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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 (창세기 1장 ~ 창세기 3장)

지구 전체를 담은 「블루 마블」 사진, 아폴로 17호 승무원 촬영(1972년 12월 7일), NASA

지구 전체를 담은 「블루 마블」 사진, 아폴로 17호 승무원 촬영(1972년 12월 7일), NASA

1일차 (창세기 1장 ~ 창세기 3장)

본문

창세기 1장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6.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9.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14.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18.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9.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20.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21.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2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세기 2장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5.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창세기 3장

  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본문 해설

365일 여정의 첫날: 창세기 1~3장

마침내 첫날입니다. 오늘부터 365일 동안 성경을 연대기 순서로 따라가는 긴 여정을 함께 걷게 됩니다. 연대기 일독이란 성경 66권을 책이 놓인 순서가 아니라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시간의 흐름대로 다시 이어 읽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1장을 덮으면 곧바로 욥기가 펼쳐지고, 다윗의 시편은 사무엘서에서 그 시가 쓰인 사건 바로 곁에 놓입니다.

쉽게 비유해 보겠습니다. 장르별로 꽂아 둔 사진첩을 촬영한 날짜순으로 다시 정리하면 한 사람의 일생이 한 편의 영화처럼 이어지지 않나요? 연대기 성경 읽기가 바로 그러한 작업입니다. 흩어져 있던 이야기들이 하나의 큰 줄기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어디일까요? 시간 자체가 시작되는 순간을 담은 본문, 곧 창세기 1~3장입니다. 이 세 장에는 창조, 타락, 그리고 구원의 약속이라는 성경 전체의 세 기둥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붙들면 앞으로 걸어갈 364일의 지도를 미리 손에 쥐는 셈입니다.

귀스타브 도레, 「빛의 창조」(1866)
귀스타브 도레, 「빛의 창조」(1866)

성경을 읽는 눈: 실제 역사의 기록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어떤 눈으로 창세기를 읽을지부터 분명히 해 두고자 합니다. 이 묵상집은 성경을 하나님이 직접 감동하여 기록하게 하신 오류 없는 말씀으로 받습니다.

그리고 본문을 있는 그대로, 곧 문자적·역사적·문법적으로 읽는 길을 따릅니다. 1978년 시카고에서 복음주의 학자들이 발표한 성경무오 선언은 제12조에서 성경의 무오가 영적 주제에만 머물지 않고 역사와 과학에 관한 진술에도 미친다고 천명했습니다. 지구 역사에 관한 과학적 가설로 창조와 홍수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뒤집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선언의 요지였습니다.

이러한 읽기는 창세기 1~3장을 신화나 상징시, 신학적 은유로 바꾸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창세기의 히브리어 제목은 첫 단어를 그대로 딴 “베레쉬트”, 곧 “태초에"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창세기"라는 이름은 기원전 3세기경 헬라어로 번역된 칠십인역 성경이 붙인 “게네시스(기원)“에서 왔습니다.

그러면 이 책은 누가 썼을까요?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다섯 권, 곧 모세오경은 모세가 기록한 책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을 말씀하셨고(눅 24:44), “모세가 나를 가리켜 기록하였음이라"고 증언하셨습니다(요 5:46~47).

미켈란젤로의 「모세」 조각상, 로마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교황 율리오 2세 무덤의 일부)
미켈란젤로의 「모세」 조각상, 로마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교황 율리오 2세 무덤의 일부)

일부 비평학자들은 오경이 여러 시대의 자료를 후대에 이어 붙인 것이라는 문서설을 내세워 왔습니다. 혹시 “학자들의 주장이니 일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시나요? 그 이론은 성경 자체의 증언과 그리스도의 권위를 내려놓은 자리에서 출발한 가설일 뿐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모세의 책이라 하신 말씀을 그대로 받으며, 해석이 갈리는 대목에서는 학자의 가설이 아니라 성경이 스스로 말하는 바를 따르겠다는 자세를 오늘 묵상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창세기의 첫 독자

전통적인 이해에 따르면 창세기를 처음 받은 사람들은 이집트에서 수백 년 동안 노예로 살다가 막 풀려나 광야를 걷던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은 태양신 라를 비롯해 나일 강과 개구리, 소에 이르기까지 온갖 신을 섬기는 문화 속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앞으로 들어갈 가나안 땅에는 폭풍의 신 바알과 다산의 여신 아세라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집트에서 벽돌을 만드는 사람들, 렉미레 무덤(TT 100) 벽화 모사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이집트에서 벽돌을 만드는 사람들, 렉미레 무덤(TT 100) 벽화 모사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이런 사람들에게 창세기 1장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라는 호기심을 채워 주기 전에, “너희를 건져 낸 그분이 도대체 누구신지 아느냐"를 들려주는 신앙의 선언이었을 것입니다. 평생 남의 집 하인으로 살던 사람에게 “이 땅 모든 곳의 진짜 주인이 너를 자녀로 삼으셨다"고 알려 주는 상속 문서와 같았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읽을 때 익숙한 본문도 전혀 다른 빛깔로 다가옵니다.

이집트 남시나이의 광야 풍경
이집트 남시나이의 광야 풍경

고대 근동 창조 신화와의 차이

같은 시대 이웃 나라들은 세상의 기원을 어떻게 설명했는지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날의 이라크와 시리아, 이스라엘, 이집트, 튀르키예 일대를 학자들은 “고대 근동"이라고 부르며,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창조 신화가 바벨론의 서사시 「에누마 엘리시」입니다. 제목은 “높은 곳에서 하늘이 아직 이름 지어지지 않았을 때"라는 첫 구절에서 따왔습니다.

에누마 엘리시 점토판 조각(K.3473), 니느웨 아슈르바니팔 도서관 출토, 대영박물관 소장
에누마 엘리시 점토판 조각(K.3473), 니느웨 아슈르바니팔 도서관 출토, 대영박물관 소장

이 서사시가 새겨진 점토판은 1849년부터 영국 고고학자들이 니느웨의 아슈르바니팔 왕 도서관 터에서 발굴했고, 1876년 조지 스미스가 번역하여 세상에 알렸습니다. 내용은 충격적입니다. 바다의 여신 티아마트와 신들이 처절한 전쟁을 벌이다가, 승리한 마르둑이 티아마트의 몸을 둘로 갈라 한쪽으로 하늘을, 다른 쪽으로 땅을 만듭니다. 이어서 반역한 신 킹구의 피로 인간을 빚는데, 인간을 만든 목적은 신들이 하기 싫어하는 노동을 대신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니느웨 성벽의 네르갈 문 유적, 이라크 모술 인근(2008년 촬영, 미 공군)
니느웨 성벽의 네르갈 문 유적, 이라크 모술 인근(2008년 촬영, 미 공군)

이제 창세기 1장을 나란히 놓아 보십시오. 창세기의 하나님은 누구와도 싸우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있으라” 하시는 말씀 한마디로 세상을 지으신 분입니다. 바다와 바다 짐승들도 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일 뿐이고(1:21), 인간은 신들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아 복을 받고 세상을 다스리도록 맡겨진 존재입니다(1:26~28).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창세기가 바벨론 신화를 빌려다 고쳐 쓴 글이라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는 순서를 정반대로 봅니다.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전해진 참된 창조의 진리가 있었고,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된 것으로 바꾼 인류(롬 1:21~25)가 그것을 일그러뜨려 신화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와 이웃 신화가 닮은 구석이 있다면 그것은 창세기의 차용이 아니라 신화의 왜곡을 보여 줄 따름입니다.

