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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차 (창세기 4장 ~ 창세기 7장)

미국 켄터키주 윌리엄스타운에 지어진 노아의 방주 재현 건축물(아크 인카운터) 외관, 사진 1990'sguy, CC BY-SA 4.0

미국 켄터키주 윌리엄스타운에 지어진 노아의 방주 재현 건축물(아크 인카운터) 외관, 사진 1990’sguy, CC BY-SA 4.0

2일차 (창세기 4장 ~ 창세기 7장)

본문

창세기 4장

  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17.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18.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19.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20.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21.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22.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24.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세기 5장

  1.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3.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4.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6.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7.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8. 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9.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10. 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11. 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12. 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13.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14. 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15. 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16. 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7. 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18. 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19.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0. 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25.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26.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7.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28.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29.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30. 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31. 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32.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창세기 6장

  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0.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11.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15.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16.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19.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20.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21.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세기 7장

  1.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2.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3.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4.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5.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6.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7. 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8.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은
  9.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10.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11.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12.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13.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14.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가 그 종류대로
  15.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16.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17. 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18.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19.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20.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
  21.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22.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23.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24. 물이 백오십 일을 땅에 넘쳤더라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본문 해설

에덴 밖에서 시작된 이야기: 창세기 4~7장

오늘 읽을 창세기 4~7장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인류가 걸어간 첫 1,600여 년의 역사입니다. 이 짧은 네 장 안에 최초의 형제 살인, 도시와 예술의 시작, 아담에서 노아까지 이어지는 족보, 에녹의 승천, 그리고 온 땅을 덮은 홍수가 차례로 이어집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3장이 죄가 어떻게 세상에 들어왔는지를 보여 주었다면, 4~7장은 그 죄가 한 가정과 한 세대, 한 문명 안에서 어떻게 자라 가는지를 보여 주는 셈입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위치와 범위를 보여 주는 지도(이집트에서 메소포타미아까지), Nafsadh, CC BY-SA 4.0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위치와 범위를 보여 주는 지도(이집트에서 메소포타미아까지), Nafsadh, CC BY-SA 4.0

그렇다고 이야기가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가인이 아우를 죽인 직후에도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셋이라는 다른 씨를 주셨고, 온 땅이 폭력으로 가득 찼을 때에도 노아를 은혜로 찾아내셨습니다.

심판 한복판에서 구원의 길을 놓으시는 하나님, 이것이 오늘 본문 전체를 꿰는 줄거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보게 될까요? 죄의 무서움과 함께 그보다 앞서 일하시는 은혜의 깊이를 보게 될 것입니다.

시대적 배경: 타락 이후의 첫 세계

먼저 이 본문이 다루는 시간의 길이를 가늠해 보겠습니다. 마소라 본문의 족보를 문자 그대로 더하면 창조에서 홍수까지는 1,656년입니다. 아담이 130세에 셋을 낳고 셋이 105세에 에노스를 낳는 식으로 5장의 숫자를 차례로 더하면 노아가 태어난 해가 창조 후 1,056년이 되고, 노아가 600세에 홍수를 맞았으니(7:6) 합하여 1,656년이 되는 것입니다.

이 숫자들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흐른 세월의 기록입니다. 문자적·역사적 해석을 따르는 우리는 이 족보를 그렇게 받습니다.

이 긴 세월 동안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창세기는 한 가족에서 시작된 인류가 점점 불어나 농사와 목축, 도시와 음악, 금속 기술까지 이루어 냈다고 전합니다. 사람의 수명이 900년 안팎이었으니 한 사람이 낳는 자녀의 수도, 쌓아 가는 지식의 양도 오늘과는 비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죄도 한 사람의 신앙도 수백 년 동안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시대였던 셈입니다.

전통적인 이해에 따르면 이 책을 처음 받은 사람들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그들 주변 민족들도 홍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었으나, 그 이야기들은 소란스러운 인간에게 짜증이 난 신들의 변덕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모세가 기록한 창세기는 그런 왜곡 속에서 원래의 진실을 곧게 세워 주는 증언이었던 것입니다.

홍수 이야기를 담은 『아트라하시스』 점토판(바빌로니아 또는 아케메네스 시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CC0
홍수 이야기를 담은 『아트라하시스』 점토판(바빌로니아 또는 아케메네스 시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CC0

가인과 아벨: 두 제사, 두 마음

4장은 하와의 고백으로 열립니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는 말은 첫 아들을 안은 어머니의 기쁨이면서 3장 15절의 약속을 붙든 믿음의 표현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가인"은 “얻음"이라는 뜻이니 이름에 그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아마 하와는 자기가 얻은 이 아들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이 아닐까 기대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그 기대는 무참히 무너지고 맙니다. 둘째 아들의 이름 “아벨"은 “헤벨”, 곧 “입김, 덧없음"에서 온 말로,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를 미리 보여 주는 듯합니다. 형 가인은 땅을 가는 농부가 되었고 아우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는데, 이는 에덴에서 받은 노동의 사명(2:15)이 그대로 이어진 모습입니다. 두 직업 자체에는 잘잘못이 없다는 점을 먼저 분명히 해 두겠습니다.

요단 계곡에서 양 떼를 치는 목자, 1919년 사진, American Colony Photo Department, 퍼블릭 도메인
요단 계곡에서 양 떼를 치는 목자, 1919년 사진, American Colony Photo Department, 퍼블릭 도메인

“세월이 지난 후에”(4:3) 두 형제는 각자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으로는 “날들의 끝에"라는 표현이어서 정해진 때에 예배의 자리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을,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렸는데,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만 받으셨습니다.

귀스타브 도레, 「가인과 아벨의 제사」, 『성경』 삽화(1866)
귀스타브 도레, 「가인과 아벨의 제사」, 『성경』 삽화(1866)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요? 흔히 “가인은 채소를 드렸고 아벨은 양을 드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본문을 차분히 따라가 보면 문제는 제물의 종류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드리는 사람의 마음과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은 아벨이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증언하고, 요한일서 3장 12절은 가인의 행위가 악했다고 밝힙니다.

