 찬 이 말투 속에 위로하는 이의 교만이 숨어 있습니다.

욥기가 아직 말하지 않은 것: 감추어진 하늘의 사정

욥기 1~5장을 읽는 우리에게는 욥도 몰랐던 정보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오간 대화입니다. 욥은 끝내 이 장면을 보지 못한 채 고난을 통과했고, 세 친구는 더더욱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내놓은 설명은 보이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뜻을 재단하려는 시도였던 셈입니다.

윌리엄 블레이크,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욥기 38장 7절), 『욥기 삽화』 제14번, Web Gallery of Art, 퍼블릭 도메인
윌리엄 블레이크,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욥기 38장 7절), 『욥기 삽화』 제14번, Web Gallery of Art, 퍼블릭 도메인

이 사실은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칩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에도 우리가 모르는 하늘의 사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9장 29절은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거니와 나타난 일은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알 수 없는 일 앞에서 우리가 붙들 것은 무엇일까요? 나타난 말씀, 곧 하나님이 선하시고 신실하시다는 계시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약속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지금은 이유를 알 수 없어도 하나님은 결코 헛되이 고난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욥기는 이 진리를 이론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으로 보여 주는 책입니다.

구속사의 지평: 의로운 고난자와 장차 올 나라

그렇다면 이 오래된 이야기가 오늘 우리와 무슨 상관일까요? 우리 역시 의로우신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혹은 아무 이유 없이 고난을 겪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욥기 1~5장을 구속사의 시선으로 한 번 더 읽어 보겠습니다. 욥은 죄 없이 고난을 당하는 의인의 그림자입니다. 물론 욥도 죄인이므로 그리스도와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가장 의로운 분이 가장 깊은 고난을 받으시리라는 구속사의 흐름을 먼저 보여 주는 인물임에는 분명합니다.

사탄의 고발에 맞서는 모습도 주목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내 종 욥"이라고 부르시며 그를 변호하십니다. 사탄이 성도를 고발할 때(계 12:10), 오늘 우리에게는 우리를 변호하시는 대언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요일 2:1). 욥의 이야기는 이 은혜를 더욱 선명하게 비추는 거울입니다.

마지막으로 종말론적 소망입니다. 야고보는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라고 했습니다(약 5:11). 욥이 갑절의 복을 받는 결말은 재림하신 그리스도께서 천 년 동안 이 땅을 다스리실 때, 눈물과 고통이 거두어지고 의인이 보상받을 날을 미리 맛보게 하는 그림자로 읽을 수 있습니다. 욥기의 고난은 결말이 없는 고난이 아니라 하나님이 끝을 정하신 고난입니다.

묵상과 적용

욥기 1장에서 가장 먼저 붙들어야 할 진리는 하나님이 욥을 자랑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고난이 오면 먼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나”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고난이 반드시 죄의 결과이거나 하나님이 떠나신 증거는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때로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를 신뢰하시기 때문에 허락된 시험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난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욥이 보여 준 첫 번째 모습은 슬픔을 숨기지 않고 예배의 자리로 가져간 것입니다.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며 울었지만 동시에 땅에 엎드려 예배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암 선고를 받은 날, 직장을 잃은 날, 가정이 흔들리는 날에 눈물을 참느라 애쓰기보다 그 눈물을 하나님 앞에 그대로 쏟아 놓으면 좋겠습니다. 눈물은 믿음 없음의 증거가 아니라 믿음의 한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의 신앙이 어떤 신앙인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탄의 고발은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였습니다. 혹시 우리의 기도는 건강과 자녀의 성공과 재정의 복을 얻기 위한 거래가 되어 있지는 않나요? 하나님이 주시는 것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그분 때문에 경배하는 신앙으로 성장해 가는 것이 성화의 길입니다.