구약학자 게르하르트 하젤은 1974년 『이밴젤리컬 쿼털리』에 실은 논문 「창세기 우주론의 논쟁적 성격」에서, 창세기 1장이 이웃 종교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겨냥한 글이라고 짚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넷째 날입니다. 히브리어로 해는 “셰메쉬”, 달은 “야레아흐"인데, 주변 민족에게는 이 말이 곧 태양신과 달신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16절은 해와 달이라는 이름을 아예 쓰지 않고 “큰 광명체"와 “작은 광명체"라고만 부릅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절하던 태양이 하나님께는 어떤 존재일까요? 하나님이 하늘에 걸어 두신 등불 하나일 뿐입니다. 조용하지만 단호한 선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태양신 샤마시가 옥좌에 앉은 모습을 새긴 석판 부조, 바빌로니아 시파르 출토(기원전 9세기), 대영박물관 소장
태양신 샤마시가 옥좌에 앉은 모습을 새긴 석판 부조, 바빌로니아 시파르 출토(기원전 9세기), 대영박물관 소장

문자 그대로의 6일 창조

창세기 1장 2절은 창조가 시작되기 전의 모습을 “혼돈하고 공허하며"라고 그립니다. 히브리어로는 “토후 와보후"인데, 운율이 맞는 이 두 단어는 “모양이 없고 텅 비어 있다"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엿새의 창조는 바로 이 두 가지, 곧 모양 없음과 텅 빔을 차례로 해결해 갑니다.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 하나님은 빛과 어둠, 위의 물과 아래의 물, 바다와 뭍을 나누시며 살 곳의 틀을 만드십니다.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그 공간에 거주자가 채워지는 순서입니다. 첫째 날의 빛에는 넷째 날의 해와 달과 별이, 둘째 날의 하늘과 물에는 다섯째 날의 새와 물고기가, 셋째 날의 뭍에는 여섯째 날의 짐승과 사람이 짝을 이룹니다. 이는 본문의 아름다운 짜임새를 보여 주는 관찰일 뿐, 엿새를 실제 시간이 아니라 문학적 틀로 바꾸어도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건축가가 먼저 방을 나누고 가구를 들여놓은 뒤에야 집주인을 맞이하듯, 하나님도 온 우주라는 집을 먼저 정성껏 준비하시고 마지막 날에 사람을 지으셨다는 점을 기억해 두는 것이면 족하겠습니다.

새와 물고기와 짐승과 사람의 창조 장면, 이탈리아 시칠리아 몬레알레 대성당 모자이크, 웰컴 컬렉션
새와 물고기와 짐승과 사람의 창조 장면, 이탈리아 시칠리아 몬레알레 대성당 모자이크, 웰컴 컬렉션

그렇다면 “날"은 정말 하루 24시간일까요? 히브리어 “욤"은 문맥에 따라 다른 뜻으로도 쓰이지만, 창세기 1장의 날에는 “첫째 날”, “둘째 날” 같은 서수가 붙어 있습니다. 거기에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표현이 어김없이 따라옵니다. 구약학자 게르하르트 헤이젤은 1994년 『오리진스』에 실린 논문 「창세기 1장의 ‘날’」에서 이러한 언어적 증거를 포함한 열 가지 근거로 문자적인 엿새의 창조 주간을 변호했습니다.

더 결정적인 증거는 십계명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의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고 말씀하시며(출 20:11), 우리의 일주일을 창조 주간의 모형으로 삼으셨습니다. 일주일이 문자 그대로의 일주일이라면 그 모형이 된 창조 주간도 문자 그대로여야 하지 않을까요?

이 때문에 우리는 창조의 날을 수억 년의 긴 시대로 늘리는 견해나 하나님이 점진적으로 창조하셨다는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진화론을 배격하며, 하나님이 진화를 도구로 쓰셨다는 유신 진화론도 배격합니다. 진화는 죽음과 고통이 수억 년 동안 이어진 끝에 사람이 나타났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다"고 선언합니다(롬 5:12). 피조 세계가 허무한 데 굴복하여 탄식하게 된 것도 사람의 죄 때문입니다(롬 8:19~22).

그러니 “심히 좋았더라”(1:31)는 선포를 받은 세상에는 아직 죽음이 없었습니다. 만일 죽음이 먼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죄가 죽음을 불러왔다는 복음의 논리부터 무너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유대인 학자 움베르토 카수토는 이 본문에 숫자 7이 정교하게 숨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1장 1절은 히브리어로 정확히 일곱 단어이고, 2절은 그 두 배인 열네 단어입니다. 일곱째 날을 다룬 2장 1~3절에는 “일곱째 날"이 세 번 거듭 나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평가도 일곱 번 등장하며, 마지막 일곱 번째에 이르러 “심히 좋았더라"로 절정을 맞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7은 완전함의 숫자였으므로, 이는 하나님의 창조가 빈틈없이 완전했다는 사실을 글의 짜임새로도 증언하는 셈입니다.

핵심 원어로 읽는 창세기 1장

창세기 1장 1절의 첫 세 단어는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입니다. 그중 “바라"는 “창조하다"라는 동사로, 구약에서 이 동사의 주어는 언제나 하나님뿐입니다. 사람도 무언가를 “만들” 수는 있으나 “바라”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레닌그라드 코덱스(히브리어 마소라 사본, 11세기 초) 1v쪽, 창세기 1:1~26, 러시아 국립도서관 소장
레닌그라드 코덱스(히브리어 마소라 사본, 11세기 초) 1v쪽, 창세기 1:1~26, 러시아 국립도서관 소장

요리사는 밀가루와 계란과 설탕이 있어야 케이크를 만들고, 조각가는 대리석 덩어리가 있어야 조각을 합니다. 하나님은 어떨까요? 재료 자체를, 아니 재료가 놓일 시간과 공간까지도 지으신 분입니다. 이처럼 아무것도 없는 데서 말씀만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신학에서는 “무에서의 창조"라 부르며, 히브리서 11장 3절이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한 말씀도 같은 진리를 가리킵니다.