형식은 갖추었으나 믿음이 없던 예배와 믿음에서 나온 예배가 한 제단 앞에서 갈린 순간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아벨이 피 흘림이 있는 제물을 드렸다는 점은,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히실 때 보여 주신 대속의 원리(3:21)와 이어진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매튜 헨리 역시 아벨의 제사를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의 제사로 풀이했습니다.

죄가 문에 엎드려 있다: 가인에게 주신 경고

가인은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습니다”(4:5). 그런데 이때 하나님은 곧바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먼저 말을 거셨습니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4:6)라는 물음은 3장 9절에서 숨은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찾아오셨던 바로 그 음성입니다. 사람이 돌이키기 전에 먼저 찾아오시는 은혜가 가인에게도 어김없이 내려온 것입니다.

7절은 풀이가 쉽지 않은 구절입니다.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여기서 죄는 문 앞에 몸을 낮추고 웅크린 맹수처럼 그려지며, 아카드어에서 이와 비슷한 말이 문간에 숨은 악령을 가리킨다는 점을 지적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아시리아 두르샤루킨(호르사바드) 궁전의 문을 지키던 사람 머리 날개 달린 황소상, 루브르 박물관 소장, David Monniaux, CC BY-SA 3.0
아시리아 두르샤루킨(호르사바드) 궁전의 문을 지키던 사람 머리 날개 달린 황소상, 루브르 박물관 소장, David Monniaux, CC BY-SA 3.0

주목할 만한 것은 “원하나"로 옮긴 “테슈카"입니다. 이 단어는 3장 16절에서 여자가 남편을 “원하는” 대목에 쓰인 것과 같은 말입니다. 고든 웬함은 『창세기 1-15장』에서 이 평행을 짚으며, 죄가 가인을 지배하려 들지만 가인은 오히려 죄를 다스려야 한다는 경고와 격려가 이 구절에 함께 담겨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미 타락한 사람이 어떻게 죄를 다스릴 수 있을까요? 본문이 가르치는 바는 하나님이 먼저 주시는 은혜가 있기에 죄를 다스릴 길이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가인에게도 은혜는 문 앞까지 와 있었으나, 그는 그 은혜의 손을 뿌리치고 말았습니다.

아우의 핏소리: 살인과 추방, 그리고 표

8절은 가인이 아우에게 “말하고” 들로 갔다고 전하는데, 개역개정의 난외주는 일부 고대 역본에 “우리가 들로 나가자"는 말이 덧붙어 있다고 밝힙니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사실은 마음속에 품은 분노가 곧 살인으로 열매 맺었다는 점입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이 말하는 대로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은 것입니다.

귀스타브 도레, 「아벨을 죽인 가인」, 『성경』 삽화(1866)
귀스타브 도레, 「아벨을 죽인 가인」, 『성경』 삽화(1866)

하나님은 다시 물으셨습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4:9). 가인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대답합니다. 여기서 “지키는 자"는 2장 15절에서 아담이 동산을 “지키게” 되었을 때 쓰인 “샤마르"와 같은 말입니다. 에덴에서 지키라는 사명을 받은 인류가 아우 하나조차 지키지 않겠다고 맞서는 자리까지 떨어진 것입니다.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4:10)는 말씀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원문에서 “피"는 복수형이어서, 아벨의 피만이 아니라 그에게서 이어졌을 후손의 생명까지 끊어졌다는 뜻을 담았다고 풀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4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뿌린 피가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한다고 하니, 아벨의 피는 복수를 호소했으나 그리스도의 피는 용서를 말씀하십니다.

가인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4:13)라는 말에는 죄에 대한 뉘우침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가 지은 죄보다 자기가 받을 벌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에게 표를 주어 죽임을 면하게 하셨습니다. 심판 속에서도 한 줄기 자비를 거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성품이 이 짧은 장면에서도 빛납니다.

가인의 족보와 라멕의 노래

16절은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했다고 전합니다. “놋"은 “유리함, 방랑"이라는 뜻이니 그가 받은 선고가 지명이 되어 남은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의 후손들은 놀랍도록 번성하여 첫 성읍을 쌓았고(4:17), 장막과 가축, 수금과 퉁소, 구리와 쇠로 만든 기구가 그들의 손에서 나왔습니다(4:20~22).

이라크 남부 와르카(고대 우루크) 유적, SAC Andy Holmes(영국 공군), OGL v1.0
이라크 남부 와르카(고대 우루크) 유적, SAC Andy Holmes(영국 공군), OGL v1.0

혹시 “원시 인류는 동굴에서 돌을 깨던 야만인이 아니었나요?“라는 의문이 드시나요? 창세기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첫 세대부터 지적이고 기술이 뛰어난 인간이 있었고, 그 재능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베푸신 은사였습니다. 다만 그 문명은 “여호와 앞을 떠나서” 세워졌다는 점에서 기술은 높았으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문명이었습니다.

우르 왕실 묘지에서 출토된 황소 머리 수금, 펜실베이니아대 박물관 전시, Binxedits, CC BY-SA 4.0
우르 왕실 묘지에서 출토된 황소 머리 수금, 펜실베이니아대 박물관 전시, Binxedits, CC BY-SA 4.0
유대 광야에서 발견된 의례용 구리 도끼 유물(기원전 4500~3500년), 이스라엘 박물관 소장, Gary Todd, CC0
유대 광야에서 발견된 의례용 구리 도끼 유물(기원전 4500~3500년), 이스라엘 박물관 소장, Gary Todd, CC0

그 문명의 얼굴이 바로 라멕입니다. 그는 2장 24절의 “한 몸” 원칙을 깨고 아내를 둘이나 맞이한 성경 최초의 중혼자였으며, 아내들에게 자기 노래를 들려줍니다.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4:23~24). 하나님이 가인을 보호하시려고 정하신 한도를 자기 복수의 허가증으로 뒤집어쓴 오만이 그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신약에서 놀라운 반전을 만납니다. 베드로가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하고 묻자,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고 답하셨습니다(마 18:21~22). 복수를 칠십칠 배로 늘리던 라멕의 노래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뒤집어 놓으신 것입니다.