성화는 칭의의 순간에 시작되어 평생 이어집니다. 그 성화는 때로 고난이라는 학교에서 가장 빠르게 자랍니다. 이렇게 보면 욥기 1~5장은 은혜와 성화가 함께 가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욥이 구하기 전에 먼저 울타리를 쳐 주셨고, 그의 믿음을 의롭다 인정하셨으며, 그 믿음이 시험을 거치며 단련되도록 이끄셨습니다. 받은 은혜 위에서 시험을 통과하며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 가는 것, 이것이 오늘 말씀이 가리키는 길입니다.

세 번째는 고난당하는 이웃을 대하는 자세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이레 동안 말없이 곁에 앉아 있을 때 가장 좋은 친구였고, 입을 열어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하면서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픈 이웃의 병실에서, 상을 당한 가정의 빈소에서, 직장을 잃은 친구의 식탁에서 우리는 “다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라는 말이나 “혹시 죄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라는 추측을 앞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함께 있어 주고, 들어 주고, 기도해 주는 것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이런 위로자가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마음부터 내려놓는 일이 먼저일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우리가 연구한 바가 이와 같으니"라고 단정했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틀렸습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충고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면 잠시 입을 다물고 먼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보십시오.

또한 고난이 왔을 때 우리를 끝까지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신뢰입니다. 욥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끝내 알지 못한 채 1장 21절의 고백을 올렸습니다. 우리도 이유를 다 알 수 없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에 필요한 것은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주신 이도 거두신 이도 선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질문은 아무리 눌러도 마음속에서 올라오기 마련입니다. 이 질문을 품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닙니다. 욥도 3장에서 “어찌하여"를 거듭 외쳤고, 하나님은 그 질문을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이유를 알지 못해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놓지 않는 것, 이것이 믿음의 길입니다. 오늘 밤 잠들기 전에 풀리지 않는 질문 하나를 솔직하게 하나님께 적어 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재림의 소망을 기억합시다. 욥의 고난은 결말이 있는 고난이었고 하나님은 그 끝을 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눈물을 닦아 주실 때까지 우리가 겪는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일서 3장 2~3절의 말씀처럼 이 소망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를 깨끗하게 하며 오늘을 거룩하게 살아갑니다. 오늘 하루 고난 중에 있는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그에게 말을 건네기 전에 먼저 곁에 앉아 있어 주시기를 권면드립니다.

예화

손양원 목사: 두 아들을 잃고 올린 아홉 가지 감사

욥의 고백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가 20세기 한국 땅에서 그대로 되풀이된 일이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여수 애양원교회를 섬기던 손양원 목사입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옥고를 치렀고, 해방 후에는 한센병 환자들이 모인 애양원에서 그들의 아버지로 살았던 분입니다.

1948년 10월, 여수와 순천 일대에서 군대 일부가 일으킨 반란 사건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이 혼란 속에서 순천의 학교에 다니던 손 목사의 큰아들 동인과 둘째 아들 동신이 좌익 학생들에게 붙잡혔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버리라는 협박을 받았으나 두 형제는 끝내 거절했고, 결국 총살당하고 말았습니다.

소식을 들은 손 목사의 마음이 어땠을지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모가 자식을 먼저 보내는 것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신앙 때문에 한꺼번에 둘을 잃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는 장례 예배에서 하나님께 아홉 가지 감사를 드렸다고 전해집니다.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이 나오게 하셨음을 감사한다고 했고, 많은 성도 중에 하필 두 아들을 맡겨 주셨음을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입니다. 손 목사는 두 아들을 죽인 학생 안재선이 붙잡혀 사형 위기에 놓이자 그를 살려 달라고 청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을 자신의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원수를 용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기 호적에 올려 아들로 품은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안용준이 쓴 『사랑의 원자탄』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는 훗날 6.25 전쟁이 일어난 뒤 인민군에게 붙잡혀 1950년 9월 순교했습니다. 그는 평생 욥처럼 빼앗기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입을 열어 감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질문 하나를 던져 보고 싶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 말입니다. 그의 삶이 들려주는 대답은 이렇습니다. 주신 분도 거두신 분도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확신이었다고 말입니다.