“엘로힘"은 “하나님"이라는 뜻인데, 문법상 복수형이면서도 함께 쓰인 동사 “바라"는 단수형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를 존귀함과 충만함을 강조하는 “위엄의 복수"로 설명합니다. 초대 교회 교부들은 여기에 1장 2절의 하나님의 영과 3절의 말씀을 겹쳐 보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그림자를 읽어 냈습니다. 신약은 만물이 성자를 통해 지어졌음을 분명히 밝혀 줍니다(요 1:3, 골 1:16).

1장 2절의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에서 “운행하다"로 옮긴 “메라헤페트"는, 신명기 32장 11절에서 독수리가 새끼 위를 맴돌며 지켜 줄 때 쓰인 말입니다. 어둡고 텅 빈 깊음 위에서도 하나님의 영은 어미 새가 둥지를 품듯 세상을 품고 계셨습니다. 삶이 혼돈스럽게 느껴질 때면 이 그림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1장 6절의 “궁창"은 히브리어로 “라키아"인데, 금속을 망치로 두드려 얇게 펼친다는 동사에서 온 말로 “펼쳐진 공간"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셨습니다(1:8). 그렇다면 궁창 위의 물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근본주의 진영 안에서도 지구를 감싼 수증기층으로 보는 견해를 비롯해 여러 해석이 제시되어 왔습니다. 어느 해석을 택하든 성경은 오류 없는 말씀이며, 본문의 서술을 있는 그대로 받는다는 점만큼은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 창세기 1장의 정점

창세기 1장의 정점은 26~28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형상"은 히브리어로 “첼렘”, “모양"은 “데무트"이며, 첼렘은 본래 조각상이나 형상물을 가리키는 구체적인 단어였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하나님의 “조각상"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실마리는 1979년 시리아 북동부에서 발견된 텔 페케리예 석상에 있습니다. 기원전 9세기경 그 지역 통치자 하다드이시를 새긴 이 석상에는 아카드어와 아람어 비문이 함께 새겨져 있었고, 아람어 비문은 첼렘과 데무트의 동족어를 나란히 써서 석상을 가리켰습니다. 이 발견은 앨런 밀러드와 피에르 보르데이유가 1982년 『성서고고학자』에 발표했습니다. 직접 갈 수 없는 땅에 자기 형상을 세워 두고 “이 땅의 주인은 바로 나다"라는 통치권을 표시하는 것이 고대 근동 왕들의 관례였던 것입니다.

텔 페케리예 석상, 기원전 9세기, 첼렘과 데무트의 동족어가 새겨진 비문
텔 페케리예 석상, 기원전 9세기, 첼렘과 데무트의 동족어가 새겨진 비문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존 웨슬리가 『구약성서 주해』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세 겹으로 설명한 이유가 한결 분명해집니다. 웨슬리가 먼저 든 것은 자연적 형상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이해력과 의지와 정서를 갖춘 지성적이고 불멸하는 영이며, 바로 그 점에서 영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닮았다고 웨슬리는 풀이했습니다. 둘째는 정치적 형상으로, 피조물을 다스리는 사람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와 같다는 뜻입니다.

셋째이자 가장 중요한 것이 도덕적 형상입니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형상이 지식과 의로움과 참된 거룩함에 있다고 보았고, 타락 전 사람은 지성과 의지와 정서가 모두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맞추어져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타락으로 가장 크게 훼손된 것이 바로 이 도덕적 형상입니다. 그러니 구원이란 결국 이 형상을 되찾는 일이 아닐까요? 구원은 이 형상의 회복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가 뒤에서 다시 나옵니다.

쉬운 비유로 한 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사관의 대사는 자기 이름이 아니라 본국 정부를 대표하여 일하고, 사람들은 그를 보며 그 나라의 품격을 가늠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도 말과 일과 관계를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세상에 보여 주는 대사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1장 28절의 “정복하라”, “다스리라"는 마음대로 착취하라는 허락이 아니라, 창조주의 성품을 닮은 방식으로 돌보고 가꾸라는 청지기의 사명입니다.

미켈란젤로, 「아담의 창조」,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1508~1512)
미켈란젤로, 「아담의 창조」,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1508~1512)

일곱째 날의 안식: 창조의 목적지

창세기 2장 1~3절은 여섯째 날에서 멈추지 않고 일곱째 날로 마무리됩니다. 눈여겨볼 점이 하나 있습니다. 앞의 엿새에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맺음말이 모두 붙어 있는데, 일곱째 날에는 그 말이 없습니다. 많은 주석가들은 이를 하나님의 안식이 끝나지 않고 계속 열려 있다는 암시로 풀이하며, 히브리서 4장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라"고 초대하는 것도 이 열린 일곱째 날을 배경으로 합니다.

창조를 마치고 안식하시는 하나님, 몬레알레 대성당 비잔틴 모자이크
창조를 마치고 안식하시는 하나님, 몬레알레 대성당 비잔틴 모자이크

“안식하다"로 옮긴 “샤바트"는 지쳐서 눕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치다, 완성하고 멈추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피곤하셔서 쉬신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을 완벽하게 이루신 뒤 그것을 기뻐하며 누리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는데(2:3), 성경에서 “거룩하다"는 말이 처음 붙은 대상이 장소도 물건도 사람도 아닌 시간이라는 점이 참으로 인상적이지 않나요?

안식일(샤바트) 전날 저녁 촛불을 밝히는 데 쓰는 은촛대
안식일(샤바트) 전날 저녁 촛불을 밝히는 데 쓰는 은촛대

창세기 2장: 사람 창조의 확대 조명

창세기 2장 4절은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로 새 단락을 엽니다. 여기서 “내력"으로 옮긴 “톨레돗"은 “족보, 계보, 이야기의 흐름"을 뜻하며, 창세기는 이 표지를 따라 열 개 남짓한 단락으로 나뉩니다. 1장과 2장이 서로 다른 두 이야기가 아니라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하나의 역사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장치입니다.

1장이 하늘 높은 곳에서 온 우주를 내려다보는 광각 렌즈라면, 2장은 에덴 동산이라는 한 곳에 내려와 한 사람을 바싹 비추는 접사 렌즈입니다. 하나님의 이름도 달라져서, 1장의 우주 창조주 “엘로힘"에 언약의 하나님을 뜻하는 “여호와"가 더해져 “여호와 하나님"으로 불리게 됩니다. 온 우주의 주권자가 동시에 한 사람과 가까이 사귀시는 분임을 두 이름이 함께 증언하는 것입니다.