셋과 에노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

가인의 계보에 곧바로 이어지는 25~26절은 한 줄기 새벽빛 같습니다. 아담이 다시 아들을 낳았을 때 하와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고 말하며 이름을 “셋”, 곧 “주어진 자"라고 지었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단어는 “씨"입니다. 3장 15절에서 약속된 “여자의 후손"의 줄기가 셋을 통해 이어진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레닌그라드 사본(마소라 본문 필사본) 3v면, 창세기 4:23~5:26 본문이 실린 면, 퍼블릭 도메인
레닌그라드 사본(마소라 본문 필사본) 3v면, 창세기 4:23~5:26 본문이 실린 면, 퍼블릭 도메인

셋이 낳은 아들의 이름은 “에노스”, 곧 “연약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는 한 줄이 놓입니다. 가인의 후손이 성읍과 기술을 쌓는 동안 셋의 후손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연약함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을 부르기 시작했다니, 참으로 의미심장하지 않나요?

이렇게 창세기 4장은 두 갈래의 길을 나란히 보여 줍니다. 한쪽은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세운 도시로, 다른 한쪽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제단으로 이어집니다. 유다서 11절이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라고 경고하듯이, 우리도 오늘 어느 길 위에 서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창세기 5장: 아담의 계보와 죽음의 후렴

5장은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로 문을 엽니다. “계보"로 옮긴 “톨레돗"은 2장 4절에서 만났던 바로 그 표지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셨다는 문장도 다시 한번 울려 나옵니다. 3절은 아담이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고 전하니, 하나님의 형상이 대를 이어 전해졌으나 이제는 타락한 아담의 모습까지 함께 물려받게 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 계보에는 가슴을 울리는 후렴이 있습니다. “그는 …를 살고 죽었더라"는 말이 에녹을 제외한 사람들에게 여덟 번 거듭 나옵니다(5:5, 8, 11, 14, 17, 20, 27, 31). 마치 조종(弔鐘)이 한 번 한 번 울리는 것 같지 않나요? 3장 19절에서 선고하신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는 말씀이 사람의 이름 하나하나 위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 아담의 죄 뒤에 들어왔다는 로마서 5장 12절의 선언이 족보의 문장마다 확인됩니다.

웰드-블런델 프리즘 첫 단락: 홍수 이전의 첫 왕 알룰림이 28,800년을 다스렸다고 적은 수메르 왕명록, 옥스퍼드 애슈몰린 박물관 소장
웰드-블런델 프리즘 첫 단락: 홍수 이전의 첫 왕 알룰림이 28,800년을 다스렸다고 적은 수메르 왕명록, 옥스퍼드 애슈몰린 박물관 소장

이 숫자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5장의 나이는 가장 긴 므두셀라가 969세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도 홍수 이전의 인물들을 적은 기록이 있다는 점입니다. 기원전 2000년경에 새겨진 것으로 알려진 수메르 왕명록에는 홍수 이전에 여덟 명의 왕이 다스렸으며 첫 왕 알룰림이 28,800년을 재위했다고 적혀 있고, 그 뒤에 “홍수가 휩쓸고 지나갔다"는 기록이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창세기가 수메르 문서를 줄여서 가져다 쓴 것일까요? 우리는 순서를 반대로 봅니다. 창세기 족보는 실제 인물들의 이름과 나이를 담은 건조하고 정확한 기록이며, 수메르의 목록은 같은 옛 기억이 신화적으로 부풀어 오른 왜곡된 메아리일 따름입니다. 홍수 이전의 장수한 사람들과 온 세상을 덮은 홍수라는 공통된 기억이 서로 다른 문서에 살아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창세기의 역사성을 뒷받침합니다.

에녹의 동행과 므두셀라의 해

죽음의 후렴이 이어지는 가운데 단 한 사람, 일곱째 세대 에녹만 다르게 기록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5:24). 그는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은 뒤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아들을 얻고 나서야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시작되었다니, 가정을 꾸리고 바쁘게 사는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되는 말씀입니다.

“동행하다"로 옮긴 “히트할레크"는 하나님과 나란히 걸으며 보조를 맞추는 삶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히브리서 11장 5~6절은 에녹이 믿음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다고 증언하며, 유다서 14~15절은 그가 주님이 수만 명의 성도와 함께 오실 것을 예언했다고 전합니다. 에녹은 하나님의 심판을 미리 선포하며 경건하게 살았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에티오피아 게즈어로 필사된 에녹서 사본(18세기), 루브르 아부다비 소장, Francesco Bini, CC BY-SA 4.0
에티오피아 게즈어로 필사된 에녹서 사본(18세기), 루브르 아부다비 소장, Francesco Bini, CC BY-SA 4.0

이 일곱째 사람의 승천은 많은 세대주의 해석자들에게 환난 전에 교회가 들려 올려질 휴거의 모형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을 소망하는 우리에게 에녹의 이야기는 죽음이 마지막 말을 하지 못하는 날이 반드시 온다는 예고편인 셈입니다.

그의 아들 므두셀라에게는 또 다른 사실이 숨어 있습니다. 5장의 숫자를 계산해 보면 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았으며, 노아가 600세에 홍수를 맞았습니다. 187과 182와 600을 더하면 969, 곧 므두셀라가 죽은 해가 홍수가 닥친 해입니다.