호레이쇼 스패포드와 「내 영혼 평안해」

욥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시카고의 변호사 호레이쇼 스패포드입니다. 그는 1871년 시카고 대화재로 많은 부동산을 잃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시련이 찾아온 것은 2년 뒤인 1873년이었습니다.

호레이쇼 스패포드(1828~1888) 초상 사진, 퍼블릭 도메인
호레이쇼 스패포드(1828~1888) 초상 사진, 퍼블릭 도메인
1871년 시카고 대화재 직후 파괴된 건물들 사진, 퍼블릭 도메인
1871년 시카고 대화재 직후 파괴된 건물들 사진, 퍼블릭 도메인

그해 11월 스패포드의 아내 안나와 네 딸이 유럽으로 가는 증기선 빌 뒤 아브르 호에 올랐는데, 대서양 한가운데서 다른 배와 충돌해 배가 침몰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내만 구조되어 영국 카디프에 도착한 뒤 남편에게 “저만 살아남았습니다"라는 전보를 보냈습니다. 네 딸은 모두 바다에 잠겼습니다.

커리어 앤 아이브스 석판화, 빌 뒤 아브르 호의 침몰(1873), 미국 의회도서관, 퍼블릭 도메인
커리어 앤 아이브스 석판화, 빌 뒤 아브르 호의 침몰(1873), 미국 의회도서관, 퍼블릭 도메인

급히 아내를 만나러 가던 스패포드는 배가 딸들이 숨진 해역을 지날 때 선장으로부터 그 사실을 전해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찬송시를 쓰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 첫머리는 “When peace like a river attendeth my way, when sorrows like sea billows roll"로 시작하여, 어떤 형편에서도 “내 영혼은 평안합니다"라고 고백하는 후렴으로 이어지는 찬송입니다. 이 이야기는 그의 딸 버사 스패포드 베스터가 쓴 『우리의 예루살렘』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욥과 스패포드와 손양원 목사가 가르쳐 주는 것은 같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을 부정할 이유가 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고백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탄은 인간의 신앙이 복을 받을 때만 지속된다고 고발하지만, 이 사람들의 삶은 그 고발이 틀렸음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같은 증인이 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기도

오늘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복을 받을 때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얄팍한 신앙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날에도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고백하는 믿음으로 자라게 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 특히 질병과 실직과 이별로 눈물 흘리는 가정을 위해서도 기도드립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는, 고난당하는 지체 곁에서 섣부른 설명보다 침묵과 눈물로 함께 앉아 주는 교회가 되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이유 없이 고통받는 이웃, 재난과 사고로 가족을 잃은 이들이 위로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열방을 위해, 박해 속에서도 예배를 멈추지 않는 형제자매들이 욥처럼 끝까지 신실함을 지키도록 기도합니다.

온전하고 정직한 종을 자랑하시며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오늘 욥기의 첫 장을 펼쳐 주님의 주권 앞에 서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사탄이 아무리 거세게 대적해도 주님의 허락 없이는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음을 믿습니다. 우리의 삶을 둘러 울타리를 쳐 주시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지키고 계셨음을 고백합니다.

거룩하신 주님, 제 신앙이 얼마나 자주 거래가 되었는지 고백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복을 구하면서 주님 자신은 잊은 채 살아온 날이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고난이 오면 주님을 원망하고 제 의로움을 앞세우며 이웃의 아픔 앞에서는 쉽게 판단했습니다. 이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비로우신 아버지, 우리에게 가죽옷을 입혀 주시고 먼저 찾아오신 주님이 욥에게도 끝까지 신실하셨음을 찬양합니다. 사탄이 고발할 때마다 우리를 변호하시는 대언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을 의지하여 칭의의 은혜를 누리며, 그 은혜 위에서 날마다 주님의 형상을 닮아 가는 성화의 길을 걷게 해 주옵소서.