2장 7절은 사람의 창조를 놀랍도록 생생하게 그립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에서 “지으시고"로 옮긴 “야차르"는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그릇을 빚는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아담”, 땅은 “아다마"이니 원문에는 흙에서 나온 존재라는 말놀이가 살아 있는 셈입니다. 이 본문은 사람이 짐승에서 진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흙으로 직접 빚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신 존재임을 분명히 합니다.

물레 위에서 진흙 그릇을 빚는 도공
물레 위에서 진흙 그릇을 빚는 도공

그렇다면 아담은 우화 속 인물일까요? 아닙니다. 아담은 역사 속에 실재한 첫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3장 38절은 예수님의 족보를 “아담의 아들"까지 거슬러 올라가 기록하고, 바울은 한 사람 아담의 범죄와 한 사람 그리스도의 순종을 나란히 놓습니다(롬 5:12~21, 고전 15:22, 45). 아담이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면 그의 타락도, 그리스도의 구속도 뿌리를 잃고 맙니다.

하나님이 그 코에 “생기”, 곧 “니슈마트 하임"을 불어넣으시자 사람은 “생령”, 곧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한없이 낮은 흙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숨결을 품은 존귀한 존재라는 두 가지 진실이 한 장면에 담겨 있습니다. 교만해지려는 날에는 흙을 기억하고, 낙심하는 날에는 하나님의 숨결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장면, 몬레알레 대성당 비잔틴 모자이크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장면, 몬레알레 대성당 비잔틴 모자이크

에덴 동산: 실재한 동산, 하나님의 처소

2장 8절의 “에덴"은 “기쁨"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입니다. 10~14절은 에덴에서 흘러나온 강이 네 갈래로 나뉘었다고 하며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를 소개하는데, 이 가운데 힛데겔은 오늘날의 티그리스 강으로, 유브라데는 유프라테스 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에덴이 실제 지리 속에 자리한 실제 동산이라는 증거가 아닐까요? 비손과 기혼의 위치에 대해서는 근본주의 진영의 헨리 모리스가 『창세기 기록』에서, 노아의 홍수로 지형이 크게 바뀌었으므로 홍수 이후의 강들이 홍수 이전 강들의 이름을 물려받았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티그리스(힛데겔)와 유프라테스(유브라데) 강이 흐르는 메소포타미아 지역 지도(『엔사이클로피디아 비블리카』 수록)
티그리스(힛데겔)와 유프라테스(유브라데) 강이 흐르는 메소포타미아 지역 지도(『엔사이클로피디아 비블리카』 수록)

한편 고든 웬함은 1986년 세계유대학회에서 발표한 논문 「에덴 동산 이야기의 성소 상징」에서 에덴과 성막 사이의 놀라운 연결 고리들을 짚었습니다. 2장 12절의 금과 호마노는 훗날 성막과 대제사장의 에봇을 꾸미는 보석이고(출 25:7, 28:9), 3장 24절에서 동산 입구를 지키는 그룹들은 성막의 휘장과 언약궤 위에 새겨진 존재들입니다(출 25:18~22, 26:31). 동산의 입구가 동쪽을 향한 것도 성막과 성전의 입구와 같습니다.

이스라엘 팀나 공원에 세워진 성막 실물 크기 모형
이스라엘 팀나 공원에 세워진 성막 실물 크기 모형

결정적인 연결 고리는 2장 15절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동산에 두어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는데, 이 두 동사 “아바드"와 “샤마르"가 함께 쓰이는 곳은 오경에서 레위인이 성막에서 섬기고 지키는 직무를 설명할 때입니다(민 3:7~8, 8:26). 에덴은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거니시던 첫 만남의 장소였고, 아담은 그곳을 맡은 첫 청지기였던 것입니다. 성막 안의 일곱 가지 등잔대 메노라가 줄기와 가지와 살구꽃을 가진 나무처럼 빚어진 것도(출 25:31~36) 잃어버린 에덴의 생명나무를 떠올리게 합니다.

아치 오브 티투스에 새겨진 성전 메노라 부조, 메노라는 생명나무를 연상시키는 형상으로 이해되곤 합니다
아치 오브 티투스에 새겨진 성전 메노라 부조, 메노라는 생명나무를 연상시키는 형상으로 이해되곤 합니다
토머스 콜, 「에덴 동산」(1828)
토머스 콜, 「에덴 동산」(1828)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그리고 돕는 배필

2장 16~17절에서 하나님은 동산의 모든 나무 열매를 “임의로” 먹으라 하시고 오직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하나만 금하셨습니다. 먼저 마음에 새길 것은 하나님의 첫 명령이 금지보다 허락이 훨씬 컸다는 사실입니다. 그 한 그루는 사람이 피조물이고 하나님이 창조주시라는 경계를 기억하게 하는 표지였습니다. “선악을 안다"는 말은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를 스스로 정하는 권한을 쥐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운동 경기에서 선수가 심판의 판정을 거부하며 “규칙은 내가 정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 경기가 어떻게 될까요? 그 나무가 사람에게 던진 질문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너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정의를 따르겠느냐, 아니면 네가 하나님이 되어 선악을 판정하겠느냐.”

2장 18절에는 성경 최초로 “좋지 아니하니"라는 말이 나옵니다. 모든 것이 좋았던 세상에서 유일하게 좋지 않았던 것은 사람이 혼자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돕는 배필”, 히브리어로 “에제르 케네그도"를 지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에게 꼭 맞는 돕는 자“라는 뜻입니다. 구약에서 “에제르"는 대부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도우실 때 쓰인 단어이니(시 33:20, 121:1~2) 결코 하찮은 보조자를 뜻할 수 없습니다.