이것이 우연일까요? 하나님이 심판의 시간표까지 한 치 어긋남 없이 다스리신다는 증거로 받아들이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일부 해석자들은 그 이름의 뜻을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는 예고로 풀지만 어원이 확실하지 않으므로, 가장 오래 산 그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몸으로 보여 준 사람이라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충분하겠습니다.

5장 마지막에서 라멕은 아들의 이름을 “노아"라고 지으며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5:29). “노아"는 “안식, 위로"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며, 이 말에는 3장 17절의 땅의 저주 아래서 지친 사람들의 한숨이 배어 있습니다. 그 위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홍수 이후 노아가 제단을 쌓을 때(8:21) 비로소 모습을 드러냅니다.

창세기 6장: 하나님의 아들들과 땅의 부패

6장 1~4절은 성경에서 가장 많은 논쟁을 불러온 대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6:2).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일까요? 구약에서 “베네 하엘로힘"이라는 표현은 욥기 1장 6절, 2장 1절, 38장 7절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들을 가리키는 용례로 쓰입니다.

창세기 이야기를 풀어 쓴 사해 사본 「창세기 외경」 두루마리를 펼쳐 놓은 모습, Geza Vermes, CC BY-SA 4.0
창세기 이야기를 풀어 쓴 사해 사본 「창세기 외경」 두루마리를 펼쳐 놓은 모습, Geza Vermes, CC BY-SA 4.0

유다서 6~7절과 베드로후서 2장 4~5절도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의 죄를 말하면서 곧바로 노아 때의 홍수를 언급합니다. 웨슬리와 매튜 헨리처럼 이들을 셋의 후손으로 풀이하는 견해도 있으나, 우리는 본문의 문법과 용례와 신약의 증언에 더 잘 어울리는 천사설을 따르고 셋의 후손설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 일로 땅에 “네피림”, 곧 “넘어뜨리는 자들” 또는 “타락한 자들"로 풀이되는 폭력적인 용사들이 나타났으니 인류의 타락이 영적인 차원에서 얼마나 깊어졌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그 한복판에서 하나님은 3절에서 선언하십니다.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이 “백이십 년"은 사람의 수명을 줄이신 것이 아니라(그 후에도 셈은 600세를 살았습니다) 심판까지 허락하신 유예 기간으로 읽는 것이 옳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20절은 이 시간을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라고 부르고, 베드로후서 2장 5절은 그를 의를 전파하는 노아라고 부릅니다.

5절은 인간의 상태를 가장 어두운 색으로 진단하는 구절입니다.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여기서 “계획"으로 옮긴 “예체르"는 토기장이가 그릇을 빚는 일에서 나온 말로, 마음이 빚어 내는 모든 생각과 설계를 뜻합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처음부터 끝까지 부패했음을 이 구절만큼 분명하게 드러내는 말씀도 드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광경을 보시고 무엇을 하셨을까요? 6절은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고 전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모르셨다가 후회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죄에 대한 거룩한 진노와 죄인을 향한 깊은 슬픔이 함께 계심을 보여 주는 표현입니다. 심판을 앞두고도 하나님은 냉정한 재판관이 아니라 아파하시는 아버지로 그려집니다.

한탄하시는 하나님과 노아가 입은 은혜

그러나 8절은 놀라운 반전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은 성경에서 “은혜”(헨)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자리입니다. 재미있게도 히브리어에서 “노아"를 뜻하는 글자 “노아흐"를 거꾸로 읽으면 “헨”, 곧 “은혜"가 됩니다. 이름 속에 은혜가 거꾸로 새겨져 있는 셈이니, 그 어떤 의로움보다 은혜가 먼저였다는 것을 일깨우는 장치로 읽을 수 있습니다.

레닌그라드 사본(마소라 본문 필사본) 4r면, 창세기 5:26~6:19 본문이 실린 면, 퍼블릭 도메인
레닌그라드 사본(마소라 본문 필사본) 4r면, 창세기 5:26~6:19 본문이 실린 면, 퍼블릭 도메인

9절은 노아를 의인, 곧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부르며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덧붙입니다. 이 표현은 에녹의 동행과 같은 말입니다. 그렇다면 노아는 죄가 전혀 없던 사람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에드워드 힉스, 「노아의 방주」(1846), 필라델피아 미술관
에드워드 힉스, 「노아의 방주」(1846), 필라델피아 미술관

여기서 “완전하다"는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온전하고 흠 없이 살려고 애쓴 삶을 가리킵니다. 9장에서 노아가 포도주에 취하는 장면을 보아도 그가 죄 없는 사람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은혜를 입었기에 의인이 되었고 의인이 되었기에 동행했다는 순서가 중요합니다. 히브리서 11장 7절은 이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다시 말해 받은 은혜가 곧 거룩한 순종의 동기가 된 것입니다. 은혜는 순종을 대신하지 않고 순종을 낳는 법입니다.

방주: 하나님이 설계하신 구원의 배

13~16절에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의 설계도를 하나하나 알려 주십니다. 재료는 “고페르 나무”, 크기는 길이 300규빗, 너비 50규빗, 높이 30규빗입니다. 1규빗을 약 45센티미터로 보면 길이 약 135미터, 너비 약 22미터, 높이 약 13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배입니다. 길이와 너비와 높이의 비율은 파도에 쉽게 뒤집히지 않는 안정적인 형태로 알려져 있고, 상·중·하 삼층에 많은 칸이 들어갔습니다.

아타나시우스 키르허, 『노아의 방주』(1675)에 실린 방주 건조 장면, 웰컴 컬렉션
아타나시우스 키르허, 『노아의 방주』(1675)에 실린 방주 건조 장면, 웰컴 컬렉션

방주에 그렇게 많은 동물이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존 우드모라프는 『노아의 방주: 타당성 연구』(1996)에서 종류대로 실린 동물의 수를 계산하여 방주의 공간이 충분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존 휘트콤과 헨리 모리스도 『창세기 대홍수』(1961)에서 방주가 대형 화물열차 수백 량에 맞먹는 부피였음을 보였습니다. 새끼나 어린 개체를 데려갔다면 공간은 더욱 넉넉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일에는 하나님이 반드시 길을 내신다는 사실이 여기서 확인됩니다.