주님, 고난의 한복판에서도 슬픔을 숨기지 않고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는 용기를 허락해 주옵소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날에도 주신 이도 거두신 이도 주님이심을 붙들게 하여 주옵소서. 고난당하는 이웃을 만날 때에는 말을 앞세우지 않고 함께 앉아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시며, 우리가 아는 만큼만 말하는 겸손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님, 지금 이 시간에도 말하지 못할 아픔을 안고 홀로 앉아 있는 이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그들 곁에 우리를 보내 주시고, 섣불리 판단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눈물로 함께하는 따뜻한 손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침묵이 위로가 되고 우리의 말이 은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마지막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합니다.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고 의인에게 갑절의 복으로 갚으실 천년왕국과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며, 오늘의 고난을 인내로 통과하게 하여 주옵소서. 욥의 인내를 보게 하시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믿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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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런스

  1.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대한성서공회, 1998. 본문 출처: https://www.bskorea.or.kr
  2. Gleason L. Archer Jr., A Survey of Old Testament Introduction, Chicago: Moody Press, 1964 (rev. ed. 1994). (욥기 부분)
  3. Henry M. Morris, The Remarkable Record of Job,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8.
  4. John E. Hartley, The Book of Job,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88. (히브리어 어휘 “바라크"의 완곡어법 등 언어적 사실 참조)
  5. Francis I. Andersen, Job: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Tyndale Old Testament Commentaries, Downers Grove: InterVarsity Press, 1976.
  6. 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욥기 2장 주해),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판 참조.
  7. John Wesley, Explanatory Notes Upon the Old Testament, Bristol: William Pine, 1765. (욥기 부분)
  8. John Wesley, “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 (Sermon 43, 1765), in The Works of John Wesley, Vol. 2, ed. Albert C. Outler, Nashville: Abingdon Press, 1985.
  9. W. G. Lambert, Babylonian Wisdom Literature, Oxford: Clarendon Press, 1960. (「루들룰 벨 네메키」 번역과 해설)
  10. 안용준,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 순교기』, 서울: 신망애사, 1953.
  11. Bertha Spafford Vester, Our Jerusalem: An American Family in the Holy City, 1881–1949, Garden City: Doubleday, 1950.
  12. 이미지 출처(모두 위키미디어 공용에서 내려받아 크기를 줄여 사용함): 제임스 티소 「욥과 세 친구」 펜 스케치, 퍼블릭 도메인 / 와디 럼 사진, Jorge Láscar, CC BY 2.0 / 윌리엄 블레이크 「욥과 그의 가족」, 「사탄이 주 앞에서 물러가다」, 「사자들이 욥에게 재앙을 알리다」, 퍼블릭 도메인 / 윌리엄 블레이크 「종기로 욥을 치는 사탄」, 퍼블릭 도메인 / 「루들룰 벨 네메키」 점토판 사진, Zunkir, CC BY-SA 4.0 / 레옹 보나 「욥」, 퍼블릭 도메인 / 윌리엄 블레이크 「엘리바스의 환상」(1825), 미국 국립미술관, CC0 / 옛 에돔 지도, Samuli Lintula, 퍼블릭 도메인 / 파리 시리아어 성경 욥기 삽화와 BnF Grec 135 사본 삽화, 퍼블릭 도메인 / 스바 왕국 지도, Wario2, CC BY-SA 4.0 / 귀스타브 도레 「욥이 재앙의 소식을 듣다」와 「리워야단의 멸망」, 퍼블릭 도메인 / 페트라 알카즈네 사진, Diego Delso, CC BY-SA 3.0 / 사자 사진, Kevin Pluck, CC BY 2.0 / 장작불 불꽃 사진, Friedrich Haag, CC BY-SA 4.0 / 윌리엄 블레이크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퍼블릭 도메인 / 호레이쇼 스패포드 초상, 커리어 앤 아이브스 석판화 「빌 뒤 아브르 호의 침몰」, 1871년 시카고 대화재 사진, 퍼블릭 도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