2장 21~22절에서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셨습니다. 청교도 주석가 매튜 헨리는 이 장면에 대해 오늘날까지 자주 인용되는 해설을 남겼습니다. 여자는 남자를 다스리라고 머리에서, 짓밟히라고 발에서 취해진 것이 아니라 동등하도록 옆구리에서, 보호받도록 팔 아래에서, 사랑받도록 심장 가까이에서 취해졌다는 것입니다.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는 하나님, 몬레알레 대성당 비잔틴 모자이크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는 하나님, 몬레알레 대성당 비잔틴 모자이크

2장 23절에서 아담은 성경 최초의 시를 읊습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남자는 “이쉬”, 여자는 “이샤"로 말놀이가 이어지고, 24절의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는 훗날 예수님이 결혼을 가르치시며 직접 인용하셨습니다(마 19:5). 25절이 두 사람은 벌거벗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전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도 서로 앞에서도 감출 것이 없던 투명함과 신뢰를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레닌그라드 코덱스(히브리어 마소라 사본, 11세기 초) 2v쪽, 창세기 2:19~3:18, 러시아 국립도서관 소장
레닌그라드 코덱스(히브리어 마소라 사본, 11세기 초) 2v쪽, 창세기 2:19~3:18, 러시아 국립도서관 소장

창세기 3장: 의심의 씨앗

3장 1절은 “그런데"로 시작하며 분위기를 단숨에 바꿉니다. 원문에서 2장 25절의 “벌거벗은"은 “아룸밈”, 3장 1절의 “간교한"은 “아룸"입니다. 소리가 닮은 두 단어를 나란히 놓음으로써 순진함과 교활함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뱀은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한” 존재로 소개되는데, 이는 뱀도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일 뿐임을 분명히 합니다. 신약은 이 옛 뱀이 사탄, 곧 마귀임을 밝혀 줍니다(계 12:9).

뱀의 첫마디는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나님은 “모든 나무를 마음껏 먹으라” 하셨는데, 뱀은 “모든 나무를 먹지 말라고 하셨느냐"고 되물으며 넉넉하신 하나님을 인색한 하나님처럼 바꾸어 놓습니다. 유혹은 어디서 시작될까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의심에서 시작됩니다.

미켈란젤로, 「유혹과 타락」,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1508~1512)
미켈란젤로, 「유혹과 타락」,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1508~1512)

여자의 대답에도 아주 작은 균열이 보입니다. 하나님은 “만지지 말라"고 하신 적이 없는데 여자는 “만지지도 말라"를 덧붙였고, “반드시 죽으리라"는 분명한 경고를 “죽을까 하노라"로 흐리게 말했습니다. 많은 주석가들은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빼는 것이 영적 무너짐의 시작이라는 교훈을 읽어 냅니다. 뱀은 곧바로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며 말씀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하나님이 너희가 자기와 같아지는 것을 시기하신다는 거짓 동기까지 덧씌웁니다.

3장 6절에서 여자가 보니 그 나무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요한일서 2장 16절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과 놀랄 만큼 겹칩니다.

그러면 아담은 그동안 어디에 있었을까요? 본문은 그가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이었다고 전합니다.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말씀을 지킬 책임을 감당하지 않고 침묵했다는 뜻이 은연중에 담겨 있습니다.

루카스 크라나흐, 「아담과 하와」(1528), 우피치 미술관
루카스 크라나흐, 「아담과 하와」(1528), 우피치 미술관

숨는 사람, 찾아오시는 하나님

3장 7절에서 두 사람의 눈이 밝아졌지만, 그들이 알게 된 것은 하나님 같은 지혜가 아니라 자신들이 벌거벗었다는 수치였습니다. 뱀의 약속은 절반만 사실이었고, 그 절반의 사실이 가장 무서운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들이 엮은 무화과나무 잎 치마는 죄를 지은 사람이 제 힘으로 수치를 가리려는 모든 종교적·도덕적 노력의 원형이라 하겠습니다.

무화과나무(Ficus carica)의 어린 잎, 프랑스 타위냐
무화과나무(Ficus carica)의 어린 잎, 프랑스 타위냐

3장 8절의 “그 날 바람이 불 때"는 서늘한 바람이 부는 저녁 무렵으로 보는 해석이 일반적입니다. 그때 동산을 “거니시는” 하나님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동사 “미트할레크"는 훗날 하나님이 성막 가운데서 백성과 함께 다니실 때 쓰이는 말입니다(레 26:12, 삼하 7:6). 늘 기쁨이던 그 발소리가 두려움으로 바뀌어, 두 사람은 나무 사이로 숨어 버렸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먼저 부르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3:9). 전지하신 하나님이 아담의 위치를 몰라서 물으셨을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 질문은 죄인을 다그치는 심문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나선 아버지의 부르심이었습니다.

이 부르심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 먼저 찾아오시는 은혜를 보여 줍니다. 구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첫 소원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첫 빛, 죄를 지었다는 가벼운 첫 가책으로 시작되는데, 이 모두가 하나님이 먼저 주시는 은혜의 일입니다. 아담이 아직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먼저 부르신 이 장면이 바로 그 은혜의 첫 그림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대답은 책임 떠넘기기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를 탓하며 결국 하나님까지 원망했고, 여자는 뱀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3:12~13). 불과 한 장 전에 “내 뼈 중의 뼈"라고 노래하던 사이가 손가락질하는 사이로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땅 사이까지 연달아 무너뜨립니다.

원시복음: 심판 속의 약속

3장 14~19절의 심판 선언 한가운데서 하나님은 뱀에게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3:15). 교회는 이 구절을 “프로토에반겔리온”, 곧 원시복음, 최초의 복음이라 불러 왔습니다.

눈여겨볼 표현은 “여자의 후손"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후손을 보통 아버지 쪽으로 헤아렸는데, 여기서는 특이하게 여자의 후손이라 합니다. 2세기 교부 이레나이우스는 『이단 논박』 제3권과 제5권에서 이 구절을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어 사탄의 머리를 밟으실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풀이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갈 4:4)라고 하여 이 약속의 메아리를 들려줍니다.

카라바조, 「뱀의 성모」, 로마 보르게세 미술관
카라바조, 「뱀의 성모」, 로마 보르게세 미술관
이레나이우스 『이단 논박』 초판본 표지, 에라스뮈스 편·요한 프로벤 인쇄(1526)
이레나이우스 『이단 논박』 초판본 표지, 에라스뮈스 편·요한 프로벤 인쇄(1526)

그렇다면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와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각각 언제 이루어질까요? 발꿈치의 상처는 아프지만 치명적이지 않은 상처로, 그리스도가 초림 때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신 일을 가리킵니다. 머리의 상처는 치명적인 상처이니, 사탄의 권세가 결정적으로 꺾이는 재림의 때에 이루어집니다. 요한계시록 20장은 재림하신 그리스도께서 사탄을 천 년 동안 무저갱에 가두시고(20:1~3), 천 년이 끝난 뒤 불못에 던지신다고(20:10) 예언하고 있습니다.