방주를 만드는 방법을 다룬 14절에는 더 깊은 암시가 숨어 있습니다.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에서 “칠하라"로 옮긴 동사 “카파르"는 “덮다"라는 뜻입니다. 이 낱말은 레위기에서 속죄를 뜻하는 “키페르"와 어근이 같습니다. 방주를 안팎으로 덮은 역청은 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막아 주었는데, 이것을 죄를 덮는 속죄의 그림자로 보는 해석이 오래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또한 방주에 문이 하나뿐이었다는 점은 “내가 문이니”(요 10:9) 하신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합니다.

길가메시 서사시 제11토판(홍수 토판), 기원전 7세기 아슈르바니팔 도서관 출토, 대영박물관 소장
길가메시 서사시 제11토판(홍수 토판), 기원전 7세기 아슈르바니팔 도서관 출토, 대영박물관 소장

여기서 다른 문명의 홍수 이야기와 비교해 보겠습니다. 1872년 조지 스미스가 대영박물관의 점토판에서 바벨론의 홍수 이야기를 읽어 낸 이래, 길가메시 서사시 제11토판은 세상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서사시에서 주인공 우트나피시팀은 신 에아의 경고를 받고 한 변이 120규빗인 정육면체에 가까운 배를 만들고, 7일 동안 폭풍이 몰아친 뒤 비둘기와 제비와 까마귀를 날려 보냅니다. 한편 『아트라하시스』는 신들이 인간의 소란스러움에 잠을 설쳐 홍수를 일으켰다고 말합니다.

창세기와 무엇이 다를까요? 창세기의 홍수는 인간의 폭력과 부패에 대한 하나님의 도덕적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변덕스러운 신이 아니라 경고하시고 오래 참으시며 구원의 길을 열어 두시는 분이십니다.

바벨론 신화에서는 신들이 제물 냄새에 파리처럼 몰려들었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노아의 제단 앞에서 은혜의 언약으로 응답하십니다. 두 이야기가 닮았다면 그것은 창세기가 신화를 빌려 쓴 까닭이 아니라 실제 사건의 기억이 나라마다 일그러진 모습으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18절에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성경에서 언약(베리트)이라는 말이 처음 쓰인 자리입니다. 언약은 사람이 하나님을 설득하여 얻어 낸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내미신 약속의 손입니다. 22절의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는 말씀은 은혜를 입은 사람이 보이는 순종의 모습을 그대로 요약합니다.

창세기 7장: 문을 닫으신 하나님

7장은 하나님의 초대로 시작되는 장입니다.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7:1). 이 말씀은 “가라"가 아니라 들어가라는 초대여서, 하나님이 이미 방주 안에서 기다리고 계신 듯한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또 “네 온 집"이라는 표현에서 한 사람의 믿음이 온 가족의 구원으로 이어지는 은혜를 보게 됩니다.

이어서 “칠 일 후에”(7:4) 비를 내리시겠다는 말씀은 문이 닫히기 전에 마지막으로 허락된 일주일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은 왜 문을 닫기 전에 일주일을 더 기다리셨을까요? 마지막까지 돌아올 사람을 기다리시는 오래 참으심 때문이었습니다.

정결한 짐승을 암수 일곱씩, 부정한 짐승을 암수 둘씩 데려가라는 2~3절의 명령에는 훗날 제사와 식용을 위한 배려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제단을 쌓을 일까지 이미 내다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5절이 다시 한번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고 말하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아타나시우스 키르허, 『노아의 방주』(1675)에 실린 동물들이 방주로 들어가는 장면, 웰컴 컬렉션
아타나시우스 키르허, 『노아의 방주』(1675)에 실린 동물들이 방주로 들어가는 장면, 웰컴 컬렉션
아타나시우스 키르허, 『노아의 방주』(1675)에 실린 방주 내부 구조 상상도, 웰컴 컬렉션
아타나시우스 키르허, 『노아의 방주』(1675)에 실린 방주 내부 구조 상상도, 웰컴 컬렉션

11절의 기록은 마치 목격자의 일기장 같습니다.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해와 달과 날짜까지 밝힌 정확한 기록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증언하는 문체입니다. 홍수의 물은 두 곳에서 왔습니다. 땅 밑에서는 큰 깊음의 샘들이 터졌고, 하늘에서는 하늘의 창문들이 열렸으며, 비는 사십 주야를 쏟아졌습니다.

귀스타브 도레, 「홍수」, 『성경』 삽화(1866)
귀스타브 도레, 「홍수」, 『성경』 삽화(1866)

16절은 7장에서 가장 마음을 울리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방주의 문을 닫으신 분은 노아가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문을 닫는 일은 노아의 힘이나 재주로 할 수 없었으며,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안전은 오로지 문을 닫으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구원은 사람이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고 지키시는 은혜임을 이 한 구절이 증거합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문이 닫혔습니다. 닫힌 문 밖의 사람들은 노아가 오랫동안 선포한 경고를 외면했고, 마지막 일주일의 유예마저 흘려보냈습니다. 문이 열려 있을 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으나, 하나님이 문을 닫으신 뒤에는 어떤 호소도 소용이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이 은혜의 때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전 지구적 홍수: 성경이 말하는 대로

17~24절은 물이 점점 불어나 방주를 띄우고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7:19~20)고 전합니다. 150일 동안 물이 땅에 넘쳤으며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7:22). 이 말씀은 노아의 홍수가 전 지구적인 사건이었음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아라라트 산, 아르메니아 아라라트 평원에서 본 모습(창 8:4은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다고 기록함), Vyacheslav Argenberg, CC BY 4.0
아라라트 산, 아르메니아 아라라트 평원에서 본 모습(창 8:4은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다고 기록함), Vyacheslav Argenberg, CC BY 4.0

일부 학자들은 이 홍수가 메소포타미아 일대에 국한된 지역적 홍수였다고 보는 견해를 내놓습니다. 그러나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다"는 표현을 지역적으로 줄여 읽을 수는 없습니다. 지역적 홍수였다면 노아가 방주를 지어 일 년 가까이 머물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새들은 다른 지역으로 날아가 살면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다시는 홍수로 땅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일(9:11)도, 지역적인 홍수는 오늘도 계속 일어나고 있으니 헛된 약속이 되고 말 것입니다.

신약은 이 홍수를 실제 역사로 확증합니다. 베드로후서 3장 5~6절은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라고 하며 앞으로 불로 임할 심판의 보증으로 삼았고, 예수님도 “노아의 때"를 실제 사건으로 말씀하셨습니다(마 24:37~39, 눅 17:26~27). 그리스도께서 역사적 사건으로 인용하신 것을 우리는 신화나 은유로 바꿀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지질학적 증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헨리 모리스는 『창세기 기록』에서 지구 곳곳의 두꺼운 퇴적층과 화석 무덤이 수억 년에 걸친 점진적 퇴적이 아니라 급격한 대홍수의 흔적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사실 자료로서의 화석과 지층을 존중하되, 그것을 수억 년의 시간으로 풀이하는 동일과정설의 해석은 받아들이지 않고 성경의 기록을 해석의 열쇠로 삼습니다.

그랜드 캐니언 사우스림 그랜드뷰 포인트에서 본 층층이 드러난 지층, 미국 국립공원관리청(NPS), 퍼블릭 도메인
그랜드 캐니언 사우스림 그랜드뷰 포인트에서 본 층층이 드러난 지층, 미국 국립공원관리청(NPS), 퍼블릭 도메인
그랜드 캐니언 림의 카이밥 석회암에서 발견되는 바다 생물 화석,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NPS), CC BY 2.0
그랜드 캐니언 림의 카이밥 석회암에서 발견되는 바다 생물 화석,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NPS), CC BY 2.0

노아의 때와 장차 올 심판

예수님은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하시며 그날 사람들의 모습을 이렇게 그리셨습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마 24:38~39). 범죄를 저지르는 것만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 파묻혀 경고를 듣지 않는 태도가 이미 심판의 징조였다는 말씀입니다.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대홍수」, 바티칸, 퍼블릭 도메인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대홍수」, 바티칸, 퍼블릭 도메인

스코필드 관주성경은 양심 시대가 홍수의 심판으로 끝나고 하나님이 인류를 시험하시는 다음 경륜, 곧 인간 통치 시대가 열린다고 정리했습니다. 이 구도에서 홍수는 한 시대의 끝을 알린 사건이면서 동시에 마지막 때의 심판을 미리 보여 주는 모형입니다. 에녹이 심판 이전에 데려가진 것과 노아가 심판을 통과하여 보존된 것은, 많은 세대주의 해석자들이 교회의 휴거와 환난기 이스라엘의 보존을 설명하는 데 쓰는 대표적인 유비이기도 합니다.

7장에서 우리가 붙들 소망은 이것입니다. 노아가 방주 안에서 사십 주야 내내 물소리를 들으며 두려웠을지라도, 그는 문을 닫으신 분이 자기를 지키신다는 것을 알았기에 평안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도 같습니다. 심판의 물결이 아무리 높아져도 하나님이 닫으신 문 안에서는 오히려 그 물이 우리를 하늘 가까이 띄워 올리는 은혜의 물결이 됩니다.

묵상과 적용

오늘 본문은 한 가정에서 시작하여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간 죄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모든 어둠을 가로지르는 은혜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가인에게도 하나님이 먼저 말을 거셨고, 라멕의 시대에도 셋의 후손이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으며, 온 땅이 폭력으로 가득할 때에도 노아가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기 전에 먼저 찾아오시는 은혜가 모든 인간의 역사 위에 내려와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먼저 가인의 이야기를 우리 삶으로 가져와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진 가인에게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혹시 우리도 동료의 승진 소식에 마음이 쓰리거나 형제의 성공 앞에서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지 않으신가요? 그 감정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그것을 품고 키울 때 죄는 문턱을 넘어 마음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구체적으로 할 일은 무엇일까요? 비교의 감정이 올라올 때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솔직히 털어놓고, 그 사람을 위해 짧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부모라면 자녀들 사이에 비교와 편애가 싹트지 않도록 각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칭찬하는 말을 오늘 한마디라도 건네 주십시오. 바울의 권면대로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엡 4:26)는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죄를 다스리는 첫걸음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는 우리에게 예배의 본질을 묻습니다. 주일마다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찬송을 부르면서도 마음은 가인처럼 형식만 갖추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가장 좋은 것, 곧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렸습니다.

이번 주에는 하루의 첫 시간과 첫 열매와 첫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훈련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말씀을 펼치는 지금의 QT 시간이 바로 그 시작입니다.

한편 라멕의 노래는 우리 시대의 문화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당한 것보다 더 크게 갚아 주겠다는 복수의 논리는 인터넷의 댓글과 직장의 뒷담화, 가정의 말다툼 속에서 오늘도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번 주에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한 사람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이름을 부르며 “주님, 제가 먼저 놓아주겠습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이 라멕의 길을 그리스도의 길로 바꾸는 시작입니다.

이제 노아와 에녹을 보겠습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이며, 그 동행은 은혜를 입은 뒤에 시작되었습니다. 칭의로 죄책에서 건져진 사람은 그 순간부터 성화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노아가 은혜를 입었고(6:8), 그 은혜 위에서 의인이 되어 동행했으며(6:9),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던” 것(6:22)은 은혜와 성화가 하나로 이어진 구원의 모습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니 이제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생각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은혜는 거룩한 삶으로 흘러가기 마련입니다.