3장 20절에서 아담은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짓습니다. “살다"라는 동사 “하야"와 이어지는 이름으로 “생명"을 뜻합니다. 방금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죽음의 선고를 들은 사람이 아내를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 부른 것입니다. 이를 3장 15절의 약속을 붙든 믿음의 고백으로 보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가죽옷과 불 칼: 은혜와 심판

3장 21절은 짧지만 가슴이 뭉클해지는 구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사람이 만든 무화과 잎 옷은 금세 시들어 버리지만, 하나님은 가죽으로 된 튼튼한 옷을 손수 지어 입혀 주셨습니다. 가죽옷이 생기려면 어떤 생명이 희생되어야 했을 테니, 이 장면은 죄인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대신 피 흘린 희생의 그림자를 보여 줍니다.

마지막으로 3장 22~24절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동산에서 내보내시고,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키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 추방은 단순한 형벌이었을까요?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이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영원히 산다면 그것은 죄와 고통의 상태가 영원히 굳어 버리는 비극일 것입니다. 그래서 추방은 심판이면서 동시에 자비였습니다.

마사초, 「낙원에서의 추방」, 피렌체 브란카치 예배당 프레스코(1425년경)
마사초, 「낙원에서의 추방」, 피렌체 브란카치 예배당 프레스코(1425년경)

경륜으로 보는 창세기 1~3장과 장차 올 나라

세대주의를 널리 퍼뜨린 대표적인 스터디 바이블 『스코필드 관주성경』(1909)은 하나님이 인류를 다루시는 방식을 몇 개의 경륜, 곧 세대로 나누어 이해하는 틀을 제시한 책입니다. 스코필드는 경륜을 하나님의 뜻에 관한 어떤 특정한 계시에 대한 순종 여부로 사람이 시험받는 기간으로 정의했습니다. 찰스 라이리는 『세대주의』에서 이 체계를 떠받치는 핵심 원리로 성경을 일관되게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을 꼽았습니다.

사이러스 스코필드(1843~1921), 1920년경 사진
사이러스 스코필드(1843~1921), 1920년경 사진

이 구도에서 창세기 1장 28절에서 시작되는 첫 번째 경륜은 무죄 시대입니다. 사람은 흠 없이 창조되어 완전한 환경에 놓였고, 아주 단순한 시험을 받았으며, 불순종의 결과를 미리 경고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낙원에서의 추방이라는 심판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이어 3장 23절에서 양심 시대가 열립니다. 사람은 불순종을 통해 선악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고 양심이 깨어났으며, 아담 언약 아래서 알려진 선을 행하고 알려진 악을 멀리하며 희생제사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했습니다. 창세기 6장 5절이 보고하듯 악이 가득해지자 이 시대는 홍수의 심판으로 끝납니다.

클래런스 라킨이 그린 세대주의 시대 구분 도표(1918)
클래런스 라킨이 그린 세대주의 시대 구분 도표(1918)

그렇다면 에덴에서 잃어버린 것은 영영 잃은 채로 끝나고 마는 걸까요?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답합니다. 재림하신 그리스도께서 천 년 동안 지상을 다스리실 때(계 20:1~6)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 에덴의 평화가 땅 위에 다시 펼쳐집니다(사 11:6~9, 65:25).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막혔던 생명나무의 길이 다시 열려, 요한계시록의 말씀대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그 잎사귀로 만국을 치료하게 될 것입니다(계 2:7, 22:2, 14).

그러므로 창세기 3장 24절에서 불 칼이 지키던 길은 그리스도께서 열어 주신 길을 통해, 신자에게는 이미 열려 있고 마침내 온전히 열릴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는 이 소망을 품고 오늘을 삽니다.

묵상과 적용

광야를 걷던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바로라는 신적인 왕 아래서 노예로 살았고, 자기 가치를 하루에 만든 벽돌 개수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창세기 1장은 “너희는 벽돌 기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이다"라는 선언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수천 년이 흐른 오늘, 실적과 연봉과 성적으로 자신을 평가하며 지쳐 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은 선언이 울려 퍼집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아픈 진실도 함께 전합니다. 하나님의 형상, 특히 그 도덕적 형상이 아담의 타락으로 크게 훼손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평가 결과에 마음이 가라앉는 날, 자녀의 성적표 앞에서 속이 상하는 날, 나이 들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은 날에 우리는 무엇을 붙들어야 할까요? 두 가지 진실을 함께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그 형상이 죄로 일그러졌으며 오직 은혜로만 회복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회복의 길에는 두 갈래가 있습니다. 칭의로 우리는 죄의 죄책에서 건져져 하나님의 은총을 회복하고, 성화로 죄의 권세와 뿌리에서 건져져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합니다. 그리고 성화는 칭의를 받는 바로 그 순간에 이미 시작됩니다. 은혜와 성화는 앞뒤로 줄 선 두 단계가 아니라 함께 가는 하나의 구원입니다.

이 구도는 오늘 본문 안에서 선명하게 보입니다. 하나님은 숨은 아담을 먼저 찾아오셨고, 무화과 잎을 걷어 내시고 가죽옷을 손수 입히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은혜는 가죽옷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를 에덴 이전의 거룩함, 곧 지식과 의로움과 참된 거룩함으로 다시 지어 가십니다(엡 4:24, 골 3:10). 받은 은혜 위에서 날마다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부르심입니다.

그렇다면 이 부르심을 구체적인 삶으로 옮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이렇게 고백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맡기신 동산을 지키는 청지기로 일하러 갑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동산에 두시고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으니, 노동은 타락의 결과가 아니라 타락 이전부터 주어진 거룩한 소명입니다.

사무실의 보고서도, 병원의 환자도, 부엌의 식사도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이 한마디가 하루의 무게를 달라지게 할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은 일곱째 날도 거룩하게 구별해 두셨습니다. 쉼 없이 일하는 모습은 성실함으로 보이기 쉽지만, 실은 세상이 내 손에 달려 있다고 믿는 은밀한 교만일 수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일정표에 “일하지 않는 시간"을 먼저 적어 넣어 보십시오. 그 시간만큼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가족과 걷거나 말씀을 천천히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유혹을 대하는 자세도 짚어 보겠습니다. 뱀은 하나님의 말씀을 슬쩍 비틀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게 만들고, 마지막으로 눈에 보이는 매력으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재정 문제 앞에서 “하나님이 정말 나를 돌보실까” 하는 의심이 고개를 들면, 정직하지 않은 방법이 어느새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유혹을 이기는 싸움은 열매 앞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느냐의 자리에서 결정됩니다.

아담의 침묵도 곰곰이 묵상해 볼 만한 대목입니다. 혹시 우리는 자녀가 위험한 길로 들어서는 것을 보면서도 불편한 대화를 피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공동체 안에서 잘못된 일이 벌어지는 줄 알면서 입을 다물고 있지는 않은가요?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이 주신 여자 때문입니다” 하던 아담처럼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습관이 우리 안에 있다면, 오늘 그것을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재림의 소망 안에서 살아갑니다. 에덴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완성될 것이며, 요한 사도는 이 소망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그분이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고 말합니다(요일 3:2~3). 곧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이야말로 오늘의 거룩한 삶을 이끄는 가장 큰 힘입니다.

혹시 부끄러운 일 때문에 기도의 자리를 피해 오시지는 않았나요? 무화과 잎 같은 변명과 바쁨 뒤에 자신을 숨겨 오시지는 않았나요? 그렇다면 오늘 하나님은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구속사의 눈으로 보면 첫 아담이 동산에서 무너진 그 시험을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광야에서 이기셨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며 순종하셨습니다. 오늘 하루, 실패한 첫 아담의 자리에 머물지 말고 승리하신 마지막 아담 안에서 새롭게 출발하시기를 마음 깊이 권면드립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셨다고 전해지는 예루살렘 겟세마네 동산의 오래된 올리브나무
예수님이 기도하셨다고 전해지는 예루살렘 겟세마네 동산의 오래된 올리브나무

예화

존 웨슬리의 올더스게이트: 숨은 종교인, 찾아오신 은혜

창세기 3장의 아담처럼 종교의 무화과 잎 뒤에 숨어 있던 사람이 은혜로 찾아내어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의 이야기입니다. 웨슬리는 1703년 영국 엡워스의 목사관에서 태어났습니다. 옥스퍼드 대학 시절에는 동생 찰스와 함께 규칙적인 기도와 성경 읽기, 금식, 빈민과 죄수 방문에 힘쓰는 모임을 이끌었는데, 이 모임을 비웃던 사람들은 “신성 클럽"이라는 별명까지 붙였던 것입니다.

잉글랜드 엡워스의 옛 목사관(현 건물은 1709년 건립), 웨슬리 가족이 살았던 집
잉글랜드 엡워스의 옛 목사관(현 건물은 1709년 건립), 웨슬리 가족이 살았던 집

그러던 1735년, 웨슬리는 미국 조지아 식민지로 건너가 인디언 선교에 나서게 됩니다.

그러나 그 사역은 큰 실패로 끝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1738년 초 영국으로 돌아오는 배 위에서 그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저는 인디언들을 회심시키려고 미국에 갔습니다. 그러나 아, 누가 저를 회심시켜 줄까요?” 열심 있는 종교인이었으나 마음속에는 하나님 앞에서 확신도 평안도 없었던 것입니다.

존 웨슬리, 윌리엄 해밀턴 그림(1788),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
존 웨슬리, 윌리엄 해밀턴 그림(1788),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

그리고 1738년 5월 24일 저녁, 변화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웨슬리의 일기에 따르면 그날 저녁 그는 “마지못해” 올더스게이트 가의 신도 모임으로 향했고, 그곳에서는 누군가가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다고 합니다.

“9시 15분 전쯤, 그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이 마음속에 일으키시는 변화를 설명하고 있을 때, 저는 제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만을 신뢰하고 있음을 느꼈고, 그분이 제 죄를, 바로 저의 죄를 거두어 가시고 저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주어졌습니다.”

이 인용은 웨슬리의 『일기』를 우리말로 옮긴 것입니다.

런던 올더스게이트 가의 웨슬리 형제 회심 기념 명판(1926년 설치)
런던 올더스게이트 가의 웨슬리 형제 회심 기념 명판(1926년 설치)

이 장면을 창세기 3장에 겹쳐 보면 어떨까요? 아담이 나무 사이에 숨어 자기가 엮은 무화과 잎으로 수치를 가렸듯, 웨슬리도 경건한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가리려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평안은 더 열심히 노력한 대가였을까요? 아닙니다. 그리스도만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곧 가죽옷의 은혜로 얻은 평안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 먼저 찾아오시는 은혜가 한 사람의 삶에서 실제로 이루어졌고, 하나님이 부르신 그 자리가 칭의의 확신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웨슬리의 이야기는 올더스게이트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듬해인 1739년 브리스틀에서 들판 설교를 시작한 그는, 이후 반세기 넘도록 영국 전역을 누비며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의 삶에서도 칭의의 순간에 시작된 성화는 평생 이어져 사랑 안에서 온전해지는 길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은혜로 받은 구원이 거룩한 삶으로 열매 맺어야 한다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의 모임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영적 상태를 나누었고 가난한 이웃을 섬겼습니다. 에덴에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이 한 사람 한 사람 안에서 다시 빚어지는 일을 그는 평생 목격했던 것입니다.

한 책의 사람 웨슬리

웨슬리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열쇠는 성경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1746년 그는 표준 설교집 『여러 경우를 위한 설교』의 서문에 한 구절을 남겼습니다. 그 구절을 우리말로 옮겨 소개합니다.

“저는 하루살이 같은 피조물입니다. 화살이 공중을 가르듯 인생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에게서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영입니다.”

“저는 한 가지를 알고 싶습니다. 천국에 이르는 길, 곧 저 행복한 해안에 어떻게 안전하게 닿는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길을 가르쳐 주시려고 하늘에서 내려오셨습니다. 그분은 그 길을 한 권의 책에 기록해 두셨습니다. 오, 그 책을 제게 주십시오.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하나님의 책을 주십시오. 저는 이미 그것을 손에 쥐고 있습니다. 여기에 제게 충분한 지식이 있습니다. 저를 한 책의 사람이 되게 하십시오.”

이 고백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세상의 학문과 이론이 성경과 부딪힐 때 우리는 어느 쪽을 붙드시나요? 웨슬리는 성경이 천국으로 가는 길을 친히 기록한 하나님의 책이라고 믿었기에 그 책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았습니다. 그 책의 첫 장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합니다.