노아는 사방이 폭력으로 가득한 세상 한가운데서 오랜 세월 방주를 지었습니다. 직장에서 정직하게 일하는 것이 손해처럼 느껴질 때, 가정에서 신앙을 지키는 일이 외롭게 느껴질 때 노아를 떠올려 보십시오. 노아가 이긴 비결은 대단한 의지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하였다는 한결같은 순종이었습니다. 결과가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믿고 오늘의 순종을 쌓아 가시기 바랍니다.

에녹의 삶은 우리에게 매일의 동행을 가르칩니다. 에녹은 아들을 낳은 뒤 삼백 년을 하나님과 걸었습니다. 바쁜 가정과 직장 생활 속에서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뒷전으로 밀리기 쉬운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육아와 업무의 한복판이 바로 동행의 자리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출근길에 한 구절을 묵상하고, 점심시간에 짧게 기도하고, 잠들기 전에 하루를 감사로 마무리하는 사소한 습관이 쌓여 우리를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는 사람으로 빚어 갑니다.

마지막으로 방주의 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가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믿음의 모범을 보이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 줍니다.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족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 가며 오늘 하나님께 간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방주의 문이 열려 있던 때가 있었듯, 은혜의 문도 오늘 아직 열려 있습니다.

구속사의 눈으로 보면 방주는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방주의 한 문은 “내가 문이니"라고 하신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안팎을 덮은 역청은 우리의 죄를 덮으신 속죄의 피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문을 닫으셨다는 사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의 구원이 하나님의 손으로 지켜진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가인의 길과 아벨의 길, 라멕의 길과 에녹의 길, 홍수 밖의 길과 방주 안의 길 가운데 우리는 날마다 어느 쪽을 택하고 있을까요?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시작하여 그분을 닮아 가는 길을 택하시기를 권면드립니다.

예화

손양원 목사: 원수를 양아들로 품은 용서

가인이 아우를 죽인 이야기를 읽으며 실제로 가인과 같은 사람 앞에서 아벨의 편에 섰던 한 목사님이 떠오릅니다. 한국 교회사의 인물 손양원 목사입니다. 그는 1902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오랜 옥고를 치렀고, 해방 후에는 전남 여수의 애양원에서 나병 환자들과 함께 살며 목회했습니다. 병이 옮을까 꺼리는 사람이 많았던 그 시절, 그는 환자들의 곁을 떠나지 않은 목회자로 기억됩니다.

1930년대경 엽서에 담긴 서울 남산의 조선신궁 계단, 퍼블릭 도메인
1930년대경 엽서에 담긴 서울 남산의 조선신궁 계단, 퍼블릭 도메인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이 일어나던 혼란 속에서 그의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이 순천에서 좌익 학생들에게 총살당했습니다. 동인은 스물다섯 살, 동신은 열여덟 살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시신 앞에서 오열했지만 놀랍게도 장례 예배에서 하나님께 여러 가지 감사를 드렸다고 전해집니다. 두 아들이 순교자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감사하고, 아들을 죽인 원수에게 미움이 아니라 사랑을 품게 하신 것을 감사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건의 주범으로 체포된 학생 안재선이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자 손양원은 그를 살려 달라고 탄원했습니다. 사람들은 선뜻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들 둘을 죽인 원수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나요?” 하는 물음이 터져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안재선이 풀려나도록 힘쓴 뒤 그를 양아들로 삼았다고 합니다. 가인에게 표를 주어 죽임을 면하게 하신 하나님의 자비를, 한 아버지가 자기 가정 안에서 그대로 되풀이한 것입니다.

손양원은 1950년 6·25 전쟁 중 공산군에 의해 순교했습니다. 그의 일생을 기록한 안용준의 『사랑의 원자탄』은 오랫동안 한국 교회를 울려 왔습니다.

이 이야기를 오늘 본문에 겹쳐 보면 어떨까요? 아벨의 핏소리는 복수를 호소했으나 그리스도의 피는 용서를 말씀하시고, 손양원은 그 용서를 자기 삶으로 말했습니다. 라멕이 칠십칠 배의 복수를 노래할 때, 손양원은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살아 낸 셈입니다.

윌리엄 캐리: 칠 년의 기다림 끝에 맺힌 첫 열매

노아가 홍수가 임박했다고 외치며 방주를 지을 때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바라보았을까요? 아마 비웃음을 보냈을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을 평생 견뎠던 사람이 영국의 구두 수선공 출신 선교사 윌리엄 캐리입니다. 그는 1761년 영국 노샘프턴셔의 가난한 직공 집안에서 태어났고, 독학으로 헬라어와 히브리어와 라틴어를 익혔습니다.

윌리엄 캐리(1761~1834) 초상, 퍼블릭 도메인
윌리엄 캐리(1761~1834) 초상, 퍼블릭 도메인

1792년 그는 『이교도의 회심을 위하여 수단을 사용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의무에 대한 탐구』라는 책자를 펴냈습니다. 같은 해 노팅엄의 설교에서는 “하나님께 큰 것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하여 큰 것을 시도하라"고 외쳤다고 전해집니다.

이듬해 캐리는 가족을 데리고 인도로 떠났으나 현실은 가혹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생활비가 바닥났고, 말라리아와 이질이 가족을 덮쳤으며, 1794년에는 다섯 살이던 아들 피터가 이질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상심한 아내 도로시는 이후 정신적인 병에 시달리게 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캐리는 복음을 전하며 성경을 벵골어로 번역했지만, 기록될 만한 회심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노아가 오랜 세월 의를 전파하고도 방주에는 자기 가족 여덟 명만 들어갔던 것처럼, 캐리도 눈에 보이는 열매를 오래도록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인도 도착 후 칠 년이 지난 1800년 12월 28일, 크리슈나 팔이 후글리 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캐리 일행이 인도에서 맺은 첫 힌두교 회심자였던 것입니다.