조지 워싱턴 브라운로, 「엡워스에서 아버지의 무덤 위에 서서 설교하는 존 웨슬리」, 보스턴 길드홀 박물관 소장
조지 워싱턴 브라운로, 「엡워스에서 아버지의 무덤 위에 서서 설교하는 존 웨슬리」, 보스턴 길드홀 박물관 소장

이 믿음 위에서 그는 평생 창세기 1장 27절의 하나님의 형상을 붙들었습니다. 『구약성서 주해』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지식과 의로움과 참된 거룩함에 있다고 쓴 것도, 구원이란 그 형상을 회복하는 일이라는 확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을 있는 그대로 믿을 때 일어난 일이 영국을 바꾸고 세계를 바꾸었습니다. 오늘 아침 창세기를 펼쳐 놓은 우리도 그 책 앞에 같은 자세로 서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오늘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의 가치를 성과와 비교에서 찾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는 진리 안에서 발견하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먼저 찾아오시는 은혜에 응답하여 칭의의 은혜를 감사로 받고, 그 은혜 위에서 날마다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성화의 길을 걷게 해 주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을 위해서는, 서로를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로 귀하게 여기며 책임을 떠넘기기보다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는 부부와 가족이 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자녀들이 진화론의 거짓된 속삭임 속에서도 하나님이 자신을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확신 위에 자라나도록, 우리 가정의 리듬 속에 일과 쉼이 균형 있게 자리 잡도록 간구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빼지 않고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전하는 교회가 되게 해 주시기를 구하는 마음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의 유혹에서 지켜 주시고, 각 성도가 자기 일터를 하나님이 맡기신 동산으로 여기며 섬기게 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우리 한국 사회를 위해서는, 지나친 경쟁과 과로 속에서 쉼을 잃어버린 이들이 참된 안식을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드립니다.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귀한 존재로 대우받기를 간구합니다. 마지막으로 열방을 위해, 아직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해와 달과 자연을 섬기는 민족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전쟁과 박해 속에서 신음하는 이들에게 여자의 후손이신 그리스도의 승리가 위로와 소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한마디로 빛을 있게 하시고, 혼돈 위에 질서를, 공허 위에 충만을 이루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연대기 성경 읽기의 첫날 아침에 태초의 말씀 앞에 섰습니다. 엿새 동안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심히 좋았더라” 하신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습니다. 어미 새가 둥지를 품듯 깊은 흑암 위에 운행하셨던 주님의 영이 지금 저의 삶의 혼돈과 공허 위에도 운행하고 계심을 믿으며 감사드립니다.

흙으로 저를 빚으시고 주님의 숨결을 불어넣어 주신 하나님, 제가 한낱 흙에 불과함을 기억하여 교만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동시에 주님의 형상을 지닌 존귀한 존재임을 기억하여 낙심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만나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주님의 형상을 보게 하시고, 그들을 귀하게 여기며 섬기게 하여 주옵소서.

거룩하신 하나님, 고백합니다. 저도 아담과 하와처럼 주님이 주신 수많은 복을 누리면서도 단 하나 금하신 것에 마음을 빼앗기곤 했습니다. 주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고, 제가 스스로 선악을 판정하는 주인이 되려 했으며, 일이 잘못되면 다른 사람과 환경을 탓하며 무화과 잎 뒤에 숨었습니다. 이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럼에도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시며 먼저 찾아오시는 자비로우신 아버지, 심판의 선고 한가운데 구원의 약속을 숨겨 두신 그 놀라운 은혜를 찬양합니다. 우리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주님께서, 때가 차매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뱀의 발꿈치에 상하시고 부활로 승리하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제가 스스로 엮은 무화과 잎을 벗고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게 하여 주옵소서.

신실하신 하나님, 칭의의 순간에 시작하신 성화의 일을 제 안에서 날마다 이루어 가 주옵소서. 죄의 권세와 뿌리에서 저를 건져 주시고, 에덴에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 곧 지식과 의로움과 참된 거룩함을 제 안에 다시 빚어 주옵소서.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신 뜻을 따라 쉼 속에서 주님을 누리는 법을 배우게 하시고, 제 마음이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이 땅에 다시 오실 그날을 소망합니다.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시고, 천 년 동안 이 땅을 다스리시며,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생명나무의 길을 온전히 여실 그날까지 깨어 기다리며 거룩하게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부터 시작하는 이 365일의 말씀 여정을 붙들어 주시고,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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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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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John Wesley, Preface to Sermons on Several Occasions,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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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The British Museum, Collection Online, “Tablet K.3473 (Enuma Elish),” https://www.britishmuseum.org
  20. 이미지 출처(모두 위키미디어 공용에서 내려받아 크기를 줄여 사용함): 에누마 엘리시 점토판 사진, Zunkir, CC BY-SA 4.0 / 귀스타브 도레 「빛의 창조」, 퍼블릭 도메인 / 텔 페케리예 석상 사진, Wayne Pitard, CC0 / 미켈란젤로 「아담의 창조」, 퍼블릭 도메인 / 『엔사이클로피디아 비블리카』 수록 지도, 퍼블릭 도메인 / 티투스 개선문 메노라 부조 사진, Steerpike, CC BY 3.0 / 토머스 콜 「에덴 동산」, 퍼블릭 도메인 / 루카스 크라나흐 「아담과 하와」, 퍼블릭 도메인 / 마사초 프레스코 사진, Yair Haklai, CC BY-SA 4.0 / 존 웨슬리 초상(윌리엄 해밀턴), 퍼블릭 도메인 / 웨슬리 형제 회심 기념 명판 사진, Jim Osley, CC BY-SA 2.0 / 블루 마블 사진, 아폴로 17호 승무원(NASA), 퍼블릭 도메인 / 미켈란젤로 「모세」 조각상 사진, Westerdam, CC BY-SA 4.0 / 렉미레 무덤 벽돌 제조 벽화 모사본, Nina M. Davies(메트로폴리탄 미술관), CC0 / 시나이 광야 사진, Vyacheslav Argenberg, CC BY 4.0 / 니느웨 네르갈 문 사진, JoAnn S. Makinano(미 공군), 퍼블릭 도메인 / 샤마시 석판 부조 사진, Prioryman, CC BY-SA 4.0 / 몬레알레 대성당 모자이크 사진(안식·아담 창조·하와 창조), 퍼블릭 도메인 / 몬레알레 대성당 모자이크 사진(새·물고기·짐승·사람의 창조), 웰컴 컬렉션, CC BY 4.0 / 레닌그라드 코덱스 1v·2v쪽 사진, 퍼블릭 도메인 / 안식일 촛대 사진, Gilabrand, CC BY-SA 3.0 / 도공 사진, Jim McDowell(작가 제공), CC BY-SA 4.0 / 팀나 성막 모형 사진, יעקב, CC BY 3.0 / 미켈란젤로 「유혹과 타락」, 퍼블릭 도메인 / 무화과나무 잎 사진, Meria Geoian, CC BY-SA 4.0 / 카라바조 「뱀의 성모」, 퍼블릭 도메인 / 이레나이우스 『이단 논박』 1526년 초판 표지, 퍼블릭 도메인 / 사이러스 스코필드 사진, 퍼블릭 도메인 / 클래런스 라킨 세대주의 도표, 퍼블릭 도메인 / 겟세마네 올리브나무 사진, Beko, CC BY-SA 4.0 / 엡워스 옛 목사관 사진, Peter Church, CC BY-SA 2.0 / 조지 워싱턴 브라운로 「엡워스에서 설교하는 존 웨슬리」, 퍼블릭 도메인.