세람포르 칼리지 가트에서 본 후글리 강(갠지스 강 지류), Serampore WestBengal, CC BY-SA 4.0
세람포르 칼리지 가트에서 본 후글리 강(갠지스 강 지류), Serampore WestBengal, CC BY-SA 4.0

이 이야기를 오늘 본문에 겹쳐 보면 어떨까요? 노아와 캐리는 결과가 보이지 않는 시간을 하나님이 명하신 일에 쏟았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우리도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이 수고가 열매를 맺기는 할까”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방주가 결국 물 위에 떴듯이,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오늘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의 수고는 때가 되면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기도

오늘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시기와 분노를 하나님 앞에서 솔직히 고백하고, 죄가 문 앞에 웅크릴 때 말씀과 성령으로 그것을 다스리게 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에녹처럼 날마다 하나님과 걸으며, 받은 은혜 위에서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성화의 길을 걷게 해 주시기를 구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가정을 위해서는, 형제와 자매와 부부와 자녀 사이에 비교와 미움이 싹트지 않고 서로를 용서하며 섬기는 가정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가족들이 방주의 문 안으로 들어오도록, 우리가 먼저 믿음의 본을 보이게 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마음입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는, 가인처럼 형식만 남은 예배가 아니라 아벨처럼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가 살아나기를 구하는 마음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노아처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순종하는 성도들이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한국 사회를 위해서는, 폭력과 복수의 문화가 용서와 화해의 문화로 바뀌기를 간구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열방을 위해, 지금도 홍수 같은 죄악 속에서 신음하는 땅마다 그리스도라는 방주의 문이 활짝 열려 있음을 알리는 복음의 사자들이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한탄하시면서도 은혜의 길을 열어 두신 거룩하신 하나님, 오늘 창세기 4장에서 7장까지의 말씀 앞에 주님의 공의와 사랑을 바라보며 엎드립니다.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섭고 빠르게 퍼져 가는지를 보면서도, 그 한복판에서 아벨을 받으시고 셋을 주시며 노아에게 은혜를 베푸신 주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합니다. 분노에 사로잡힌 가인에게도 먼저 말을 거시며 찾아오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주님, 고백합니다. 저도 가인처럼 비교하고 분노하며 감정을 품은 채 하루를 넘긴 적이 많았습니다. 라멕처럼 받은 것보다 더 크게 되갚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힌 날도 있었습니다. 죄가 문 앞에 웅크린 줄도 모르고 살았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의 예배가 형식에 머물지 않고 아벨처럼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에녹과 동행하신 하나님, 저도 오늘부터 주님과 보조를 맞추어 걷게 하여 주옵소서. 출근길과 퇴근길, 식탁과 침실, 육아와 일터의 모든 자리에서 주님이 곁에서 걸으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노아처럼 사방이 어두운 세상에서도 주님이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게 하시고, 결과가 보이지 않을 때에도 낙심하지 않고 오늘의 방주를 짓게 하여 주옵소서. 은혜로 시작된 구원이 성화의 열매를 맺게 하여 주옵소서.

방주의 문을 직접 닫으신 신실하신 하나님, 저와 제 온 가족이 그리스도라는 방주 안에서 안전함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아직 문 밖에 서 있는 이웃과 가족에게 은혜의 문이 열려 있는 동안 복음을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노아의 때와 같이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깨닫지 못하는 이 시대에, 저는 깨어 있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에녹을 데려가시고 노아를 보존하신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까지 거룩하게 살게 하여 주옵소서.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의지하여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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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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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John Wesley, “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 (Sermon 43, 1765), in The Works of John Wesley, Vol. 2, ed. Albert C. Outler, Nashville: Abingdon Press,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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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S. Pearce Carey, William Carey, London: Hodder & Stoughton, 1923.
  17. 안용준,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 전기).
  18. 이미지 출처(모두 위키미디어 공용에서 내려받아 크기를 줄여 사용함): 에드워드 힉스 「노아의 방주」(1846), 퍼블릭 도메인 / 귀스타브 도레 「가인과 아벨의 제사」, 「아벨을 죽인 가인」, 「홍수」, 퍼블릭 도메인 / 웰드-블런델 프리즘 사진, Gts-tg, CC BY-SA 4.0 / 아타나시우스 키르허 『노아의 방주』(1675) 삽화 3점, 웰컴 컬렉션, CC BY 4.0 / 길가메시 서사시 제11토판 사진, BabelStone, CC0. / 추가 이미지: 아크 인카운터 외관, 1990’sguy, CC BY-SA 4.0 / 비옥한 초승달 지대 지도, Nafsadh, CC BY-SA 4.0 / 아트라하시스 점토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CC0 / 요단 계곡의 목자(1919), American Colony Photo Department, 퍼블릭 도메인 / 두르샤루킨 궁전 문의 수호상, David Monniaux, CC BY-SA 3.0 / 와르카 유적, SAC Andy Holmes, OGL v1.0 / 우르 황소 머리 수금, Binxedits, CC BY-SA 4.0 / 유대 광야 구리 도끼, Gary Todd, CC0 / 레닌그라드 사본 2면, 퍼블릭 도메인 / 에티오피아 게즈어 에녹서 사본(18세기), Francesco Bini, CC BY-SA 4.0 / 창세기 외경 두루마리, Geza Vermes, CC BY-SA 4.0 / 아라라트 산, Vyacheslav Argenberg, CC BY 4.0 / 그랜드뷰 포인트, NPS, 퍼블릭 도메인 / 카이밥 석회암 화석, NPS, CC BY 2.0 / 미켈란젤로 「대홍수」, 조선신궁 엽서, 윌리엄 캐리 초상, 퍼블릭 도메인 / 세람포르 후글리 강, Serampore WestBengal, CC BY-SA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